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는 생사(生死)의 문제

2008.02.25 14:13

윤봉원 조회 수:1060 추천:100

눅 15:11-242008022401날자:2008년 2월 24일 주일오전
제목: 회개는 생사(生死)의 문제
본문: 누가복음 15장 11절 - 24절
1. 나는 탕자인가? 효자인가?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기본명령으로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가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신 5:16), ‘모세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고 또 아비나 어미를 훼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으리라’(막 7:10; 출 21:17)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자리에 있는 우리는 부모를 잘 공경하는 효자입니까? 부모를 공경하기는커녕 속 썩이고 애 먹이는 불효자요 탕자는 아닌지요?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삼 1:2)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번에 용문산에서 육군 헬기 추락사고로 숨진 자들의 부모들은 가슴이 찢어지도록 아플 것이며, 평생 슬픔과 우울한 마음을 버리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는 만유의 주시오, 만왕의 왕 되시며, 모든 역사 세계를 홀로 주권 예정하시고 섭리하시는 분이십니다. 그에 비해서 우리는 우리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들입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지내 온 것은 전적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하나님께서는 사활의 대속의 공로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건강과 지혜와 모든 국가적, 경제적, 문화적 환경을 맞춤의 현실로 주셨습니다. 참으로 우리는 풍족하게 살아가고 있는 자들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은혜를 값없이 받은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께 어떠한 반응을 보여야 마땅할까요? 죽도록 충성하고도 ‘무익한 종이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는 우리들입니다. 그리하여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하고 십자가의 길 대신에 평안하고 안일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배운 말씀을 실천하고 순종하기 보다는 알면서도 차일피일 미루고 다음에 잘하면 되지 하고 넘어가는 요령쟁이는 아닌지요?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차지도 덥지도 아니한 미지근하여 주님이 보실 때 토하여 내치고 싶은 진노와 징계와 책망의 대상은 아닌지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우리 자신들의 나아갈 방향을 잡도록 합시다.
2. 본문 분석(어리석은 부자 둘째 아들)
{어리석은 부자는 누가복음 12장 13절-21절 말씀에 근거하여 하나님으로 부요치 못하고, ‘내가, 내가, 내, 내, 내가, 내 영혼에게’하면서 하나님은 왕따 시키고 내 스스로 나의 부요와 행복을 위하여 열심히 창고를 크게 키우고, 그곳에 채우기 위하여 힘쓰는 사람.}
‘또 가라사대 어떤 사람이 두 아들이 있는데 그 둘째가 아비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버지가 죽기도 전에 유산을 나눠달라고 하는 탐욕으로 가득한 둘째 아들
 ‘아비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그 후 며칠이 못되어 둘째 아들이 재산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허비하더니’ 허랑방탕한 삶을 통하여 재산을 낭비한 탕자.
 ‘다 없이한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저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가서 그 나라 백성 중 하나에게 붙여 사니 그가 저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 저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아버지의 품을 떠나서 자기식대로 살면 잘 될 줄 알았지만 결과는 가난하고, 궁핍하고, 굶어 죽게 되었다.
‘이에 스스로 돌이켜 가로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고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 돌아가니라’ 자기의 잘못에 대한 반성도, 아버지를 걱정 끼쳐 드린데 대한 후회도 없이, 오로지 자기의 목숨을 건지기 위해 아버지께 돌아간 아들.
