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을 면하는 길

2008.10.27 06:16

윤봉원 조회 수:984 추천:40

막 6:45-522008102601날자:  2008년 10월 26일 주일오전
제목: 고통을 면하는 길
본문 : 마가복음 6장 45절∼52절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 타고 앞서 건너편 벳새다로 가게 하시고 무리를 작별하신 후에 기도하러 산으로 가시다 저물매 배는 바다 가운데 있고 예수는 홀로 뭍에 계시다가 바람이 거스리므로 제자들의 괴로이 노 젓는 것을 보시고 밤 사경 즈음에 바다 위로 걸어서 저희에게 오사 지나가려고 하시매 제자들이 그의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유령인가 하여 소리지르니 저희가 다 예수를 보고 놀람이라 이에 예수께서 곧 더불어 말씀하여 가라사대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하시고 배에 올라 저희에게 가시니 바람이 그치는지라 제자들이 마음에 심히 놀라니 이는 저희가 그 떡 떼시던 일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그 마음이 둔하여졌음이러라
1. 고통을 왜 당할까요?
우리가 나그네 인생을 살다 보면 고통을 당하는 때가 있습니다. 그 때마다 내 나름대로는 열심히 한다고 하는데 왜 고통을 당할까 하고 고민스러울 때가 있었을 줄 압니다. 성경을 통하여 고통을 당하는 원인을 보면 여러 가지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니엘, 그리고 그의 세 친구들처럼 성령의 인도와 말씀을 따라 순종하려다 보니 사자굴과 풀무 불에 목숨을 던져야 하는 어려움을 당하기도 합니다. 이와 같이 믿음 지키느라고 고통을 당하는 경우는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번에 우리가 사무엘하를 묵상하면서 다윗이 자식의 죽음, 자식 배반, 자식과 자식 간의 살인으로 인한 고통, 자식의 불효막심한 행동들로 인하여 고통을 심히 당한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 원인은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45절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배 타고 바다 건너로 가라 재촉해서 보내셨습니다. 그러면 보내실 그때는 어떤 때인고? 하니 제자들이 예수님을 오래 동안 따라다니면서 참 하늘의 그 생명의 말씀을 많이 배웠고, 또 성신의 감화도 많이 받았고, 또 여러 가지 이적도 많이 봤습니다. 이래서 제자들 마음에는 그만 예수님 한 분이면 우리는 무엇이든지 다 될 수 있다 하는 이것으로서 그 마음에 가득 찬 사람들이 됐었습니다. 그럴 것 아니겠습니까? 이 배 타고 가라 할 때도 보리떡 다섯 덩어리와 물고기 두 마리 가지고 오천 명을 먹여서 그 떡으로 모두 배불리 먹는 그 기적을 먹고 난 바로 그때입니다.
이러니까, 제자들이 주님의 그 능력 있는 말씀을 많이 배워서 은혜를 받았고, 또 그 말씀을 받는 가운데에 성령의 감화 감동을 많이 받았고, 또 예수님이 베푸신 온갖 이적들을 다 그들이 직접 보았고, 이러니까 그 제자들은 그만 예수님 한 분만 자기들이 모시고 주님 한 분이면 무엇이든지 다 될 수 있다. 이래서 ‘주님 한 분 외에 아무 것도 더 있을 것 없고 주님 한 분이면 다 될 수 있다.’ 하는 그런 믿음을 가졌던 것입니다.
또, 하나는 ‘활동은 주님이 말하라 하는 대로 말하고, 일하라는 대로 일하고, 이런 저런 모든 행동을 하라 하는 대로 행동을 하고, 마음도 이런 마음을 품으라, 저런 생각을 가져라 하는 대로 그대로만 하면 된다.’ 요 2가지로만 가득 찼던 것입니다. 이래서 예수님 한 분이면 건강도 되고, 양식도 되고, 돈도 되고, 자유도 되고, 평강도 되고. 모든 능력도 되고, 전쟁의 승리도 되고, 또 보국도 되고, 보신도 되고, 가정도 행복된 가정 되고, 예수님 한 분이면 자기들에게 필요한 것은 다 될 수 있다 하는 것을 믿는 그 믿음을 제자들이 가졌던 것입니다. 또 행동은 이것 저것 많은 인간 행동이 있지만 그저 예수님이 말씀하신 그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 고거만 하면 된다 하는 요것을 가졌고 요 둘만 가진 제자들이 됐습니다. 요것이 아주 중대한 문제입니다.
