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주인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는 우리

2012.08.22 18:41

윤봉원 조회 수:897 추천:73

마 6:242012082233날자: 2012년 8월 22일 수밤
제목: 두 주인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는 우리
본문: 마태복음 6장 24절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1. 두 주인을 동시에 섬길 수 없는 이유
1.1. 창조주와 피조물의 차이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두 주인은 여기에 하나님을 말했고 또 물질을 말했다. 하나님과 물질 둘을 같이 섬길 수도 없고 언제든지 하나밖에는 섬길 수 없다 그렇게 말했다. 우리 인간은 한 현실에서 하나님을 섬기든지 물질을 섬기든지 둘 중에 하나만 섬기지 둘은 섬기지 못한다.
왜 둘은 섬기지 못하느냐? 왜냐하면 어느 것을 중하게 여기면 하나는 천하게 여기는 것이 되고, 또 하나를 사랑하면 하나는 미워하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둘 다 같이 섬길 수는 없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고 하니 하나님은 제일 크신 분이요 또 하나님은 대주재시요 또 창조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다. 모든 물질계나 영계나 하나님 외의 것들은 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들이다. 지음을 받은 것들과 지으신 분은 조금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말할 수 없이 무한이 차이가 있다.
그분은 지으셨고 다른 것들은 다 지음을 받은 것들인데 사람들이 벌써 창조주와 피조물을 비슷하게 생각한다는 그 자체가 벌써 틀렸다. 사람들이 피조물을 하나님같이 필요하고 자기에게 요긴하다고 자기에게 있어서 필요성이나 중요성이나 또 효력 있는 그 유효성이나 그런 것을 같이 생각한다는 그것이 벌써 망하는 것이요 틀린 것이다.
따라서 사람들이 벌써 하나님도 섬기고 피조물도 섬긴다, 하나님도 우리에게 필요하고 피조물도 우리에게 필요하다 이렇게 생각 가지면 벌써 그것이 망하는 생각이다. 그 피조물도 필요하지 않느냐? 하나님도 필요하지 않느냐? 하나님은 하나님으로 필요하고 피조물은 피조물로 필요하지 않느냐 이래서 하나님 한 분에다가 모든 일을 귀정을 시키고 귀속을 시키지 않고 하나님과 피조물이 다 필요하다 하나님은 많이 필요하고 피조물은 적게 필요할지라도 하나님과 피조물이 다 같이 필요하지 필요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자꾸 이래 나가기 쉽다.
그러면 하나님은 많이 필요하고 피조물은 적게 필요하고 그러면 하나님과 피조물이 다 필요하기는 필요한데 그 필요성에 있어서 가치성에 있어서 차이가 있다고 사람들은 해석을 하게 된다. 차이가 있지, 크고 작은 데 차이 있고 필요한 데에 차이가 있지 필요 없는 것은 아니다, 다 필요하다.
사람들이 하나님과 피조물과의 그 차이를 둔다고 하면 얼마나 두면 차이를 그것을 바로 두는 일이 되겠느냐? 아무리 차이를 두어도 하나님은 하나님만큼 크고 많고, 필요성이 크고 많고 피조물은 피조물만큼 필요성이 적다고 어데까지 말한다 할지라도 그것은 하나님과 피조물의 필요성의 그 차이가 그게 바로 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도 필요하고 피조물도 필요하다 생각만 가져도 그것은 벌써 틀린 것이다. 하나님은 많이 필요하고 피조물은 적게 필요해 그렇지 필요하기는 필요하지 않느냐 이리 되면 그만 하나님하고 피조물이 필요하고 우리에게 효력 있는 가치에 대해서 차이가 있지 다 없는 것은 아니다.
1.2. 가치적으로 둘을 비교하는 것은 망할 생각이다.
그러면 차이가 있다 하면 차이를 그것을 바로 둬야 될 터인데 차이가 얼마나 차이가 있겠느냐? 벌써 없는 가운데서 그분이 창조하셨고 누가 그것을 요구해서 창조하지 않으셨고 또 그것을 우리가 무슨 필요성을 느껴서 느끼고 난 다음에 우리가 구하기라도 하고 난 다음에 그런 것들이 있었느냐 하면 그렇지 않는 것이고 구하기 전에 다 하나님이 사람보다 먼저 지어 놓으시고 그 다음에 사람을 지었다.
