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모처럼 아비처럼

2011.06.12 18:52

윤봉원 조회 수:835 추천:63

살전 2:1-122011061202날자: 2011년 6월 12일 주일오전
제목: 유모처럼 아비처럼
본문: 데살로니가전서 2장 1절 - 12절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 가운데 들어감이 헛되지 않은 줄을 너희가 친히 아나니 너희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먼저 빌립보에서 고난과 능욕을 당하였으나 우리 하나님을 힘입어 많은 싸움 중에 하나님의 복음을 너희에게 말하였노라 우리의 권면은 간사에서나 부정에서 난 것도 아니요 궤계에 있는 것도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 전할 부탁을 받았으니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 너희도 알거니와 우리가 아무 때에도 아첨의 말이나 탐심의 탈을 쓰지 아니한 것을 하나님이 증거하시느니라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도로 능히 존중할 터이나 그러나 너희에게든지 다른 이에게든지 사람에게는 영광을 구치 아니하고 오직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 자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였으니 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으로만 아니라 우리 목숨까지 너희에게 주기를 즐겨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됨이니라 형제들아 우리의 수고와 애쓴 것을 너희가 기억하리니 너희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과 낮으로 일하면서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였노라 우리가 너희 믿는 자들을 향하여 어떻게 거룩하고 옳고 흠없이 행한 것에 대하여 너희가 증인이요 하나님도 그러하시도다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너희 각 사람에게 아비가 자기 자녀에게 하듯 권면하고 위로하고 경계하노니 이는 너희를 부르사 자기 나라와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1. 영의 자녀를 어떻게 양육하고 있나?
우리는 다 우리를 영적으로 낳아준 영적 아비를 두고 있다. 아울러 우리가 전도하고 양육하고 있는 믿음의 자녀를 두고 있는 예도 있고 없는 예도 있을 것이다. 영의 자녀가 없다면 빠른 시일 내에 영의 자녀를 낳도록 힘을 써야 한다. 또 영의 자녀가 있다면 어떻게 돌보고 있는가를 돌아보게 하는 말씀이 오늘의 본문이다.
영의 자녀가 있다면 혹시 기아 상태로 내버려두고 있지는 않은지? 아니면 건강하게 잘 양육해서 재생산의 열매를 많이 맺고 있는지 돌아보자. 믿음의 자녀로 말미암아 살맛이 나고 위로를 받고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삶을 살고 있는지 돌아보자.
사도 바울은 그들이 전도해서 세운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로 말미암아 위로를 받고, 모든 기쁨과 넘치는 감사가 있어서 살맛이 난다고 했다(살전 3:7-9). 어떻게 해서 그런 결과를 가져 올 수 있었을까? 오늘 본문을 통하여 그 교훈을 찾아보고 우리 영의 자녀를 우리도 사도 바울 일행처럼 양육하여 그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주시는 영광이요 기쁨이요 위로와 감사를 충만하게 누리는 주인공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하나님은?
2.1. 복음 사역이 헛되지 않도록 도와주심(1-2)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 가운데 들어감이 헛되지 않은 줄을 너희가 친히 아나니 너희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먼저 빌립보에서 고난과 능욕을 당하였으나 우리 하나님을 힘입어 많은 싸움 중에 하나님의 복음을 너희에게 말하였노라 (살전 2:1-2)
바울은 어쩔 수 없이 데살로니가를 떠날 수밖에 없었지만, 그렇더라도 자신의 사역이 결코 실패가 아니었음을 성도들이 알아주리라고 믿었다. 오늘 본문은 바울과 그의 동료는 고난받을 줄 알면서도 데살로니가에 들어가 어떻게 복음을 전하며 교회를 세웠는지를 보여 준다. 바울의 대적들은 바울이 자기 주머니를 채우려는 욕심으로 복음을 전했다고 중상모략을 해서, 선교 사역에 관한 그의 동기를 의심하게 하였다. 이 일은 그가 전한 복음 자체를 파괴하는 행동이다. 따라서 바울은 복음 자체를 보호하기 위해 자신을 변호한다.
