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불만의 들보를 뽑아라

2008.02.15 19:29

윤봉원 조회 수:1231 추천:76

살전 5:16-182008021333날자: 2008년 2월 13일 수밤
제목: 불평불만의 들보를 뽑아라
본문: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절 -18절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1. 부질없는 노력
얼마 전에 한 목사님의 설교를 듣는 중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것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어느 교회 목사님이 자기 교회 장로님의 큰 아들이 교회에 하도 안 나와서 그 집에 심방을 갔습니다. 그리고는 목사님이 그 큰 아들에게 물었습니다. “왜 교회에 안나오느냐?” 하니까 “장로 아버지 보기 싫어서 안나간다고” 그래서 목사님이 “그러면 장로님을 내 보내면 교회 나오겠느냐?” 했더니 “그러겠다!”고 하더랍니다. 이 이야기가 시사해 주는 바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 장로님이 자신의 아들을 교회 나오도록 얼마나 많은 권유, 협박 등의 노력을 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가능했던 것은 왜 그랬다는 것이지요? 들보, 들보가 문제였던 것 아닙니까? 이 이야기가 우리 집 이야기요, 우리 교회 가정들의 이야기는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깨달은 자의 고백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한 묘비에 기록된 글입니다. ‘젊은 적 꿈이 많았던 이 주교는 처음에는 “세상을 변화시키겠다”고 했다가, 좀 있다가는 “내 나라를 변화시키겠다”고 했답니다. 그러다 더 살다 보니 너무 큰 꿈이다 싶어 “내 가족을 변화시키겠다”고 바꾸었답니다. 그런데 죽음을 앞에 두고는 “내가 나 한  사람이라도 변화시켰다면 내 가족이나마 조금 변화시킬 수 있을지 누구 알라?”라고 말했답니다. 누구에게 영향을 끼친다는 생각이 얼마나 부질없는지 몰라요. 저도 좀 일찍 몰라서 이렇게 빙 돌아왔지요.’
자신의 들보를 빼기 전에 다른 사람의 티를 빼고, 다른 사람을 예수님의 제자로 변화시키려는 노력은 다 부질(麩質: 곡식알 속에 있는 단백질)없는 노력입니다(do a foolish thing; do unwanted things). 아멘!!!!
2. 나의 들보는?
2.1. 항상 기뻐하는 생활이 안되는 것
다른 사람의 티를 빼기 전에 자신의 들보를 빼라 그 후에야 다른 사람의 티를 뺄 수 있으리라는 말씀을 계속 되새기면서 얼마만큼 열심히 자신의 들보를 찾는 노력을 하셨습니까? 자신의 들보를 찾으신 분들 이야기 한 번 해 봅시다. 그리고 얼마만큼 열심히, 어떻게 빼려고 노력하셨습니까?
저는 요즘 나의 들보는 무엇이 있을까 돌아보았습니다. 항상 기뻐하는 생활이 되지 않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목도 안 좋고, 콧물도 나고, 입술은 불어서 터고, 하늘 여러 가지 일들은 진도가 잘 안 나가고, 나의 실력이 이 정도 밖에 안되나 하는 것을 생각하면 답답하기도 하고 해서 항상 기뻐하는 생활이 온전히 안 됨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항상 기뻐하라’는 것은 기본명령입니다. ‘기뻐하라’는 것은 네가 새사람 된 것을 자기가 궁구해서 ‘아, 내가 이렇게 주의 피공로와 성령과 진리로 내가 새생명 얻어서 중생돼서 새사람 됐다’ 이렇게 아무리 해석을 해도 그것 가지고는 안 된다. 그렇게 해서 그 결과로 그 열매로 네게 쉬지 않는 기쁨이 나와야 된다. 항상 기쁨이 나 와야 된다.
