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람도 사용하신 하나님

2011.05.26 21:34

윤봉원 조회 수:869 추천:82

민 24:10-112011052202날자: 2011년 5월 22일 주일오전
제목: 발람도 사용하신 하나님
본문: 민수기 24장 10절 - 11절
발락이 발람에게 노하여 손뼉을 치며 발람에게 말하되 내가 그대를 부른 것은 내 원수를 저주하라 함이어늘 그대가 이같이 세 번 그들을 축복하였도다 그러므로 그대는 이제 그대의 곳으로 달려가라 내가 그대를 높여 심히 존귀케 하기로 뜻하였더니 여호와가 그대를 막아 존귀치 못하게 하셨도다
1. 자기 생각대로 살 수 없는 인간
사람이 일반적으로 보면 어릴 때는 부모가 볼 때도, 자기 자신이 자신을 볼 때도 세계에서 가장 탁월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기대를 하는 것 같다. 그러나 점점 살아가면 살아갈수록 좌절과 낙망, 기대가 잘 이뤄지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까지도 “나이가 들면 들수록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라고 고백을 하는 것 같다.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하셨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잠 16:9)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이 완전히 서리라 (잠 19:21)
이 진리는 우리 자신에게도 그렇지만 다른 사람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됨을 알 수 있다. 누구도 자신이 생각하고 계획하는 대로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도하고 섭리하는 대로 살아가게 됨을 우리는 분명히 해야 한다. 지금까지 이 진리를 우리에게 온전히 적용하지 못해서 얼마나 많은 방황을 하며, 엉뚱한 계획과 행동의 노력을 많이 기울였는가? 또한, 엉뚱한 근심, 걱정, 고민하며 살아왔는지 모른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사람의 마음과 행동, 삶을 주관하시는 분이 누구이며, 그 역사하심에 사람이 어떻게 사용되는지를 분명히 살펴보고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성경 진리를 우리의 삶에 적용하도록 합시다.
2. 하나님의 강권적인 역사
2.1.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신 선지자 발람
민 24:10-11절에서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이 발람을 강권적으로 사용하셔서 이스라엘을 저주하지 못하도록 한 것을 고백한 발락의 고백을 통해서 분명히 알 수 있다.
‘발락이 발람에게 노하여 손뼉을 치며 발람에게 말하되 내가 그대를 부른 것은 내 원수를 저주하라 함이어늘 그대가 이같이 세 번 그들을 축복하였도다 그러므로 그대는 이제 그대의 곳으로 달려가라 내가 그대를 높여 심히 존귀케 하기로 뜻하였더니 여호와가 그대를 막아 존귀치 못하게 하셨도다 (민 24:10-11)
발람이 이스라엘을 저주하지 못하도록 강권적으로 붙들고 사용하신 하나님을 우리는 분명히 알 수 있다. 이것을 좀 더 분명히 하기 위해서는 발람이 어떤 사람인가 하는 것을 아는 것이 도움이 된다.
발람은 거짓 선지자(하나님을 전혀 믿지 않는 사람)였으나 하나님의 강권에 의하여 이와같이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발람의 이름 뜻은 “탐식가, 백성을 멸망시키는 자(잡아먹는 자), 백성이 아닌자, 타국 사람”이다. 그는 이름에 걸맞은 행동을 한 사람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발락이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해 달라는 그 초청에 응하지 말라고 하나님은 말씀으로 하시고, 나귀와 사자를 통하여 하였음에도 끝까지 모압에 갔었다.
발락이 발람이 살고 있던 브돌까지는 약 960km나 되는 엄청난 거리이다. 지금처럼 교통이 발달된 시대에서도 이 거리는 먼 거리이다. 그러나 그때 당시에는 걷거나 나귀를 타고 가야했던 거리이니까 얼마나 먼 거리인지 상상이 되지요? 그래서 그 당시에 그는 얼마나 유명한 선지자였는지를 우리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랬기 때문에 발락이 자기 나라에도 무당과 점쟁이, 선지자들이 많이 있었을 것임에도 먼곳의 발람을 초청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발락의 초청에 응한 발람의 걸음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믿음의 걸음이 아니라 불순종의 걸음이요 물질과 명예 욕심 때문에 시발된 것을 우리는 분명히 할 수 있다. 이런 발람이었기에 겉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함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세 번이나 축복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의 속으로는 이스라엘을 저주하여 발락이 주고자 약속한 뇌물을 다 받아 누리고자 했음이 분명하다(23-24장을 깊이 연구해 보라).
