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주 하나님을 송축하라

2011.02.06 21:23

윤봉원 조회 수:671 추천:69

시 104:1-182011020602

날자: 2011년 2월 6일 주일오후
제목: 창조주 하나님을 송축하라
본문: 시편 104편 1절 - 18절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는 심히 광대하시며 존귀와 권위를 입으셨나이다 주께서 옷을 입음같이 빛을 입으시며 하늘을 휘장같이 치시며 물에 자기 누각의 들보를 얹으시며 구름으로 자기 수레를 삼으시고 바람 날개로 다니시며 바람으로 자기 사자를 삼으시며 화염으로 자기 사역자를 삼으시며 땅의 기초를 두사 영원히 요동치 않게 하셨나이다 옷으로 덮음같이 땅을 바다로 덮으시매 물이 산들 위에 섰더니 주의 견책을 인하여 도망하여 주의 우뢰 소리를 인하여 빨리 가서 주의 정하신 처소에 이르렀고 산은 오르고 골짜기는 내려갔나이다 주께서 물의 경계를 정하여 넘치지 못하게 하시며 다시 돌아와 땅을 덮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여호와께서 샘으로 골짜기에서 솟아나게 하시고 산 사이에 흐르게 하사 들의 각 짐승에게 마시우시니 들나귀들도 해갈하며 공중의 새들이 그 가에서 깃들이며 나뭇가지 사이에서 소리를 발하는도다 저가 그 누각에서 산에 물을 주시니 주의 행사의 결과가 땅에 풍족하도다 저가 가축을 위한 풀과 사람의 소용을 위한 채소를 자라게 하시며 땅에서 식물이 나게 하시고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포도주와 사람의 얼굴을 윤택케 하는 기름과 사람의 마음을 힘있게 하는 양식을 주셨도다 여호와의 나무가 우택에 흡족함이여 곧 그의 심으신 레바논 백향목이로다 새들이 그 속에 깃을 들임이여 학은 잣나무로 집을 삼는도다 높은 산들은 산양을 위함이여 바위는 너구리의 피난처로다
1. 현실에서 항상 기뻐하며 감사하고 찬양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인간은 어느 누구도 하나님이 만드신 것 중 하나도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살라만상을 창조하시고, 우리의 현실 에덴동산도 만드셔서 우리가 구원 이루어 가는 데 필요한 맞춤 현실로 주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가 이 현실에서 항상 기뻐하며 감사하며 기쁨과 만족한 삶을 살아가기를 기대하신다.
‘항상 기뻐하라…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 5:16~18)
심지어는 여러 가지 시련희 현실에서도 온전히 기뻐하기를 원하신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약 1:2)
그렇다면 우리는 지난날의 삶은 이러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살아왔는지 이 시간 돌아보자. 만약 온전한 기쁨과 감사와 찬양이 없었다면 왜 그랬을까? 종종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당신이 내 현실을 만나봐라. 그러면 당신도 별수 없을 것이다. 목사님이니까…” 과연 이러한 넉두리를 하나님께서도 맞다라고 인정하실까?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어떻게 하면 우리가 만나는 모든 현실에 대해서 온전히 기뻐하며, 감사하며, 찬양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얻고자 한다. 그리고 그 답을 우리의 삶에 적용시켜 날마다 감사와 기쁨, 찬송이 넘치는 삶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본문 개요
시인은 하늘과 땅을 지으시고 다스리시는 여호와를 찬양하고 있다. 이어서 그는 창세기 1장의 창조 과정과 연관하여 하늘 위의 하나님께서 땅의 혼돈 세력들을 통제하시면서 질서를 만들어가시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어서 구체적으로 그 하나님께서 하신 일들을 소개한다(2-18절).
1. 서론: 존귀와 권위를 입으신 여호와를 송축하라 (104:1)
  (1) 도입: 여호와를 송축하라 (104:1a)
  (2) 이유: 위대하시며 존귀와 권위로 옷 입음 (104:1b)
2. 본론: 존귀와 권위를 가진 하나님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설명 (104:2-18)
  (1) 모습 1: 천상의 주권자이신 하나님-창조 첫째와 둘째 날과 연관 (104:2-4)
  (2) 모습 2: 물속에 있었던 땅에 질서를 부여하신 하나님-창조 셋째 날과 연관 (104:5-9)
  (3) 모습 3: 땅의 생물들을 돌보시는 하나님-물을 통해서, 창조 넷째 날 이후와 연관 (104:10-18)
     1) 땅에서 솟아나는 샘을 통해 (104:10-12)
     2) 하늘의 비를 통해 (104:13-18)
이 시는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지으시고 모든 피조물의 필요를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따라서 균형 있게 채우시는 것을 노래하는 찬양시이다. 그런데 이 시편은 창세기 1장에 대한 묵상에서 비롯된다. 시인은 창세기 1장에 나오는 창조의 과정을 생각하며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한다. 창세기 1장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밝히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시편 104편은 창조주 하나님의 지혜와 은총을 높이고 찬양하는데 초점이 맞춰진 것으로 보인다.
