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 8:16-252012021533날자: 2012년 2월 15일 수밤
제목: 책망의 대상이 아니라 칭찬의 대상이 되려면
본문: 누가복음 8:16 – 25
1. 요즘 나의 삶은 천국인가? 지옥인가?
사람은 환경을 떠나서 살 수 없다. 그 환경은 편안하고 좋은 환경도 있고, 고통과 절망과 두려움, 가난의 힘든 환경도 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후 인간에게 주신 특권은 ‘동산’(현실)을 다스리고 지키는 것이다. 그것을 밥으로 이용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출애굽한 일세대들은 열 정탐꾼이 이야기를 듣고는 기절초풍했다.
‘그 땅을 탐지한 자 중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그 옷을 찢고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일러 가로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 하나 온 회중이 그들을 돌로 치려하는 동시에 여호와의 영광이 회막에서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나타나시니라’(민 14:6-9)
우리는 어떤가? 지금의 현실에 대해서 밥으로 이용하며 천국생활을 누리고 있는지? 아니면 생지옥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며 주님께 칭찬받는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살펴 보고 그 교훈을 우리의 삶에 적용하도록 하자.
2. 하나님 나라
2.1. 더욱 부요해 질자와 가난해 질자가 있다(16-18)
이 말씀은 앞의 씨 뿌리는 비유에 대한 연장으로 듣는 것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강조하신 것이다(18). 지난 주일날 같이 증거 받았던 씨 뿌리는 비유에서 말씀을 나눈 것처럼 하나님 나라의 비빌을 아는 것은 주님이 허락한 자들만 깨닫도록 하셨다는 사실이다. 이어서 예수님은 등장하는 등불의 비유, 가족에 대한 이야기, 풍랑을 잠잠케 하시는 기적을 통해 언젠가는 이 모든 것이 밝히 드러날 때가 있음을 말씀하셨다.
등불 비유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은 ‘드러나는 데’ 목적이 있음을 말씀하셨다. ‘하나님 나라의 비밀(뜻, 10절)과 예수님의 정체(25절)’도 드러내는 데 목적이 있음을 말씀하셨다. 하나님 나라의 완전한 모습을 명백히 드러내실 때가 있다는 것이다. 등불을 켠 사람은 등불을 숨겨 놓지 않고 비추듯이 말씀을 듣고 이해한 사람은 행동으로 나타내야 함을 강조하셨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의 비밀이 잘 드러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말씀(복음)을 깨닫고 유익을 먼저 얻고, 남들에게도 그런 유익을 끼칠 자격을 구비하게 된 자들은 자기들이 “불이 켜진 등경”이란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이자들이 바로 여기에 있는 우리가 아닌가요? 따라서 우리는 착한행실과 전도를 통해서 우리의 불빛을 퍼지게 해야 한다. 왜냐하면 “등경”을 “그릇으로 덮어두거나” “침상 밑에 두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16절). 만약 이렇게 하면 모든 것이 다 드러나는 그 때에 18절의 말씀과 같이 더욱 받아서 부요해질 것이며, 만약 그렇지 않으면 있는 것까지 다 빼앗기는 책망의 대상, 가난한 자가 될 것을 경고하셨다.
또 우리가 항상 조심할 것은 지금 당장은 “은밀히” 되었고, 보이지 않는 샘에서 솟아났던 일도 머지않아 “모든 것이 다 드러나서 알려질 것”을 예상해야 한다(17절). 우리 주님이 우리에게 각양의 재능을 주신 것은 묻어두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드러내도록 하기 위해서 주었다는 사실을 항상 명심하라. 우리에게 주신 달란트와 은혜들을 밝히지 않으면, 책망의 대상이 되어 영원토록 주신 달란트는 빼앗기고 말 것이다. 아멘!!
따라서 우리는 이 말씀을 경청하고 그 가르침에 주의한다면 훨씬 더 많은 것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건성으로 말씀을 듣고도 이해하는 줄로 착각하고 세월 다 보내고 나면 가진 것까지도 다 잃어버리게 된다는 경고를  항상 유념(留念)하도록 하라.
2.2.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가 참된 가족(19-21)
예수님은 새로운 인간관계, 가족관계, 공동체를 이루게 하셨다. 예수님이 오셔서 보여 주신 하나님 나라는 혈연이나 혈통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行)하는 거룩한 백성이 모인 영적인 공동체이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의 가족 기준은 말씀을 듣고 ‘혈연’이 아니라 ‘순종’이 아버지의 자녀 됨과 가족 됨의 기준이다.
따라서 예수님은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사람이 하나님 나라를 이해하는 참된 가족이라고 보셨다. 마가복음 3:21에 보면 예수님의 가족들은 예수님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우리를 가족으로 삼아 주셨다.