발람이 이스라엘을 축복한 것에 대해서 많은 주석가들은 “우리도 그의 순종의 행위를 본받아야 한다. 우리도 발람처럼 하나님의 뜻만 전달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라고 이해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다. 왜냐하면, 발람이 축복한 축복은 그가 하나님의 뜻에 자원함과 기쁨의 순종으로 보기 힘든다. 하나님은 자원하는 예물, 향기로운 예물만 받으시는 분이다.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칠칠절을 지키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 (신 16:10)
‘오직 소의 처음 난 것이나 양의 처음 난 것이나 염소의 처음 난 것은 속하지 말지니 그것들은 거룩한즉 그 피는 단에 뿌리고 그 기름은 불살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화제로 드릴 것이며 (민 18:17)
그러나 발람은 자원함이나 기쁨으로 순종하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만약 그렇게 순종했더라면 발락의 초청에 응하지 말았어야 한다. 또 하나님께서 한 번 축복하라고 하셨으며 그 명령에 따라 순종하는 것으로 끝을 냈어야 했다. 그럼에도, 그는 또 이방신에게 제사 드리듯(23:1-2; 14; 29-30) 거듭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이스라엘을 저주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기를 소망했음이 분명하다.
그러면 왜 발람은 이처럼 집요하게 겉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이스라엘을 축복하면서 속으로는 이스라엘을 저주하기를 기대했을까? 그것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뜻보다는 물질 때문에 가게 되었음을 성경 전체는 분명히 한다.
‘저희가 바른 길을 떠나 미혹하여 브올의 아들 발람의 길을 좇는도다 그는 불의의 삯을 사랑하다가 (벧후 2:15)
‘화 있을진저 이 사람들이여, 가인의 길에 행하였으며 삯을 위하여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갔으며 고라의 패역을 좇아 멸망을 받았도다 (유 1:11)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앞에 올무를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계 2:14)
따라서 발람은 신본주의가 아니요 유물주의요 인본주의요 세상주의 현실주의였던 것이다. 그에게서 진실한 믿음을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2.2. 아무리 강력한 불신앙의 사람도 사용하시는 하나님
그럼에도, 하나님은 발람에게 계속해서 이스라엘을 저주하라는 말씀은 하지 않으시고 축복하라는 말씀만 하셨다. 그 이유를 22장에서 우리는 분명히 볼 수 있었다.
‘보라 애굽에서 나온 민족이 있어 지면에 덮였으니 이제 와서 나를 위하여 그들을 저주하라 내가 혹 그들을 쳐서 몰아낼 수 있으리라 하나이다 하나님이 발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그들과 함께 가지도 말고 그 백성을 저주하지도 말라 그들은 복을 받은 자니라 (민 22:11-12)
또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다음과 같이 약속하셨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창 12:3)
출애굽 지도자 모세에게도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다시 한 번 더 언약을 확인해 주셨다.
‘여호와께서 너를 인도하여 가나안 사람과 헷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의 땅 곧 네게 주시려고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이르게 하시거든 너는 이 달에 이 예식을 지켜 칠 일 동안 무교병을 먹고 제 칠 일에는 여호와께 절기를 지키라 (출 13:5-6)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에게 약속하신대로 그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셨다.
‘그 마음이 주 앞에서 충성됨을 보시고 더불어 언약을 세우사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여부스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의 땅을 그 씨에게 주리라 하시더니 그 말씀대로 이루셨사오니 주는 의로우심이로소이다 (느 9:8)
하나님의 이스라엘에 대한 사랑, 분명한 뜻은 그들을 축복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발람을 강권적으로 주장하셔서 저주하는 것을 허락지 않으시고 축복만 하도록 하신 것이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사랑하시므로 발람의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그 저주를 변하여 복이 되게 하셨나니 (신 23:5)
이를 통하여 우리가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은혜 주시고 역사 하시면 믿음의 사람,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사람을 해치고 방해하고 이용하려는 그 사람을 오히려 축복하는 사람으로 사용하실 수 있다는 것이다.
‘‘보라 애굽에서 나온 민족이 있어 지면에 덮였으니 이제 와서 나를 위하여 그들을 저주하라 내가 혹 그들을 쳐서 몰아낼 수 있으리라 하나이다 하나님이 발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그들과 함께 가지도 말고 그 백성을 저주하지도 말라 그들은 복을 받은 자니라 (민 22:11-12)
사람은 할 수 없으나, 불가능하나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에게는 능치 못하심이 없음을 확고히 믿어라. 저주하고 해치려는 사람을 축복의 사람, 하나님의 사람을 도우시는 사람으로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음을 우리는 분명히 믿어야 한다. 우리는 이러한 사례들을 성경에 많이 찾아 볼 수 있다.
