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개구리 신앙을 청산하라

2009.07.18 23:28

윤봉원 조회 수:1367 추천:49

룻 1:15-212009071901

날자: 2009년 7월 19일 주일오전
제목: 청개구리 신앙을 청산하라
본문: 룻기 1장 15절- 21절
나오미가 또 가로되 보라 네 동서는 그 백성과 그 신에게로 돌아가나니 너도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 룻이 가로되 나로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장사될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와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나오미가 룻의 자기와 함께 가기로 굳게 결심함을 보고 그에게 말하기를 그치니라 이에 그 두 사람이 행하여 베들레헴까지 이르니라 베들레헴에 이를 때에 온 성읍이 그들을 인하여 떠들며 이르기를 이가 나오미냐 하는지라 나오미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나오미라 칭하지 말고 마라라 칭하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나로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 너희가 어찌 나를 나오미라 칭하느뇨 하니라
1. 청개구리의 삶, 청개구리의 신앙?
이번 주간에는 비가 엄청나게 쏟아 부었지요? 그래서 옛날 우리 조상으로부터 전해 내려오던 전래 이야기 청개구리 이야기가 실감이 더욱 났습니다. 새끼 청개구리가 살아 있을 때는 어미 말을 잘 듣지 않다가 죽으면서 한 말을 듣고 그 말을 실행에 옮긴 다음에 비가 오면 떠내려간 어미를 생각하면서 울며 후회한다는 이야기가 예사롭지 않은 한 주간이었습니다.
또 한 가지 예화를 생각 해 보고자 합니다.
“이발사와 목사가 나란히 길을 걷게 되었다. 이발사는 하나님이 살아 계시면 이 세상이 왜 이렇게 악하고 가난하냐고 기독교의 모순을 늘어놓았다. 그러다가 어떤 사람이 머리가 길어 지저분한 모습으로 지나가는 것을 보고 목사가 왜 이발사가 있는데 저 사람은 머리가 길도록 있느냐고 물었다. 이발사는 물론 그가 내게 오지 않기 때문이라 하였다. 마찬가지로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을 찾지 않으니 그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가!”
이 두 이야기에서 우리가 우리 자신들을 돌아볼 것은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 없이 삼가 조심하여 잘 듣고 있는가? 그리고 그 말씀을 온전히 순종하고 있는가? 하는 것을 진단 해 봅시다. 이러한 질문에 우리는 자신들을 몇 점을 줄 수 있을까요?
노아 때 홍수가 왔을 때 방주 안 만들었다가 후회한 송장들, 만약 우리 자신들도 평상시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 없이 듣지 않았다가 우리의 생을 마감할 때는 후회하는 청개구리 신자들이 될 가능성은 없는지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청개구리 신앙을 청산하는 길을 찾아봅시다.
2. 룻의 선택
2.1. 타협과 타락보다는 죽음을 선택함
‘나오미가 또 가로되 보라 네 동서는 그 백성과 그 신에게로 돌아가나니 너도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룻 1:15)
이러한 나오미의 권면은 “너의 또래 집단인 동서(같은 민족, 같은 미망인)는 그녀의 백성에게, 그녀의 신에게로 돌아갔다.” 그러니 너도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는 것이었습니다. 룻의 동서 오르바가 나오미의 말을 듣고 자기의 백성(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방인), 자기의 신(이방신)에게로 돌아갔습니다. 이것은 나오미의 진심(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포기하는 것을 원치 않음)을 이해하지 못한 청개구리 신앙과 행동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청개구리 신앙생활을 한 대표적인 인물로 발람을 꼽을 수 있습니다. 민수기 22장에 보면 모압 왕 발락은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하고 망하는 길을 알려고 많은 복술의 예물을 가지고 거짓 선지자요 술사인 발람을 초청하였다(민 22:7). 이 초청을 받은 발람은 하나님께 발락의 초청을 수락해도 되겠습니까? 라고 질문을 하였다. 이 때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 가지도 말고 그 백성을 저주하지도 말라.’(민 22:12)고 단호히 단대하셨다. 그런데 또 발람이 하나님께 가도 되겠나고 질문을 하였다. 그 때 하나님은 ‘그 사람들이 너를 부르러 왔거든 일어나 함께 가라. 그러나 내가 네게 이르는 말만 준행할지니라’(민 22:20)라고 하셨다. 이 말씀은 가라는 것이 진심이 아니었다. 그것은 21절 이하에 계속 나오는 대로 발람이 가는 길을 나귀가 반대를 한 것을 보면 더욱 분명해 진다. 그런데 이러한 반대에도 발람은 발락에게 갔다. 그로 말미암아 그는 나중에 칼에 죽임을 당하는 것을 인생을 마감했다(민 31:8). 이것이 청개구리 신앙의 대표적인 모델이었다.
청개구리 신앙의 걸음걸이 발람의 길을 오르바가 걸었던 것이다.
