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는 누구의 것인가?

2011.04.03 14:58

윤봉원 조회 수:807 추천:87

막 10:13-222011040301

날자: 2011년 4월 3일 주전
제목: 하나님 나라는 누구의 것인가?
본문: 마가복음 10장 13절 -22절
 사람들이 예수의 만져 주심을 바라고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예수께서 보시고 분히 여겨 이르시되 어린아이들의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고 그 어린아이들을 안고 저희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 예수께서 길에 나가실새 한 사람이 달려와서 꿇어 앉아 묻자오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네가 계명을 아나니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속여 취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가라사대 네게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을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
1.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이해
1.1. 이미 임한 “하나님 나라”
‘가라사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막 1:15)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요 5:24)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빌 3:20)
이 말씀대로 이미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었다. 공관 복음의 핵심은 하나님 나라이다. ‘하나님 나라’의 어원적 의미는 ?????(말쿠트, 나라)와 basileiva가 사용 된 용례를 따라 공간적 명시적 의미를 넘어선 역동적(dynamic)또는 추상적(abstract) 의미로 이해해야 한다. ‘하나님 나라’는 어떤 장소적인 개념이기 보다 하나님이 왕으로서 왕권을 행사한다는 통치적인 의미가 강조되어야 하며 이렇게 이해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 개념 이해에 대한 가장 기본적이고 합당한 방법이다.
유대인들에게 메시아의 도래는 곧 ‘하나님 나라’의 성취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것과 관련하여 눅 17:21에는 바리새인들의 의미심장한 질문이 등장한다. ‘선생님,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합니까?’ 이 질문은 이들이 정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때와 조건을 몰라서 질문 했다라고 하기보다 지속적으로 예수님의 행적을 살핀 후 이 분이 진정 메시아인가 아닌가를 떠보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이미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임함에 대하여 막 1:15을 통하여 ‘때가 찾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라고 말씀하신바 있다. 이 선포는 예수님의 사역이 어떤 중대한 전환점과 사건을 가지고 오리라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는 말씀이다. Guthrie, 위의 책, p. 312.
 예수님은 세례요한과 달리 ‘하나님 나라’가 임박했다고만 선포하지 않으셨다. ‘하나님 나라’는 이미 도래했고, 선지자들의 소망은 성취되었다는 것을 막 1:15의 선포로 만천하에 선언하신 것이다. Ladd, The Presence of The Future, p. 137

다시 바리새인들의 어리석은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눅 17:20-21)
‘하나님 나라’의 때를 묻는 이들에게 예수님은 동문서답과도 같은 답을 하신다. ‘하나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다’ 이 말씀은 기본적으로 세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첫째는 ‘너희 안에’를 ‘within you’로 이해하는 것이다. 전통적인 관점에서는 이 본문을 이렇게 해석해 왔다. 그러나 이렇게 해석하는 것에는 해석학적 입장에서 상당한 무리가 있다. 왜냐하면, 불 신앙적 태도를 보이고 있는 바리새인들 심령에 ‘하나님 나라’가 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님 나라’의 역동적 측면을 생각할 때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 자신이 선포한 ‘하나님 나라’의 통치적 측면(하나님 나라 백성 다운 삶의 표현)과 위배된다.
그래서 이 본문을 다음과 같이 해석하기도 한다. ‘너희 안에 있다’를 ‘among you’(너희 가운데)로 해석하는 것이다. 예수님을 둘러싼 무리들을 향해 ‘among you’라고 말씀 하셨다면 무엇이 하나님의 나라이겠는가? 예수님 자신을 일컫는 것이라고 보아도 큰 무리는 없을 듯하다.
또 다른 대안도 제시되었다. ‘너희 중에’를 ‘within your reach’(도달 가능한 범위 안에)로 해석하는 것이다. G. Beasley-Murray, The Coming of God (Great Britain: Paternoster press, 1983), 『성경과 하나님 나라』(서울: 여수룬, 1993), pp. 51-52.
 첫 번째 해석 방법을 제외한 두 번째 세 번째 제안을 종합하여 보면, 예수님은 막 1:15(‘가라사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막 1:15))의 선포를 통하여, ‘하나님 나라’의 임재는 이미 예수님 자신이 구약의 성취자인 메시아로 오실 때 임하였고, 이후로 하나님 나라 통치를 자기 백성들에게 시현하고 계신다는 내용의 본문으로 이해된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근본적인 오해는 ‘하나님의 나라’를 어떤 이상적인 실체(實體), 제한된 인간의 범주를 넘어선 장소적(영역)인 개념으로만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분명 존재론적으로 실제 한다. 그리고 인간의 제한 된 영역을 넘어선 초월적인 특성이 있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필자 역시 이 사실을 결코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를 이러한 안목에만 집중시켜 이해하는 것은 다른 측면에서 설명되고 있는 ‘하나님 나라’의 더 풍성한 의미를 제한(制限)하는 우를 범하는 것이 되고 만다. 비록 ‘하나님 나라’가 종말론적이고 가시적 실체가 있다는 것이 사실이라고 할지라도 역동적이고 추상적인 측면에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하나님 나라’의 통치적 측면을 지속적으로 가르쳐 주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無視)한다면 그것은 ‘하나님 나라’를 온전히 이해했다고 볼 수 없다.  H. Ridderbos, When the Time Head Fully Come, 오광만 편역, “제 2장 공관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나라”,『구속사와 하나님의 나라』(서울: 풍만 출판사, 1986), pp. 62-63.

