세상을 어떻게 살고 갈까

2008.03.20 22:18

윤봉원 조회 수:1153 추천:56

벧전 1:13-172008030901날자: 2008년 3월 9일 주전
제목: 세상을 어떻게 살고 갈까?
본문: 베드로전서 1장 13절∼17절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올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이전 알지 못할 때에 좇던 너희 사욕을 본삼지 말고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판단하시는 자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의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1. 세상은 영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토막
우리는 만물 가운데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 만물의 영장으로 지음 받은 사람입니다. 사람은 무상하나 영원불멸의 존재입니다. 영질과 물질의 양성으로 지음받은 것은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피조물 중에 사람 하나뿐입니다. 사람은 인생으로 출발한 이 세상이라는 세계와 또 낙원이라는 세계와 천년왕국이라는 세계와 영원무궁한 세계를 우리들이 다 가지고 있는 자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은 출발하는 토막이요, 그 다음 우리의 세계는 낙원 세계요, 그 다음 세계는 천년왕국 세계요, 그 다음 세계는 무궁세계입니다.
낙원 세계는 잠깐 정리하는 휴식 세계요, 천년왕국은 재연습 세계요, 무궁세계는 영원한 보응을 받는 세계입니다. 그중에 세상이라는 이 토막은 가장 중요한 토막입니다. 이유는 영원의 움싹과 같은 세상입니다. 영원의 터가 되는 세상이라고 말씀하시고, 영원의 원인이 되는 세상이라고 말씀을 하셨고, 또 영원무궁을 심는 세상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세상은 하룻밤과 같이 잠깐 지나가는 것이지만 영원을 가진 우리 사람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토막입니다.
세상에 있는 이 일반적 혜택을 입은 사람들은 여기에 대한 지식을 가지지 못했으나 예수님의 대속을 입은 자들에게는 지혜와 총명을 주셔서 하나님의 이 비밀의 영원을 우리에게 필요 있는 대로는 다 지식할 수 있도록 하셨다고 했습니다.
세상에는 세상 지식과 하나님의 지식과 개인이 체험하고 경험한 자기 지식 이 세 가지로 세상은 살아나가고 하루하루를 살아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엡 5:15-16)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 시작하는 이 한토막살이를 잘하면 영원히 잘 되고 이 한토막의 생애를 잘못 하면 영원한 실패자 비참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2. 세상을 영주처로 착각하고 살지 말라
우리는 어떻게 이 세상을 살고 갈까? 성경이 우리에게 첫째로 가르치고 있는 것은 “세상은 하나님이 구원할 사람을 구원하고 또 멸망될 사람이 멸망의 사람으로 판정이 나는 이 작업이 끝나면 끝나는 즉시로 모든 것은 불사르기 위해서 간수하여 있다”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이 세상은 언제든지 이대로 있을 세상이 아니고 불살라져서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은 없어질 것이라는 것을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세상을 우리가 자기 살 곳으로 착각하면 안 됩니다. 하루를 자기 살 세상으로 착각했으면 그만큼 자기는 영원을 손해보게 됩니다. 세상은 일 년을 살든지 백 년을 살든지 세상은 언제나 떠날 준비하는 나그네 세상이지 세상에 살 곳은 아닌 것입니다.
그러기에 오늘도 영원을 향하여 나는 갈 세상이다, 이사 갈 준비를 할 세상이다, 영원을 향하여 떠날 준비 그곳에 가서 살 준비 하는 세상이지 세상에 있을 세상도 아니요 세상에 있을 준비를 하는 날이 아니라 하는 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됩니다. 그러기에 세상을 자기의 거주처로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이 현실을 자기가 살 곳이라고 생각하는 데에서 눈물도 나고 한숨도 나고 교만도 생겨지고 자기 자랑의 자긍도 생겨지는 것이지 이것은 내가 살 곳이 아니기 때문에 현재에 닥쳐진 이 현실은 다 지나가나 내가 이 현실을 상대해서 행동한 것은 하나도 없어지지 않는다 하는 것을 생각하고 살아야 합니다.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판단하시는 자를 아버지라 부른즉”
이래서 베드로후서 3:10절에는 “모든 형태가 다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모든 일들을 드러난다” 이랬습니다. “모든 일들은 드러난다” 모든 일들이 드러난다 그 말은 인간의 행위는 하나도 없어지지 안하고 다 그대로 남아 있다 하는 것입니다.