그는 목숨까지 바치는 모성애로 자녀를 돌보는 유모처럼, 때로는 엄히 꾸중하는 아비처럼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하나님께서 부르신 뜻에 합당하게 살도록 잘 돌봐주었다.
고난은 복음을 전하는 곳마다 바울을 기다리고 있었다. 바울 일행은 많은 싸움 중에서 복음을 전했다. 따라서 그들은 하나님의 도움이 없었다면 빌립보에서나 데살로니가에서 복음을 전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나님은 이들처럼 각종 고난 가운데에서도 복음 전도에 힘쓰는 전도자들의 사역이 헛되지 않도록 도와주신다. 그러므로 바울과 그의 일행은 빌립보에서도 데살로니가에서도 계속되는 핍박, 고난(苦難)과 능욕(陵辱)을 당하면서도 굴복하지 않고 복음을 전했다. 이것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고난을 극복하는 힘과 능력을 공급해 주시고 계심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우리 또한 하나님을 힘입지 않고는 담대히 복음을 전할 수 없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포도나무 비유를 통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요 15:5)
따라서 우리는 복음을 전할 때 싸움과 환난을 피하여 쉽게 복음을 전하는 방법이나 쉬운 대상만을 찾아서는 안 된다. 어떤 싸움과 환난이 닥치더라도 오직 우리의 사역이 헛되지 않게 도와주시는 하나님만 의지하여야 한다. 지금도 환난을 무릅쓰고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들을 위해 우리는 기억하고 기도해야 한다. 오늘 우리도 바울 일행처럼 복음 전파를 하면 반드시 고난이 온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고난을 외면하지 않고 복음에 합당하게 살게 해달라고 간구해야 한다. 그러면 반드시 바울 일행을 도와 주셔서 데살로니가 교회가 건강하게 세워질 수 있었듯이 우리를 통해서도 놀라운 역사는 반드시 일어날 것이다. 아멘!!
2.2.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 전하는 자를 사용하심(3-5)
‘우리의 권면은 간사에서나 부정에서 난 것도 아니요 궤계에 있는 것도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 전할 부탁을 받았으니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 너희도 알거니와 우리가 아무 때에도 아첨의 말이나 탐심의 탈을 쓰지 아니한 것을 하나님이 증거하시느니라’(살전 2:3~5)
이 말씀은 사람의 마음을 다 아시는 하나님이 사도들을 시험하시고 검정해 보셔서 일을 맡기심을 보여 준다. 하나님은 그의 복음을 맡아 신실하게 일할 수 있는 사람인지 판단하시고 인정하신다.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 하는 사람인지 바울 일행처럼 오직 하나님만 기쁘시게 하며 복음을 전하려고 힘쓰는지를 평가하시고 복음을 맡기신다.
바울 일행은 사람을 기쁘게 하지 않고 오직 자신들의 마음을 살피시는 하나님 앞에서 떳떳하게 오직 그분만을 기쁘시게 하려고 사역하였다. 그러니 간사나 부정이나 궤계 같은 것은 있을 수 없었다. 오직 하나님을 기쁘게 하려는 사도들은 사람에게 영광을 구할 필요가 없기에 언제든지 아첨하는 말을 하지도 구실을 붙여 탐욕을 부리지도 않았다.
따라서 그들은 아첨이나 탐심 없이 일했음을 하나님이 증거하실 것이라고 자신했다. 아울러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도 이러한 그들의 자세를 알고 있을 것으로 확신했다.
‘너희도 알거니와 우리가 아무 때에도 아첨의 말이나 탐심의 탈을 쓰지 아니한 것을 하나님이 증거하시느니라 (살전 2:5)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정을 확신한 사도들은 어떤 상황에서든지 자신을 일꾼으로 인정하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전력을 기울였(最善)던 것이다.