앞에서 살펴 본대로 마태복음에 사용된 ‘하늘 나라’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유대인 공동체에게 발송된 것이 너무나 분명한 마태복음의 배경 지식도 없이 ‘하늘’(Heaven)을 가시적 ‘하늘’(Sky)로, ‘나라’는 유대인들의 일반적 사용 용례에 따라 ‘통치’, ‘다스림’등 역동적, 추상적의미로 이해하지 않고 ‘영토’, ‘지역’과 같은 공간적 의미로 오해하는 것은 성경의 기록을 모독(冒瀆)하는 행위이다.  양용의, 『하나님 나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p. 26.
 
따라서 우리는 예수를 믿은 이후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었다. 지금도 성령의 임재하심과 그가 진리와 영감을 통하여 우리를 인도하시고 다스리시는 그 다스림을 받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다. 아멘!!
그렇다면 이미 임한 하나님의 나라의 복을 우리가 잘 누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는 고민해 봐야 한다. 저는 이 길이 바로 성경 묵상에 있다고 본다.
1.2. 처소적인 “하나님 나라”
앞에서 말씀드린 이미 임한 하나님 나라는 그에 소속된 백성이 통치자이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온전히 누릴 수 있는 특징이 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 21-21장에 말씀하신 주님의 재림, 성도의 부활 이후에 가게 된 처소적인 “하나님 나라”는 인간의 의지, 충성, 노력과는 전혀 무관함을 많은 성경은 말씀해 주고 있다.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니라 (롬 5:21)
‘우리로 저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후사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딛 3:7)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엡 2:8-9)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요 5:24)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요 6:47)
따라서 오늘 본문에 기록된 하나님의 나라와 영생은 인간의 행위적인 면에 초점이 맞추어진 것으로 보아 처소적인 하나님 나라를 이야기하기보다는 통치적, 다스림적 하나님 나라를 의미하고 있음이 분명해 보인다. 즉 이 땅에 사는 나그네 인생동안 하나님 나라의 백성답게 삶으로 하나님의 은혜, 은총, 보호, 사랑을 입는 길은 무엇인가 하는 것을 교훈 해 주는 것으로 보인다.
2. 나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아직 예수님을 믿지 않는 불신자들에게 전도를 해 보면 자신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자는 거의 없다. 혹 있다 해도 잘못 알고 있다. 심지어 믿는 성도 중에서도 이에 대한 성경적인 올바른 견해를 가진 사람은 많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그 기준에 나는 들어갈 자격이 있다고 확신하는가?
오늘 본문을 통하여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을 설명하셨다. 본문에는 대조되는 두 인물인 어린아이와 부자 청년이 등장하여 누가 진정으로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지를 잘 보여 주고 있다. 본문에 등장하는 두 사람은 팔레스타인 사회에서 가장 가치(價値) 없는 존재(아이)와 가장 가치 있는 존재(부자 청년)을 나란히 소개한 것이다. 이를 통하여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가 누구인지를 교훈해 주고 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무엇을 교훈해 주는 것일까 알아보자.
3. 하나님의 나라는?
3.1. 자신은 조금도 의뢰하지 않고 예수님만 전적 신뢰하는 자들의 것이다(13-16).
‘사람들이 예수의 만져 주심을 바라고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막 10:13)
1세기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어린아이들은 실제로 무능력했기 때문에 법적인 규례에 따라 생활하기보다는 전적으로 아버지를 의존하고 살았다. 이석호,「마가복음」, p. 200.
 그래서 예수님은 이 사건을 영원전에 계획하시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설명하시기에 가장 적합한 어린아이 사건을 일으킨 것으로 보인다.
사람들이 아이를 예수님께 데려 온 것은 그때 당시의 풍습을 따른 것으로 보인다. 고대인들은 성자나 그가 입은 옷만 만져도 낫는다고 믿었다. 아마도 사람들은 아이들의 유익이나 축복을 받기 위하여 예수님께 데리고 나온 것 같다. Evans,「마가복음」, p. 238.

