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몬과의 전쟁을 마무리 하는 다윗

2008.09.25 12:55

윤봉원 조회 수:1088 추천:91

삼하 12:26-312008092433날자: 2008년 9월 24일 수밤
제목: 암몬과의 전쟁을 마무리 하는 다윗
본문: 사무엘하 12장 26절 - 31절
요압이 암몬 자손의 왕성 랍바를 쳐서 취하게 되매 사자를 다윗에게 보내어 가로되 내가 랍바 곧 물들의 성을 쳐서 취하게 되었으니 이제 왕은 남은 군사를 모아 진치고 이 성을 쳐서 취하소서 내가 이 성을 취하면 이 성이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을까 두려워하나이다 다윗이 모든 군사를 모아 랍바로 가서 쳐서 취하고 그 왕의 머리에서 보석 있는 면류관을 취하니 그 중량이 금 한 달란트라 다윗이 머리에 쓰니라 다윗이 또 그 성에서 노략한 물건을 무수히 내어오고 그 가운데 백성들을 끌어내어 톱질과 써레질과 도끼질과 벽돌구이를 하게 하니라 암몬 자손의 모든 성을 이같이 하고 다윗과 모든 백성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니라
1. 나는 다른 사람을 위해 나를 포기하고 잘 배려하고 있나?
만일 어떤 사람이 사회적 지위에 있어서 우리보다 아래 있거나 또는 우리보다 덜 알려졌거나 덜 존경받는 사람이라면, 우리는 그가 출세를 하여 우리가 누리는 유익을 어느 정도 함께 나누도록 하기 위해서 때때로 다소 물러나 길을 비켜 줄 수 있어야 한다. 인생의 경주에 있어 많은 상을 받은 사람이 때때로 자기의 속도를 늦추고 실력이 다소 모자라는 사람으로 하여금 승리의 기쁨을 맛볼 수 있게 한다는 것은 분명히 엄청나게 근 자기 부정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접하는 사람들이 우리와 동등한 사람들이거나 우리의 상급자일 때 애정을 촉구하지 않을지라도 타산은 그러한 행동을 명령한다. 스스로 우리와 동등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또는 그들이 많은 점에서 우리보다 우월한 위치에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우리의 성공에 대해서 훨씬 더 질시의 눈길로 바라보기가 쉽다. 그리고 나아가 우리가 명성을 위한 경쟁에 있어서 그들을 너무 멀리 또는 언재나 제쳐놓고 달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의 눈길로 우리를 바라보기 쉽다. 그러나 우리는 때때로 그들의 뜻에 맞추어 우리의 정당한 주장을 철회하는 배려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2. 요압의 충성
2.1. 다른 사람을 위해서 명예를 버리는 일은 종종 애정어린 일인 동시에 타산적인 일이다.
요압의 이 사건 이전의 생애와 이 사건 이후의 생애는 이때의 그의 행위가 바로 다윗의 후의를 계속 얻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루어졌던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그는 분명히 마음의 애정이 있는 것처럼 이 행동을 했을 것이다. 만일 이 사건이 다윗의 회개 이전에 일어났다면(그렇게 보는 것이 타당하다), 요압은 그의 주인이 심히 불안해하는 것을 분명히 보았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 만일 이 사건이 나단이 메시지를 전한 후에 일어났다면 여전히 다윗은 의기소침한 마음 상태에 있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요압은 우울한 상태에 있는 그를 끌어내기 위해서 랍바의 정복을 제안하는 일이 가능했을 것이다.
또 달리 생각하면 그의 신하들 사이에서 다윗의 명성은 그의 유죄한 행동으로 인해 위협을 받았을 것이고 그의 휘하 장군들은 그들의 생각으로 그의 무용을 발휘하게 함으로써 왕에게 그 옛 지위를 회복시켜 줄 마음으로 이 정복계획을 호소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의 제안이 오히려 그의 계산에 의해 명령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윗은 아브넬의 살해 때에 그에게 다소 반감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요압을 야심 있고 무도한 인물로 생각하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요압은 그가 아브넬을 살해함으로써 다윗에게 범한 심한 죄의식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삼하 27-30). 그리고 그는 실제로 너무나 지혜로운 책략가였으므로 앞서 달려 나가 군대의 선봉에 자신이 서야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지금까지 자기가 수행 해 온 일을 완결지을 완전한 권리를 가졌을지라도 그는 여기서 다윗의 손에 그 권리를 넘기는 위대한 지혜를 보였다. 그리하여 그는 그의 은총을 계속 받기 위해서 새로운 각오로 충성하겠다는 것을 나타내었다.
2.2. 외적인 성공은 인간이 하나님의 은총에 대해서 어떠한 관계에 있음을 나타내 주는 그 어떤 표준도 아니다.
