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 위에 좌정하신 하나님

2010.12.15 20:46

윤봉원 조회 수:855 추천:67

시 29:1-112010121533날자: 2010년 12월 15일 수밤
제목: 홍수 위에 좌정하신 하나님
본문: 시편 29편 1절 -11절
너희 권능 있는 자들아 영광과 능력을 여호와께 돌리고 돌릴지어다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며 거룩한 옷을 입고 여호와께 경배할지어다 여호와의 소리가 물 위에 있도다 영광의 하나님이 뇌성을 발하시니 여호와는 많은 물 위에 계시도다 여호와의 소리가 힘있음이여 여호와의 소리가 위엄차도다 여호와의 소리가 백향목을 꺾으심이여 여호와께서 레바논 백향목을 꺾어 부수시도다 그 나무를 송아지같이 뛰게 하심이여 레바논과 시룐으로 들송아지같이 뛰게 하시도다 여호와의 소리가 화염을 가르시도다 여호와의 소리가 광야를 진동하심이여 여호와께서 가데스 광야를 진동하시도다 여호와의 소리가 암사슴으로 낙태케 하시고 삼림을 말갛게 벗기시니 그 전에서 모든 것이 말하기를 영광이라 하도다 여호와께서 홍수 때에 좌정하셨음이여 여호와께서 영영토록 왕으로 좌정하시도다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힘을 주심이여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평강의 복을 주시리로다
1. 파란만장한 인생살이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우리 인생은 길면 100년 짧으면 그보다 더 짧게 살다가 나그네의 삶을 마감해야 한다. 이 짧은 한토막을 살아가면서 믿는 사람 안 믿는 사람 할 것 없이 모두다 경제적으로나 가정적으로나 국가적으로, 교회적으로, 신체적으로, 신앙적으로 평안하고 조용하게 살아가기를 기대한다. 그럼에도,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돌아보면 나그네 인생이 절대로 호락호락하지 않음을 누구나 다 고백한다. 그래서 나이가 든 사람들은 어린아이들을 보고 부러워한다.
“너처럼 세상 모를 때가 좋을 때다!”
그러면 이처럼 다양하게 어려움을 닥칠 때 우리는 어떻게 대처하며 살아가야 할까? 오늘 여기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찾아보고 그 뜻을 우리 자신에게 적용하고자 한다.
2. 하나님은?
2.1. 찬양과 영광을 받으시기에 유일하신 분
‘너희 권능 있는 자들아 영광과 능력을 여호와께 돌리고 돌릴지어다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며 거룩한 옷을 입고 여호와께 경배할지어다 (시 29:1-2)
다윗은 하나님을 폭풍의 여호와라고 즐겨 부를 정도로 대담하다. 우리 대부분은 재산과 인명에 막대한 손상을 끼치는 폭풍을 두려워한다. 대표적인 성경 한군데만 보자.
‘여호와께서 명하신즉 광풍이 일어나서 바다 물결을 일으키는도다 저희가 하늘에 올랐다가 깊은 곳에 내리니 그 위험을 인하여 그 영혼이 녹는도다 저희가 이리저리 구르며 취한 자같이 비틀거리니 지각이 혼돈하도다 (시 107:25~27)
그럼에도, 다윗은 양들을 돌볼 때, 그리고 폭풍의 위력에 큰 인상을 받았을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이 시가 가나안족의 폭풍의 신 하닷 바알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추측한다. 그러나 이 시는 오히려 그런 주장에 대한 다윗의 대답이다. 모든 사람이 주님으로 인정해야 할 분은 자칭 신들도 천사들도 아니고, 다만, 창조주 여호와이시다(1, 2절).
왜 그러면 천사들로 하여금 찬양하라고 촉구했을까? 그것은 죄로 오염된 인간은 하나님의 영광과 위엄이 얼마나 탁월한가를 파악하는데 한계를 느끼기 때문이다. 또 본문은 여호와께 드리는 찬양의 방법을 기술하는데 그 찬양은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으로 드려야 한다.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을 직역하면 ‘그의 이름의 영광’이라는 의미가 된다. 즉 그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받아야 할 대상이 ‘여호와께’라는 의미이다.
또한 이름은 단순히 호칭을 뜻할 뿐 아니라, 그 이름으로 불리는 존재의 본질과 성품, 능력 등 전인격적인 의미를 포괄한다. 따라서 ‘여호와의 이름’은 그가 어떠한 분인가를 보여 주는 계시의 한 방편이 된다.
계속해서 찬양의 태로로서, ‘거룩한 옷을 입고’에 해당하는 용어는 ‘거룩한 장식으로’라고 하는 말이다. 이는 단순히 옷을 가리킬 뿐 아니라, 옷을 포함한 제반 장식 모두를 가리키는 표현이다.