3. 하나님은?
3.1. 심히 권위 있고 광대하시고 존귀하신 분(1-4)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는 심히 광대하시며 존귀와 권위를 입으셨나이다 주께서 옷을 입음같이 빛을 입으시며 하늘을 휘장같이 치시며 물에 자기 누각의 들보를 얹으시며 구름으로 자기 수레를 삼으시고 바람 날개로 다니시며 바람으로 자기 사자를 삼으시며 화염으로 자기 사역자를 삼으시며 (시 104:1~4)
시인은 하늘 위에서 하나님께서 하신 일들을 말하고 있다. 하나님은 하늘의 왕으로서 존귀와 권위로 어의(御衣) 삼으시고, 하늘을 휘장처럼, 빛을 옷처럼 사용하신다. 하나님은 물을 기초로 하늘 궁전의 누각을 세우시고, 구름과 바람과 불꽃을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사용하시는 창조주로 노래한다.
‘물’(mayim)(3절)은 하늘 위의 물을 가리킨다(창 1:7). 그리고 ‘구름 타시는 자’는 원래 가나안 폭풍의 신인 바알의 칭호였다. 그런데 시인은 이 표현을 하나님께 사용하면서 이 세상에 구름과 비는 바알이 아닌 하나님께서 주신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김정우, 「시편주석Ⅲ」, p. 225.
 또한 ‘구름’과 ‘바람’은 하나님을 섬기는 천군천사들을 가리키는 대유법이다. 이 ‘바람’과 ‘불꽃’은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니라, 그룹과 스랍에 대한 대유법이다(사 6:2; 참조). 김정우, 「시편주석Ⅲ」, p. 225.
 이런 모든 표현은 하늘 위의 모든 권세가 그 앞에 복종하는 모습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 영광스런 주권자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다. 할렐루야!!
시인의 하나님에 대한 이러한 노래는 인간이 도저히 다다를 수 없는 저 높은 천상의 세계에서도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왕이심을 밝히 드러내 준다. 이러한 하나님에 비하여 우리의 모습은 얼마나 초라한지를 깨닫게 된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근본적으로 이렇게 큰 간격이 있다는 사실은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경외심을 확실하게 자극한다.
창조주는 하나님뿐이시다. 우리 인간이 이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일 중에 가장 큰 일은 하나님을 바로 아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너무 인간적인 수준에만 머물러 있지 않은지 이 말씀을 통하여 철저하게 돌아보게 한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지만 그분은 근본적으로 우리와는 전혀 차원이 다른 분임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경외심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천상의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깊이깊이 묵상하여 그분을 바로 알아가도록 더욱 힘써야 한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하늘과 해와 바람과 불꽃 모두 하나님의 피조물이고, 하나님을 위해 존재한다. 그들이 충성스럽게 하나님께 수종 들듯이, 피조물인 우리도 왕이신 그분을 잘 받들고 있는지 철저하게 돌아보아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길을 따라 걷고 있는지 돌아보자. 이렇게 살지 않았던 염소같은 삶을 회개해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피조물의 위치와 신분을 뛰어넘으려고 하지는 않습니까? 아담 하와가 하나님같이 되려고 선악과 따 먹은 것처럼 주제 파악을 잘못하고 살았던 것을 철저하게 회개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어떻게 하는 것이 왕이신 그분의 존귀와 권위에 합당한 대접을 해드리는 삶인지 항상 성령과 진리의 인도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충성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어떤 경우에도 그분의 존재 목적을 거슬리거나 답답하게 하는 우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
3.2. 이 땅의 주권자이신 분(5-9)
‘땅의 기초를 두사 영원히 요동치 않게 하셨나이다 옷으로 덮음같이 땅을 바다로 덮으시매 물이 산들 위에 섰더니 주의 견책을 인하여 도망하여 주의 우뢰 소리를 인하여 빨리 가서 주의 정하신 처소에 이르렀고 산은 오르고 골짜기는 내려갔나이다 주께서 물의 경계를 정하여 넘치지 못하게 하시며 다시 돌아와 땅을 덮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시 104:5~9)
하나님은 셋째 날 창조에서 바다와 땅을 나누시고 그 경계를 정하셨다. 시인은 바로 그날의 창조사역을 시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마치 건물을 견고한 기초 위에 세우듯이 땅을 영원히 요동치 않게 창조하셨다고 한다(5절). 땅의 기초가 완성되었다는 것은 어떤 일이 있어도 그 기초가 무너지지 않을 것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김성수, 「그 말씀」, 2008. 4. p. 98.
 
