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적(암몬)의 도움을 받은 다윗

2008.10.03 22:45

윤봉원 조회 수:1264 추천:61

삼하 17:27-292008100353날자: 2008년 10월 3일 금밤
제목: 대적(암몬)의 도움을 받은 다윗
본문: 사무엘하 17장 27절 - 29절
1. 힘든 때일수록 하나님을 바라보라
요즘 연예인들의 자살 소식, 또 다른 사람들의 좌절과 낙망 소식을 자주 접할 수 있다. 사람이 너무 힘이 들면 기도할 용기도, 기도도 안되지요. 그랬을 때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자살이나 타락의 길을 선택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붙들고 있는 자는 자살을 하려니 죄가 되고 안하려니 현실은 힘들과 참으로 진퇴양란에 빠져 있는 모습을 볼 수도 있고, 경험도 하고, 알 수 있습니다. 죽을 병이 걸렸 때에, 사형 선고가 내려진 상황에서 히스기야는 얼굴을 벽으로 향하여 기도하여 15년의 생명 연장과 대적 앗수르로부터 검짐 받고 보호 받을 것을 약속 받았지요.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찾아봅시다.
2. 다윗의 사기를 높여준 암몬
다윗은 후새, 요나단과 아히마아스, 이름 모를 여인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 도움으로 그는 자기 아들 압살롬에게 쫓겨 예루살렘에서 피난한 상태입니다. 그는 마하나님을 자신의 임시 기지로 삼았다. 그곳에서 다윗은 요단 동편에서 온 많은 주요 인사들을 만났는데 그들은 각 지방의 대표자들이었을 것이다. 동맹자들과 신하들은 그가 도착할 때를 미리 준비해 두었다. 다윗은 예루살렘을 출발하면서 즉각 그 지방으로 사자들을 보냈음이 분명하다.
맨처음에 거론된 다윗의 지지자는 특별히 우리의 관심을 끈다. 나하스의 아들 소비이다. 소비는 다윗이 암몬 사람들의 왕위에서 쫓아낸 하눈의 형제이며 옛 암몬가의 왕자였을 것이다(10:1; 12:30).  소비는 상당한 재력과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던 인물이었거나 암몬의 지배자였을 것이다. 따라서 다윗은 예부터 존재하던 왕조를 암몬에 그대로 내버려 두고 그가 택한 왕자를 섭정으로 앉히고 스스로 종주국의 왕으로 자처했다. 사실상 소비는 이러한 행동을 충성으로 보답한다.
두 번째 언급된 동맹자는 로드발의 마길인데 마길은 사울가의 충실한 지지자였고, 아울러 9장 5절에서 이미 므비보셋의 보호자였다. 그는 마하나님 근처의 한 지방 주권자였음이 분명하다. 그가 순수한 열정으로 다윗을 도왔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아마도 마길과 다른 사람들은 다윗 군대의 진주로 인해서 동요되었을 것이다. 반면에 저자는 여기서 마길과 바실래의 자발적 충성을 강조하는 것 같다.
세 번째 언급된 바실래는 이제까지의 문맥에서 한 번도 언급된 적이 없었다. 바실래는 로글림 출신의 영향력 있는 길르앗 유지였다. 어쨌든 다윗은 길르앗-암몬 지역으로부터 도움을 얻는다.- 우선 거처의 도움을 얻는다. 즉 은신처와 진을 칠 가능성은 마련되어 있고, 그 밖에 식량도 마련되어 있다. 수많은 열거는 다윗의 군대에 부족한 것이 전혀 없음을 분명하게 제시해 준다. 다윗의 군대는 이전에 지쳐서 사기도 저하되었다가, 이제 원기를 회복하고 다시 전투력을 갖추게 된다(17:2).
이스라엘은 압살롬 편에 섰지만, 이방인 암몬 족속은 다윗 왕국의 내란이 다윗을 배신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는데도 도리어 꼭 필요한 전쟁 물자를 제때 공수함으로써 다윗 군대의 사기를 높여주었다. 이스라엘은 배신을 이방인은 충성(헤세드)을 보인 것이다. 하나님이 하신 것이다.
3. 암몬 족속이 주는 교훈
3.1. 대적을 통해서 필요를 채워 주신 하나님
인간은 거의 본능적으로 자기는 자기가 보호하고,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어떤 궁지에 몰리면 자기 방식대로 해결책을 강구하는 것이 인간이 아닌지? 그래서 자살, 술, 여행, 울기, 수다 떨기 등의 방편으로 노력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사람으로서 이제부터는 앞에서 이야기한 사람들과 같은 방편을 택해서는 안되겠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에게 분명히 보여 주는 것은 대적 암몬 족속을 통해서 다윗의 필요를 채워 주신 하나님이 계심을 가르쳐 주십니다. 이것은 전적 하나님의 은혜(헤세드)였던 것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살아 있다.” “내가 너희들을 사랑한다.” “내게 구하라 그리하면 필요를 채워 주실 것이다.”고 교훈 해 주는 것이지요. 어려운 일 만나면 만날수록 하나님과 거리가 멀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어려운 일을 만나면 만날수록 가까워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길을 선택해야 할까요? 어떤 길을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까?