이래서, 이  두 가지로 가득 찬 그 제자들은 배를 타고 바다 건너로 갈라고 할 때에 그만 그 배가 그저 슬슬슬슬슬 항해를 해서 예수님께서 가라 하는 그곳으로 배가 술술 갔습니다. 그저 어려움 없이 갔었습니다. 그렇게 가다가 풍랑이 이르렀습니다. 그 제자들이 그렇게 가다 보니까 예수님은 차차 멀어졌습니다. 제자들은 옛날 어부 노릇하던 사람들이니까 배 타고 가니 옛날 생각도 나오고 또 노를 젓는 그런 일도 또 하고 이런 생각 저런 생각 다 하니까 그만 세상이 들어왔다 말입니다. 세상이 들어 와 가지고 출발할 때는 예수님 한 분만 하면 더 이상 소유할 것이 없다고 자기들에게 필요한 것은 예수님 한 분이면 됐다 이랬는데. 배 타고 가다 보니까 이런 생각도 나고 저런 생각도 나고, 또 이것도 필요하고 저것도 필요하고 그만 잊어 버렸던 것을, 잊어 버렸던 것을 새로 되찾아 생각해 가지고 뭐 필요한 것이 하나씩 둘씩 생겨졌습니다.
또 노를 저어 가지고 가다 보니까 ‘아, 이래 저어야 되겠다, 저래 저어야 되겠다.’ 그만 그렇게 자기네들의 활동하는 데에서 이런 활동도 해야 되고, 이런 수단도 부려야 되고, 기술도 부려야 되고 하는 그런 활동이 자꾸 들어 왔습니다. 이래서 예수님 한 분으로서 자기네들은 그 이상 소유할 것이 없고 예수님 한 분만 모시면 다 된다 했는데 예수님 한 분 외에 자기들에게 필요한 것이 하나씩 둘씩 자꾸 이래 들어왔습니다. 예수님 한 분 외에 이것도 필요하다, 저것도 필요하다, 그 예수님 한 분 외에 자기들이 가져야 할 것 필요한 것들이 하나씩 둘씩 자꾸 생각이 났었습니다.
또 주님에게 순종하는 그 행동 하나만 하면 된다 이랬는데 그 배 타고 가다 보니까 그만 이래도 해야 되고 저래도 해야 된다, 노 젓는 것 뭐 이런 것 저런 것 할 일이 또 자꾸 하나씩 둘씩 들어왔다 그 말입니다. 그러니까, 바람이 불고 배가 안 갑니다. 바람이 불고 배가 안 가니까 예수님은 차차 잊어버리게 되고, 예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차차 잊어버리게 되고, 그만 완전히 예수님과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완전히 잊어버려 버리고 옛사람으로 돌아갔다 말입니다. 옛사람으로 돌아가고 나니까 풍랑이 이르러서 배가 전진하지 못하고 그들이 큰 고생을 당했습니다.
본문에서 이에 대한 근거를 제자들이 고통 당하고 있는 것을 해결 해 주기 위해서 오신 주님이 유령으로 보여 졌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구주 예수님이 유령으로 보인 원인을 52절에서 ‘그들의 마음이 둔해 졌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오늘 예수 믿는 우리들에게 닥치는 경제 환난이든지, 출세 환난이든지, 사업 환난이든지, 신체 환난이든지, 가정 환난이든지, 어떤 일이든지 자기에게 모든 구원 이루기에 방해되는 모든 불행, 모든 어려움, 모든 고통 이런 것은 요 2가지로 채워지면 이런 것이 하나도 없는데, 요 2가지가 없어지고 이 세상 사람과 같은 것들이 채워지면, 그 풍랑이 일고 고생 하고 전진하지는 못하게 되는 요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요것을 우리가 굳게 잡아야 됩니다.