15절은 나오미가 룻에게 네 동서는 ‘어미 집으로 돌아가’(8)는 일차 권면에 돌아갔으니 너도 돌아가라고 권면을 거듭 합니다. 이 말은 “너의 신앙을 포기할 수 있느냐?” 하는 어머어마한 압력이었습니다. 따라서 나오미의 권면은 이미 룻이 신앙생활을 한다는 신앙적 배경을 깔고 있음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나오미의 권면에 룻은 다음과 같이 답을 합니다.
‘나로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장사될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와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룻 1:16-17)
룻의 대답은 자기 동족과 신을 포기하고 이방 땅에서 가난한 과부로 살아야 하는 고달픈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룻의 동서가 자기 신, 자기 백성에게 돌아간 것은 이와 같은 가난하고 고달프게 살아가느니 신앙을 양보하더라도 고향(친정)으로 돌아가서 좀 더 평안하고 부유한 삶을 사는 것이 낫겠다는 판단을 한 타협과 타락의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러나 룻은 하나님을 섬기고 시어미를 공경하기 위해서 타협과 타락의 길을 걷지 않고 생명보다 죽음을 택한 것입니다. 그는 시어미에게 헌신의 대가를 기대할 만한 것이 전혀 없었음에도 죽도록 충성할 것을 맹세한 것입니다. 이러한 인격의 모습을 예수님의 사활대속이라는 엄청난 희생을 통하여 구원받고, 눈동자 같이 지켜 주시고 인도하시고 양육하시는 하나님의 무한한 사람에 빚진 자 된 우리 자신들에게서도 발견할 수 있는지요? 아니면 자기 민족, 자기 신에게로 돌아간 룻의 동서와 같은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지요?
이상에서 우리가 정리해 볼 수 있는 교훈은 룻의 동서의 선택은 신앙적으로 퇴보하는 말은 듣지 말아야 하는데 들은 것입니다. 그러나 룻의 선택은 신앙적으로 퇴보하고 타락하는 길을 걷지 않으려면 희생과 고생이 따르더라도 하나님의 뜻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이라면 예수님처럼 십자가를 지는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과연 룻은 예수님의 조상이 될 자격을 갖춘 아름다운 인격의 소유자였습니다. 우리도 룻의 동서와 같은 선택을 하며 살지 말고 룻과 같은 선택을 하며 남은 평생 살아갑시다.
2.2. 말과 처우(處遇)에 상처받지 않음
룻이 워낙 강력하게 나오니까 시어미는 그의 결정을 막지를 못했습니다.
‘나오미가 룻의 자기와 함께 가기로 굳게 결심함을 보고 그에게 말하기를 그치니라’(룻 1:18)
이에 두 사람은 이제 시어미의 고향인 베들레헴에 도착했습니다(19). 이에 그 동리의 아낙네들이 나오미를 맞으며 ‘이가 나오미가 아니랴?’ 하고 반가워서 아는 척을 했습니다. 그 때 나오미는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을 합니다.
‘나오미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나오미라 칭하지 말고 마라라 칭하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나로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 너희가 어찌 나를 나오미라 칭하느뇨 하니라’(룻 1:20-21)
나오미의 이 말은 언 듯 보면 참으로 신앙 없이 하나님께 대한 불신의 말로 들립니다. 그러나 이것을 깊이 명상하면 명상할수록 나오미가 베들레헴 여인들에게 한 말은 애가(哀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번에 우리가 예레미야 애가를 묵상하면서 예레미야 선지자가 예루살렘성을 위한 한 없이 눈물 흘리는 모습을 묵상했었지요. 나오미도 20-21절의 말을 통하여 하나님을 향한 탄식을 합니다. 삶의 문제를 진지하게 하나님의 문제로 씨름하는 이들은 자신의 문제를 하나님께 돌리게 되는 것이다. 나오미는 깊은 고민과 어려움에 빠져 있습니다. 그러기에 나오미는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이다. 나오미의 말은 겉으로 보기에는 비난과 탄식으로 보이지만 그렇게 보기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회복된 단계는 아직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두 사이의 중간의 단계로 보입니다.
이러한 나오미의 애가 속에 숨겨져 있는 룻의 반응을 저는 묵상해 보았습니다. 우리 인간을 즐겁게도, 괴롭게도 하시는 이는 전적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이 나오미를 비게 돌아오게 했다고 나오미는 말을 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나오미의 말을 저는 수긍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나오미가 사용한 ‘비어’ 돌아오게 했다는 말에서 ‘비어’는 “공허하게, 헛되이, 쓸데없이”와 같은 의미가 있는 단어입니다. 즉 그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이 텅 빈 상태로 돌아온 거지 중에 거지라는 것이지요. 과연 그렇습니까? 제가 볼 때는 그 어떤 재산과 명예와 소유보다도 탁월한 신앙의 소유자 룻과 함께 돌아왔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에게 하나님은 룻을 붙여 주셨습니다. 그런데 나오미는 이것을 간과(看過)한 것으로 보입니다.
