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의 기준

2008.03.01 21:14

윤봉원 조회 수:1012 추천:62

눅 18:9-142008030201날자: 2008년 3월 2일 주일오전
제목: 하나님 나라의 기준
본문: 누가복음 18장 9절 -14절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이다. 나는 이레에 두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사람이 저보다 의롭다 하심을 받고 이에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1. 나의 삶의 기준은 무엇인가?
자기의 삶의 기준이 무엇인가 돌아봅시다. 유명 연예인 닮는 것(의상, 말, 헤어스타일, 노래, 춤까지 닮으려고 노력 함)자신의 경험과 지식, 다른 사람의 성공과 출세, 부모가 정해 준 교훈 또는 가훈, 학교에서 배운 지식, 친구의 말, 선배의 말, TV나 메스컴의 소식, 수많은 책들을 보고 읽은 말들이 기준이 되어 살아가고 있지는 않는지요?
그러나 우리는 항상 명심해야 할 것은 우리 자신들은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요, 예수님의 피공로에 팔린 주의 것된 자들이라는 사실이다. 바울이 고백한 것처럼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는 명령의 우리의 삶에 적용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삶의 기준이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이 아닌 그 어떤 무엇이 되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이것만이 온전타 인정함을 받는 삶이 되어 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삶을 어떻게 하면 살아 갈 수 있을까요? 본문 말씀을 중심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2. 본문의 교훈
2.1. 사람을 멸시하는 것은 하나님이 노여워하는 행위
첫째는 사람이 사람을 멸시하는 것은 하나님이 노여워하시는 행위입니다. 사람이 경제적으로, 권세로, 지위로, 지식으로, 능력 온갖 기능, 도덕면, 하나님 앞에 신앙 모든 생활과 행위가 자기에다가 비해서 아주 허무하다 해서 멸시를 하든지 어떤 이유로 사람이 사람을 멸시하든지 이것은 하나님이 대노하시는 일입니다. 하나님에게 버림을 당합니다. 
세리는 그 날의 세리는 유대 나라가 로마 나라의 식민지로 있을 때인데 그때 그 세금이라는 것은 세리들이 도급으로 떼 가지고 얼마든지 착취해서 먹고 상납만 하면 되는 그때의 그 세리 행위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세리라는 것은 그 나라에서 죄인 중에 제일 못 쓰고 악하고 독하고 그런 죄인이라고 인정하는 사람들입니다. 또 바리새인은 신앙생활 하는 중에도 아주 독실한 신앙생활을 하는 정통파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세리와 바리새교인의 신앙 행위는 기도하는 것이라든지 연보하는 것이라든지 모든 여러 면에 행위로 봐서 비교 못할 큰 차이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멸시를 하는 사람은 하나님에게 버림을 받았고 멸시를 당하는 그 사람은 오히려 하나님 앞에 환영을 받았다는 것을 그 밑에 끝에 말씀했습니다. 사람을 하나님만이 사람을 정죄하지 우리는 심판적으로 정죄를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그 사람은 이렇게 이렇게 나쁜 점이 있으니까 하고서 사람을 멸시할 권리는 없습니다. 사람의 행위의 어떠한 것은 우리가 비판하고 평가해서 옳은 것은 옳다 아닌 것은 아니라 이렇게 비판하는 것은 그 사람의 나쁜 것으로서 나와 모든 사람이 나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 이것을 비판하고 평가하는 것이지 이런 이런 죄인이니까 어떤 형벌을 주기 위해 가지고 내가 비판하면 하나님 하나님 노릇을 제가 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죄를 받습니다.
2.2. 죄와 의의 표준은 하나님과 진리
둘째는 사람이 죄라 의라 하는 것은 사람을 표준으로 해 가지고 죄라 의라 하는 것 아닙니다. ‘아 이 사람보다 나으니까 의인이라’ 그거 아닙니다. ‘이 사람보다 이 사람이 옳으니까 의인이다’ 그거 아닙니다. 이 사람보다 이 사람이 잘못 됐으니까 죄인이다 그거 아닙니다.
죄라 의라 하는 것은 인간을 표준으로 해 가지고 죄라 의라 하는 것이 아니고 죄는 하나님에게 삐뚤어진 것 하나님의 법칙 이 진리에 삐뚤어진 것을 죄라 이렇게 합니다. 여기에 이 바리새 교인은 의라고 “나는 이 사람들과 같지 아니하고 의로운 자라.” 자기가 의는 이 사람은 간음하는데 저는 간음하지 안하니까 의인이라, 이 사람은 토색하는데 자기는 토색하지 안하니까 의인이라, 이 사람은 불의한데 자기는 불의하지 안하니까 의인이라, 이러니까 이것을 틀렸다고 정죄를 받았습니다. 세리는 오히려 의롭다함을 얻고 돌아갔고 바리새교인은 정죄 받고 갔습니다.
