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 늦은 후회와 탄식

2012.04.22 18:51

윤봉원 조회 수:562 추천:67

아 5:1-162012042202날자: 2012년 4월 22일 주일오후
제목: 뒤늦은 후회와 탄식
본문: 아가 5장 2절 – 16절
1. 다른 사람에게 바람 맞았을 때 기분은 어떠했나요?
우리는 살면서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그러는 과정에서 우리는 때론 다른 사람들에게 무시를 당하거나 약속을 바람 맞아본 경험들이 있다. 그 때마다 얼마나 속상했는가? 어떤 사람들은 결혼을 약속했다가 안 지킨다고 상대를 죽이기까지 한다. 이 외에도 다양한 종류로 상대방에게 무시를 당하면 그 사람을 원수로 여기고 꼴도 보기 싫어하고 이름도 부르기 싫어하는 것이 인간이다.
☞ 과거에 다른 사람에게 바람을 맞았거나 무시당했던 구체적인 경험들을 생각해 보라.
2. 나는 주님의 요구에 어떤 반응을 보였나?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의 신랑되시는 주님과의 관계에서 어떻습니까? 우리 주님은 오늘도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 3:20)라고 하시며 우리의 양심의 문을 두드리고 계신다. 그리고 지금까지 얼마나 많이 두드렸는지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주님의 두드림에 어떻게 반응을 했는가? “이것은 분명한 주님의 음성이다.”라고 알아차렸을 때 어떤 반응을 보였는가? “우리에게 기도하기를 바라시고, 전도하기를 바라시고, 성경 읽기와 묵상하기를 바라시고, 교회 청소하기를 바라시고, 다른 사람을 돌봐 주기를 바리심” 등 다양하게 요구하셨을 때 어떻게 반응을 했습니까? 즉시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라고 했는지? 아니면 술람미 여인처럼 “아이 귀찮아 죽겠네,,,” 하면서 주님에게 바람 놓는 일을 많이 했는지? 찾아서 회개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이제는 주님과 사랑의 관계를 새롭게 회복(回復)해야 한다.
3. 부부의 균열
3.1. 여자가 냉정을 보임(2-3).
‘내가 잘찌라도 마음은 깨었는데 나의 사랑하는 자의 소리가 들리는구나 문을 두드려 이르기를 나의 누이, 나의 사랑, 나의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야 문 열어 다고 내 머리에는 이슬이, 내 머리털에는 밤 이슬이 가득하였다 하는구나 내가 옷을 벗었으니 어찌 다시 입겠으며 내가 발을 씻었으니 어찌 다시 더럽히랴마는’(2-3)
이 단원에서는 여자가 다시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 지금까지 술람미 여인과 신랑은 극진한 사랑의 관계를 유지해 왔다. 그러나 이 본문에서 무슨 이유 때문인지는 분명히 알 수 없으나 부부 관계에 균열이 생겼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볼 수 있는 근거는 여인이 잠자리에 누웠지만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깨어 있었다고 고백하는데서 찾을 수 있다. 아울러 남편도 밤이슬을 맞으면서 밤거리를 서성거렸다. 그러다가 남편은 고심 끝에 이슬을 흠뻑 맞아 머리가 이슬로 뒤덮인 상태로 ‘나의 누이, 나의 사랑, 나의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야 문 열어 다고’라고 간절히 아내를 부르며 문을 두드린다. 이것은 신랑이 얼마나 간절하게 사랑을 회복하기를 바라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아내는 이미 옷을 다 벗고, 발을 씻었으며 잠자는 차림으로 잠자리에 들었다는 핑계로 귀찮아하면서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신랑을 사랑하지 않거나 열정이 식은 것도 아닌데 한순간의 귀찮음이 그만 사랑이 들어올 자리를 밀어내고 만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우리의 신랑 주님께 대해서 우리는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까? 이를 위해서는 내 생각, 주관대로 상황을 판단하지 말고 주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해 주셨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또 이 사랑에 합당한 우리가 보여야할 사랑은 무엇인지, 어떻게 하는 것이 사랑의 빚진 자로서 자세인지를 생각해보고자 한다.
사도 바울은 이 사실을 깨닫고는 다음과 같이 고백했던 것이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4)
‘이것이 너희 간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으로 내 구원에 이르게 할줄 아는고로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빌 1:19-21)
사도 바울의 이상과 같은 고백과 삶의 우리의 삶의 자세가 되어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주님이마음문을 열고 손을 내밀었을 때 더러운 자존심을 내세우지 말고 꼭 붙잡고 영접하고 그를 사랑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아멘!!