‘아직도 상거가 먼 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아들이 가로되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하나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저희가 즐거워하더라’ 아버지는 철없고 지혜롭지 못한 불효막심한 아들의 과거의 잘못을 따지지 않고 그냥 받아 주었다. 그리고는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라 하시면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고 한다.
탐욕으로 가득한 아들과 사랑과 긍휼이 풍성한 아버지의 대조를 발견하게 된다.
3. 본문의 교훈
3.1. 아버지의 품을 떠난 둘째 아들의 결과는 죽음
아버지에게 유산을 받아서 아버지의 품을 떠날 때는 얼마나 자신 만만했겠습니까? 행복에 대한 기대로 가득했을 것입니다. 콧노래를 부르며 집을 나섰을 것입니다. 재산을 다 없이하기까지의 삶을 상상해 보십시오. 친구들, 여자들도 많았을 것이요, 왕자 대접을 받으며 하루 하루 지낼 때는 참으로 아버지의 품을 떠나기를 잘했다고 자신을 위로하며,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은 ‘이에 스스로 돌이켜 가로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고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라는 고백을 하게 된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회개하지 않고 자기중심, 자기 지식대로 살아가는 악한 걸음은 결국은 죽음이라는 것을 교훈해 주는 것입니다. 회개하지 않는 것은 죽음! 회개하지 않는 것은 죽음! 회개하지 않는 것은 죽음!
3.2. 아버지의 역할
잃은 양 비유와 잃은 드라크마 비유에서는 목자와 여인이 열심히 찾는 면을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집나간 둘째 아들에 대해서 아버지는 찾아 나서지 않고 스스로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고만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자신들도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 즉시로 아버지 품으로 돌아가는 회개를 합시다. 회개를 늦추면 늦출수록 더 괴로움과 좌절과 죽음만 엄습할 뿐입니다.
3.3. 아버지의 품을 떠난 생활의 오늘날의 의미
그렇다면 둘째 아들이 아버지의 품을 떠난 탕자의 생활을 오늘 우리에게 적용시키면 어떻게 정의 할 수 있을까요? 가출을 하는 것일까요? 외국으로 이민을 떠나는 것일까요? 국내 여행이나 외국 여행을 떠나는 것일까요?
본문을 분석해 보면 둘째 아들은 아버지의 집에서 아버지의 뜻을 따라 아버지의 간섭을 받으며 충성하는 것이 싫었습니다. 오직 그의 머릿속에는 자기식대로 한 번 살아보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결단을 하고 행동으로 옮긴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삶을 오늘날 우리에게 적용시켜 본다면 다음과 같이 정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매일 새벽기도 하기 싫어! 매일 성경 묵상하며 가정 예배드리기 싫어! 나는 부모님 말씀 듣기 싫어! 나는 주일 지키기 싫어(얼마나 주일 지키는 일보다 바쁘고, 수입 많고, 재미있고, 더 중요한 일들이 많은데)!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는데 내가 만난 상황을 당해봐, 감사는커녕 짜증밖에 안 나는데 감사는 무슨 감사란 말이야! 항상 기뻐하라고 하는데 기뻐할 일은 쥐꼬리만큼도 없고 산더미 같이 슬퍼하고 좌절할 일밖에 없는데 그래! 주일 밤 예배 지키기 싫어! 수요일 밤 예배 지키기 싫어! 금요 기도회 참석하기 싫어!’
이것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우리에게 주신 기본명령과 건설명령(성령과 진리의 인도하심)을 거역하고 탐심을 따라 내 마음대로 살아가는 악한 삶(옛사람의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삶은 아버지의 품을 떠난 시간이 얼마나 오래 되었느냐 에 따라서 가난과 궁핍과 좌절과 죽음을 느끼는 강도가 다를 뿐이지 결국은 죽음입니다.
예를 들면 소나무가 원 둥치를 잘라 놓으면 우선을 파란 것 같아도 그 나무는 죽은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붉게 마르는 것은 필연적인 이치이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명령을 떠난 것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다.
4. 생사의 문제로 인식하고 회개하자!
오늘 이 시간부터 우리는 회개는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선택사양이 아니다! 생사의 문제다! 확정을 짓고 알고도 명령을 어긴 것도 회개하고, 모르고 어긴 것도 회개하고, 이제부터 깨달은  로 들은 대로 순종하는 회개를 착수합시다. 그리하여 하나님께 효도하는 자가 됩시다. 하나님의 사랑을 약속대로 받아 기적과 축복으로만 살아감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립시다! * 윤봉원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8-02-25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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