랍바의 정복에 의해 다윗은 그로 하여금 그의 모든 이방인 원수들로부터 몸을 지키게 해준 일련의 승리를 완성하였다. 암몬 자손의 왕의 왕관(1달란트는 30Kg = 900 데나리온(50000<일당>*9000 = 450000000원) 이 그의 머리 위에 놓여 졌고 또 많은 전리품을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들아 왔을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허락하신 일시적인 성공의 정도를 보고한 인간의 태도가 하나님을 얼마나 기쁘시게 하는가를 측정하는 사람들은 이제 이러한 다윗의 승리의 개선을 보고 그가 전보다 더욱더 하나님의 은총을 누리고 있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출정이 하나님의 불쾌하심이 다윗에게 임하고 있는 동안 수행되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설혹 그가 회개한 후에 이러한 출정이 있었다고 할지라도 이러한 모든 외적인 화려함은 그가 ‘이제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 사람 우리아의 처를 빼앗아 네 처를 삼았은즉 칼이 네 집에 영영히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고’(삼하 12:10)라는 여호와의 무서운 선고를 생각할 때 다윗의 심령에 그늘이 지게 했던 내적인 우울함과 서글픈 대조를 이루었을 것이다. 목자이며 도망자였던 다윗은 암몬의 정복자로서의 다윗보다 실제로 하나님의 인정과 은총을 더욱더 많이 받았을 것이다.
 그의 생애의 이러한 일화는 십자가의 빛 가운데서조차도 우리가 망각하기 쉬운 한 가지 진리, 즉 한 인간의 외적인 상황은 하나님의 나라에 있어서 그의 위치에 대한 그 어떤 암시도 아니라는 진리에 대한 또 하나의 실례다.
나의 나됨은 내 자신의 실력이나 노력의 결과가 아님을 살면 살수록 절감한다. 부모님과 나를 사랑하는 많은 분들의 기도와 협력에 의한 은혜이다.
2.3. 인간들의 독립된 행위들은 종종 이상하게도 그들 전체의 인격과 불일치한다.
우리가 본문을 읽을 때 우리는 행위자들의 이름을 바꾸어 놓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다시 말해서, 요압이 하는 말을 다윗의 말로 간주하고 본문에서 다윗에게 돌려진 모든 일을 요압이 행한 것으로 바꾸어 놓고 싶은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이 두 사람의 전체적인 성품과 완전한 조화를 이룰 것이다. 본문의 표현을 살펴보면, 요압의 전혀 이기심 없는 말은 다윗의 허영적이고 잔인한 행위(31절에서 다윗은 정복당한 암몬 사람들을 소름끼칠 정도로 강제 노역에 동원한 사실을 보게 된다.)가 그의 전체 성품과 전혀 조화를 이루지 못한 것으로 보이는 것처럼 그의 입에서 나왔음이 매우 이상하게 보인다.
그러나 또 다른 면으로 생각을 해 보면 다윗의 이기적인 행위가 이해되기도 한다. 왜냐하면 그는 요압으로 하여금 그 정복을 완결짓고 실질적으로 그의 칼이 이룩한 명예를 맛보도록 하여야 했을 것이다. 마치 그가 그의 머리에 그렇게 진귀한 면류관을 쓰는 것을 특별히 가치 있는 일로 여겼던 것처럼 암몬 자손의 왕의 면류관을 쓰는 공허한 의식을 행한 것은 그에게 전혀 가치 없는 일이었다. 무엇보다도 전쟁 포로들을 처분하는데 있어서 그렇게 잔인한 모습을 보여 준 것은 참으로 무서운 일이었다. 그러나 다윗이 아직 회개하지 않았다면 이러한 일이 일어났다고 해서 크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만일 우리가 이 두 사람 가운데 어느 한 사람을 알지 못한다면, 그들의 성품에 대해서 우리가 내리는 평가는 그 얼마나 잘못된 것이겠는가! 그러나 인간 전체에 대해서 특별히 그들의 삶에 대해서 관심이 있는 모든 사람들은 선한 사람도 얼마나 자주 그들의 신앙고백과 모순된 행동을 하는가. 그리고 도덕적으로 훨씬 그들보다 못한 사람들과 비교할 때 그들이 더 고통을 당하는 실례가 얼마나 자주 나타나는가를 안다. 악인은 때때로 과분한 지위에 있는 것처럼 보이고 때로는 실제로 과분한 자리에 앉아 있다. 그런가하면 가장 훌륭한 사람이 그 훌륭한 성품에 비해 훨씬 낮은 자리에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성급한 판단을 삼가야 하고 그의 성품 전체를 비추어 인간의 행위를 바라보아야 한다.
이상의 말씀을 통하여 다음과 같은 교훈을 얻게 된다.
⃟ 하나님은 나의 유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배려하며, 다른  사람을 유익을 위해 희생하는 삶을 살기를 원하신다.
⃟ 나의 외적인 성공을 내가 어떠한 노력을 하여서 성취한 것으로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전적으로 하나님과 주변 사람들의 협력에 의한 선물의 집합체이다.
⃟ 내가 남 보다 좀 더 배웠다고, 가졌다고, 누리고 있다고 다른 사람을 무시하거나 멸시하는 행위를 하지 말아야 한다. 참으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라’는 말씀을 새기게 된다.
{참조. 베이커 성경주석 사무엘상하) * 윤봉원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8-09-25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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