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움에서 승리하는 비결

2008.11.02 21:57

윤봉원 조회 수:845 추천:47

딤후 4:14-182008110201날자: 2008년 11월 2일 주전
제목: 어려움에서 승리하는 비결
본문: 디모데후서 4장 14절∼18절
구리 장색 알렉산더가 내게 해를 많이 보였으매 주께서 그 행한대로 저에게 갚으시리니 너도 저를 주의하라 저가 우리 말을 심히 대적하였느니라 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 저희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를 강건케 하심은 나로 말미암아 전도의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이방인으로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지웠느니라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 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1.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하려고 노력하고 있나요?
국가적, 사회적, 경제적, 가정적, 개인적인 여러 가지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하려고 노력하고 있나요? 사람의 도움으로, 아니면 내 자신의 실력으로 극복하려고 하고 있지는 않는지요? 점쟁이에게 찾아 가서 도움을 구하십니까? 해결사를 동원해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는 않습니까? 아니면 자포자기 상태입니까? 많은 사람을 찾아다니면서 자문을 구하고 있나요? 우리 성도들이 당한 각종 어려움을 극복하는 길을 바울은 어떻게 했는지를 알아보고 우리 자신들에게 주는 교훈을 얻고자 합니다.
2. 바울의 승리 비결
2.1. 바울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이 자기가 개적으로 대적하는 그런 어려운 환경을 이긴 것을 말했고 또 자기를 상대하는 악한 자들을 이긴 것을 말했습니다. 17절에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를 강건케 하심은' 주님이 자기와 함께 계시는 그 주님을 보는 눈이 정상적으로 띄워 겼기 때문에 주님이 자기와 함께 계시는, 곁에 서서 계시는 이 주님으로 인해서 자기에게 모든 위로도 나왔고 담력도 나왔고 조심도 나왔고 인내도 나왔던 것입니다.
‘내가 사자의 이빨에서 건지웠느니라.’ 참 사자와 같은 그런 맹수성을 가지고 대적하는 그런 혹독한 대적에도 자기와 함께 계시는, 곁에 계시는 그 주님이 자기를 건지셨다고 그렇게 여기에 증거를 했습니다. 그분도 인간으로서 가질 수 없는 초자연의 담력을 가진 것이나 그런 평안을 가진 것, 인간이 가질 수 없는 그런 절제를 가진 것, 인간이 가지기 어려운 그런 참 인내와 열심을 가진 전부는 다 주님이 자기와 함께 계시는 이 주님을 보는 그 믿음의 눈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 환경에서 닥쳐지는 그 온갖 어려움 그것보다 자기 곁에 계시는 주님이 자기에게 대해서 역사하신 역사가 더 강했던 것입니다. 강했기 때문에 그분은 주님을 범할 수도 없었고 또 주님을 무시할 수도 없었고 주님을 멸시할 수도 없었고 또 모든 것들이 와서 어떻게 한다 할지라도 주님으로 위로와 평강을 받았던 것입니다.
2.2. 한상동 목사님
한상동 목사님은 주님이 자기와 함께 계시는 이 사실을 믿는 그 믿음의 눈이 흐린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는 이런 성경 저런 성경을 자꾸 생각하면서 주님이 목사님과 함께 계시는 이 사실을 믿는 그 믿음의 눈을 뜨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 믿음의 눈으로 주님이 자기와 함께 계시는 이 사실을 보는 그 눈이 차차 차차 밝아져서 같이 계시는 그 주님으로 말미암아 그분이 모든 어려움을 이겼습니다.
2.3. 다니엘의 세 친구
모든 사람이 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안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다니엘 3장에 보면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도 주님이 자기들과 같이 계시는 그것을 평소에 연습을 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불에다가 던져서 태워 죽이는 죽음이 그들 앞에 닥쳐져도 그 죽음이 자기들을 충격 주지 못했고 자극 주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모든 것을 능가하고도 남음이 있는 그 주님이 자기와 함께 계시는 것을 보는 믿음 때문에 아주 유유했고 평안했습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의 감각, 자극, 공포가 주님에게만 피동이 됐지 그것들에게 조금도 피동이 되지 않았고, 충격을 주지 못했습니다. 순전히 주님만이 그들을 주관하게 됐고 주관을 당했던 것입니다.
2.4. 다니엘
다니엘 6장에 다니엘도 보면 그래 했습니다. 다니엘도 조서에 어인이 찍혀서 내려왔으니까 막바로 자기는 기도하면 사자 구더기에 던짐을 받는 죽음입니다. 그런 일을 당했지만 그는 조금도 거기에 충격되지 안했고 같이 계시는 주님으로 인해서 오히려 자기가 주님에게 영광 돌릴 일을 생각하고, 주님이 자기와 함께 계시는 것, 주님이 살아 계시는 것을 그들에게 보여 줄 수 있고 함께 계시는 것을 보여 줄 수 있고 주님은 또 능치 못하심이 없으신 것을 그들에게 보여 줄 수 있는 그런 기회가 됐다 해서 그는 감사하면서 조금도 그 모든 악한 자들의 안면이나 또 그들이 말하는 말이나 그들이 꾸며 놓는 공작이나 그들이 시설해 놓은 시설에 조금도 거기에 억압당하지 안했고 층격당하지 안했었습니다. 주님이 자기와 함께 계시는 것으로 인해서 평강과 위로와 담력과 소원이 나왔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진정 감사하면서 주님 앞에 더욱 더 기도하는 일을 조금도 가림 없이 문을 열어 놓고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과거와 꼭 같은 그렇게 기도를 계속했던 것입니다.