요 2가지가 세상 것으로 바꿔지고 요 2가지는 없어지고 세상 것으로 채워지면 그의 앞길은 절벽 같은 것이 꽉 막아서 제가 죽자 것 애를 써도 안 됩니다. 이 제자들이 그 풍랑 만나 가지고 어려움 당하고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와서 해결 해 줬지 그들은 죽어도 해결 못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믿는 사람 가운데 보면 이 2가지는 없고 이것도 저것도 필요하다 그이에게 필요한 것은 세상에 한두 가지가 아니라 세상에 있는 그 모든 것으로 필요하다 하는 것으로서 자기 마음에 채워 있고, 또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그것 외에 이것도 해야 되겠다, 저것도 해야 되겠다. 해야 될 일 가득 찼고 이런 사람은 비참하고 가련한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분명히 속에 고통이 심해서 자살이라도 안하면 안 될 수 있는 거기에 까지 나아가게 됩니다. 심한 고통으로 뭐 비참하고 가련하게 자꾸 되는 것입니다. 요것을 보입니다.
2. 주님이 우리를 찾아오시는 때는?
우리의 구주되시는 주님이 언제 우리를 찾아오실까요? 본문에서 제자들에게는 주님이 풍랑을 만나서 고난당하는 그들을 구원 하시려고 밤 사경에 찾아 왔습니다. 밤 사경은 한 밤중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제일 밤이 깊은 때에 그때에 주님이 구원하러 찾아 오셨습니다. 이 제자들은 바다 가운데에 어려움을 당하고 있었고 주님은 또 먼 산에 계셨지만 그 제자들이 바다 가운데서 어려움 당한 것을 살피시고 그 제자들에게 구원에 가장 적절한 시기에 찾아 오셨습니다. 우리 택하고 중생 입은 사람들은 어떤 어려움을 당해도 주님은 늘 살피고 계십니다. 살피고 우리의 어려움을 늘 살피시고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뭐 어떤 그 어려움을 당하고 어떤 궁지에 빠져도 중생된 자에게는 주님이 항상 살피시고 우리와 함께 계시는 이 사실을 우리가 믿어야 합니다.
구약에는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일이 마치 독수리가 그 새끼를 그 연습 시키는 것과 같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독수리가 새끼를 발로 이렇게 움켜 가지고 저 공중에 높은데 가 가지고 그만 휙 던져 놓으면 이게 거기서 힘이 없으니까 훌훌 거려도 결국은 땅에 떨어집니다. 이제 땅에 떨어지면 그만 그 날개에 힘이 없으니까 떨어지면 죽을 터인데 그 어미가 떨어지는 그것을 땅에 부딪치기 전에 똑 기다리고 있다가 땅에 부딪칠 듯 말듯 할 그때에 다시 이것을 나래로 품어 가지고 공중으로 올라갑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세상에 두시고 여러 가지 어려움을 당해서 자기를, 교만한 자가 교만한 자가 교만을 다 버리고, 또 거짓된 자가 거짓을 버리고, 모든 온갖 죄를 범하는 자가 그 죄를 버리고 깨끗이 회개하도록 아주 그 어려움의 절정까지 뒀다가 그 어려움으로 회개하고 난 다음에 그 어려움을 그대로 계속 두는 날이면 죽을 건데 죽어 버릴 건데 그 회개만 하도록 하시고 회개하고 그 다음에 멸망할 수 있는 그런 단계에 이르면 멸망에 이르지 않도록 그때 우리를 구출하시는 그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이 우연히 된 일이 아니고 우리에게 구원 도리를 알려 주시기 위해서 이런 역사적인 이 사실이 있었고 또 우리에게 문서로 기록해서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연단시키시기 위해서, 우리를 시험하시기 위해서, 또 우리에게 모든 잡된 믿음을 없애고 다 교만이니 그런 허영과 허욕인 그런 것을 다 깨끗하게 금에 잡철을 태워 없애는 것과 같이 그렇게 제하시기 위한 여러 가지 우리 구원에 필요한 목적을 위해서 하나님이 어려움을 닥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려움을 닥칠 때는 조금 어려움을 닥칠 때가 아니고 그 어려움으로서 최고로 어려운 그때에 주님이 구원하러 오신다 하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지금의 형편이 어렵습니까? 이 때 주님이 찾아오십니다. 그런데 찾아오신 주님이 유령으로 보이지는 않는지요?