제자들은 예수께 축복을 받게 하려고 사람들이 어린아이를 데려오자 꾸짖었다. 이것은 제자들이 귀신을 쫓아낸 사람은 경쟁자로 여겨 거부하더니(9:38을 다 같이 읽어보자.), 이번에는 어린아이들이 예수께 나아오는 것을 막았다. 그들은 어린아이를 영접하는 것이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과 같다는 말씀(9장 36~37절)을 벌써 잊어버린 것이다. 아울러 그들은 그들이 꿈꾸고 건설하려는 세속적인 하나님 나라에서 어린아이는 걸림돌이 될 뿐 디딤돌이 될 리 없었던 것으로 판단 한 것 같다. 이것은 자신들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게 하고, 들어 오려는 사람들도 방해하는 태도이다(마 23:13, 15).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마 23:1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마 23:15)
그들이 이렇게 행동한 것은 여전히 하나님 나라는 어린아이처럼 왕의 절대주권에 절대순종 하는 자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손수 세우신다는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제자들의 생각과는 달리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보시고 분히 여겨 이르시되 어린아이들의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고 (막 10:14-15)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가 어린아이 같은 자의 것이고, 어린아이와 같이 그 나라를 받드는 자라야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받들지 않는 자’(15)는 ‘받아들이지 않는 자’이다. 예수님은 어린아이를 꾸짖는 제자들에게 노하셨다. 그리고 제자들이 외면한 어린아이를 안고 안수하시고 축복하셨다. 어린아이들이 하나님 나라에 가장 가까운 자들이고, 그들처럼 전적인 신뢰와 의존의 태도로 예수께서 열어주신 하나님 나라를 받아들이고, 그 나라의 가치와 사상에 동의하고, 그 왕의 명령에 군말 없이 순종하는 자만이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돌봄 없이는 스스로 생존할 수 없고 그래서 의존적인 존재인 어린아이처럼, 하나님 나라를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여 간절히 받는 사람, 즉 온전히 겸손(謙遜)한 자들만이 그 나라 백성으로 합당하다고 정의(正義)하신 것이다.
어린이들이 하찮은 존재로 무시당하는 것을 예수님은 싫어하셨다. 우리는 가정에서나 교회에서 어린이들이나 무지, 무능, 가난한 연약한 지체를 어떤 태도로 대하고 있는가? 이들이 예수님을 만나도록 어떻게 돕고 있는가? 심각하고도 철저하게 돌아봐야 하겠다. 아울러 우리게도 하나님 나라가 내 모든 것을 다 내어주고라도 받아들이고 싶은 가장 사모하는 겸손이 있는가 점검해 보아야 한다.
우리는 어린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는가? 아니면 뒤에 나오는 부자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가? 이 말씀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고 하는지 돌아보아야만 한다. 아울러 우리는 도움을 주어야 할 연약한 사람들을 유력한 사람들만큼이나 환영하고 돕는 자들이 되도록 힘쓰자.
3.2. 천국은 모든 신뢰의 대상을 버리는 자들의 것이다(17-22).
‘예수께서 길에 나가실새 한 사람이 달려와서 꿇어 앉아 묻자오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막 10:17)
이 절에는 부자 청년이 나온다. 예수님 당시에 유대인들은 부를 하나님의 축복으로 이해했다(물론 구약이 이 점에 대해서 여러 번 경고하고 있지만, 참조, Wright, 「마가복음」, p. 196; 양용의, 「마가복음 어떻게 읽을 것인가?」p. 235.
 재물에 대한 예수님의 생각은 이와 같은 기본적인 생각에 도전하시는 것으로 보인다.
‘선생님’이란 말은 마가복음에서 종종 나온다. 그러나 ‘선한 선생님’(17)이란 말은 이곳에만 쓰인다. 주후 1세기 또는 그 이전에는 어떤 사람을 ‘선한 선생님’이라고 부른 사례가 나타나지 않는다. Evans,「마가복음」, 242.
 그렇다면 이 호칭은 그야말로 예수님을 향한 이 청년의 존경심과 진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Stein,「마가복음」, p. 46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네가 계명을 아나니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속여 취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가라사대 네게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을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 (막 10:18~22)
