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이 자라려면

2012.04.18 21:49

윤봉원 조회 수:653 추천:70

눅 24:36-452012041833날자: 2012년 4월 18일 수밤
제목: 믿음이 자라려면
본문: 누가복음 24장 36절 – 45절
1. 왜 믿음이 안자랄까?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들은 전반적으로 잘 자란다. 소는 새끼가 태어나면 하루만 지나도 걷는다. 사람의 육체도 태어나면 짐승보다는 더디지만 잘 자라서 몇 년 후면 사람다운 사람이 되어 있다. 식물도 잘 자란다. 그 중에서도 대나무 밭의 죽순은 하루가 약 10cm정도씩 자란다. 이외에도 다른 것은 잘 자라는데 성도의 믿음만큼은 참으로 잘 안자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믿음만큼은 세월이 흐른다고 해서 비례적으로 자라지 않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왜 그럴까?
단적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그의 역사하심을 보고도 믿지 못하는 경우가 참으로 많은 것 같다.  그 중에서 하나만 예를 들어보자.
신앙생활을 하는 성도들을 보면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것(일이나 사건)은 전적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을 온전히 믿는 사람이 드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하나님께 감사하기도 하고 원망 불평을 하기도 하고, 좀 심한 경우는 아예 신앙생활을 포기하고 세상으로 돌아가는 믿음 없는 행위를 한다.
그렇다면 여기에 있는 우리는 항상 어떤 현실에서도 무슨 일을 하든지 전적 하나님의 은혜라고 인정을 하는가?
그러면 반대로 우리가 만나는 일들 중에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 경우가 있을까? 그런 경우가 있다면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 하셨으니ⵈ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딤전 4:1, 5)의 말씀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시 136:1; 같은 장에서 26번 반복하심)이라고 말씀하신 말씀은 거짓말이거나 잘못된 성경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그렇다면 왜 우리는 디모데전서 4:1-5의 말씀이나 시 136편의 말씀을 따라서 모든 현실에 대해 감사하는 믿음이 없을까? 그렇게 감사만 하고 살면 항상 겸손하며 바울처럼 지족하며 살아가는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멋진 주인공이 될 텐데 말이다.
‘지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이 큰 이익이 되느니라’(딤전 6:6)
이러한 믿음 없는 우리의 행위를 고치고 성경대로의 믿음이 자라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또 어떻게 하면 우리의 믿음을 성경대로 현실에서 가지며 살아갈 수 있을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본문에서 찾아보고 우리의 삶에 적용하고자 한다.
2. 왜 믿지 않았을까?
2.1. 주관 지식과 달라서 의심했기 때문에(36-43).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줄 알라 또 나를 만져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38-39)
왜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도 예수님으로 믿지 않았을까? 왜 믿음이 없었을까?
예수님은 성경과 그의 예언대로 삼 일만에 부활하셨다.
‘가라사대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하리라’(눅 9:22; 18:33)
그럼에도 제자들을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 놀라고 무서워하며 부활하신 육신의 예수로 보는 것이 아니라 영으로 보았다(37). 그래서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제자에게 찾아가셨던 예수님은 이번에는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 그는 놀라고 무서워하는 제자들에게 ‘평안이 있을지어다’라고 위로하셨다. 이 말은 평소에 쓰이던 인사말이지만, 예수님이 특별히 사용하심으로 복음이 되었다(요 20:19, 21, 26). 그의 부활로 말미암아 평화의 약속이 성취되었으며(2:14; 7:5); 행 10:36). 우리에게까지 평화를 누릴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예수님의 위로의 말씀은 그의 세심한 배려를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예수님은 자신의 부활을 믿지 못하는 제자들의 믿음을 견고케 하기 위해 직접 자신의 손과 발의 흔적을 보여 주셨다. 생선을 잡수시면서 교제하심으로 부활을 증거 하셨다. 예수님의 몸은 유령체가 아니라 제자들이 만질 수 있고 구운 생선 한 토막을 잡수시는 실재(實在)하는 육체였다. 그리고는 성경말씀으로 풀어서 부활을 증거 하셨다.