사람에게 필요한 것들을 다 지어 놓으시고 마지막에 사람을 지었다. 이러니까 사람들이 필요해서 요구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벌써 사람 내기 전에 인생에게 필요한 것을 다 당신이 지어 놓으시고, 그게 없으면 안 될 것이기 때문에 지어 놓으시고 그라고 난 다음에 그 필요한 것들을 구비하고 난 다음에 사람을 그 다음에 지으신 것이 하나님이시다.
그러면 계획적으로 보는 것이나 또 모든 계산적으로 보는 것이나 그 모든 것을 사람은 거기에 있지도 안했는데 하나님이 그 모든 것을 다 예산하시고 계획하시고 다 창조해서 존재케 하신 하나님이시다. 이러면 처음에는 하나님 혼자 계셨고 그라고 난 다음에 인생을 지을라고 당신이 영원 전에 목적을 하시고 창조하시기는 피조물을 먼저 창조하시고 그 다음에 인생을 다음에 창조하셨다.
그러면 그랬는데 그분이 우리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라든지 또 구비해야 될 것이라든지 그런 것을 당신이 혼자 계획하셨고 지식하셨고 그것을 만드신 그분인데 이제 만들어 놓고 난 다음에,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참 하나님은 많이 필요하고 피조물은 하나님에다 비해서 적게 필요하지 피조물도 필요하다 피조물도 없어서는 안 되겠다 필요하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많이 필요하고 피조물은 적게 필요해 그렇지, 차이가 있지 하나님만으로는 안 되겠다 피조물도 있어야 되겠다.' 이렇게 생각한다는 것이 그것이 망령이다.
이런데, 마귀란 놈이 와서 자꾸 사람들이 자꾸 타락해서 그분 한 분 가지고는 안 되겠고 이런 것 저런 것이 있어야 한다고 유혹한다. 또 하나님 한 분에게 모든 설계를 다 맡겨 놨다가는 낭패된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가담을 해서 우리도 우리 의견을 첨부해야 되지 한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망령이고 얼마나 교만인지 모릅니다.
2. 선택의 두 길
2.1. 일곱 교회
우리에게는 두 길이 있다. 두 길이 있으니까 두 길 중에 어느 길을 택할 것이냐가 핵심이다. 우리 신앙생활에는 반드시 둘로 갈라진다.
요한계시록 2-3장까지에는 일곱 교회의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데 일곱 교회는 곧 신약 시대의 교회의 전부를 대표해서 표준으로 기록해 놓은 것이다. 일곱 교회의 내용을 연구하면 신약 시대의 교회의 내용을 다 연구한 것이 된다. 일곱 교회를 바로 알았으면 신약 시대의 교회는 어떻다 하는 것을 바로 안 것이다.
이러기 때문에 일곱 교회의 내용을 안 사람들은 이 세상교회를 보는 데에 바로 볼 수 있다. 일곱 교회를 크게 둘로 나눠보면 서머나 교회나 빌라델비아 교회처럼 물질과 세상 것보다 하나님과 믿음을 더 중요하게 여긴 것과 나머지 다섯교회처럼 하나님과 믿음보다 물질과 세상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긴 교회로 나눌 수 있다
2.2. 가인과 아벨
세상적 세도는 가인이 있었고 하나님 앞에서 뜻대로 사는 의의 세도는 아벨이 있었다. 아벨은 죽어도 하나님의 도를 버리지 안했다. 가인은 하나님의 도를 버릴 뿐만 아니라 전력을 기울여서 살인까지 해서 하나님의 도를 버리고 말았다. 그리하여 그는 멸망의 조상이 되고 말았다.
2.3. 에녹과 남은 사람들
창세기 5장에 보면 에녹이 있고 일반 사람들 있는데 일반 사람들은 어쩌든지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자녀 낳고 살았다. 그러나 에녹은 같은 세대에 같은 가정을 꾸리며 살았지만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았다. 그래서 애녹 외의 사람들은 하나님 배반하고 다 멸망을 받았고, 에녹은 영생을 얻었다.
2.4. 노아 시대의 사람들
창세기 6장에 보면 노아 시대에 하나님의 아들들이 있고 노아가 있었는데 하나님의 아들들은 전부 홍수에 멸망 받았습니까? 자기 좋아하는 대로 했다.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 좋아하는 대로 취하여서 아내 삼다가 홍수에 멸망 받고 말았다. 그러나 노아는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다가 홍수에서 구원 얻어서 천하 인류의 조상이 되었다.