18-19절은 부자 청년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이다. 예수님은 “하나님만이 선하시다.”라고 단호히 말씀하셨다. 따라서 선이 무엇인지를 깨달으려면 하나님을 바라보아야지 자신의 선행을 의지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아울 예수님께서 이 구절을 통해서 자신이 하나님이 아니시거나 선하지 않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은 아님이 분명해 보인다.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가라사대 네게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막 10:21)
부자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은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단순히 외형적으로 율법을 준수하는 것을 말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재물이나 심지어 자기 자신까지 의지하기를 포기하고 하나님을 전폭적으로 의지하는 것을 말한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영혼의 의사이신 예수님은, 이 부자를 사랑하셨기에 그에게는 듣기 싫고 근심이 되고 마음 아프게 하는 요구를 하셨다. 이것이 그의 영혼을 치료하고 살리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내 영혼을 사랑하시어 날마다 말씀을 통해 아프게 하시는 주님의 손길을 감사하며 받아야 한다.
부자 청년은 영생을 갈구하는 간절함과 예수께서 그 길을 아신다는 확신, 그리고 율법이 말하는 영생의 길에 순종해온 신실함도 있었다. 하지만, 현재 자신이 누리는 부유함이 하나님이 복 주신 결과가 아니며 도리어 영생을 상속받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예수님의 진단은 거부하였다. 십계명의 6-9계명을 지켰는지를 묻는 예수님의 질문에 부자는 자신 있게 대답했지만, 재물(財物)에 대한 탐심(貪心) 때문에 참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명령을 거절했던 것이다. 이는 그가 제 10계명뿐 아니라 하나님을 온 맘과 뜻과 목숨을 다해 사랑해야 하는 계명들도 어긴 자임이 만천하에 드러난 것이다. 그는 율법을 따라서는 성실하게 살아왔지만, 단 한 가지, ‘자기 의’를 버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 한 가지가 모든 것을 잃게 하는 결정적인 전부였다. 영생의 길을 얻으러 찾아왔지만, 자기 부인(否認)이 싫은 부자에게 영생의 길은 근심의 길이 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진심으로 그리고 제일 먼저 사랑하지 않으면 모든 삶이 거짓이고 욕심이 된다는 것을 교훈해 준다. 자기를 부인(否認)하지 않는 자에게는 오늘도 복음이 기쁜 소식이 아니라 근심의 소식이 될 것이다. 감히 예수님의 진단과 명령을 거부해도 떳떳하게 여길 만큼 우리를 의롭게 하고 교만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철저하게 진단해서 제거하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주님보다, 주의 말씀보다 내가 더 사랑하는 그것을 내려놓으라고 하시고 또 그것을 가져가시는 것을 주님의 사랑이라고 여기고 있는가? 우리는 이런 자가 되어야 천국을 누리는 주인공이 될 수 있다.
4. 자신도 다른 무엇도 의뢰(신뢰)하지 말고 전적 주님만 믿고 순종하라!!
우리 주님은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는 어린아이도(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에 전적 모든 부분에 대해 부모만 의지하는 갈급한 심령, 상한 심령, 전적 무지무능하다고 자신을 인정하는 사람) 부자 청년(주님과 주님의 말씀보다도 재물이나 그 외의 피조물을 더 의지하는 사람)도 사랑하시는 분이시다. 누구도 하나님 나라의 백성답게 그의 다스림을 받고 순종하여 하나님의 은총을 온전히 누리는 자가 되기를 원하신다.
이러한 주님의 뜻을 누리는 주인공이 되기 위해 오늘 우리가 포기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는 데 장애가 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도 부자처럼 예수님을 따르게 하는 근본 원동력이 어린아이와 같은 겸손과 절대 의존성이 아니라, 이 세상에 속한 것은 아닌지 점검해 보고 이제 성경적 가치관을 가지도록 힘써야 하겠다.
어린아이와 같은 중심, 사상을 가짐으로 자신도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는 믿음의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과 그의 말씀(명령, 뜻)보다 더 가치 있게 여기고 의지하는 것을 찾아서 온전히 청산해야 한다. 그리고 그분의 뜻이라면 즉시 순종, 온전히 순종, 죽기까지 순종해야 한다. 어린아이처럼 주님의 말씀을 믿고, 확신하고, 순종하여 주의 나라를 상속받는 자들이 되기를 주님은 기대하셔서 오늘 말씀을 주신 것이다. 이 세상에서 주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없도록 온전한 은혜를 갈망하라. 하나님 나라는 이런 자의 것이다. 아멘!! 참 제자 되세요.

* 윤봉원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1-04-03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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