우리도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사람에게 존중받으려 애쓰진 않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 세상 철학이나 가치관을 전파하지 말아야 한다. 또 복음을 전하려는 동기가 우리의 이익을 챙기는 데 있어서도 안 된다. 더 나아가서는 우리가 아는 주의 종들이 눈에 보이는 사람의 영광보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의 마음을 다 아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분만을 청중으로 모시고 일하도록 기도해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 우리도 또 다른 주의 종들도 하나님께 인정을 받고 주인공으로 쓰임받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다.
2.3. 유모처럼 아비처럼 돌보는 자를 사용하심(6-12
‘오직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 자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였으니 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으로만 아니라 우리 목숨까지 너희에게 주기를 즐겨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됨이니라 형제들아 우리의 수고와 애쓴 것을 너희가 기억하리니 너희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과 낮으로 일하면서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였노라 우리가 너희 믿는 자들을 향하여 어떻게 거룩하고 옳고 흠없이 행한 것에 대하여 너희가 증인이요 하나님도 그러하시도다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너희 각 사람에게 아비가 자기 자녀에게 하듯 권면하고 위로하고 경계하노니 ’(살전 2:6~11)
바울 일행은 돈을 벌 욕심으로 자신의 철학을 이용한 그 당시 철학자들과는 달리 자녀를 기르는 부모(父母)의 심정으로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돌보았다. 바울은 결코 자신의 목회적 권위를 남용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항상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라는 사실을 잊지 않고 명령하기보다는 권면하기를 좋아했다.
그래서 이들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이용하거나 그들의 영광을 구하기는커녕 그들을 유모의 마음으로 자기 자녀를 기르듯이 각 사람의 영혼을 하나하나 격려하고 바로 세우며 보살폈다. 도리어 자기 목숨까지 내어주기를 기뻐하였다. 성도들에게 잘못하지 않으려고 직접 생계를 꾸려가면서도, 밤낮을 가리지 않고 복음을 전했다. 이러한 행동은 헌신적인 사랑이요 무조건적인 사랑이다. 따라서 바울 일행은 그 수고와 애씀을 하나님은 물론 성도들도 잊을 리 없을 것으로 확신했다. 그래서 그들은 복음 전도의 중심이 하나님 중심적이었고 떳떳했기에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하기보다는 오히려 아비처럼 권면하고 꾸중하기도 했다. 바울의 목표는 성도들을 이용한 권력의 쟁취나 부의 축적이 아니라, 오직 성도들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성도들의 영적 상태에 따라 때로는 어머니같이, 때로는 아버지같이 성도들을 양육한 사도들에게서 오늘 진정한 목회적 돌봄이 무엇인지 배우게 된다. 우리는 이런 지도자들이 많아지도록 기도해야 한다. 양들을 위해 목숨을 내어주는 예수님 닮은 목자들이 많이 배출되도록 기도하고 또 기도해야 한다. 아울러 하나님의 일꾼으로서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섬기고 있는지를 돌아보고 우리가 이런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
3.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동기로 유모처럼 아비처럼 사심 없이 주의 자녀를 돌보는 자가 되라!!
‘이는 너희를 부르사 자기 나라와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12)
믿는 자 모두는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들이다. 따라서 우리는 자신의 신분과 그 영광에 참여케 하신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게 살아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 나라와 그의 영광에 합당히 살게 하시려고 선택하여 부르셨다. 이 세상과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께 합당한 왕으로 섬기고, 하나님 영광의 빛을 뿜어내는 삶을 살기를 기대하신다.
바울 일행은 항상 하나님 편에 서 있고 구별되게 살아가는 모습의 본을 보였다. 오늘 우리의 삶도 모든 생각과 행동들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동기로 유모처럼 아비처럼 사심 없이 살아가는지? 하나님의 왕국에 합당한 삶인지 돌아보아야 한다.
더 나아가서는 이 땅의 지도자들이 모두 유모처럼 헌신하고 아버지처럼 사심 없이 권면하는 종들이 되게 해 달라고 중보기도 해야 한다. 그리하여 모든 성도가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삶을 살도록 진리와 사랑으로만 양육 받는 복을 누리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 윤봉원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1-06-12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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