이 두 갈래로 장 그래. 두 갈래. 언제든지 두 갈래 두 종류라 하는 것은 어데든지 두 갈래가 있다, 두 길이 있다, 요것을 깨닫고 거기다가 딱 정신을 차려 가지고서 요 길 조 길 두 길이 있으니까 어느 길이 좋으냐 요렇게 선택하지 안하면 망하는 것이다.
노아의 아들들이 세 아들인데 그 세 아들들도 두 갈래이다. 가운데 아들 함은 그는 강팍하고 불효하고 두 아들은 겸손하고 슬기 있고 효도 있는 사람들이오. 그 둘로 갈라져 가지고서 하나는 멸망 하나는 구원을 이루지 안했습니까? 전부 다 그렇다.
2.5. 아브라함과 롯
아브라함도 보니까 같이 신앙생활하다가 롯은 멸망으로 걸어갔고 아브라함은 구원의 조상의 길을 걸어갔다.
2.6. 제직회와 셀모임
그러면 오늘 우리는 어떤가? 제직회도 열어 놓으면 두 쪽이다. 셀모임도 모이면 두 쪽으로 나뉜다. 또 교회 차를 타보면 차안이 성도들의 말인지? 세상 사람들의 말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교역자회도 열면 두 쪽이다. 성도들의 모임도 만나면 두 쪽이다. 두 쪽이라고 조심할 것은 하나님 편에 선 것은 감사하고 겸손히 자꾸 하나님 편으로 달아나야 되지 하나님의 편으로 선 것이 하나님 편에서 떨어져 나와서 있는 저 맞은 편에 섰는 그런 거를 멸시하면 하나님께서 이것을 버려 버립니다. 내가 옳은 편에 선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옳은 편에 섰지 내가 잘나 선 것 아니라.
그러기 때문에 옳은 편에 선 사람이 감사하면서 '만일 우리를 버리면 어찌되느냐?' 두려워 떨면서 삐뚤어진 세상 따라서 나가는 그 편을 보고서 위해서 기도하고 안타깝게 여기면 하나님의 노가 임하지 안할 것이고, 하나님이 다 같이 만들면 그만 의인되고 만 것인데 제가 스스로 잘나 가지고 그런 줄로 알고서 그를 무시하고 훼방하면 성경에 말했다. "네가 누구기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은 하나님의 종을 훼방하느냐?" 하나님의 것인데, 하나님의 종이라 말은 하나님께서 이래라 저래라 시켜서, 하나님의 것인데 네가 인간을 네가 보고서 네 마음대로 훼방하느냐 하나님이 진노하셨다.
3. 재물 편에서 하나님 편으로 빨리 돌아서라.
따라서 우리는 언제든지 두 쪽으로 나눠진다는 것을 잊어버리면 안 된다. 어데든지 두 쪽이다. 성경을 보라. 두 쪽 아닌 것이 어디에 있는고? 두 쪽으로 다 갈라진다. 갈라지는 이유를 분석해 보면 재물을 더 중요하고 크게 여기느냐? 하나님과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더 중요하고 크게 여기느냐의 차이에 따라서 둘은 갈라진다.
두 쪽인데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 것이냐? 하나님은 창조주요 그 외 모든 것은 피조물들이다. 특별히 하나님은 우리가 구원을 이뤄가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다 창조해 주셨고, 지금도 우리에게 공급해 주셨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 둘을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미친 짓이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지금의 우리는 없었을 것이다. 아울러 앞으로 우리의 미래도 없다. 그럼에도 인간이 둘을 비교하며 하나님을 업신여기고 살아가니 기가 찰 노릇이요 얼마나 망령된  행실인가?
우리는 확정해야 한다. 이 둘은 비교불허임을 명심하라.
우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는 자들이기 때문에 어느 것이 하나님 편에 속한 삶인가를 구별해서 만약 재물편에서 살아가고 있다면 즉시 하나님 편에 속한 오른쪽으로 빨리 옮겨 서는 삶을 통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존귀케 영화롭게 하는 자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게 중요하고 그러면 옮겨 서 있는 자는 둘째로 주의 할 것은 제가 스스로 제가 저 된 것처럼 교만하지 말고 망령되지 말고 오만하지 말아야 한다. 아울러 하나님 앞에 버림당할까 조심해서 하나님 앞으로 달리고, 달리고 건너편에 있는 자들 위해서는 하나님 앞에 기도해서 긍휼이 여겨서 구원해 달라고 이렇게 하면 차차 차차 구원돼서 그것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다. 요 두 가지 지식을 우리는 확고히 잡고 항상 구별하며 살아야 한다. 참조. 8901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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