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그럴 수 없을까

2008.10.13 22:23

윤봉원 조회 수:1024 추천:69

삼하 16:5-142008100501날자: 2008년 10월 5일 주일오전
제목: 안 그럴 수 없을까?
본문: 사무엘하 16장 5절 - 14절
1. 후회를 안 하며 살 수 있다면?
지난 목요일에 우리나라 뭇 남성들의 마음을 한 동안 사로잡았던 최진실이 자살을 했다는 뉴스를 학교 가면서 차 안에서 접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사실로 믿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사실이더군요. 그도 신앙생활을 한 믿음의 사람이었던 것 같은데 그런 일이 일어났다니까 더 가슴이 아픕니다. 자살의 동기에 대해서는 이런 저런 설들이 있습니다만 중요한 것은 최진실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섰을 때 ‘네가 자살을 선택한 것은 잘했다.’라고 칭찬을 받을 수 있을까요? 다른 말로 표현하면 하늘 나라 갔을 때 최진실이 영원한 하늘나라에서 ‘내가 내 인생의 마지막을 자살로 선택한 것을 참으로 잘 한 일이다.’라고 자부 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내가 왜 그랬을까?’하고 후회를 하게 될까요?
우리 한 번 따져 봅시다. 자살은 하나님께 대해서는 ‘살인하지 말라’(출 20:13)는 계명을 어기는 죄를 범한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대해서는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고, 덕을 끼쳐야 할 성도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와 고통을 주었습니까? 또한 영원토록 만회할 기회조차 없어졌으니 이 얼마나 비뚫어지고 큰 죄를 지은 것인지요? 따라서 자살이야말로 가장 이기적이고, 잘못되고, 비뚫어진 행동이며, 가장 악한 죄라 할 수 있습니다. 전적 예수 그리스도의 피공로로 구원함을 받은 우리 성도는 자살죄는 어떤 경우에도 지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우리 자신들을 돌아 봅시다. 우리 인생살이에서 우리는 살고 나서 ‘그 때 그 언행심사는 참 잘했다.’ 하고 보람 있게 생각하는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뒤 돌아 봤을 때 ‘그 때 그 언행심사는 참으로 후회가 된다.’라고 뉘우치는 것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후회를 하지 않고 온전한 언행심사를 할 수 있는 교과서(거울)롤 주신 것이 성경 말씀이라고 하셨습니다(참조. 고전 10:6, 11). 이렇게 우리에게 거울로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후회 할 언행심사를 한다면 우리는 어떤 사람들이라고 봐야 할까요? 참으로 후회 안하며 살 수 있다면 우리 모두는 그 길을 가야 하겠지요? 아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후회하지 않고 살기를 바라는 거울로 다윗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2. 시므이의 저주
압살롬을 피해 도망하는 길에서 다윗은 풍성한 음식(떡 이백 개, 건포도 백송이, 여름 과일 백 개, 포도주 한 가죽 부대)으로 맞이하는 시바를 만나서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 한 번 더 경험하게 됩니다(16:1-4). 자신의 약점에도 불구하고 변치 않고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 할 수 있는 기회였지요.
또 한 편으로는 사울 가문에 속한 시므이가 다윗이 그의 모든 신하들과 함께 있음을 보고도 돌을 던지며 다윗을 저주합니다. ‘시므이가 저주하는 가운데 이와 같이 말하니라 피를 흘린 자여 비루한 자여 가거라 가거라 사울의 족속의 모든 피를 여호와께서 네게로 돌리셨도다 그 대신에 네가 왕이 되었으나 여호와께서 나라를 네 아들 압살롬의 손에 붙이셨도다 보라 너는 피를 흘린 자인 고로 화를 자취하였느니라’(삼하 16:7-8) 그는 사울 집안의 멸망 책임을 다윗에게 돌렸으며, 압살롬의 반역은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단정을 짓습니다.
3. 다윗의 대처
3.1. 아비새의 해결책
이러한 시므이의 저주에 대하여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는 ‘죽은 개’ 같은 시므이의 목을 당장 베는 것이 부당한 저주에 대한 해결책이라고 생각했습니다(9절). 이러한 그의 행위는 백 마디 기도보다 한 번의 칼질이 더 낫다고 믿는 ‘힘’ 숭배자였습니다.
자기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면 하면 되지, 하나님께 묻고 도움을 구하고 때로는 하나님의 대답을 기다리는 것은 어리석다고 여긴 행위입니다.
3.2. 다윗의 해결책
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아비새에게 다윗은 칼을 내려놓게 하고, 시므이의 저주를 하나님의 저주로 받아들입니다. 이것은 이 책의 저자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한 다윗의 깨어 있는 심령의 상태를 증명하는 것입니다.‘왕이 가로되 스루야의 아들들아 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저가 저주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저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심이니 네가 어찌 그리하였느냐 할 자가 누구겠느냐 하고’(삼하16:10)