기쁨이 무슨 기쁨이냐? 우리가 기쁨을 가질 때에 땅에 속한 기쁨도 있고 하늘에 속한 기쁨도 있습니다. 이제 하늘에 속 한 기쁨을 가지라 그 말입니다. 하늘에 속한 기쁨이라니? 네가 새사람 된 그 과정을 생각하고 새사람 된 것을 인해서 네가 쉬지 않는 기쁨을 가지라. 그러면 자기가 새사람 된 것을 생각할 때에 기뻐 못 견디는 그 기쁨이 네게 가져지도록 돼야 네가 새사람을 찾았고 새사람이 어떤 사람인 것을 알고 또 새사람으로 사는 것이지, 네게 어떤 입장 처지에서라도 기쁨이 없을 때에는 그때는 새사람을 네가 잊어 버렸다. 입으로 아무리 새사람으로 산다 산다, 새사람으로 살겠다고 말을 해도 실상은 새사람이 멀어지고 옛사람이 와 가지고 너를 주관하고 있을 때다.
그러기 때문에, 네가 새사람으로 사는 그 표준은 어디 있느냐? 네가 쉬지 않는 기쁨이 네게 있도록, 네 마음이 기쁘고 네 성품이 기쁘고 네 뜻이 기쁘고 네 소원이 기쁘고 네 마음과 몸 전체가 기뻐지는 그 기뻐지는 그 기쁨이 네게 우러나도록 해라.
그러기 때문에, 어떻게 바꾸어져 가는 현실이라 할지라도 새사람으로 사는 것. 또 기쁨으로 사는 것, 요것은 기본 명령이기 때문에 요 명령 위에서 기뻐하면서 뭐 이것 저것을 해야 되고. 또 새사람으로 살면서 이것 저것 해야 되지, 기쁨 버려 버리고 새사람 버려 버리고 자기가 어떤 뭐 계명을 지킨다 할지라도, 건설 명령 지켜도 그것은 공중에 집을 짓는 것과 같기 때문에 일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항상 기뻐하라 말은 새사람으로 사는 그 결과가 너희에게 열매가 기쁨이 맺어지면 새사람으로 사는 증거다. 기쁨이 맺어지지 안하면 새사람으로 살지 않는 증거다 그말입니다.
2.2. 쉬지 말고 기도가 안되는 것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랬는데 이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기도하라 말은 하나님하고 자꾸 이렇게 주고 받고 이렇게 하나님하고 대화하라 그건데 쉬지 말고 기도하라 말은 하나님하고 쉬지 말고 서로 얘기하고 서로 대화해라. 하나님을 상대해서 의논하라 하는 것이니까 항상 기도하면은 악을 선으로 얼마든지 갚을 수 있고 또 얼마든지 원수를 사랑할 수도 있고 봉사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이 땅위에 오셔서 ‘나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섬기러 왔는데 내 목숨까지 다 바쳐서 섬길라고 왔다’ 하는 그 어른도 우리 같은 지식을 가졌으면 그럴 터인데 그 어른은 모든 지식을 다 통달하고 알았기 때문에 그렇게 아량이 컸고 광대한 포부를 가졌고 또 이해 못할 그렇게 아주 넉넉한 그 모든 관용과 관대를 가지고 계셨다 하는 것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항상 기도하라 이라니까 항상 기도하라 하는 것이 우리가 그저 중얼중얼해서 하나님이여 뭐 주십시오 뭐 주십시오, 뭐 감사합니다 뭐 감사합니다, 또 사정이 이렇습니다 저렇습니다. 우리가 기도 찍해야 한다 해 봤자 감사 기도 또 자복 기도 또 모든 도고 기도 또 간구하는 기도 이런 몇 가지 하는데, 항상 기도하라 하는 것은 항상 하나님하고 대화하라고 하는 것이니 하나님 사모해 가지고 하나님을 대해서 묻기도 하고 듣기도 하고 배우기도 하고 그분하고 그분을 떨어지지 안하고 자기가 잠들 때에 꿈에라도 주님과 대화하고 자꾸 주님과 교제하고 이와같이 사귀게 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만들어주신 모든 지혜와 지능을 다 활용할 수 있는 이런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2.3. 온전한 감사생활이 안 되는 것
저의 들보 중에는 또 다른 들보가 있음을 발견 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가정이 지금 누리고 사는 것은 우리가 하고 있는 행동들에 비해서는 비교 할 수 없는 기적과 축복을 누리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가정에서 온전한 감사 생활이 잘 되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왜 그럴까? 내 속에는 어떤 들보가 있기에 우리 식구들이 온전한 감사 생활이 되지 않을까? 기본명령인 “범사에 감사하라”가 되지 않을까’하는 질문을 수없이 반복하면서 찾은 들보가 있습니다. 그것은 내 자신이 누리고 있는 목회 생활, 가정생활, 삶의 전 부분들이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 네 식구가 잘 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먼저는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하나님이 하셨고, 두 번째로는 양 부모님들의 헌신적인 기도와 고생의 떡고물, 세 번째로는 지금 우리 식구들을 비롯한 우리 식구 주변의 성도들의 사랑을 먹고 살아가면서도 여기에 대한 감사가 너무나 부족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받은 은혜에 대한 감사가 너무나 부족한 것이 문제였던 것입니다.