3.2. 현재의 필요에 가장 적절한 힘이 될 수 있는 도움이 가장 효과적인 도움이다
이 당시의 다윗의 고통의 원인은 육체에 있기보다 오히려 마음속에 있기는 했지만, 길르앗에서의 그의 친구들의 후의는 그와 그의 추종자들에게 음식과 육체적 안식의 수단을 제공하는 외에 이 때에 달리 더 좋은 방법으로 표현 될 수 없었을 것이다. 과거 사건들은 다윗의 육체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도 대부분의 보통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때때로 그의 동물적인 유기적 조직체가 이끄는 대로 복종해야 한다. 그는 이러한 상황에서는 그 어떤 영적인 것들에 대해서는 그 어떤 인식도 하지 못하고 단지 육체적인 궁핍에 필요한 이러한 음식들에 대해서만 생각할 수 있었을 뿐이다.
현재의 가장 절실한 요구를 분별할 수 있는 동정이야말로 진실로 실제적인 동정이다. 그리고 이러한 동정은 그 능력이 미치는 한 모든 것으로 급히 그 요구를 채워준다. 영혼의 극심한 고뇌로 인해 고통을 당한 사람들이라고 육체의 요구를 무시할 수 없고, 상처 입은 심령에 대한 위로는 때때로 육체의 요구를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영혼의 비참한 고통 가운데서 엘리야가 광야에 꿇어앉아 죽음을 주시기를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의 영적인 힘을 회복하기 위해서 취하신 최초의 조처는 그의 육체를 위해 음식을 제공하는 일이었다.
‘본즉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이 있더라 이에 먹고 마시고 다시 누웠더니 여호와의 사자가 또 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네가 길을 이기지 못할까 하노라 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먹고 마시고 그 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사십 주 사십 야를 행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니라’(왕상 19:6~8)
이런 식의 도움으로 표현되는 후의는 슬픔에 처해 있는 사람에게 미치는 직접적인 향유이다. 이 향유를 다윗은 예전에 원수였던 암몬 족속으로부터 받은 것이다.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3.3. 자기보다 못한 사람들을 관대하게 대하라
인간의 삶 속에서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는 지위의 전환은 인간들에게 이러한 점에 있어서의 지혜를 가르쳐야 한다. 인류는 끊임없이 위치를 변화시키고 있다. 종이 주인이 되고, 오늘 지배하는 자가 이제 곧 그가 명령하는 사람들에 의해 좌우될 수 있다. 다윗이 암몬 왕의 면류관을 자기 머리에 썼을 때(12:30), 수년 내에 그가 그의 왕국으로부터 도주하여 암몬 족속의 한 방백에게 은혜를 입을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러나 이제 그러한 때가 찾아왔다. 당시 그가 정복한 사람들에게 베풀었던 그 어떤 자비-그 성읍에서 무수한 노략물을 내어오고, 백성들을 톱질과 써레질, 철도끼질, 벽돌구이를 하게 하는 고문을 가하였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예부터 존재하던 왕조는 그대로 두는 약간의 호의를 베품?-도 이제 이자가 붙어서 되돌려진다.
만일 우리가 역경에 처해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한동안 그들 위에 있게 한 그 사람들의 요구를 잊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것이다. 우리 또한 다윗처럼 언제 상황이 바뀔지 모르기 때문이다. 아울러 자기보다 못한 사람들을 관대하게 사랑으로 대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교만하지 맙시다.
이웃에 대하여 냉정하지 맙시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여건이 될 때 암몬 족속처럼 원수까지도 돕도록 합시다.
나의 나된 것이 전적 하나님의 은혜인줄 알고 감사히 충성만 잘 하도록 합시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덕을 세우며 살다 갑시다.
원수를 통해서 필요를 채워 주시는 하나님을 죽을 때까지 신뢰하며 살아가도록 합시다. 할렐루야! * 윤봉원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8-10-03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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