3. 주님의 어떠하심을 자신에게 자꾸 각인(刻印)시켜라
3.1. 마음에도
이래서, 우리는 중요한 것이 많지만 그저 우리의 전 소망이 주님에게 있고, 또 주님은 능치 못하심이 없으신 주님이고, 또 주님은 계약하기를 당신이 나에게 온갖 것을 다 잘 해 주시겠다고 계약을 했습니다. 또 잘 해 주실 수 있는 실력 있는 분인 것을 성경에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잘 해 주신다는 것도 우리가 자꾸 말을 해서 연습을 해서 믿어야겠고 또 그런 실력을 가진 분이신 것도 우리가 믿어지는 믿음을 가져야겠습니다. 그래야 그분이 우리에게 약속하신대로 우리를 구출할 수가 있습니다. 조건은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이 명령을 지킬 때에 해 주신다.’고 했기 때문에 그 명령을 찾는 방편도 자꾸 연습을 해 가지고 숙달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이 내 모든 것의 전부가 되고 주님 한 분으로서 어느 모나 모자랄 것이 없고 또 주님 한 분으로서 우리는 얼마든지 평강도 또 생명도 승리도 영광도 부강도 가질 수 있어서. 주님 한 분이면 내게 전부가 되는 이 사실이 우리는 믿어지는 이 믿음을 연습을 해야 되겠습니다. 우리의 마음에는 여러 수십 요소와 종류가 있는데 그 마음의 온갖 종류와 요소들이 다 주님을 이렇게 나의 구주된 것을 믿는 그 모든 마음의 요소가 돼서 마음의 그 각종의 요소가 하나도 의심하지 안하고 하나도 항거하지 안하고 다 요렇게 한결같이 내 마음에 있는 요소가 다 이 주님을 구주로 믿는 요 믿음을 인식을 우리가 시켜야만 할 것입니다.
3.2. 습관에게도
담력이 있을 수 있는 것은 내 욕심의 힘만 아니고 욕심의 힘 밖에 그 욕심을 협조하는 세력이 있으니 그것이 무엇이냐? 우리의 습관입니다. 하나님의 소욕대로 하나님의 소원대로 하지 안하고 내 욕심대로 했던 그런 일이 한 번 두 번 해서 벌써 버릇이 돼 가지고 그 버릇대로 천성이 되어 움직인다고 심리학자들이 말을 했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자꾸 연습하고 연습하는 그 습성은 제이의 천성이 된다. 근본 천성은 사람에게 있지만 사람이 만든 천성이 된다 그렇게 안 믿는 심리학자들이 통계를 그렇게 말을 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자꾸 연습을 해야 되겠습니다. ‘안약을 발라보게 하라’ 하는 말씀은 우리의 그 심령의 눈, 믿음의 눈을 자꾸 안약을 발라서 믿음의 눈을 치료하라는 그 말씀입니다. 안약은 하나님의 말씀이니 하나님의 말씀을 내가 자꾸 생각해서 내가 내게 있는 연습을 자꾸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함으로 그 연습이 차차 차차 그 연습이 나를 죽이는 연습이며 그 연습이 주님을 노엽게 하는 연습이며 그것이 백해무익의 연습이라, 그래서, 우리가 주님을 보는 눈 주님이 내게 모든 것의 모든 것이 될 수 있는 그 주님, 주님 한 분 가지고 못할 것 없는 이렇게 필요하고 중요하고 요긴하고 또 제일 무서운 주님, 또 제일 능하신 주님,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이 주님이신 것을 내가 성경 말씀 가지고 자꾸 이렇게 새김질 해야겠습니다. 그래서 내 지식의 눈이 열려서 내 지식으로, 주님이 나와 지금 같이 계신다 하는 것이 내 지식에 가득 차서 악습이 주님을 배반할 수 없도록, 이 악습이 나와 함께 계시는 주님을 무시할 수 없도록 평소에 연습을 해야 되겠습니다.
3.3. 성질에게도
이제 악습을 이기고 나면 그 다음에는 내게 있는 악성 이것이 있으니까 악성 이것을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시는 이 사실을 믿는 요 믿음이 이겨서, 내게 있는 악성(자기중심)이 있지만 악성 그 놈대로 악성 그 놈대로 내가 행동할 수가 없도록 나와 함께 계시는 이 주님에게 제재를 받아야겠습니다. 내 중심의 것이 주님 때문에 주님에게 방해를 받아서 하지 못하도록 해야겠습니다.
