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족에 대하여!

2003.04.09 16:24

윤봉원 조회 수:1355 추천:151

빌 4:113003040933날자: 2003년 4얼 9일 수밤
제목: 만족에 대하여!
본문: 빌립보서 4장 11절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라

1. 자족하기를 배운 바울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라”하는 이 말은 “어떤 형편에 처하든지 나는 자족해야 한다고 들었다”라고 말하지 않고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라”라고 말한다. 듣는 것과 배우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이다. 음식을 먹는 것과 소화하는 것은 별개의 일인 것과 같다.

2. 불평하지 말라

우리도 어떤 형편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이 있으면”하고 만족해 할 수 있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불만 불평은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와 사랑을 잊어 버리고 마귀가 시키는대로 종이 되어서 하고 있는 것이다.

불만을 품는 사람은 자기가 하나님을 위해 하는 모든 일은 너무 많다고 생각하고 하나님이 자기를 위해 하시는 모든 일은 너무 적다고 생각한다. 우리 믿는 성도들이 빠지기 쉬운 죄 중에서 불신앙과 조급증으로 인하여 죄를 짓기 쉬운 것도 더물다. 만약 사람들이 불만과 조급증으로 하나님께 대든다면 그 사람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라는 성경을 믿지 않는 다는 증거이다.

그래서 성경에는 “불평하여 말라 행악에 치우칠뿐라”(시 37:8)고 말씀 하셨다. 투정부리던 요나는 “하나님이 요나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 박 넝쿨로 인하여 성냄이 어찌 합당하냐 그가 대답하되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합당하니이다”(욘 4:9)라고 죄를 짓고 말았다.

옛청교도 중에 토마스 왓슨은 “마귀는 정욕과 불만의 땔감에다 불을 질러 놓고 그 다음 그 불에 자기 몸을 쬔다”라고 하였다.

주님이 우리를 고난 스럽게 하는 것은 우리의 인격으로 하여금 더욱 풍요롭고 영광스런 사람으로 만들기 위한 연단의 과정일 뿐이다. 그 비중이 크면 클수록 영광은 터 큰 영광과 풍요로 우리에게 안겨줄 것을 믿어야 한다.(다니엘, 요셉과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많은 순교자들의 예)

우리는 “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시니”라고 고백한 다윗의 말처럼 보배로운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께 직접 연결되었고, 하나님의 것으로 살아가며 살 수 있고, 또 하나님의 것을 활용하여 만물을 섬기며 본능적으로 살아 갈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심으로 만족하는 것을 본능적으로 하기까지 자라야 하는 것이다.

3. 감사하며 만족할 수 있는 이유

1) 사활의 대속의 은혜

우리의 조상 아담하와로 인하여 우리는 영원히 죽었던 자들이요, 마귀와 사망과 지옥에 처한 만물보다도 비교 할 수 없이 타락하였고, 불쌍하고 가련한 자들이었던 우리들인데 독생자 예수그리스도의 사활의 대속의 은혜를 통하여 다시 보배로운 믿음을 소유한 자들로 만들어 주심에 입이 만개가 있어도, 영원토록 찬양하여도, 감사하여도 부족한 우리들이다.

2) 하나님 자체의 인격과 섭리

하나님 자체가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신 분을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로 모시게 됨을 생각 할 때에 만족이 되어지는 것이다.

창세기 48장 15절에 요셉에게 축복하면서 “나의 모든 삶과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이라고 고백한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 자신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풍족하게 공급해 주셨음에, 잠들도록 해 주심에, 온갖 침해자들로부터 보호 해 주심에 우리는 감사하며 만족해 해야 하는 것이다. 이 사실을 깨달은 호세아는 “내가 즐거이 저희를 사랑하리니”라고 고백한 것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구원의 은혜를 입혀 주신 모든 구원의 사슬을 연결한 연결 고리마다 값 없는 은혜로 세공되어 있는 것이다. 만약 우리 하나님께서 은혜를 받을 자격이 있는 자들에게만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받을 수 있다고 한다면 인간 중에는 아무도 받을 자격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인자하심이 후하시고,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긍휼과 자비를 우리는 감사함으로 받고 살아 왔고, 살아 갈 수 있음에 만족하며 감사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3)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심

바울이 본문에서 “내가 궁핍함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라”고 한 것은 비천에 처했을 때나 풍부에 처했을 때나 하나님이 함께 하실 때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있느니라”고 고백한 것처럼 형편의 좋고 나쁨이 바울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고자 하는 그 뜻을 가로 막을 수 없었고, 오히려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함께 하심으로 더욱 왕성하게 능력 있는 복음 전도 사역을 감당 할 수 있도록 해 주신 것을 체험한 바울이었다.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주를 의지하리이다”(시 56:3)라고 시편 기자는 말씀하였다. 믿음은 마음속의 두려움을 치유해 준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하나님으로 우리에게 하나님 되게 하는 요건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악을 우리에게 유익이 되도록 돌리실 것이다.

바울에게뿐만 아니라 요셉의 징역살이, 요나의 물고기 뱃속, 모세의 40년간 광야 생활, 노아의 120년간 사람들에게 왕따 당한 것, 루터, 칼빈에 대한 천주교의 박대, 손양원, 주기철 목사님에 대한 핍박이 그들의 신앙을 성장시켜 주고 빛나게 했지 가로막지 못하도록 하시며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섭리하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셨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편 144편 15절에 “이러한 백성은 복이 있나니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백성은 복이 있도다”라고 말씀 하신 것이다.

4. 바울과 같이 자족하며 사는 자가 되도록 자라 가자

바울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라”라고 고백 할 수 있었던 것은 들어서가 아니고 본인이 실질적으로 순종의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를 경험하고 배워서 고백 할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도 우리가 만난 현실에서 영감과 진리를 따라 청종함으로 믿음의 실상을 점점 체험하여 감으로 자족하며 살아가는 자로 자라기를 소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림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자들이 되도록 충성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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