요즘 민주당 공천 심사할 때에 과거 벌금형 이상 받은 사람들은 공천에서 배재하니까 현역 의원이 몇 명 떨어져서 저항이 상당히 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이것도 우리의 자연계시 거울 중에 하나입니다. 
바울은 말하기를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 과연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니 이렇게 입음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고후 5:1~3)고 고백을 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 세상살이를 닥치는 대로 거머당겨서 많이만 가지면 부자인 줄 알고 많이 먹고 많이 쓰면 복된 사람으로 이래 알 것이 아니라 모든 행위는 하루 이틀이라는 그런 자기 이력으로써 의복을 만드는 것처럼 그렇게 자기의 영원을 위해서 걸어 나가고 있는 세상이다.
3. 거룩과 경건 연습만 하라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이전 알지 못할 때에 좇던 너희 사욕을 본 삼지 말고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벧전 1:14-15)
우리가 하루하루의 생활에서 모든 형편과 만물을 접촉해서 내 현실로 하나님이 만들어 주신 그것은 그것을 좋은 거는 내가 취하고 나쁜 거는 뱉고, 좋으면 기뻐하고 나쁘면 싫어하는 그런 네가 착각을 가지지 말아라. 그것은 하나님이 네가 원한다고 주는 게 아니라, 네가 노력한다고 부자된 것 가난해진 것 아니라 하나님이 각자에게 정해 놓은 것으로 그대로 정한 대로 이루어지는 것인데 다만 그것을 주시는 것은 그것 가지고 경건을 연습하고 거룩을 연습하도록 주셨다.
이 세상 것도 연습하면은 숙달되는데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의 연습은 금생과 내세에 유익이 크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이 세상 수많은 형편을 우리가 만나는 것은 거게는 단지 거룩과 경건을 연습하는 데에 쓰이는 것입니다. 그것을 가지고서 거룩이 연습되고 경건이 연습됩니다.
거룩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생의 법칙으로 주신 그 법칙을 지키는 것을 거룩이라 하고 경건은 대주재 이분을 위하는 것을 경건이라고 하는데 앞으로 하나님의 심판에서는 너는 거룩이 몇 점이며 경건이 몇 점이냐? 거룩과 경건만 그때 가치로 나타나지 나머지기는 다 불살라지고 맙니다.
우리가 성경에 잘 아는 사람 중에 다니엘 같은 사람은 이 자기에게 주신 자기 법칙을 뺏기지 안할라 하니까 사자구덩이에 집어 넣을라고 왕이 하루 종일 사정을 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그 거룩을 안 뺏길라고 하루 종일 왕으로 더불어 신강하다가 마지막에는 왕이 할 수 없어서 사자구덩이 집어 넣을 때에 사자구덩이 묶여 들어가면 그 거룩을 놓지 안하고 거룩을 잡고 들어갔던 것입니다.
하늘나라는 하나님이 전지전능자로서 만들어 놓은 나라이기 때문에 그 나라에는 모자랄 것이 없습니다. 다만 그 나라에서는 필요한 실력이 무엇이냐? 하나님이 주신 생애 법칙 그것을 준행하는 그자만이 하나님께 필요하고 또 경건은 그분을 위하는 것. 그분 중심 가지는 것 이것만 실력으로 삼습니다.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그것을 내가 먹고 입고 쓰는 것도 목적이 아니요 또 취하는 것도 나의 목적이 아니요 그것은 그날 그날 먹고 입고 현상 유지만 되면 됩니다. “먹을 것과 입을 것 있으면 족하다” 했습니다.