고대 근동에서 ‘물’은 이 세상에 혼돈(混沌)을 일으키는 존재였다. 하나님께서는 창조 때 그 존재를 허용하셨다. 하나님은 세상을 덮었던 혼돈의 세력인 물(창 1:2)의 일부를 땅으로 덮어 통제하셨다. 경계를 정하시고 넘지도, 땅을 덮지도 못하게 하셨다. 주께서 물의 경계를 정하여 주시는 장면은 창조 사역에서 수면 속에 감추어진 땅이 혼돈의 바다를 정복하고 드러난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김정우, 「시편주석Ⅲ」, p. 229.
 
그래서 ‘물’은 말씀(꾸짖음과 우렛소리)대로 마련해주신 길로만 다니고, 있으라고 하신 곳에만 있게 되었다. 혼돈과 무질서 세상을 조화와 질서가 있는 곳으로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의 권능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도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은 악의 세력이 끝없이 자연과 사람 세상을 어지럽히고 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맘몬주의 사상이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팽배해져 있고(돈을 위해서라면 사람을 도구로 삼는 공산주의나 해적들), 음란과 도둑질(학교에서 새 물건을 가지고 가면 바로 바로 없어지는 것이 오늘의 학교 현실이라고 한다.)이 만연하고,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가정의 질서가 파괴되고 있으며, 오로지 쾌락과 자율 방종을 위해서라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닥치는 대로 행동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아멘!! 하나님은 혼돈을 새 창조의 원자재로 삼아 우리를 온전케 하시고, 세상에 샬롬을 만들고 계신다. ‘말씀대로 순종하는’ 피조물을 통해 생명이 약동하듯이, 오늘 나의 순종을 통해서도 생명을 보존하시고 새롭게 하실 것이다. 아멘!!
이러한 시인의 찬양은 하나님은 천상과 함께 이 땅도 다스리시는 주권자이심을 잘 드러낸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땅은 인간이 하나님의 사명을 수행하며 살아가는 무대이기도 하다. 천상의 하나님과 지상의 인간이 만남을 이루는 공간이다. 천상에서는 바람과 불이 하나님의 사역자로 활동하지만, 이 지상에서는 인간이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이것을 위해 하나님은 이 땅을 지키고 계신다(9절). 그렇기에 이 땅에 살아가는 우리는 이 땅의 주관자가 무엇을 원하시는지 늘 주의를 기울이며 살아가야만 한다.
우리와는 차원이 다른 하나님이 이 땅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고 계시는지, 그분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존재 목적을 바로 이해하고 그 목적에 합당하게 충성하며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본분이요 삶의 이유이다.
3.3. 모든 것을 선하게 사용하시는 분(10-12)
‘여호와께서 샘으로 골짜기에서 솟아나게 하시고 산 사이에 흐르게 하사 들의 각 짐승에게 마시우시니 들나귀들도 해갈하며 공중의 새들이 그 가에서 깃들이며 나뭇가지 사이에서 소리를 발하는도다 (시 104:10~12)
자신을 가두고 있던 흑암의 물 위로(창 1:2) 땅이 솟아오른다. 그때부터 이 혼돈의 물은 그 땅을 기름지게 하는데 사용된다. 하나님께서 이 혼돈의 물을 이제는 모든 창조물을 위한 생수로 사용하신다. ‘혼돈의 물’도 하나님의 주권적인 간섭으로 생명을 살리는 물로 쓰임 받고 있다. 하나님 정해주신 대로 흐르는 골짜기의 샘물이 들짐승과 들나귀, 공중의 새의 원기를 북돋아 주고, 하늘 누각에서 내린 물(비)은 땅에서 풍성한 결실을 내게 하신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의 창조 손길 안에서는 모든 것이 유용하게 사용된다.
혼돈과 공허와 흑암을 질서와 만족과 밝으므로 바꾸시는 그 창조의 능력은 오늘 우리에게도 임할 수 있다. 아무리 비극적인 상황이나 조건(‘혼돈’)도 하나님의 손에 들려지면 생명을 풍성하게 하는 도구가 될 것이다. 아멘!!
따라서 우리는 우리에게 있는 약점과 불의한 상황이 하나님 창조의 손길 속에서는 오히려 생수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우리가 지금까지 묵상한 것과 같이 우리는 이 창조의 손길을 의지하면서 우리의 모든 상황을 하나님이 붙들고 주관하시도록 이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그러면 모든 것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하실 것이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 8:28)
3.4. 사람을 만족하게 하시는 분(13-18)
‘저가 그 누각에서 산에 물을 주시니 주의 행사의 결과가 땅에 풍족하도다 저가 가축을 위한 풀과 사람의 소용을 위한 채소를 자라게 하시며 땅에서 식물이 나게 하시고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포도주와 사람의 얼굴을 윤택케 하는 기름과 사람의 마음을 힘있게 하는 양식을 주셨도다 여호와의 나무가 우택에 흡족함이여 곧 그의 심으신 레바논 백향목이로다 새들이 그 속에 깃을 들임이여 학은 잣나무로 집을 삼는도다 높은 산들은 산양을 위함이여 바위는 너구리의 피난처로다 (시 104:13~18)
‘산에 물을 주신다.’(13절)라는 표현은 하늘에서 비가 내리는 모습을 시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곡식과 기름과 포도주’(15절)는 가나안 땅의 삼대 농산물이었다고 한다(신 12:17). ‘기름’은 ‘올리브 기름’을 의미하는데, 이것은 음식이나 화장품으로 사용되어 사람들의 얼굴에 광채가 나게 했다. 김성수, 「그 말씀」, 2008. 4. p. 99.

