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의 참모

2008.10.24 22:37

윤봉원 조회 수:1028 추천:43

삼하 20:23-262008102233

날자: 2008년 10월 22일 수밤
제목: 다윗의 참모
본문: 사무엘하 20장 23절 - 26절
요압은 이스라엘 온 군대의 장관이 되고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는 그렛 사람과 블렛 사람의 장관이 되고 아도니람은 감역관이 되고 아힐룻의 아들 여호사밧은 사관이 되고 스와는 서기관이 되고 사독과 아비아달은 제사장이 되고 야일 사람 이라는 다윗의 대신이 되니라
1. 내가 의지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돈, 사람, 내 자신, 공부, 각종 실력, 기술, 의지력 등 다양한 것을 의지해서 살아갑니다. 이 중에서 우리의 의식과 삶을 지배하는 것은 무엇인지요? 아니면 믿음의 사람들처럼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순종하며 살아가는지요? 오늘 본문에서 다윗은 그의 참모를 세우는 모습에서 믿음의 사람이라고 하기에는 거리가 매우 먼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그의 신앙 상태는 24장에서 인구조사를 통해서 더욱 두드러지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한 종이 두 주인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는 것이 진리라면 우리 자신들은 무엇을 의지하며 살아야 할까요?
2. 다윗의 참모들
세바의 난이 평정된 뒤에 다윗은 새로운 정계 개편을 단행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시 그대로 등용되었다. 백성들의 공물과 조세를 관장하는 감역관 새로 신설했을 뿐이었다(24절).
2.1. 요압
다윗의 통치하에 나라가 통일되었다는 보도에 뒤이어 다시 한 번 측근 참모들의 명단이 나온다. 이 명단은 8장 16절 이하에 나오는 명단과 대체로 일치한다. 여기서도 많은 공을 세운 요압이 맨처음에 언급된다. 그는 온 이스라엘 의용군에 대한 명령권을 쥐고 있다. 즉 북지파들과 남지파들의 소집권을 쥐고 있다. 이것은 아마도 요압이 가장 중요한 관리였다는 것을 입증해 준다. 그것은 제일 처음에 언급되고 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2.2. 브나야
브나야는 그렛 사람과 블렛 사람의 장관이 되게 하였다. 그렛 사람은 블레셋 남쪽에서 온 용사들이고, 블렛 사람은 블레셋에서 귀화한 용사들을 가리킨다. 이들은 다윗의 경호를 담당한 친위대이었다. 브나야는 이들을 다스리는 장관(대장)이 되었다. 브나야는 용병대 사령관으로서 요압보다 더 위협적이고 막강한 군사적 잠재력을 직접 장악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는 상비군(직업 군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점은 후계자를 둘러싸고 일어난 소요 때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된다. 따라서 브나야는 요압보다 더 많은 실권을 차지했을 것이다(열상 1장 이하 참조).
2.3. 아도니람
아도니람은 감역관(監役官)이 되었다. 아도니람은 브나야와 여호사밧처럼, 솔로몬 통치하에서도 자기 지위를 유지한다(열상 4,2이하 참조). 감역관 공물(貢物)과 세금을 관장(管掌)하는 관리로서 백성들에게는 노동 감시관 역할을 하였다. 강제노역자들에 대한 감독직이 언급된 것은 새로운 점이다. 강제노역자들은 우선 정복당한 숱한 사람들, 즉 이방인들(왕상 9:21이하; 대하 8:8)이 일차적으로 강제노역자로 규정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솔로몬 시대에는 이스라엘 사람들도 강제 부역에 동원되었다(참조. 왕상 5:13).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의 징집은 단지 일시적인 것이었다. 이러한 부역제도의 주된 목적은 왕의 건설 계획을 위해 노동력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음 왕을 요구했을 때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통해 그 왕이 강제 노역과 무거운 세금으로 백성들을 괴롭힐 것이라고 하신 말씀이 구체적으로 성취된 것입니다(삼상 8:10-18). 그는 르호보암 통치 초기에 백성에게 돌에 맞아 죽었다(왕상 12:18).
2.4. 여호사밧
여호사밧은 이번에도 예전에 차지했던 지위인 재상으로 언급된다. 여호사밧은 역사를 기록하는 역사관에 임명됐다.
2.5. 스와
성경을 기록하는 서기관으로는 새로운 인물 스와가 등장한다(물론 전혀 불분명하게 전달된 이 사람의 이름은 8장 17절에 언급되어 있는 스라야 라는 이름일는지도 모른다. 열왕 4:3; 역상 18:16절만 해도 이와 다른 이름들이 나온다).