이러니까, 자꾸 눈을 밝혀 놓으면 주님이 보이니 자기 악성대로 할 수는 없고, 주님의 낯을 피할라 해도 피해지지 못하는 이런 단계가 와서 어쩌든지 나와 함께 계시는 주님 때문에 내게 있는 악성이 제재를 받다가 나중에는 주님과 나와 친교된 이 친교가 악성과 친교된 거보다도 차차 중량이 높아져서 더 친해져서 이 악성을 적인줄 알고 악성을 한 번씩 두 번씩 버리기를 시작하게 되면 이것이 잠깐 이것이 버려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벌써 안에 성령님이 우리를 살렸고 진리가 우리를 살렸고 주님의 대속의 공로가 우리를 살린, 벌써 내게 있는 주격이라는 그 영은 이 셋으로 살아 가지고, 셋의 힘으로 살아 가지고 있는 내 주격 내이기 때문에, 내 영이기 때문에 안에서 역사하지, 또 마음과 몸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자꾸 이래 읽고 들려지고 이래 가지고 인식을 해 가지고 있지 이러니까, 사람이 생각만 하면 거기서 평가가 나오기 때문에 그 악령과 악성과 악습이라 하는 것은 그것은 꼼짝을 못 하게 됩니다.
3.4. 사데 교회
요한계시 3장 8절에 보면 사데 교회에 '살았다는 이름은 있으나 실상은 죽었다' 죽은 사데 교회가 살아나는 데 대해서 살아나는 방편을 간단하게 말했습니다.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또 어떻게 들었는지' 그러면 어떻게 받은 것은 주님의 대속입니다. 대속으로 인해서 내가 받은 것 여러 가지 있습니다. 영감도 대속으로 인해서 받았고 진리도 대속으로 인해서 받았고 새생명도 대속으로 인해서 받았습니다. '네가 어떻게 들었는지를 생각해라' 생각하면 된다. 그리고 ‘지키어 회개하라’ 생각하면 받은 것과 들은 것을 자기는 지켜 야 되는 줄 알기 때문에 그것을 안 지킬 수 없고 또 지키려고 보니까 하나씩 필연적으로 고쳐야 되겠고 그러면 이기는 자가 된다고 했습니다.
4. 주님이 함께 계심을 연습하라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평소에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시는 이 사실을 자꾸 인식을 하도록 연습을 합시다. 앉아서도 ‘주님이 함께 계신다’ ‘주님이 함께 계신다.’고 지식적으로 연습합니다. 이렇게 자꾸 지식으로 자꾸 연습을 하고, 내가 믿으려고, 인식하려고, 자꾸 연습을 합니다. 그것이 안약을 발라서 보게 하는 것입니다. 자꾸 우리 지식이라 하는 것은 지식하면 자꾸 지식이 돼 가지고 인식이 돼지고 그래 가지고 그만 그것이 자기가 그대로 변화가 돼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자기 현실에서 자꾸 주님을 잊어버리기 쉽습니다. 자기가 묵상 가운데에서, 명상 가운데에서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신다는 것을 자기 지식성에게 인식을 시키고, 자기의 감각에 인식을 시키고, 자기의 모든 상상에다가 인식을 깊이 시켜 놓으면 자기 현실에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신다는것을 급할 때는 그만 잊어버리고 넘어 가지만 생각만 하면 확실히 드러납니다. 생각만 하면 주님이 나타납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신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연습을 합니다. 그러다가 이제 실제로 자기가 현실을 닥쳤을 때에 '아 요것은 싫은데, 주님. 내 곁에 계시는 주님이 요것을 하라 하니까, 싫은데 주님이 하라 하신다. 싫은데 주님이 하라 하신다. 내 곁에 계신 주님이 하라고 하시는데 나는 싫어도 내 곁에 계시는 주님이 하라고 하니 이것을 싫지만 안 할 수 없다' 해서 내 곁에 계신 주님 때문에 하기 싫은 것을 한번해 봅니다. 할 때에 내 곁에 계신 주님이 보이게 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자꾸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시는 이 사실을 보는 이 믿음의 눈을 우리가 가져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악령과 악성과 악습은 원치 안하지만 주님은 원하심을 알게 됩니다. 그때 ‘한 놈은 나 아닌 원수요 나를 죽인 내다’ 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바울, 한상동 목사님, 다니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와 같이 인간 최고의 어려움인 죽음이 와 가지고 협박을 웃으며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시는 이 연습을 어쩌든지 계속 합시다. 그러면 바울처럼 어떤 어려운 역경 속에서도 주님의 함께 계심을 믿는 믿음으로 승리하는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에 가면 죽습니다. 가지 마십시오’라고 주변 사람들이 말해도 바울은 말하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받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 저가 권함을 받지 아니하므로 우리가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하고 그쳤노라’(행 21:13-14)고 말씀했습니다. {참조. 85012660} * 윤봉원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8-11-02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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