아울러 아들 압살롬도 아비를 죽이려는데, 패배한 정치적 집안사람이 자신을 향해 원한을 품는 것은 당연하다며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또 아비새와 모든 신복에게 이르되 내 몸에서 난 아들도 내 생명을 해하려 하거든 하물며 이 베냐민 사람이랴 여호와께서 저에게 명하신 것이니 저로 저주하게 버려 두라’(삼하 16:11)
더 나아가서 다윗은 시므이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이 아니라, 이러한 모독과 수치를 다 받아들이고 있는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며 발견합니다. ‘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오늘날 그 저주 까닭에 선으로 내게 갚아 주시리라’(삼하 16:12) 한 동안 잃어 버렸던 하나님을 다시 찾는 모습입니다. 더불어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만 모든 일이 이루어지기는 소원하는 기도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또한 다윗의 최종 승리는 하나님께 있음을 확신 한 것입니다.
4. 돌아 볼 점
이상에서 우리는 시므이의 저주를 통해서 우리에게 몇 가지를 시사 해 줍니다. 다윗이 시므이의 저주의 소리를 들었을 때 다윗의 마음속에는 어떤 그림들이 스쳐 지나갔을까요? 하나님께 묻지 않고 취한 밧세바, 그리고 우리아를 전쟁통에 내 보내 죽인 이후로 자기에게 닥친 일들이 생생하게 지나갔을 것입니다. 암논의 다말에 대한 강간, 압살롬의 암논 살해, 압살롬의 반역, 자기 친구 아히도벨의 배신, 온 이스라엘 백성들의 배신, 그로 인하여 예루살렘 궁을 버려두고 쫓겨 다니는 처량한 자신의 신세를 생생하게 그려 보았겠지요. 자기의 장인 사울에게 쫓겨 다니면서 자기의 생명을 유지했던 과거도 떠올랐을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들이 자기 마음속에서 새겨질 때 얼마나 자신이 처량하게 느껴졌겠습니까? 아울러 자신이 한 번 욕심 잘 못 먹고 감행한 행동에 대해서 후회를 막심하게 했겠습니까? 하나님의 자신에 대한 올바른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소원을 깨달았을 때 회개의 기도를 많이 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오늘 본문과 같은 좀 더 하나님과 가까워진 모습으로 자신을 성숙시켰던 것으로 보입니다. 다윗의 성숙된 모습을 다시 한 번 정리 해 볼까요?
시므이의 저주를 하나님의 저주로 받아들인 점. 자기 아들도 자기를 배반하고 불효막심한 행동을 하는데 시므이가 저렇게 행동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여긴 점. 자신을 저주하는 시므이를 당장 쳐 죽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그에 대한 처분을 맡기고 오히려 자신에게 하나님의 자비를 구한 점. 자신의 의지와 감정대로 일이 처리되기를 바라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원한 점. 그리고 다시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점이다.
문제는 이러한 모습으로 다윗이 변화 성숙되기까지 너무도 심한 상처와 고통과 멸시, 천대를 받는 과정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구지 이렇게 징계의 어려움을 당하고 나서야 깨달아야 합니까? 이러한 다윗을 우리에게 보여 주는 것은 무엇을 교훈 해 줍니까?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15)
지금까지 사무엘하를 통해서 묵상하며 은혜 받은 말씀들을 근거해서 우리는 다윗처럼 징계의 고생을 톡톡히 치르고 난 이후에 후회하고 정신 차리는 자들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다윗이 고생한 것으로 만족합니다. 하나님께 묻지 않고 행동하는 것이 죽을 죄는 짓는 것이라는 엄청난 진리를 항상 명심합시다. 최진실이 목을 매기 전에 ‘하나님 내가 괴로워서 죽겠습니다. 내가 목을 매고 죽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까?’라고 물어 봤더라면, 그리고 그의 뜻을 따라서 순종했더라면 하는 안타까움이 진하게 남는 것입니다. 매를 맞은 후에, 후회 할 일을 저지른 후에 후회하고 회개하는 어리석인 짓을 반복하지 맙시다.
그러므로 이 시간 이후에 우리의 삶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찾는 일을 가장 먼저 합시다!
하나님의 뜻이요 명령을 발견했을 때는 즉시 어떤 명령이라도 순종하도록 합시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섭리로 받아들이고 감사하며 하나님께 순종 생활의 충성을 죽을 때까지 계속 합시다! 그랬을 때에 선하시고 인자하심이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삶에 은혜를 베풀어 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삶을 살아가는 자가 된다면 그의 삶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천국 생활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 윤봉원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8-10-13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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