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사람 아브라함

2011.05.21 19:49

윤봉원 조회 수:1078 추천:79

히 11:8-162011052201

날자: 2011년 5월 22일 주일오전
제목: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
본문: 히브리서 11장 8절 - 16절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믿음으로 저가 외방에 있는 것같이 약속하신 땅에 우거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니라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 늙어 단산하였으나 잉태하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앎이라 이러므로 죽은 자와 방불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에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이 생육하였느니라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이같이 말하는 자들은 본향 찾는 것을 나타냄이라 저희가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1. 나는 믿음의 부자인가? 가난한 자인가?
우리는 씨앗만 보고 그 씨앗이 무슨 씨앗인지 잘 모를 때 어떻게 하면 알 수 있을까요? 심어보고 열매를 보면 알 수 있다.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이라고 했다. 우리 자신이 믿음이 있는가 없는가? 하는 것은 무엇을 보고 알 수 있을까? 그것은 내게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실상적으로 역사해 주신 것을 봄으로 분명히 알 수 있다. 특별히 지난 한 주간을 보내면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얼마나 실상적으로 이뤄졌으며, 보지 못했던 것들이 눈으로 볼 수 있도록 나타난 증거가 얼마나 있었나요? “아, 이것은 분명히 하나님이 해 주신 것이다.” 하는 것을 믿음의 선질들처럼 얼마나 경험하고 누렸나요?
오늘 본문 말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사라에 대한 말씀을 통하여 그의 믿음의 특징은 무엇이었으며, 그런 믿음을 가졌을 때 어떤 복을 누리게 되었는가를 살펴 보고자 한다. 그리고 그 믿음을 우리도 배워서 가짐으로 실상의 복을 누리는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
2.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해서
2.1. 결과를 생각지 않았다
2.1.1. 세 가지로 인도하시는 하나님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은 온 천하에 믿는 사람의 조상이다. 오늘 믿는 사람들은 아브라함의 믿음의 자손이다. 아브라함의 믿음의 자손이 되어서 아브라함이 가진 믿음을 우리가 가져야 한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서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는 존귀한 걸음을 걸었다. 사람으로서는 제일 귀한 걸음을 걸은 것이 아브라함이 아니겠는가? 승리의 걸음을 걸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히 11:8)
하나님이 아브라함뿐만 아니라 오늘 우리도 하나님이 인도하고 계신다.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실 때 한 달에 한 번 만나서 “이리 해라” “저리 해라” 인도하십니까? 아니다. 하루 한 번쯤? 아니다. 계속 우리를 쉬지 않고 끝없이 인도하고 계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시는데 어떻게 인도하는가? 그것을 잘 모른다. 현실을 주셔서 우리를 인도하고 있다. 자기에게 이런 현실 저런 현실 잘 되는 현실도 있고 불통한 현실도 있고 그 현실은 내가 원해서 된 것도 아니고 하나님이 그 현실을 만들어서 내게 주신 것이다. 하나님이 만들어 주시지 않는 현실은 하나도 없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 (창 2:15)
하나님이 내 현실을 만들어서 나를 인도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이 사실을 믿지 않으면 절대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수 없다. 현실로 통하여 구원이 이루어진다.
하나님이 현실을 만들어서 나를 인도하시는데 현실의 하나님의 인도는 무엇인가? 신구약 성경 말씀으로 나를 인도하신다. 이것은 죄가 되니까 하지 마라는 것은 하지 마라는 것이다. 또 하라는 것은 해야 하는 것이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신 6:5)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벧전 5:6)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 (벧전 4:10)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약 1:5)
‘하나님이 가라사대 이리로 가까이 하지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출 3:5)