2.2. 힘 있고 장엄하신 분
‘여호와의 소리가 물 위에 있도다 영광의 하나님이 뇌성을 발하시니 여호와는 많은 물 위에 계시도다 여호와의 소리가 힘있음이여 여호와의 소리가 위엄차도다 (시 29:3-4)
다윗은 여호와의 영광과 주권을 ‘뇌성’(청각적 이미지 사용)이라는 자연 현상으로 형상화하여 주의 영광을 예증하며 여호와를 찬양한다. 그러면서 그는 그 이유와 근거를 제시한다.
시인은 ‘여호와의 소리’가 힘 있고 위엄차다는 사실을 언급함으로써 그 의미를 확장하시켜 나간다. 즉 ‘힘 있음이여’는 ‘능력 안에’라고 하는 말이다. ‘위엄 차도다’에 해당하는 말 역시 문자적으로 ‘장엄함 안에’로 해석될 수 있다. 이 두 가지 표현을 통하여 하나의 소리가 다른 하나의 소리보다 더 크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즉 하나는 처음 나타났던 뇌성을, 또 다른 하나는 점차적으로 가까이 폭풍을 나타낸다(음악 기호 중 크레센도를 연상케 한다.).
하나님은 큰 물, 혼돈의 세력인 바다를 정복하시는 분이다. 당시 근동의 풍습과 세계관에 대해 정면으로 도전하려는 의도가 보인다. 즉 시인은 당시 가나안을 비롯한 고대 근동 사람들이 자연을 신으로 힘섬기는 전통과 세계관에 맞서서 ‘바다’와 ‘거목’, 그리고 ‘높은 산’, ‘홍수’는 섬겨야 할 신이라거나 두려워해야 할 대상이 아니며 그저 여호와의 지배와 통제 아래 있는 피조물 내지는 하나님 섭리의 대상일 뿐임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여호와의 목소리가 온 피조물을 뒤흔들고 압도하는 소리로 나타나는 것은 걷잡을 수 없는 많은 물들을 정복하시는 분이 주 하나님이심을 선포하는 것을 뜻한다. 즉 당시에 자연신을 섬기는 그 신들을 정복하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임을 시인은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세상도 정복하시는 분은 주 하나님이심을 선포하는 것이다.
따라서 다윗은 심지어 천사들(‘하늘에 권능 있는 자들’)에 대해서도 하나님께서도 하나님께서 그것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폭풍의 위력을 인정하라고 한다(1, 2절). 강한 폭풍우가 바다에서 생겨서(3절) 북쪽의 레바논과 헬몬산에서 맹위를 떨치고(6절, 신 3:9) 남쪽 가데스 광야로 내려온다(8절). 벼락이 숲에 그 흔적을 만들고(5-9절), 홍수가 나는 등(3, 10절),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자연계의 고삐 풀린 힘이 드러난다.
지중해에서 만들어진 많은 비구름이 팔레스틴을 지나 바산과 길르앗 초원에서 마침내 천지를 뒤흔드는 우렛소리와 함께 억수같은 비를 쏟아 부으면 온 대지는 금새 시뻘건 홍수에 뒤덮히고 레바논의 백향목은 벼락을 맞아 불이탄다. "여호와의 소리가 물 위에 있도다. 영광의 하나님이 우렛소리를 내시니 여호와는 많은 물 위에 계시도다"(3절). "여호와의 소리가 백향목을 꺾으심이여 여호와께서 레바논 백향목을 꺾어 부수시도다"(5절). 그러나 주님이 풍랑을 딛고 바다 위를 걸어 제자들이 탄 배까지 오셨듯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홍수 위에 계시다고 한다. 세찬 폭우와 가공할 우렛소리와 레바논의 백향목을 꺾어 부수는 낙뢰로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과 위엄을 널리 드러내신다고 한다.
따라서 하나님은 천상의 모든 존재들에게 영광과 능력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다. 하나님이 거룩하신 모습으로 나타나실 때 천상의 존재들은 영광스런 하나님의 이름에 걸맞은 찬양을 드리고, 땅에 있는 성전의 모델인 하늘 성전에서도 하나님께 큰 소리로 영광을 돌릴 것이다(9b). 찬송은 우리 눈에 보이는 모든 영광과 능력이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는 고백이다. 이 고백으로 우리도 하나님께 화답해야 한다. 할렐루야!!