하나님은 가축에게는 풀을, 사람에게는 채소와 기름과 양식을 주시고, 흡족한 물로 새들이 깃들 나무를 기르시고, 높은 산은 산양에게, 바위는 너구리에게 쓸모 있게 하셨다. 창세기의 창조사역에서는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말로 하나님의 만족이 표현된다. 하지만, 이 시편에서는 ‘사람의 마음’이라는 표현을 두 번 사용하면서(15절), 사람의 만족을 두드러지게 드러내고 있다. 시인은 인간 창조의 목적이 마치 행복에 있는 것처럼 표현하고 있다.
이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은 우리가 이 창조세계에서 마음의 만족을 누리는 삶을 살 수 있음을 분명히 드러내 준다. 하나님이 우리를 만족하게 하기를 원하심을 드러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으로 만족하고 있는가? 내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주시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는가? 아니면 세상으로부터 또 다른 무언가를 구(求)하고 있는가? 작은 피조물 하나의 생명까지도 주관하시는 아버지의 마음으로 이 피조 세계를 바라보는 눈을 달라고 기도하지 않겠습니까? 올 한 해도 이처럼 우리의 쓸모를 아시고 채우시는 하나님을 신뢰(信賴)하며 살아가도록 하라!!
우리의 생명은 다른 어떤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달렸다. 우리의 욕심을 버리면 하나님의 풍성한 양식을 공급받으며 살 수 있다. 날마다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찬양 드리도록 힘써야 한다.
4. 하나님께 대한 확고한 믿음으로 그의 뜻을 담대와 확신 가운데 순종하는 사람이 되라!!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이 창조주로서 얼마나 광대하신 분인지, 얼마나 존귀하신 분인지, 얼마나 권위가 있으신 분인지를 알 수 있었다. 그분의 창조 솜씨를 통하여 우리는 그분의 놀라운 지혜와 사랑을 배울 수 있었다. 하나님은 피조물들 사이에 연결고리를 두어서 서로 의존하며 생명을 유지하도록 하셨다. 창조한 모든 것들을 놀라우신 방법으로 보존하신다.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않지만, 하나님께서 친히 기르시고 돌보신다. 인간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 주셔서 우리를 보존하시고 지키신다. 할렐루야!!
하나님의 놀라운 창조솜씨와 피조물을 보존하시는 능력과 지혜를 찬양하며 살아가라!
이제부터 우리는 지극히 존귀하고 광대하시며 권위 있고 높으신 하나님을 묵상하며 우리 마음에 하나님께 대한 경외감이 회복되도록 힘써야 한다. 아울러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어떤 혼돈의 세력도 하나님이 창조 섭리하시며 그의 주권 아래 있음을 확신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에게 일어나는 어떤 현실도 하나님의 창조 손길과 능력으로 우리의 구원에 유익 되도록만 섭리 주관하실 줄 믿는 확고한 믿음을 가져야 한다. 작은 풀과 나무, 공중의 새, 가축과 짐승, 바위 속의 너구리 하나까지도 챙기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손에 우리의 모든 형편과 처지를 맡기고 살아가도록 하라!
더 나아가서 우리의 현실마다 계속해서 찾아오셔서 명령하시고 인도하시는 영감과 진리를 따라서 담대와 확신 가운데 순종함으로 그분의 존재 목적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라!
그의 뜻을 이루어 드림으로 그분을 영화롭게만 하는 성경대로의 주인공이 되라!
참조. 김정우, 「시편주석Ⅲ」, pp. 225-29; 김관석 묵상; 김성수, 「그 말씀」, 2008. 4. pp. 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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