따라서 예수님은 성경대로 성취된 사건을 믿지 못하고 의심하는 제자들의 믿음을 일깨워 주신 방법은 자신의 몸이 부활한 실재의 몸이라는 사실을 못 박혔던 손과 발을 보고 만지도록 하셨다. 그리고 음식을 먹어 보임으로 부활한 육체임을 확증해 보이셨다. 이렇게 함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의 임재를 의심하는 자들에게는 ‘믿음’을 주셨다. 그리고 그들도 예수님처럼 자신들이 영광스러운 몸의 부활에 대한 ‘소망’까지 갖도록 하셨다.
이 진리와 원리는 오늘날도 그대로 적용됨을 알 수 있다. 성경대로 실존하시는 하나님,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을 믿지 못하는 성도들에게 믿음을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오늘도 성경대로 이뤄진 실상을 수없이 보고, 경험하게 하신다. 제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을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아멘!!
‘예수 예수 믿는 예수 받은 증거 많도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가 만나는 현실은 믿음이 없는 우리에게 믿음을 심어 주기 위한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뤄진 것을 보고 경험하게 하는 체험(體驗)학습장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라. 우리가 만나는 현실은 “경대로 살았느냐? 그렇지 않았느냐?”에 따라서 은혜(恩惠)와 축복(祝福)의 결과(結果)일수도 있고, 징계(懲戒)의 결과(結果) 일수도 있음을 살펴보면 정확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가 만나는 현실이 내 주관과 경험으로 따져 봤을 때 이해가 안 되더라도 나의 경험과 지식을 부인하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또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성취된다는 온전한 믿음을 가져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점 하나도 없어지지 않고 다 이뤄지는 신실한 말씀이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우리는 성경 말씀은 어떤 말씀이라도 100% 믿는 믿음의 주인공이 되기를 하나님은 이 말씀을 기대하시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는 우리의 경험, 지식, 주관에 이해가 안 되는 것이라도 성경 말씀이라면 100% 믿는 자가 되라. 믿어지지 않는 것은 자신의 주관과 지식이 아직 부인되지 않기 때문임을 기억해야 한다. 이러한 믿음을 가지고 현실을 직시(直視)해 보면 볼수록 말씀대로 신실하게 성취해 가시는 하나님을 신뢰(信賴)하게 될 것이다. 이런 믿음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성경의 예언은 어떤 말씀이라도 온전히 믿는 주인공이 되라.
2.2. 말씀을 실상적(實狀的)으로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44-45).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44-45)
제자들은 성경을 깨닫기 전까지 빈 무덤과 여인들의 증언, 부활하신 예수님의 등장을 보고도 부활을 믿거나 확신하지 못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미 자신이 많은 고난과 무시, 멸시, 천대를 받고 십자가에 죽고 삼일 만에 부활하실 것을 예수님으로부터 들어서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그의 예언대로 부활하신 것을 믿지 않았을까? 아니면 못했을까? 그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실상적으로 깨닫고 믿는 믿음이 없었기 때문이다.
말씀을 실상적으로 깨닫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다.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으로부터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눅 22:24)라는 말씀을 들었다. 그런데 베드로는 그 말을 실상적으로 이해를 못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하나님, 예수님께서 내가 앞으로 예수님 믿는 것을 부인하게 된다고 하는데 제자인 내가 그럴 수 있습니까? 나를 도와 주셔서 예수님을 부인할 어려운 상황이 되더라도 부인하지 않는 사람이 되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하지 않았다. 그렇게 준비하고 기도하지 않았다가 결국 부인하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그것은 그가 예수님의 말씀을 실상적으로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아직도 부활한 자신을 온전히 믿지 못하는 제자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실상적(實狀的)으로 깨닫게 해주셨다. 그는 제자들에게 ‘말씀’을 상기시키심으로 깨닫게 하셨다. 흔들리는 제자들의 믿음을 말씀 위에 세우셨다.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에게 성경을 풀어주시며 그 마음을 뜨겁게 하신 것처럼 나머지 제자들의 마음도 열어 주셨다. 구약성경 전체를 통하여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고난 받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셔야 하는 것을 설명하심으로 최근에 일어난 사건을 이해하게 하셨다.