2.3. 우리의 삶에 폭풍우를 주시는 분
우리는 모두가 평안을 원한다. 아무런 환난이나 재난도 없는 삶을 바란다. 누가 자신 삶의 근거를 뿌리째 뒤흔드는 재해를 두려워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지중해를 끼고 있는 팔레스틴에 운명적으로 폭풍우가 몰아치듯이 우리 인생에도 폭풍우는 절대 피해 가지 않는다. 그래서 때로 우리를 레바논과 시룐이 들송아지 같이 뛰게 하신다(6절). 이것은 송아지가 폭풍에 놀라서 뛰는 것처럼 영원히 흔들리지 않을 것 같은 견고한 산들이 여호와의 소리에 놀라 두려워하여 뛰고 있는 것을 말한다. 불꽃을 발하시는 목소리로 광야를 뒤흔드신다. 여기서 ‘광야’의 의미는 광야 그 자체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일시적으로 사는 스텝 지역을 가리킨다. 그러나 ‘거룩한 광야’로 번역된 이 히브리어는 ‘가데스 광야’로 번역할 수도 있다.
이렇게 광야를 진동시키는 현상은 번개가 바위를 쪼개며 지진이 일어나는 영상이다. 이 천둥과 번개 소리에 상수리나무들이 놀라 꺾이고, 암사슴이 조산하고, 나무들이 쓰러지므로 말갛게 벗겨지기도 한다(RSV, JB, GNB, NIV). 이처럼 만물은 하나님이 영광스럽게 임하시는 곳에서 두려워 떠는데, 우리는 어떻게 반등하고 있는가 돌아봐야 한다. 우리의 삶 곳곳에 임하시는 하나님의 영광을 세밀히 살펴보아야 한다.
세상의 가장 높고 안전하고 영원하다는 것들이 이처럼 주님이 한 번 발하시는 목소리에 놀라 기절하고 마는 것이다. 오늘 우리가 진실로 믿고 의지해야 할 분이 누구인지를 분명히 해 주시는 말씀이다.
이 부분에서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재난을 가져오는 폭풍은 자연히 문제들을 일으키지만, 이 시에서의 폭풍은 그런 것이 아니다. 이것은 누구를 해치지 않고, 다만, 하나님이 정하신 자연 순환 체계의 한 부분으로서, 고목을 쓰러뜨리고 새로운 나무가 자라게 하며, 필요한 비를 몰아다 준다.
따라서 우리는 폭풍우를 만날 때 두려워 말고 저 많은 물 위에 계신 여호와를 바라보아야 한다. 거센 바람과 산더미처럼 밀려오는 파도마저 다스리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권능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천지를 깨부수는 듯한 저 우렛소리에서 오히려 여호와의 무한하신 위엄을 느껴보라!
3. 폭풍우가 닥칠 때 홍수 위에 좌정하신 하나님만 바라보고 섬기고 찬양하며 나아가라!!
흔히 사람들은 폭풍우가 일 때 홍수 가운데 좌정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절대적이신 그의 섭리와 통치를 경험하기보다 두려움과 공포에 사로잡혀 파괴와 폐허의 결과를 예상하며 몹시 절망한다. 시인은 바로 그 점이 틀렸다고 한다. 그것은 다 세상 사람들, 이방인들의 삶의 행태라고 한다.
여호와가 "홍수 위에 좌정"(10절) 하신다는 말씀은 홍수를 친히 주관하신다는 의미이며, 결코 당신의 백성을 해치지 못하도록 통제하신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폭풍우가 일 때, 홍수가 날 때 오히려 자기 백성에게 힘을 주시고, 단비를 내리시어 평강의 복을 누리게 하신다(11절). 이것은 폭풍의 길이 눈먼 것처럼 보일는지 모르지만, 하나님이 복을 주시는 것은 개인적임을 보여 준다. 혼돈의 물을 물리치시고, 그 물을 자신의 도구로 사용하시는 온 세상의 주인이 바로 우리 아버지이시다. 할렐루야!!
따라서 다시 정리해 보면 우리는 폭풍우가 닥치고 홍수가 터질 때도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감사하며 예배해야 한다. 오늘 우리의 삶 속에 무서운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날지라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들 위에 앉아 계신 주님을 신뢰하고 찬양함으로 인생의 파도를 넘어가도록 하라!!
"여호와께 그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며 거룩한 옷을 입고 여호와께 예배할지어다"(2절).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확정을 지어야 한다. 천사들이 아무리 능력이 있다고 하여도 창조주 역사의 주관자 하나님과 비교할 수 없다. 그들 역시 자신의 능력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영광스럽게 해야할 의무가 있을 뿐이다. 오직 우리가 예배하고 섬겨야 할 대상은 하나님 한 분뿐이라는 사실. 오로지 하나님만이 찬양과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다. 그 무엇과도 하나님의 영광을 대신 취할 수 없다. 따라서 하나님이 아닌 다른 존재를 하나님처럼 경배하고 찬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역시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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