죄라는 것은 누구만 못하기 때문에 죄가 아닙니다. 죄는 다만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에 삐뚤어진 것 고것만이 죄입니다. 그 사람이 천하에 있는 모든 사람보다 낫다 할지라도 천하에 있는 모든 사람보다 낫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삐뚤어지면 죄인입니다.
천하 사람이 이 사람이 제일 의인이라고 아무것이 보다도 이 사람이 낫고, 아무것이보다 이 사람 낫고, 천하의 모든 사람보다 제일 낫다 할지라도 그 사람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삐뚤어져 있으면 죄인입니다. 하나님의 법칙인 육십육 권 도리에 삐뚤어져 있으면 죄인입니다.
그러기에 모든 종교 여려 이종교가 많이 있는데 여러 이종교에서 ‘아 그 교주는 이렇게 훌륭하다, 그 도덕가는 이렇게 훌륭하다, 그 철인은 이렇게 훌륭하다, 모든 천하의 사람들이 다 노벨상을 주고서 이 사람은 천하에 모든 사람들에게 존대를 받는다’ 해도 그게 의가 아닙니다. 그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에 삐뚤어지고 하나님께 삐뚤어져 있는 행위라면 천하 인간이 다 의라고 인정을 해도 하나님과 하나님 말씀에 삐뚤어지면 죄인입니다. 죄입니다.
의도 그러합니다. 의는 인간보다 낫다고 의가 아닙니다. ‘아 이 사람은 아무 사람보다 이 사람은 낫다 이러니까 의인이다.’ 그거 아닙니다. 의의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된 것이 의요 또 하나님에게 올바른 관계가 되어 있는 고기 의입니다. 하나님과 진리의 말씀에 하나님과 성경 말씀에 일치된 그것이 의요. 죄는 고게 삐뚤어진 것이 죄라.
그러기에 우리가 회개를 하는 것은 누구 사람을 보고 그 사람보다 낫게 하면 회개되는 것 아닙니다. 그 사람만 못하다고 죄인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준해 가지고 회개를 해야 됩니다. 아무것이가 저렇게 하니 그 사람보고 나도 그 사람과 같이 해야 될 터인데 그 사람 같이 못한다. 그러기 때문에 죄인이라. 그 사람 잘못 알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어떤 성자라 할지라도 그 성자를 보고 저 성자와 같이 나도 살아야 되겠다 하면 그것이 잘못된 신앙입니다. ‘아 베드로가 위대하니까 나도 베드로같이 믿어야 되겠다. 사도 바울같이 믿어야 되겠다. 아브라함이 위대하니 나 아브라함같이 믿어야 되겠다.’ 아닙니다. 아브라함도 사도 바울도 우리의 신앙의 표본은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는 것이지 사도 바울의 그 인격을 닮는 것 아닙니다.
사도 바울이 성경 기록할 때에 “나를 본받으라”는 그 본받으라는 것은 사도 바울이라는 그 사람을 본받으라는 말이 아닙니다. 성경은 바울이 기록한 것이 아니고 성령님이 기록했습니다. 나를 본받으라 그 말은 성령님을 본받으라 그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의 영을 본받아 그리스도가 제사장 선지자 왕이 되게 하는 그대로의 사람이 되어지라 하는 그것을 말씀합니다.
그러기에 죄와 의는 사람, 사람의 행위를 기준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과 성경 말씀을 기준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됩니다.
2.3. 장점은 감사하고 단점은 고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되라
셋째는 바리새교인은 자기의 장점을 보고 만족을 했고 사람과 비교해 보니까 자기의 장점을 보고 만족했습니다. 그 장점 좋습니다. 다른 사람은 토색하는데 저는 토색하지 안하고, 다른 사람 불의 하는데 저는 불의하지 안하고, 다른 사람은 간음하는데 저는 간음하지 아니하고, 저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기도하고 십일조도 잘 드리고 얼마나 좋은 것입니까 아주 귀한 것입니다.
귀한 것이지만 자기가 해놓은 귀한 것으로 끝을 맺고 귀한 것으로 끝을 맺어서 귀한 것 옳은 것 고것만 보고 고것만 보고 앉았기 때문에 자기는 이 의 있는 옳은 것 그것만 가지고 있는 사람이고 이 세리는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법칙을 보니까 너무 하나님의 법칙에 많이 틀렸고 하나님과의 거리가 멀기 때문에 하나님을 바라 볼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법칙을 바라보니 기가 막혀서 자기는 감히 바라보지도 못하고 자기의 삐뚤어진 것으로 인해서 하나님 앞에 불쌍히 여기 달라고 부르짖었습니다.
사람이 어디까지 의인이 됐을지라도 어디까지 의인이 됐을지라도 의인된 고것으로 만족을 하고 의인된 그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냐 하나님과 진리에 삐뚤어진 고면을 지금 잡고서 분발하고 있는 사람이냐? 요 둘 중에 하나입니다.