‘제 칠 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 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출 20:10)
‘네 하나님 여호와께 서원하거든 갚기를 더디 하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반드시 그것을 네게 요구하시리니 더디면 네게 죄라 (신 23:21)
‘예수께서 보시고 분히 여겨 이르시되 어린아이들의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막 10:14)
섭리로 인도하신다. 발람이 가려고 하니 나귀가 가지 못하게 막아 버린다. 섭리는 현실에서 이루어진다. 또 성령의 감화 감동으로 내 양심을 통해서 영감으로 깨닫게 해 주시는 영감 역사로 인도를 하신다.
우리의 현실에는 이 세 가지 하나님의 인도가 있다. 이 세 가지를 찾아서 믿고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의 인도를 받은 것이다. 이것이 믿음이다. 이렇게 잘 가면 에녹과 같이 되고, 노아 같이 되고 아브라함 같이 살아서 인생으로서 최고의 성공을 이루어 갈 수 있다.
요 믿음을 가지고 영원한 성공을 이루게 된다. 왜 실패를 하느냐? 그것을 방지해야 하겠다 해서 아브라함에게 대한 말씀을 주는 것이다.
2.1.2. 아브라함 믿음의 특징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히 11:8)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갈 때 갈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되느냐 하는 것을 아브라함은 생각해 보지 않았다 갈바를 알지 못하고 하나님이 만드신 그 현실에서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서 순종해 나간 것이 아브라함의 믿음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데 제일 중요하다. 갈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가야 하는데 갈바를 알려고 하면, 갈바를 비판해 보고 평가를 해 보고, 손해가 될 것인가 유익이 될 것인가? 지금 비판해 보고 평가를 해 보는데서 믿는 사람들이 믿음의 실패를 가져 온다.
성공이 될 상 싶으면 주여! 주여! 열심히 하고, 가다가 어려움이 오면 포기를 하고 여기서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것을 실패 한다. 어려움을 만나면 “아이구 하나님 할 수 없습니다.” 여기서 전부 실패가 왔다. 이것을 잡아야 한다. 결과가 어떻게 되겠나? 생각하는 것은 아브라함의 후손 아니다. 사업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인도를 받다가 사업이 망하면 어떻게 되겠나? 유익이 되겠나? 손해가 되겠나? 이것은 아브라함의 신앙이 아니다. 그것은 주권자 하나님의 주권으로 결정되기 때문에 알려고 하지 마라. 알려고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고 마귀의 사람들이요 편이기에 하나님의 인도를 따르지 못하도록 미혹하는 것이요 유혹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면 이렇게 된다 저렇게 된다 하는 것은 전부 마귀의 사람들이 하는 소리이다.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했으면 그것으로 성공이다.
하나님이 인도하시는대로 따르는 것으로 아브라함은 만족하는 것이다. 끝까지 믿음으로 따라가는 여기에서 성공은 이루어짐을 깨달아야 한다.
2.2. 약속의 소망을 딱 잡았다.
‘믿음으로 저가 외방에 있는 것같이 약속하신 땅에 우거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니라’(히 11:9-10)
‘그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약속의 땅에서도 같은 약속을 물려받은 이사악과 야곱과 함께 천막을 치고 나그네나 다름없는 생활을 하며 머물러 살았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하느님께서 설계자가 되시고 건축가가 되셔서 튼튼한 기초 위에 세워 주실 도시를 바라며 살았던 것입니다.’[공동번역] 히 11:9-10)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이삭에게 약속했다. 야곱에게 약속했다. 그들이 살았을 때 아무도 받지 못했다. 피난민처럼 땅을 차지하지 못했다. 아내가 죽었을 때 사라가 죽었을 때 땅이 없어서 사 가지고 장사를 지냈다. 약속대로 되지 않고 삼대나 지나갔다. 약속하신 대로 삼대나 지나도 이루어지지 않았으니 낙망하고 원망할 것 아닙니까? 아들도 손자도 아브라함에게 약속해 놓고 안 주더라 이것은 거짓말이다. 낙망하고 원망하고 의심할 것 아닙니까? 요즘 믿는 성도들 보면 다 그래요. 다 안되더라. 그러니 믿음이 가다가 실패가 된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어떤 믿음을 가졌는가? 10절에 ‘이는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니라’ 하나님이 약속을 어겼다 하지 않고 아브라함은 약속에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니 약속이 안 된 것은 이 보다 더 좋은 것을 주시려고 가나안을 안 주신 것으로 믿은 것이 아브라함이다.