“저 세상과 및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함을 얻기에 합당히 여김을 입은 자들은 장가가고 시집가는 일이 없으며 저희는 다시 죽을 수도 없나니 이는 천사와 동등이요 부활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임이니라 죽은 자의 살아난다는 것은 모세도 가시나무떨기에 관한 글에 보였으되 주를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시라 칭하였나니”(눅 20:35~37)
4. 현실에 대하여 착각하지 말라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이 세상을 착각하지 맙시다. 이 세상 다가 제것 아니라 자기 현실만이 자기 세상입니다. 자기 현실은 무엇입니까? 귀로 듣는 거, 눈으로 보는 거, 라디오에 듣는 것도 자기 현실이요, 보고 듣고 접촉하는 것 느끼는 것 그 모든 것이 다 현실이니 거게는 천태만상의 것이 있어서 백 현실을 만났으면 그 사람은 백 번 연습하고 백 가지 연성했고, 만 가지를 만났으면 만 번 연습했고 만 가지를 연성했고 만 가지를 실패했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변치 않는 일관된 자기의 일생을, 깨달은 사람들은 원치 않습니다. “동남풍아 불어라 서북풍아 불어라 가시밭의 백합화는 향기만 날린다”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안팎에 눈이 가득 차기를 원했습니다. 이것은 인간들이 볼 수 있는 면, 보지 못하는 면, 현재의 면, 영원무궁의 면, 어떤 존재는 종류도 하나밖에 모르니까 하나에게만 맞춰 살지만 어떤 존재는 종류를 억만도 더 광범위하게 보고 거기에 맞춰서 사는 것이니,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다 맞춰 살 만한 머리가 없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주님이 우리에게 간단명료한 법칙을 줬습니다. 너는 하나님의 법칙을 줬기 때문에 이 법칙은 거룩과 경건을 연습하는 이 법칙대로 하면은 거룩과 경건이 되고 이 법칙을 어기면 거룩과 경건이 안 되니 이 법칙을 네가 삼가 듣고 지켜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이 법칙에는 수많은 ‘하라’ ‘하지 말라’는 신구약 성경 법칙을 가졌지만 이 현실에서는 이 법칙을 적용해야 되나 저 법칙을 적용해야 되나? 거기에 적용되는 법칙이 열 가지로도 볼 수 있고 백 가지로도 볼 수 있는데 그 중에 어느 것이 여기에 대한 법칙인가? 그것은 기름 부음이 너에게 가르쳐 준다. 영감이 가르쳐 준다.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요일 2:27)
이러니까 우리가 이 세상을 착각했던 여기에서 깨어나야 됩니다. 세상은 내가 그것들을 가지기 위해서 주신 것도 아니요, 내가 먹고 쓰기 위해서 주신 것도 아니요, 그것에 대해서 현상 유지로 그 날을 유지할 수 있는 먹을 것과 입을 것 있으면 족하고, 내가 쓰는 것은. 그 나머지기는 거게서 내가 거룩과 경건을 연습하는 것이라. 경건을 연습하는 것이라. ‘내가 여기 지금 내가 살 곳이다’ 거주처로 생각지 말아라. 너는 여기에서 영원을 준비하는 나그네의 생활이기 때문에 “나그네로 지낼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행인 같은 너희들이니 두려움으로 지내라”
“네가 만일 그리스도로 더불어 다시 살리움을 받았으면 이제는 위에 것을 찾으라. 위에 것을 찾으라. 위에 것을 생각하고 땅에 것을 생각지 말라. 네 선봉장으로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어떻게 걸어서 유일하신 조물주의 다음 제이위의 보좌에 앉았느냐? 너도 이기면 그 자리 앉는다.”
5. 정확한 계산을 하며 살자
우리는 다시 이 세상에서 오산하면 안 됩니다. 정확한 계산을 가지고 살아야 됩니다. 오산이라 말은 네가 오늘 하루 생활에서는 네 수입이 얼마며 네가 수입할 것을 수입 못 해서 손해가 얼마냐, 수지가 어찌 되느냐, 그 계산을 정확하게 하고서 살아라 말하는 것입니다.