어디까지 의인이 됐다 할지라도 자기의 의 그것만 가지고 있는 자는 하나님에게는 필요 없습니다. 물리침 당합니다. 어데까지 떨어져 있는 인간이라도 하나님과 하나님의 법칙을 보면서 자기의 삐뚤어진 그것을 원통히 여기면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법칙에 맞도록 하려고 애를 쓰는 삐뚤어진데 대해 삐뚤어짐에 대해서 심한 그 부끄러움과 두려움과 하나님 앞에 말할 수 없는 그 죄송스러움을 금하지 못해서 자기의 삐뚤어진 그것을 발견해 가지고 어떻게 자기가 고쳐야 된다는 것 바로 고쳐야 된다는 것 그것을 바라보면서 삐뚤어진 이것을 삐뚤어진 요것을 가지고 하나님과 진리를 향하여 바로 고칠 요것을 바라보면서 삐뚤어진 이것을 거머쥐고 바로 고칠 요것을 바라보면서 있는 그 사람은 하나님이 들으시고 긍휼히 여기십니다.
제일 좋은 사람은 자기에게 장점 있는 그것이 과거에 그 장점이 없었던 단점뿐이었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장점된 그것을 하나님 앞에 감사하면서 또 요와 같이 하나님이 고쳐 장점되게 하셨으니까 나에게 남은 단점 요것도 하나님이 고쳐 주실 것을 소망하면서 자기의 단점을 가지고 하나님에게 부르짖는 요 사람을 하나님이 제일 기뻐합니다.
바울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자기가 지금 의로워진 그것을 거머쥐고 하나님 앞에 감사하면서 내가 과거에는 이렇던 죄인이라 하는 그것을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자기가 은혜로 깨끗해진 것을 그것을 무시하는 깨끗해진 것을 거머쥐고 감사하면서 깨끗해지기 전에 어떻게 더러웠던 자 된 것을 그것을 건너다 보면서 하나님 앞에 감사하면서 또 자기의 앞에 있는 그 고치야 할 깨끗 이것을 바라보면서 달음질하는 이것이 성신의 행동입니다.
그러기에 자기의 장점만 보고 있는 사람은 하나님에게 버림을 당하고 그 사람은 교만을 놓게 되기 때문에 버림을 당하고, 자기의 단점을 고쳐 보려고 애를 쓰는 사람은 겸손을 가지기 때문에 그 사람은 하나님 앞에 환영을 받게 되고 자기의 단점을 하나님이 고쳐줘서 장점된 그것을 감사하면서 앞으로 남은 단점을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다 장점화 시킬 수 있는 이 욕망을 가지고 달아난 사람을 하나님께서 제일 기뻐하십니다.
2.4. 회개가 근거가 된 기도에 응답하심
바리새 교인과 세리가 하나님 앞에 같이 기도하러 갔는데 세리의 기도는 들으셨고 바리새인의 기도는 하나님이 듣지 안했습니다. 왜 그러냐? 다 같이 기도하러 갔지만 세리는 자기의 잘못된 요것을 찾아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용서 받고 잘못 된 요것을 고쳐 주시기를 바라는 그 회개를 원하는 기도 그 회개를 근거로 하는 기도 자기의 잘못된 것을 발견해 가지고 요것을 하나님 앞에서 고침 받으려고 하는 그 회개를 근거한 기도는 하나님이 들으셨고 회개를 근거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고쳐 놓은 그 점을 보고서 낙관하는 그런 사람은 하나님이 기도를 듣지 안했습니다.
그런고로 넷째 우리가 기억할 것은 응답의 기도란 하나님이 응답하시는 기도는 반드시 회개를 밑바탕으로 삼아야 그 기도가 회개가 본질과 본성이 되어져야 회개가 본질과 본성이 되어져야 그 기도 응답을 받으시고 회개를 밑잘미로 잡아야 그 기도 응답이 되지 회개를 빼놓은 그 기도는 하나님이 듣지 안하십니다.
물론 우리가 감사하는 것도 있지만 감사하는 그것은 건설적인 하나님의 기도나 응답 없습니다. 감사하는 것은 이미 있는 것을 감사하는 것이니까 거기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새로 은혜를 베풀 필요가 없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기도는 반드시 회개가 그 본질과 본성의 기도가 뼈대가 되야 되지 회개가 기도의 뼈가 되야 되고 회개가 기도의 기초가 되어져야 그 기도의 응답이 있지 회개가 없는 기도는 하나님이 응답하시지 않는 것입니다.
3. 회개합시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합시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하나님 나라의 기준을 생각하며 회개를 합시다. 사람을 멸시하면 하나님 앞에 버림받습니다. 죄와 의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함이지 인간을 기준해 가지고 사람보다 어떻다 사람을 기준해서 회개하는 것은 아닙니다. 자기의 장점만 보고 오만한 사람은 버림당하고 자기의 단점으로 부르짖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환영을 받았습니다. 넷째로 기도는 회개가 뼈대야 되고 회개가 그 기초가 되야 되지 회개 위에 기도를 해야 되고 기도의 뼈다귀가 또 회개가 돼야 됩니다. 그렇지 안하면 응답을 받지 못합니다. 기도의 응답을 받지 못합니다.
{참조. 80102933} * 윤봉원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8-03-01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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