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그네 인생

2008.02.19 10:29

윤봉원 조회 수:1024 추천:58

히 11:13-162008021202

날자: 2008년 2월 17일 주일오후
제목: 나그네 인생
본문: 히브리서 11장 13절 -16절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이같이 말하는 자들은 본향 찾는 것을 나타냄이라 저희가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1. 떠나보내야 하는 나그네 인생
 우리가 이 세상을 사는 것도 딱 한번입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어떤 중요한 영향을 주었던 사람과는 같이 평생을 살고 싶지만-교역자 이동시 눈물이 하염없이 흐른다-두고 떠나야 한다. 나에게 영향력을 주었기 때문에 떠나보내기 싫지만 떠나보내야 합니다. 아쉽지만 이것이 인생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도 떠날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주에 강상중 집사님을 떠나보냈습니다. 강 집사님을 생각하면서 "나그네 인생"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2. 나그네가 기억하고 힘쓸 것
2.1.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
13절 후반을 보면 이 땅에서는 우리는 무엇이라고 불렸습니까?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라’고 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의 통찰력입니다. 내가 크리스천이면, 나그네라는 의식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신앙과 불신앙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저는 간단하게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나그네! 라고 하는 것입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나그네의식을 가지고 삽니다. 이 정체성만 가져도 세상을 완전히 다르게 살 수 있습니다.
 나그네 의식!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것은 죽음을 이길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의 욕심과 탐심을 버릴 수 있습니다. 용서를 할 수 있는 의식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내가 나그네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지혜요 은혜 입니다.
우리에게는 두 가지 고향이 있습니다. 육적인 고향이 있습니다. 나를 낳아준 부모가 있고, 내가 태어난 곳이고, 내가 어린 시절 놀던 곳입니다. 그런데 영적인 고향도 있습니다. 그곳은 하늘나라입니다. 우리들은 하늘나라에서 오신 분들입니다. 본적이 하늘나라입니다. 그래서 하늘나라로 언젠가 돌아갈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 16절에 나와 있습니다. "저희가 이제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즉 하늘나라 고향을 사모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사실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우리는 이 땅의 주인이 아닙니다. 도리어 마귀가 이 땅의 주인입니다. 어떻게 우리를 말하고 있습니까? 외국인과 나그네라는 말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을 사는데 나그네라고 생각만 가지고 있어도 완전히 달라지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지구는 여관방, 하나님은 여관방 주인, 우리는 나그네, 우리의 사는 날은 전세 기한과 같다'라고 했습니다. 굉장히 공감되는 말씀입니다.
요즘은 졸업 시즌이라 졸업을 하는 학생들은 때로는 6년, 어떤 경우는 3년, 어떤 경우는 4년이나 군대 생활의 기간 동안같이 정들었던 친구들과 헤어지기 싫지만 헤어져야 하는 것을 통하여도 나그네임을 깨닫게 하는 사건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의식은 장례를 치를 때 가슴 아플 때가 많이 있습니다. 백 목사님은 인간이 사는 것은 죽음을 향하여 가고 있다고 표현하였습니다. 참으로 동감이 가는 말씀입니다. 무덤을 향하여 열심히 달려 가고 있는 것이지요. 더 나아가서는 우리는 하늘나라로 되돌아가기 위해 사는 것입니다.
2.2. 나그네를 의식하며 살아라
그러므로 나그네를 의식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아마 여러분들도 그런 말씀을 많이 들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에게 고난을 주신다고요. 이것을 믿으십니까? 정말 요? 왜 고난을 당할까요? 왜 이렇게 힘들게 될까요? 사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나그네'라는 사실을 가르쳐 주려고 하십니다. 그래서 고난을 주시고 계십니다. 정말 그랬는지 살펴볼까요?
잘살고 있는 아브라함에게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나그네로 애굽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는 나중에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됩니다. 창세기 23장 4절에 "나는 당신들 중에 나그네요 우거하는 자니" 라고 하였습니다.
나그네를 의식하면 어리석은 부자로 안 살 수 있습니다. 가끔 저는 웃을 때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땅을 가지려고 합니다. 그리고 등기를 합니다. 그런데 본래 땅의 주인이 누구입니까? 태초에 누가 땅을 만드셨습니까? 그런데 사람들이 가졌습니다. 사실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런데 내 것처럼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이것은 나그네의 삶을 아직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정말 그런가? 레 위기 25장23절을 보십시오, ‘토지를 영영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라 너희는 나그네요 우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 땅 없어도 삽니다. 오늘 오전에 보았던 누가복음 12장에 나오는 동생이 예수님께 부탁했다가 책망 받았던 일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무리 중에 한 사람이 이르되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업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 하니 이르시되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하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눅 12:13~15)