3. 고통을 면하는 길
3.1. 주님의 음성을 들으라!
그러면 제자들이 물결로 인하여 심히 고통을 당한 그 고통을 면한 것은 어떻게 하니까 면해졌습니까? 그 고통 가운데 있는데 주님이 오시면서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는 주님의 음성 한 마디 척 들으니까 그들의 마음속에 고통스러운 모든 근심, 걱정, 염려, 온갖 그 죄악의 모든 고통이 다 삭아져 버립니다. 사라집니다.
이렇게 그들의 고통이 삭아진 것을 무엇을 보고 알 수 있습니까? 그것은 베드로가 그 주님 보고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위로 걸어오라 하소서’라고 자신 있게 부탁을 했습니다. 그리고 오라 하니까 물 위로 뛰어 내렸고 걸었던 것입니다. 이것 보니까 다 같은 제자들이요 같이 말씀 들은 사람들이니까 주의 음성 듣고 난 다음에는 그들의 그 심령 속에는 다 평안이 왔고 근심 걱정이 다 물러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래서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모든 일어나는 고통, 마음의 고통, 정신 고통, 경제 고통 몸의 고통, 모든 활동 고통, 출세의 고통, 사건 고통 어떤 고통이든지 고통 일어나는 것은 다 그 속에 주님이 안 계시고 주님의 말씀에 복종한다는 그 믿음이 없고, 세상 것으로 채워 가지고 일어난 고통이요 병인데 그 병 치료법은 다른 것 없습니다. 그 어려움이 있으니까 ‘아, 돈이 없으니 어려움 있으니 막 돈벌이를 벌어야 되겠다. 돈벌이를 하다가 안 되니까 죄를 지어 거짓말을 하고 사기횡령을 해서라도 돈을 벌어야 되겠다. 도둑질을 해도 돈을 벌어야 되겠다. 그럴수록 자꾸 더 심해집니다. 제자들이 자꾸 노를 젓 그 힘을 쓸수록 배는 더 안 갑니다. 또 풍랑은 더 심했습니다.
그런데, 이 제자들이 그런 어려움을 당했을 때에 어려움이 해결된 것은 주님의 음성을 들으니까 그만 해결이 됐습니다.
그러면 오늘의 주님의 음성이 무엇입니까? 신구약 성경 말씀입니다. 또 말씀이 영감입니다. 어려움 당할 때는 그만 무조건 그만 어디든지 아무도 없는 고요한데 가서 성경 읽어야 합니다.
그전에 손 양원은 여러 가지 교회 어려움이든지 가정의 어려움이든지 그 어려움이 있으면 그만 마른 쌀을 싸 가지고 담요 한 장 들고 어디론가 갔답니다. 가 가지고는 열흘이고, 보름이고, 이십 일이고 그만 못 견딜 정도 되면 쌀 한 줌 내서 꼭꼭 씹고 물마시고 이래 가지고 거기서 자꾸 성경 읽었답니다. 성경 읽고 내려오면 해결 다 돼 버렸다고 합니다.
3.2. 주님을 모셔라!
주님의 음성 들으니 마음의 고통은 없어졌지만 여전히 바람은 일고 있습니다. 풍랑은 일고 있기는 있지만 일거나 말거나 아무 문제가 없다 말입니다. 그 풍랑은 언제 없어졌습니까?