3.2. 남자가 냉정을 보임(4-6)
3.2.1. 주님은 무골호인(無骨好人)이 결코 아니시다.
‘나의 사랑하는 자가 문틈으로 손을 들이밀매 내 마음이 동하여서 일어나서 나의 사랑하는 자 위하여 문을 열 때 몰약이 내 손에서, 몰약의 즙이 내 손가락에서 문빗장에 듣는구나 내가 나의 사랑하는 자 위하여 문을 열었으나 그가 벌써 물러갔네 그가 말할 때에 내 혼이 나갔구나 내가 그를 찾아도 못 만났고 불러도 응답이 없었구나’(4-6)
여인은 자신의 행동이 잘못되었음을 직감하고 남편이 문틈으로 손을 넣어 닫힌 문을 열려고 안간힘을 쓰는 모습에 여인은 일어나서 뒤늦게 문을 열었다. 그러나 그 때는 이미 사랑하는 사람이 그 자리를 떠난 뒤였다. 몰약을 바르며 남편을 맞이할 채비를 갖추고 문 밖으로 나갔지만 남편은 이미 떠나고 없었다. 여인은 사소한 오해가 낳은 더 큰 갈등 앞에서 넋이 나갔다. 오직 문빗장에 남아 있는 몰약 만이 사랑하는 사람의 흔적을 보여 줄뿐이었다. 게다가 여인은 그제야 후회하며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 한밤중에 길을 나서지만 봉변만 당하고 병만 들었다. 여인은 남편을 찾아 야밤에 나설 때는 아마도 간단한 겉옷 하나만 걸친 채 골목을 헤매며 소리쳤을 것이다. 여인에게 밤의 거리는 위협적인 공간이었다. 그럼에도, 여인은 위험을 무릅쓰고 신랑을 찾고 찾았다. 그러다가 그는 파수꾼들에게 폭행과 수치를 당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여인은 남편을 결국 찾지 못했다. 얼마나 후회(後悔)막심(莫甚)하고 처량하고 불쌍한 처지가 되었는가? 상상해 보라.
 ‘성중에서 행순하는 자들이 나를 만나매 나를 쳐서 상하게 하였고 성벽을 파수하는 자들이 나의 웃옷을 벗겨 취하였구나’(7)
우리 주님은 결코 무골호인(無骨好人)이 아니시다. 명심하라. 우리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참고, 용서하시고, 용납해 주시지만 항상 무골호인처럼 줏대 없는 그런 분이 아니시다라는 사실을,,,.
따라서 우리는 지금 우리 앞에 놓인 주님을 사랑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면 이처럼 사랑을 회복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런데도 오늘은 바쁘고 힘드니 내일 잘해 주겠다며 사랑하는 일을 미루고 있진 않습니까? 기회를 놓치지 말고 오늘 사랑에 즉시 착수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 주님은 이것을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것이다.
한 번 자신을 점검해 보라. 주님이 문을 열어 달라고 하는 주님의 음성(계 3:20)에 어떻게 응답했습니까? 우리는 어떤 회개하지 않은 죄 때문에 주님을 문 밖에 세워 두고 바람 맞히는 일을 하고 있지 않은지,,,?
☞ 하나님은 우리에게 언제든 부르기만 하면 대답하려고 대기하시는 분이 아니다. 찾아도 찾을 수 없을 때가 되기 전에 돌아와야 한다.
3.2.2. 계명을 지킴으로
그렇다면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어떤 것일까?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주님을 어떤 사람이나, 재물, 일보다 사랑하여 그의 뜻인 계명을 지키는 것이다.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마 10:37)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요 14:21)
우리의 마음, 힘, 뜻, 목숨 다해서 주님 사랑하는 일에 착수해야 한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마 22:37)
술람미 여인의 때 늦은 후회와 탄식을 보면서 우리가 받을 수 있는 중요한 교훈은 화해에서 중요한 것은 타이밍이라는 사실이다. 적절한 시기를 놓친 사과는 용서를 받아내기 힘들어진다는 것이다.