본문에서 ‘범사에 감사하라’는 것은 우리에게 닥치는 일을 어떨 때는 보면 감사할 일이 더러 있고, 어떨 때는 보면 감사할 일이 하나도 없고 원망할 일만 가득히 차 있습니다. 또 어떨 때는 보면 뭐 생각하는 것마다 기억하는 것마다 마음에 가지는 것마다 보는 것마다 접하는 것마다 전부가 다 감사뭉텅이입니다. 진정 감사하지 안할 수 없는 감사뭉텅입니다.
이래서, 우리가 성경이 말씀하신 것은 요한1서 3장 1절 이하에 있는 말씀과 같이 우리가 신앙 생활하는 것은 세상이 모르기 때문에 우리를 모르고 핍박하고 조롱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모르고 하나님도 모르기 때문에 이 신앙생활 하는 것을 그들이 업신여기기도 하고 조롱도 하지 이 사실을 안다면 얼마나 두려워 떨며 얼마나 부러워해야 할 일인지 참 측량 못 할 일입니다.
이래서, 우리가 성경대로 살라고 하면 이 성경대로 사는 것이 이해도 안 되는 게 많고 또 실행을 할라고 해도 안 되는 게 많고, 이러니까 이해를 하기 전에는 우리 마음이 좁아서 못 견디던 그 일이 이해를 하고 보면 도리어 부끄러워서 그 내가 좁게 언행심사 했던 것이 마치 정신없는 사람이 광증 낸 것과 같이 그렇게 부끄러워서 못 견딜 만한 그런 것을 우리가 많이 느낍니다.
3. 항상 기뻐하라! 항상 주님과 대화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예수님처럼 우리는 우리에게 해당된 걸음을 걷지 못하고, 우리가 땅위에서 주님 말씀하시기를 우리에게 닥친 모든 현실은 천상 천하에 내게 대해서는 제일 복되고 좋은 현실이라. 이 세상에 현실이 억억억억 넘지마는 내게 대해서 제일 복된 현실은 내 현실 그것인데 이렇게 복된 걸 가려서 가려서 간추려서 복된 걸 줬지마는 우리는 그 현실을 복되다고 이해를 못 하고 원망 불평 낙망 실망한 일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쉬지 말고 주님하고 교제하고, 범사에 감사하라. 모든 현실을 닥쳤을 때에 이해를 못 하니까 불평했는데 그것을 무조건 감사하라 했으니까 불평하던 것을 감사해 놓고 ‘이 어째서 감사해야 되느냐?’ 감사해 놓고 따져보니까, 따져보니 감사하고 따져보니 감사하고 따져보니 감사하고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땅위에 자기에게 해당되는 모든 역사가 만유의 대주재되신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심으로 나에게 유익되게 전지전능의 능력으로 섭리해 가지고 나에게 유익되도록 모두가 다 조성시켜 가지고서 이와같이 이루어 놓은 것이라는 이걸 깨달을 때에 얼마나 기쁘고 즐겁겠습니까?
따라서 이 들보를 뽑는 것은 날 구원하신 예수의 사랑에 감사해서 항상 무익한 종의 자세로 더욱 감사 생활에 충실하며, 하나님과 대화하며, 기쁨으로 맡은 목회에 온전한 충성을 하도록 죽도록 힘쓰는 것 외에는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항상 기뻐합시다! 쉬지 말고 주님과 대화합시다! 범사에 감사합시다! 하나님이 주신 모든 현실을 온전히 구원에 활용할 수 있는 은혜를 누리도록!!
* 윤봉원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8-02-15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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