요셉을 죽이려고 했던 형들이 요셉을 도와준 꼴이 되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창 50:20-21)
다니엘의 세 친구를 용광로 속에 집어넣으므로 하나님의 종들을 없애려고 하였으나 그러한 대적들의 음모를 바꾸어 완전히 180도 바꾸어 하나님만 온 백성이 섬기는 역사가 일어나도록 하신 하나님이시다.
‘느부갓네살이 말하여 가로되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그가 그 사자를 보내사 자기를 의뢰하고 그 몸을 버려서 왕의 명을 거역하고 그 하나님밖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그에게 절하지 아니한 종들을 구원하셨도다 그러므로 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니 각 백성과 각 나라와 각 방언하는 자가 무릇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께 설만히 말하거든 그 몸을 쪼개고 그 집으로 거름터를 삼을지니 이는 이같이 사람을 구원할 다른 신이 없음이니라 하고 (단 3:28-29)
다니엘을 사자굴에 집어넣으려고 했던 사람들은 다 죽고 그 사건으로 말미암아 다니엘은 더욱 존귀해졌고, 하나님을 온 나라에 전파하게 하셨다.
‘이에 다리오 왕이 온 땅에 있는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들에게 조서를 내려 가로되 원컨대 많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라 내 나라 관할 아래 있는 사람들은 다 다니엘의 하나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할지니 그는 사시는 하나님이시요 영원히 변치 않으실 자시며 그 나라는 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그 권세는 무궁할 것이며 그는 구원도 하시며 건져내기도 하시며 하늘에서든지 땅에서든지 이적과 기사를 행하시는 자로서 다니엘을 구원하여 사자의 입에서 벗어나게 하셨음이니라 하였더라 (단 6:25~27)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을 이용하여 자신의 욕심을 성취하려는 발람을 사용하신 하나님이 오늘날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고 감사해야 한다. 우리의 신앙생활을 해치려는 자들을 볼 때 그들을 밥으로 볼 수 있는 믿음(민 14:9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 하나 (민 14:9)
), 대적들이 강하면 강할수록 우리의 구원을 도와주는 최고의 도우미로 믿을 수 있는 믿음의 주인공이 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심정을 헤아릴 수 있다.
3. 하나님이 사용하실 때 쓰임 받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 시간에 우리는 불신자 발람이 어떻게 하나님께 사용되었는지를 살펴보았다. 오로지 물질 욕심과 존귀해지는 것에 집착하여 겉으로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이스라엘을 축복했지만 속으로는 이스라엘을 저주하라는 말씀을 주시기를 기대했던 발람. 그 발람을 완벽하게 사용하셔서 끝까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언약을 성취시켜 나가심을 확인할 수 있었다.
따라서 먼저 우리는 우리 자신들이 발람과 같은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겠다. 더 나아가서는 우리만 하나님이 함께하시고 복을 줄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 있으면 어떤 사람이 우리를 해하려 한다 할지라도 그런 상황과 사람들 때문에 힘들어하거나 시험에 들 이유가 전혀 없다. 왜냐하면, 역사를 주관하시고 사람의 심리와 그 사람 자체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오히려 그러한 활동들을 이용하여 돕는 역사만 일어나도록 해 주실 것을 믿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서는 그들도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이용물이 되지 말고 주인공으로 쓰임받는 자들이 되도록 그들에게 은혜 베풀어 주시기를 기도해야 한다.
다니엘, 다니엘의 세 친구의 사례를 통해서도 봤지만, 방해 세력이 강하면 강할수록 그들이 돕는 역사도 더욱 강력하게 일어날 것을 믿는 기대와 믿음을 가지도록 하라.
힘든 사람들과 대적들을 만나서 그들에게 피동되지 말고 그들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역사를 소망하며 더욱 감사하고 기뻐하고 기대하는 자가 되라!
하나님이 사용하실 때 쓰임 받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리고 이런 믿음을 가짐으로 실제적으로 이런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고 누리는 주인공이 되라!
그러나 이 진리를 알지 못하면 현실을 다스리고 지키지 못하고 피동이 되어 시험에 들고 마귀의 밥이 되고 말 것이다.
주님의 참 제자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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