3.3. 관계 회복을 위해 애쓰는 신부(8-16)
‘예루살렘 여자들아 너희에게 내가 부탁한다 너희가 나의 사랑하는 자를 만나거든 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났다고 하려무나’(8)
술람미 여인은 사랑에 금이 가자 그것을 회복하기 위해 병이 나도록 애를 쓰고 있다. 우리는 주님과의 관계에 문제가 없습니까? 한나처럼 예배에 잘 참석하는지? 날마다 말씀 묵상을 지속하고 있는지? 계속해서 기도 생활을 하고 있는지? 다른 사람을 나보다 낫게 여기고 잘 돌아보고 있는지? 다른 사람들과의 교제에 힘쓰고 있는지? 무엇이 문제인지 잘 생각해 보고 문제 해결을 위해 주님께 도움을 구하여야 한다.
친구들의 입을 통해서 여인의 신랑에 대한 간절한 사랑을 드러낸다. “너의 남편이 도대체 얼마나 아름다운 사람이기에 이토록 야단이냐?”라고 여자들은 질문을 한다.
‘여자 중 극히 어여쁜 자야 너의 사랑하는 자가 남의 사랑하는 자보다 나은 것이 무엇인가 너의 사랑하는 자가 남의 사랑하는 자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기에 이같이 우리에게 부탁하는가’(9)
이 질문에 대해서 술람미 여인은 길게 답을 한다. 여인은 남편이 얼마나 황홀하고, 흠잡을 데 없으며, 출중한 외모와 달콤한 사랑을 가진 사람인지를 설명한다. 이것은 마치 ‘보라, 내가 찾으려고 하는 내 사랑이, 내 친구가 바로 이런 분이다’라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입’(16)은 입천장으로서 ‘입맞춤’ 또는 ‘말’을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술람미 여인에게는 사랑의 위기가 간증의 기회로 변했다. 그는 사랑하는 사람의 냉대를 통해 그가 자신에게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를 고백하였다. 사랑하는 사람의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찬사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또 남편에 대한 새로운 시각의 눈이 열렸던 것이다. 따라서 여인은 남편에 대한 찬사를 늘어놓을수록 그에 대한 사랑이 깊어져 갔던 것이다. 그래서 위기가 관계회복의 중요한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아멘!!
우리도 우리 주님과의 관계에서 먼저 주님이 우리에게 어떤 분인지 곰곰이 묵상함으로 그분이 얼마나 자신에게 중요한 존재이며, 귀한 분임을 바로 볼 수 있는 시각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을 발견했을 때는 주저 없이 술람미 여인처럼 그에게 찬양을 드려야 한다. 아울러 주변 이웃 사람들에게도 주님의 영광스러움과 존귀함, 고마우심을 자랑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 주님과 성글어졌던  사랑의 관계 회복의 역사가 일어날 것이다. 아멘.
그리하여 우리는 예수를 믿어도 “따라 장가는 예수꾼”이 되어서는 안 된다. 즉 자신의 주관적인 경험 없이 남이 믿으니까, 다른 사람들이 믿으니까 나도 예수나 믿어보자는 식의 신앙생활이 되어서는 안 된다.
누구든지 만약 우리에게 예수님을 왜 믿느냐? 라고 묻는다면 우리 자신이 경험한 예수님을 실감나게 은혜롭게 증거할 수 있는 주인공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그리하여 그들도 예수를 믿고 인생의 방황 고민 불행이 끝이 나고 신앙의 방황고 고민도 우리로 말미암아 끝이나는 역사가 풍성하게 일어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4. 주님의 부르심에 즉시 온전히 순종의 반응을 보임으로 뒤늦은 후회를 하는 사람이 되지 말라!!
정리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바람 맞아서 속상해 했던 우리가 주님을 바람맞히고 무시하고 멸시 천대했던 죄를 철저히 회개합시다. 한 순간 내가 귀찮다고 주님의 요구와 기대를 무시했던 것을 회개합니다. 징계를 받아서 너무너무 힘들고 어렵고 회복 불가능한 상태까지 간 다음에 그때사 돌아서려고 하는 어리석고 불쌍한 사람이 되지 않도록 합시다. 주님이 모든 현실마다 찾아오셔서 문을 두드리면 즉시 순종함으로 그에 대한 사랑을 더욱 증진시켜 나가고 그를 기쁘시게 합시다. 마음, 뜻, 힘, 목숨 다해서 주님을 기쁘시게 합시다. 사도 바울처럼 살든지 죽든지 흥하든지 망하든지 오직 주님 기쁘시게 만하는 미쁜 신부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하여 다시는 뒤늦은 후회의 주인공이 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사랑과 은혜와 축복의 주인공되세요.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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