문제는 이런 말을 들은 룻에게 저는 초점이 맞춰집니다. 시어미의 말을 들은 룻은 얼마나 화가 났을까요? 자신은 가난과 희생, 목숨을 잃는 경우가 있더라도 시어미를 봉양(奉養)하고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지키려고 같이 걸어왔건만 그것을 전혀 몰라 주는 시어미의 이야기를 듣고 얼마든지 시험에 들만하지만 그러한 모습은 본문에서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만약 우리가 룻의 처지에 있었다면 시어미에게 “저는 사람도 아닙니까? 제가 돈보다 못합니까? 시어머님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전적 무지무능하자로 보입니까?(나중에 시어미를 위해서 이삭을 주어서 양식을 봉양하였다.)” 등등의 섭섭한 말을 쏟아낼 만도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룻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다시 한 번 더 생각해 봅시다. 우리 자신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내 딴에는 가정과 교회와 또 다른 사람을 위해서 엄청난 희생을 각오하고 고생길을 가고 있는데 상대방이 그것을 전혀 몰라 줄 때 섭섭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섭섭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면 그 섭섭한 감정이 얼마나 갑디까? 하루, 이틀, 일주일, 한 달, 일년, 아니 지워지지 않던데요라고 말할 수 있지 않습니까?
룻은 섭섭한 감정을 전혀 드러내지 않고 끝까지 하나님과 시어미에 대한 사랑과 정절을 지켰습니다. 할렐루야! 참으로 아름다운 인격입니다.
3. 청개구리 신앙 동서의 길을 버리고 룻의 길을 평생 걸어갑시다!!
룻의 동서 오르바는 청개구리 신앙생활을 한 대표적인 모델이 되었다. 그러나 룻은 우리에게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부모 공경을 위해서 타협과 타락, 평안 길 대신 암담함과 죽음을 선택한 신앙의 정절을 보여 주었다. 그는 시어미가 하는 말과 처신에 대하여 얼마든지 섭섭하게 생각하려면 할 수 있었음에도 상처받지 않고 끝까지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사랑의 실천을 계속하였다. 이러한 그의 인격은 청개구리 신앙의 인격이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조상이 될 만한 충분한 자격을 갖춘 것이었다. 참으로 그의 인격은 예수님을 닮은 순결하고도 정결한 인격이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상과 같은 룻의 인격을 보여 주시면서 무엇을 기대하실까요? 우리도 우리가 신앙생활을 해 나가면서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사랑, 이웃 사랑을 실천하기 위한 길을 선택하고 걸어가는 길이 우리의 계산에는 비록 험하고 가난하고 절망스런 길처럼 보일지라도 룻의 동서처럼 타락과 타협의 길을 걷지 말아야 합니다!!
룻처럼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기를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사랑하신 그 사랑의 하나님, 역사를 주관하시면서 우리가 신앙의 정절을 지켜나가기만 하면 의식주의 문제는 온전히 알아서 책임져 주실 줄 믿는 믿음을 견지하도록 합시다!!
그리하여 룻이 선택한 신앙의 길을 걸으려고 가난과 죽음을 선택하며 살아갑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말과 처우로 말미암아 평생 상처받지 않는 사람이 됩시다. 룻의 생애를 책임져 주신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과 행동을 다 아시고 책임져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믿음의 길을 걸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를 날리며 다른 사람 구원의 유익을 풍성하게 끼치며 살아가는 주인공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인공 되세요.
청개구리 신앙, 타협과 타락의 길을 걷지 맙시다!!
가난과 죽음을 선택합시다!!
다른 사람의 말과 처신으로 말미암아 상처받지 맙시다!!

셀 모임 나눔 제목.
☞ 본문(룻기 1:15-22)에서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⑴ 우리가 만나는 다양한 현실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느냐? 자기중심, 물질중심, 환경 중심으로 사느냐? 결정할 기회를 주시는 분.
⑵ 하나님 중심으로 하나님 바라보고 살아갈 때에 나오미에게 룻이 섭섭한 소리를 들은 것처럼 섭섭한 말과 대우를 받도록도 하시는 분.
☞ 내게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 어떤 현실 상황에서 선택할 때에 자기중심적인 계산을 버리고, 룻처럼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길을 선택하며 살아가라!!
☞ 신앙생활 하면서 어떤 말을 듣더라도 청개구리 신앙의 길을 걷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순종하는 룻과 같은 아브라함 후손의 길을 걸어가라!!

* 윤봉원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9-07-21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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