‘배에 올라 저희에게 가시니 바람이 그치는지라’(막 6:51) 예수님께서 배 위에 제자들에게 오시니까 그만 바람이 저절로 잔잔해졌습니다. 예수님 모시게 되면 그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인간이 저질러 놓은 일을 인간이 해결해야 될 터인데 인간이 해결하지 안하고 어찌 되느냐? 이것은 인간이 해결할 수 없습니다. 주님이 전능자로 해결했습니다.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이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모든 세계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신다’ 하는 그것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되는 것을 제가 뛰어날 수 있는 하나나 했습니까?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는 일 하나도 안 했습니다. 하나도 안 했는데 하나님께서 해 주셨다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해 주지 안했습니까?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그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것을 경험하기 전에는 아무도 몰라요. 말씀을 자꾸 읽고 읽고 이러면 과거에는 하나님이 천 리 만 리 멀었는데 자꾸 말씀을 읽고 기도하니까 주님이 차차 차차 자기와 가까와져서 주님이 자기와 함께 하신다는 것이 차차 차차 믿어집니다. 믿어져서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 하는 것이 믿어지면 그때 벌써 내 몸 밖에 있는 사건들은 나와 보면 다 해결 다 돼 버렸습니다. 어찌 됐는지 해결이 다 돼 버려요. 이것이 성경에서 약속한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3.3. 주님 한 분 바라보고 순종하라!!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한대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마 14:28-29)
그리고 믿는 사람이 예수님 한 분만 바라보고 그 분의 명령에 순종하는 일이 사람 보기에는 물에 빠져 당장 빠져 죽을 일이지만 순종했을 때 물 위로 걸어갔습니다. 이러기에 다른 것 바라보지 안하고 주님 한 분만 바라보는 이것이 제 일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주님 한 분 만 바라보고 그 어렵든지 쉽든지 한 분만 바라보고 순종하는 그 순종은 바다 위로 걸어갑니다. 세상 위로 걸어갑니다. 세상을 발아래 밟고 걸어갈 수가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주님 한 분만 바라보고 그 분이 나에게 인도하시는 그 주님의 뜻을 찾아서 그 명령대로 쉬운 복종하면 쉬운 성공이 있을 것이고, 어려운 복종하면 어려운 성공일 것이고, 이것은 절대 망한다 하는 그런 복종을 하면 인간이 할 수 없는 그 초인간의 그 모든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4. 소유는 주님 한 분으로, 행동은 말씀 순종으로, 세상과 바꾸지 말라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자기 소유의 전부는 주님 한 분으로, 또 자기의 행동 전부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이 둘로서 자기의 전부가 될 수 있는 이런 사람이 되는 것이 제일 중대한 문제입니다. 이 사람 되는 것이 제일 어렵습니다. 그러고 나서 이 둘은 없어지고 세상의 모든 것으로 주님 대신하고, 인간의 모든 방편으로서 주님 말씀 순종하는 것 대신하기 쉽습니다. 이 둘을 바꿔 버렸습니다. 바꾸는데 어떻게 해서 바꿨느냐 요게 문제입니다. 어떻게 하다가 바꿔졌느냐 하는 고것을 깨달아서 그 바꾸는 그 일을 안하는 이 사람이 되도록 하는데 노력할 것, 이것만 하면 됩니다.
그러므로 어쩌든지 기도 많이 해서 요 2가지로 자기의 전부가 되는 요 사람만 되면 성공입니다. 이것만 하면 답니다. 예수 믿는 모든 성자나 성녀들이나 순교자나 순생자나 그런 사람들은 요 둘로서 주님의 전부를 삼았습니다. 그리고 이 2가지로 자기의 전부 삼은 것을 세상 어떤 분주 복잡한 필요한 중한 일로 바꾸지 말아야 됩니다. 바꾸면 안 됩니다.
예수님으로서 내 소유의 전부, 순종하는 것으로서 내 행위의 전부, 주님이 내 생명도 되고, 내 승리도 되고, 내 담력도 되고 내 평강도 되고, 원수를 승리하는 것도 되고, 온갖 것 다 되니까 요렇게 믿어지는 이 신앙을 가지도록 노력합시다. 그리고 가진 신앙을 세상 이런 저런 현실에서 바꾸지 안하도록 노력을 합시다. 그리하여 주님이 주시는 능력과 지혜로 세상을 발아래 밟고 이용하고 승리하는 주인공이 됩시다. 승리하세요.
{참조: 85021333}
* 윤봉원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8-10-27 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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