그리고 땅은 내 것이 아닙니다. 이것만 알아도 우리는 엄청 깊은 영성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도, 베드로에게도 바울에게도 나그네를 의식하며 살게 하셨습니다. 모든 성경의 인물들의 사고는 '나그네'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13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이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 등 믿음의 조상들입니다. 이들은 언제나 자기 자신에 대하여 나그네라는 것을 자랑삼아 얘기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나그네임을 고백하는 사람입니다. 자기 존재를 철저하게 '하나님께서 나그네로 나를 불러주셨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 이 사람이 바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그네로 인정하십시오,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실 수 여러분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3. 나그네 의식을 가지고 섬겨라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된 자들로서 다른 지체를 나그네 의식을 가지고 섬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어떻게 훈련 시키셨습니까? 나그네처럼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땅에서 안주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세요. 그래서 우리를 고난 속에 집어넣으시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안주 하지 마라! 움직여라!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족장들의 생은 어떻습니까?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물론이고 야곱 또한 자기 집을 떠나 20년 동안 머슴살이를 합니다. 요셉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철저하게 나그네 생활 속에서 하늘을 지붕 삼고 사는 인생의 진리를 깨달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 430년 동안 노예생활을 했습니다. 광야 40년도 나그네 생활이었습니다. 나그네 생활을 통하여 무엇을 배웠는데요? 하나님만 의존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들은 성전을 짓고 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바벨론 앗시리아를 보내서 허물어 버리셨습니다. 나그네입니다. 이 세상에서 머물지 말 것을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사명조차도 나그네라고 하는 의식에서 출발하게 합니다.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복음이 어떻게 흘러 나왔습니까? 초대교회 때 스데반이 죽고 나서 핍박을 받자 사람들이 도망 다녔습니다. 그리고 복음이 전 세계에 퍼진 것 아닙니까? 나그네로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게 한 것입니다. 사명을 하여도 나그네의식을 갖아야 합니다.
나그네 된 자만을 하나님께서 쓰십니다. 나그네라는 의식을 가진 자만이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서 일하십니다. '내가 이 땅에 많이 가졌다' 이 사람은 하나님의 일을 못합니다. '나는 나그네다.' 할 때 나그네는 '다 두고 가야 할 것 하나님의 사업을 위해 써야지' 이런 사람을 쓰십니다.
예수님께서 나그네의 표본이지 않으십니까? 나실 장소가 여관집 구유입니다. 왜 예수님께서 여관집에서 나십니까? 여관은 나그네가 자고 가는 곳입니다. 공생애 때에도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마지막 죽을 때도 옷 한 벌 걸치지 않고 죽었습니다. 제자들 훈련할 때도 거지처럼 아무 것도 가지고 다니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나그네로 살게 하신 것입니다.
이해인 수녀님의 참으로 아름다운 시가 있습니다.
‘주여! 당신의 생애는 그렇게도 철저한 나눔의 생애로 부서졌건만
우리의 나날은 어찌 그리 소유를 위해 숨이 차게 바쁜지
시시로 당신 앞에 성찰케 하소서.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고
아무 것도 가져갈 것이 없는 이승의 순례객인 우리가
이기와 탐욕의 노예가 되지 못하게 하소서.
우리가 갖고 있는 모든 것은 당신께 빌려 받은 것임을 항상 기억케 하소서’
그렇습니다. 우리는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고 아무 것도 가지고 갈 것이 없는 나그네입니다. 나그네의식을 가지고 사명을 다해야 합니다.
사람이 날 때와 죽을 때를 보면 교훈을 받습니다. 아이들이 태어날 때는 주먹을 꼭 쥐고 태어납니다. 죄성입니다. 무엇인가 얻고 살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점점 손을 벌립니다. 그리고 죽을 때에는 손을 펴놓습니다. 모든 것을 두고 떠나야 할 나그네들입니다. 이 사실을 죽을 때 알지 마십시오, 빨리 알면 알수록 믿음의 세계를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죽게 될 것입니다. 나그네로 기쁘게 갈 곳을 기뻐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큰 성을 만들어 놓고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내가 나그네라면 내가 무엇을 이 세상에 주고 갈 수 있겠습니까? 그것이 여러분의 사명입니다. 물질이 있는 분은 물질로 봉사하십시오, 건강이 있는 분은 건강으로 봉사하십시오, 솜씨가 있는 솜씨로 봉사하십시오, 나그네라는 사실을 알고 다 용서합시다. 그리고 마음껏 사랑하면서 하늘나라로 돌아갈 수 있게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3. 본향을 사모하며 죽도록 충성하라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히 11:16)
히브리서 기자는 히브리서 11장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이 땅의 고향을 생각하고 산 것이 아니라 멀리서 본 고향, 즉 하늘나라를 사모하고 살았고,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 하늘나라는 죄가 추방된 곳(계 21:27), 우리 하나님과 더불어 영원히 사는 곳(계 21:3; 22:5), 더 이상 죄와 눈물이나 슬픔이 없을 것(계 21:4), 천상의 도시가 밝히 드러날 것(계 21:2, 10-14), 땅이 새롭게 만들어질 것(계 21:5), 낙원을 얻게 될 것(계 22:1-3)입니다. 이 나라는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11:10)인 곳이다. 이 나라를 사모하며 탐심인 우상숭배를 버리고 나그네로의 삶을 하나님께 충성스럽게 산 자들은 하나님께서 ‘나는 ○○○의 하나님이다’라고 시인하는 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시인을 받는 주인공이 되도록 본향을 사모하며 하나님께 죽도록 충성하시는 복을 영원토록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윤봉원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8-02-19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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