이렇게 예수님이 자기의 가장 가까운 인척보다도 말씀 순종하는 자를 더욱 귀히 여김으로써 자기의 제자들에게 보여 준 본(19-21절)을 따라서, “말씀을” 신실하게 “듣는 자”임을 스스로 입증하는 자들에게는 커다란 격려와 소망의 말씀을 해 주신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만난 현실에서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가는 길은 십자가의 길이다. 그래서 바울은 다음과 같이 고린도교회에게 권면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고후 4:16-18)
2.3. 믿음 없으면 책망의 대상이 된다(22-25)
2.3.1. 풍랑을 잠잠케 하신 예수님(22-24)
22절 이하의 말씀은 여러 기적들을 통하여 자신의 왕권이 자연계와 영계까지 미치고 있음을 선포하시는 장면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호수 저편’(26절, 거라사인의 땅)으로 건너가자 하셨다. 그곳은 이방인들이 살고 있는 부정한 땅이었다. 예수님은 풍랑 속에서도 곤히(깊이) 잠드실 만큼 지쳐있었지만  여행 중에도 피곤을 잘 푸는 것은 지혜이다.
 광풍의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거기로 가셔야 할 이유가 있었다. 악한 귀신에 유린당한 한 사람(27절)을 구원하시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예수님의 명령을 따라서 순종하며 가는 제자들이 거친 풍랑을 만났다. 갑자가 큰 풍랑을 만난 제자들은 주님이 함께 계신 것도 잊고 ‘주여! 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라고 외쳤다. 이 때 주님은 거친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심으로 잠잠케 하시며 하나님 나라의 권능을 보여 주셨다.
이 사건은 단순히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인 죄와 사망과 사탄의 권세를 제압함으로써 하나님 나라의 승리를 보여 주신 사건이다. 이는 예수님이 풍랑을 꾸짖어 굴복시키신 권세 있는 명령을 귀신을 내쫓을 때에도 사용하셨던 것(4:35)에서 알 수 있다.
2.3.2.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라는 질문으로 믿음을 확인하신 예수님(25)
예수님이 말씀하시니 바람과 물이 순종했다. 이것을 본 제자들의 반응은 어떠했는가(25)? 조금 전 피곤해서 쉬시던 연약한 인간의 모습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의 모습 앞에서 그 권세를 인정하고 무릎을 꿇어야 하지 않을까요? 제자들은 거친 바람과 물결 한복판에서 예수님은 천지와 흑암의 권세를 주관하시는 주이심을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었다. 그래서 광풍에 대한 그들의 ‘두려움’은 주님을 향한 ‘놀라움’(25절)으로 바뀌었다.
‘저가 뉘기에 바람과 물을 명하매 순종하는고’(25)
그리고 제자들은 ‘말씀 들음’이 ‘믿음과 순종’(21절)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신앙과 삶이 얼마나 무기력할 수 있는지도 깨달았을 것이다. 이를 위해 예수님은 풍랑을 잠잠케 하신 후 제자들에게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라고 질문하셨다. 이것은 제자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바라보게 하신 것이다. 그들에게 자신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요구한 것이다.
이를 통해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중요한 교훈은 주님과 동행한 때도 어려움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경우를 보라.
‘ 10 바로가 가까와 올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눈을 들어 본즉 애굽 사람들이 자기 뒤에 미친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고 11 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으므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뇨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내어 이같이 우리에게 하느뇨 12 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고한 말이 이것이 아니뇨 이르기를 우리를 버려 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뇨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출 14:10-12)
그러나 우리가 만나는 각종 풍랑은 오히려 평안할 때보다 주님을 배우는 좋은 기회이다. 나는 조금만 어려움이 와도 제자들처럼 ‘주겠나이다.’라고 죽는 소리를 하지 않습니까? 좌절 중에 있는 제자들에게 대한 주님의 책망을 보라. 우리도 책망의 대상이 되어서야 되겠는가?
같은 상황에서 모세는 다음과 같이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있었다.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출 14:13)
이 시간 이후로 우리는 아무리 험난(險難)한 삶의 폭풍을 만나 꼼짝 못할 때에라도 우리의 믿음이 흔들리지 않고 영계와 물질계를 주관하시는 주님만 바라봄으로 그의 은혜를 힘입어 넉넉히 승리하는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 지금 우리가 직면한 문제 속에서 불안해하고 한숨짓기보다는 이것이 주님의 능력을 새롭게 경험하고 내 믿음을 다시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도록 기도하라. 아멘!!
3. 듣고 깨달은 말씀대로 온전히 순종함으로 자신에게 맡겨진 본분을 잘 감당함으로 영원토록 부요하고, 하나님 아버지의 참 가족이 되며, 믿음이 있다고 인정과 칭찬을 받는 자가 되라!!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을 묵상할 때나 들을 때 말씀을 향한 주의 깊은 들음과 주님을 향한 깨어 있는 믿음을 달라고 기도하여 잘 깨닫는 자가 되어야 한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깨달은 말씀은 어떤 말씀이라도 즉시 온전히 주님 오실 때까지 순종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아무리 어려운 환경을 만나더라도 그런 때일수록 좌절 낙망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주님의 능력과 함께 하심의 역사를 경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믿고 끝까지 믿음을 지켜 나가야 한다. 그러면 주님은 약속대로 우리이 모든 환경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은총을 베풀어 주실 것이다. 또 너는 나의 참 가족이다라고 인정해 주실 것이다. 더 나아가서는 믿음을 지키느라고 수고한 너는 나의 모든 소유를 영원토록 다 맡아 누리라는 칭찬의 대상이 될 것이다. 소유의 하나도 빼앗김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반드시 이런 주인공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아울러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하면서 어려울 때 본문에 나오는 제자들처럼 주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했던 것을 회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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