아울러 이 부활사건의 궁극적인 목적은 회개하여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알리셨다.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을 통해 이루어진 ‘죄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의 복음’은 모든 족속에게 전파되어야 한다. 부활을 믿고 체험한 모든 자는 이 복음의 증인이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성령님을 주셨다. 이렇게 우리에게 성령을 주신 목적은 이 복음을 전하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분명히 하셨다(49).
오늘 본문에 나오는 제자들처럼 우리의 믿음도 마찬가지 입니까? 우리는 이미 주님이 보내신 성령을 받은 자들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경대로의 믿음을 가지지 못한 우리에게도 믿음을 주시려고 계속해서 성령으로 찾아오셔서 성경을 들려주시며 깨닫게 하신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요 14:26)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 16:13)
그래서 우리는 성경을 읽든지 묵상할 때에 성령님께서 깨닫게 해 주시도록 그의 도움을 구하는 기도를 드려야 한다. 그러면 우리의 소원을 아시고 반드시 성경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래서 다윗은 다음과 같이 기도했다.
‘내 눈을 열어서 주의 법의 기이한 것을 보게 하소서’(시 119:18)
그리고 성경을 깨달으면 우리의 현실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나 성경대로 성취되고 있는 모든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분명히 볼 수 있는 눈이 열릴 것이다. 그리고 성경대로 믿어지는 믿음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성경을 깨닫지 못한다면 우리는 계속 영적 소경이 되어 성경대로 성취되는 현실을 보고 보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는 불쌍한 사람으로 계속 살아가게 될 것이다. 이래서야 되겠습니까?
3. 평상시 말씀을 읽고 묵상하여 깨닫고 말씀이 본능화(本能化)되도록 힘써라!!
오늘 말씀을 통해서 성경과 성경대로 이뤄지고 있는 현실을 보고도 보지 못하는 영적 소경의 문제, 믿어지지 않는 불신의 문제의 원인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자기가 기존 가지고 있는 주관 지식이 문제였음을 알 수 있다. 또 하나는 성경을 듣기는 들어도 실상적으로 깨닫지 못하기 때문임을 알 수 있었다. 오늘 우리도 성경 말씀대로 모든 현실을 이루어져 가고 있는데 그것이 믿어지지 않는 것은 이 두 가지가 원인 때문임을 진단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에 대한 해결책은 내가 만난 현실에서 나의 주관지식을 부인하고 말씀대로 현실을 직시하려는 노력이 가장 급선무이다. 말씀과 배치가 될 때 “왜 이럴까?” “이해가 안 되내.”가 아니라 말씀에다 나를 맞추려고 해야  한다.
두 번째는 평상시 우리는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설교를 들을 때 말씀이 깨달아지고 믿어지는 은혜를 주시도록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라. 그리하여 말씀이 말씀을 실상적으로 깨닫는 자가 되어야 한다. 이렇게 하여 말씀대로의 자기 지식이 본능화 되어 있으면 본능적으로 우리는 현실을 말씀대로 보는 복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래야 범사에 감사가 되고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감사 찬송할 수 있다. 그러면 “왜 이럴까?” “이게 뭡니까?”가 아니라 “다음엔 또 어떤 놀라운 일을 하나님께서 하시려나?”라고 다음 연속극이 기대되는 것보다 더 기대 되는 신바람 나는 신앙생활을 하게 될 것이다. 아멘!
더 나아가서는 우리 주변 사람들에게 담대하게 복음을 증거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주인공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