2.6. 사독과 아비아달
사제 사독과 에비아달도 변함없는 제사장 직무를 차지한 것으로 언급되어 있다.
2.7.  이라
8장 18절의 경우와는 달리, 사독과 아비아달 외에 다윗의 아들들은 사제로 언급되지 않고 야일 씨족의 이라라는 사람이 제사장(주요공직자, 우두머리 통치자의 의미<개역 성경은 대신으로 번역>)로 언급된다. 야일 씨족은 므낫세 지파에 속해 있었던 것 같으며 길르앗(동요르단 지방)에 정착했다(민 32,41; 신 3,14; 수 13,30 등 참조). 그 후 이 제사장은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언급된 것은 다윗이 나라 곳곳에서 관리들을 예루살렘으로 불러들였고, 그것도 사제직만을 위해 그런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명확히 밝혀줌으로 시사하는 바가 많다.
3. 돌아볼 점
다윗의 고위관리들의 명단은 고대 왕조의 행정에 대한 이해를 제공해 준다. 본 명단에는 관리들의 이름이 한 쌍씩 언급된다. 즉 두 명의 군사 관리(요압과 브나야), 두 명의 민간인 관리(여호사밧과 스와), 그리고 두 명의 의식 관리(사독과 아비아달)이다. 이와 같이 한 쌍의 관리들이 임명된 것은 권력이 한 사람에게 집중되는 것을 막기 위한 의도적인 배려였을 가능성이 없지 않아 보인다.
이 중에서  이 중 이라의 임무가 무엇이었는지는 문제거리이다. 다윗의 주된 사업은 대제국의 불안정한 통일성을 확고하게 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또한 그는 그에 못지않게 각기 다른 종교 전통들을 국가 제의를 통해 하나의 공통분모 위에 올려놓으려고 애썼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예루살렘으로 불러들인 사제들은 중요한 임무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이라를 제사장으로 본다면 다른 관리들은 둘 씩 임명하였으나 제사장직은 사독과 아비아달, 그리고 이라를 임명한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정계개편은 문제점이 많다. 다윗은 여러 번의 내란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인 회개와 율법 준수로 돌아가기보다는 형식적인 정치개혁만 단행했습니다. 따라서 해 아래에 새것이 없으며, 인간의 지혜로 다스리는 세상은 괴로움만 더한다는 사실이 다시 한 번 증명된 것입니다. 제도나 조직을 개선하거나 개편하는 일은 한계가 있습니다. 근본적인 회개와 개인의 손해를 각오한 변화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점이 정계 개편의 문제점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뚜렷한 회개와 신앙의 변화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정계 개편이 시사(示唆)하는 바는 하나님의 약속대로(삼하 7장) 다윗 왕국은 숱한 실수와 실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용서 받고 회복되어 든든한 나라로 세워져 가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이러한 다윗의 정개개편을 보면서 나도 아직까지 내가 먼저 변화하려고 하지는 않고 제도나 절차의 불합리성만을 탓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다윗처럼 인간적인 지혜와 모략으로 나의 미래를 영위하려 하지 말고 더욱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은혜와 긍휼에 감사함으로 더욱 하나님의 긍휼을 덧입을 수 있는 믿음의 길을 걸어가도록 합시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의 은혜가 아니면 우리의 인생을 아무리 열심히 살았다고 할지라도 솔로몬처럼 인생 마지막 결산할 때는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전 1:2-3)라고 탄식만하고 기회를 다 보내는 허무한 인생이 되고 말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떠나시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들입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5)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축지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렘 2:13)


 

* 윤봉원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8-10-24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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