하나님은 안 해 주시지 않는다. 더 좋은 것 더 큰 것으로 주시는데 나는 가치가 적은 것 좁은 것을 바랐다. 소망 중에 믿었고 감사함으로 나아갔던 것이다. 여기서 성공이 이루어진 것이다. 오히려 이것이 더 큰 복이 될 것이다. 의심치 않고 믿는 믿음을 가졌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갈 때 하나님의 인도를 현실에서 따를 때 갈바를 알지 못하고 믿었다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가져야 한다. 가나안을 주지 않아도 더 좋은 것을 주시려고 주시지 않았으나 더 좋은 것을 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2.3. 약속의 미쁘신 하나님이신 줄 믿었다.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 늙어 단산하였으나 잉태하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앎이라 이러므로 죽은 자와 방불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에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이 생육하였느니라 (히 11:11-12)
‘그의 아내 사라도 이제 나이가 많은 여자인데다가 원래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사람이었지만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아이를 가질 수 있는 능력을 받았습니다. 사라는 약속해 주신 분을 진실한 분으로 믿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죽은 사람이나 다름없는 늙은 아브라함 한 사람에게서 난 자손이 하늘이 별과 같이 많아지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이 셀 수 없게 되었습니다.’[공동번역](히 11:11-12)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시겠다 약속했다.
‘그들이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네 아내 사라가 어디 있느냐 대답하되 장막에 있나이다 그가 가라사대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정녕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 사라가 그 뒤 장막문에서 들었더라 (창 18:9-10)
이 약속을 들은 사라는 자신이 자신을 가장 잘아는 처지에서 생각해 보니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아브라함과 사라가 나이 많아 늙었고 사라의 경수는 끊어졌는지라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어찌 낙이 있으리요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사라가 왜 웃으며 이르기를 내가 늙었거늘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요 하느냐 (창 18:11~13)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75세였다. 사라와는 10세 차이가 난다. 사라를 통해서 아들을 주겠다. 하나님이 약속했다. 그런데 99세가 되어도 아들이 없다. 안 생겨, 엘리에셀, 하갈,,,아니다. 사라를 통해서 아들 준다. 사라는 단산하였더라. 인간 지식은 맞지 않다. 화학적으로 안 된다. 그러나 하나님은 약속을 신실히 이루시고 지키시는 분으로 믿었다.
여기에 미쁘다라고 번역된 헬라어 단어 ‘pisto,j : 피스토스’는 “믿을만한, 신실한, 신뢰하는, 신임하는”이라는 의미를 가졌다.
하나님은 단산해도 약속하신 것을 신실히 이루시는 미쁘신 하나님, 믿을 만하나님, 신실한 하나님이다 라고 조금도 의심치 않았다. 그러니 사라에게 잉태하는 힘을 주시고 바다의 모래와 하늘의 별과 같이 무수히 많게 해 주신 것이다.
3. 아브라함처럼 믿음의 부요한 자가 되라.
역사에 도저히 없는 것이라도 하나님이 된다 하면 믿고 나아가라. 그러면 우리도 아브라함과 사라가 누렸던 복을 누리는 주인공이 반드시 될 것이다.
믿음으로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오늘 아브라함의 믿음 세 가지를 배웠다. 아브라함은 세 가지 믿음을 통하여 믿음의 조상이 되었다. 사라도 도무지 있을 수 없는 일, 처음에는 웃었던 어이없는 일이 자신에게 일어난 것을 경험하게 되었다.
세 가지를 의심치 않고 믿고 나갈 때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룰 수 있다.
아브라함은 갈바를 알지 못하고 순종했다.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아도 더 좋은 것으로 이루어 주실 것이다 라는 소망을 잡았다. 단산이 되어도 약속에 대해서 신실히 이루어 주실 것이다는 믿음을 가졌던 것이다. 우리도 이런 믿음을 가질 때 믿음의 부요한 자가 될 수 있다.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다른 사람에게 믿음에 도전과 용기를 주는 복의 근원이 될 수 있다. 사라처럼 도무지 있을 수 없는 일, 내 생각과 계산으로는 웃을 수 밖에 없는 일이 현실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경험하는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이처럼 여기에 있는 우리는 모두 아브라함의 믿음을 반드시 가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참 제자 되세요.

참조. 박상도 목사의 5월 1일 밤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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