주기철 목사님의 맏아들은 서른세 살만 살겠다 작정 하고 서른세 살에 공산주의자에게 잡혀가서 순교했습니다. 그분은 매일 생활하기를 ‘아무래도 시간을 정해 놓고 사는 그것이 마지막 계산할 때는 수입이 낫다. 이러기 때문에 나는 서른세 살까지 살지만 주님 부르실 때까지 그때까지 나는 시간표를 정해 놓고 나는 수지 계산을 맞추면서 살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성경에 말씀하시기를 “이 모든 것이 풀어지고 이 모든 것이 다 녹아지고 불에 타서 다 체질에 녹아지나 너희들은 이렇게 되니까 어떠한 사람이 돼야 되겠느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나타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의 날이라 말은 예수님의 재림의 날이라 말이니 곧 우리 개인의 죽음의 날입니다. 곧 우리가 죽었다가서 이다음에 부활할 때에 그 부활의 날을 말하고, 하나님 앞에 심판 받는 심판의 날을 말하고, 행한 대로 영원히 그대로 보상받는 그날을 두고서 가리켜서 하나님의 날이라 합니다. 영원한 갚음을 받는 날도 하나님이 정한 날이니까 그 날을 두고 계산해라.
이래서 모세는 말하기를 “주여 나에게 날수 계산하는 지혜를 주시옵소서” 했습니다. ‘날수 계산하는’ 그 말은 자기가 하루 하루 생애를 하는데 오늘 생애는 수지가 어찌 된다, 손해가 얼마다 수입이 얼마다 하는 그 수지 계산을 따져가면서 사는 지혜를 주시옵소서. 위대한 모세는 그렇게 하나님에게 구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오산하지 말고 정확한 그 결산에서 우리가 살아야 됩니다, 정확한 결산. 정확한 결산. 뭘 두고 결산할 것인가? 우리는 하루 온 세상 것을 다 가졌다가 내 줬다가 뭐 오고 가고 많은 무역하는 것도 그것도 자기 수입은 아닙니다. 온 세계를 다스리는 것도 자기 수입은 아닙니다.
이러니까 그 날을 두고 우리는 계산을 해야 됩니다. 그 날을 두고 계산해서, 바울이 말하기를 “나는 만삭되지 못해서 낳은 아이와 같다” “죄인 중에 괴수 죄인이라” 늘 이렇게 말하다가 마지막에 순교하는, 감옥에서 순교할 그 마지막에 그가 발표하기를 “나는 이제 나의 달려갈 길을 다 달려갔고 선한 싸움을 싸웠고 거룩한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내가 남은 것은 주님 앞에 승리 받을 것뿐이다. 면류관 받을 것뿐이다. 이제는 싸울 싸움 다 싸우고 승리했다.” 그분은 그렇게 모든 것을 정확한 계산을 대고 살았습니다.
6. 거룩과 경건 준비함으로 세상을 잘 살고 갑시다
우리는 세상에 대해서 무식한 사람이 되지 맙시다. 세상은 참 중요한 토막입니다. 무궁세계보다 세상이 중요합니다. 세상은 중요한 토막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은 경건을 위해서 쌓아 두다가 없어질 세상입니다. 셋째로 우리는 세상을 착각하지 맙시다. 세상살이에서 오판하지 맙시다. 오산하지 맙시다. 우리는 우리의 생애 전부가 주님 앞에 면류관 받을 그 일을 준비하는 거게에 다 매진하고 주 앞에 서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인지 내일인지 우리는 모릅니다. 젊어도 모릅니다.
우리는 세상을 어떻게 우리가 살고 갈까? 우리는 잘 살고 가야 되겠습니다. 세상을 잘 살고 가야 됩니다. 세상을 잘 살고 가는 것은 이 세상은 영원의 원인과 종자와 같은 이 세상이기 때문에 이것을 알고 오늘에 생애가 낙원에도, 천년왕국에도, 무궁세계에도, 심판에도 다 유익되고 수입이 되는 그것을 해야 잘 살고 가는 것이지 뭐 지위 있고 권세 있고 잘 먹고 잘 입고 제 욕심대로 살면 잘 살고 가는 겁니까? 우리가 이런 것도 다 오판이라 그 말입니다.
세상은 없어질 것입니다. 그것 때문에 쌓아 두는 것입니다. 세상은 우리의 거주지가 아닙니다. 우리는 떠날 사람입니다. 그런고로 세상을 정판하고 오판하지 말아야 합니다. 착각하지 말아야 됩니다. 우리는 생애 하루하루를 정확히 계산하고 살아야 되지 오산하면 안 됩니다. 헛된 수입을 제 수입으로! 제 수입 제 손해를 정확하게 따져서 알고 가는 우리들이 돼야 할 것입니다.
{참조. 87092002} * 윤봉원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8-03-20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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