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은 양을 찾아 나서는 주님

2013.04.28 10:13

윤봉원 조회 수:614 추천:70

눅 15:1-713-04-28 주전

날자: 2013년 4월 28일 주일오전
제목: 잃은 양을 찾아 나서는 주님
본문: 누가복음 15장 1절∼7절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원망하여 가로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 비유로 이르시되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를 잃으면 아흔 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도록 찾아 다니지 아니하느냐 또 찾은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았노라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 하리라
1. 나는 불신자들을 어떤 심정으로 상대하는가?
우리는 이 땅에 살아 있는 동안은 계속해서 사람을 상대하며 살아간다. 그런데 우리가 상대하는 사람들 중에는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를 믿어 구원받은 사람도 있고,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도 있다. 그런데 이 중에서 구원을 받지 못한 불신자들을 상대할 때 우리는 어떤 심정으로 상대하는가를 돌아보자.
우리는 대부분 그들을 상대할 때 단순한 부모로, 친구로, 이웃으로, 때로는 원수같이 여기고 살아갈 것이다. 아니면 나의 이용물로 삼아서 그들을 이용해서 나의 욕심 성취를 위해 상대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다. 처녀는 애인을 한 명만 안 사귀고 셋을 사귀는데 하나는 자신과 돌아 줄 사람, 또 하나는 자신에게 용돈을 대 줄 사람, 또 한 사람은 앞으로 결혼할 사람. 그래서 이런 처녀라면 겉은 사람이지만 속은 흉악한 짐승보다 못한 사람이 할 수 있을 것이다. 혹시 우리 중에도 다른 사람을 사귀거나 상대할 때 나의 욕심성취의 대상으로 삼고 상대하지는 않는가?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이 종종 “예수 믿는 사람들이 안 믿는 사람보다 더 흉악하다.”는 욕을 얻어먹기도 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까지 상대한 이 방법이 과연 성경적인지? 올바른 방법인지? 앞으로는 어떻게 상대해야 할 것인지를 오늘 말씀을 통해서 살펴보도록 하자. 그리고 그 교훈을 우리의 사람 상대법의 기준으로 삼아 적용시키도록 하자.
2. 예수님은
2.1. 세리,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고 교제하신 분.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원망하여 가로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1-2)
본문에 나오는 바리새인들은 아주 신앙에 독실한 사람들이다. 또 서기관은 성경을 잘 알고 성경 가르치는 선생님들이다. 이들은 믿는 사람들 중에 특별히 잘 믿는 사람으로 자타가 인정을 하고 또 이 서기관은 자기들이 성경을 잘 아는 아주 성경에 능한 성경 선생님들인 줄로 그렇게 자타들이 다 인정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예수님께서 세리들과 죄인들이 하나님 말씀 들으러 오는 것을 영접하고 같이 하나님의 도리를 전하고 그 진진하게 서로 신앙 교제와 전도하는 것을 보고 조롱을 했다. 어떻게 저 거룩하다고 하는 선생님이 저 죄인들하고 세리하고 저렇게 마구잡이 교제를 하고 또 먹고 마시는 저런 일을 하느냐고 비아냥 그렸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하신 것이다. 이 비유는 예수님의 심정은 어떠한 심정이며 또 예수님은 어떻게 역사하시는가 하는 것을 비유로 가르쳐 준 것이다.
세리들과 죄인들이 예수님에게 나아온 것이나 또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거게 대해서 논평한 것이나 이런 것이 우연히 이렇게 만나져서 그런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이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이것은 그때에 된 것이 아니고 영원 전 택한 자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예정하실 때에 이 예정 순서에 들어간 것이 때가 되매 예정하신 그대로 이런 사람들이 있게 됐고 그런 분위기가 생겨지게 됐고 이렇게 그런 형편이 이루어진 것이다. 아멘.
우연히 어떤 사건이 일어나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확정 지워야 한다.
이 이루어진 것을 영원 전 하나님의 예정에서 시작되고 또 예정에서 시작된 것이 하나님의 창조로 이런 역사가 존재하게 됐고 또 하나님의 섭리로 이런 모든 운동들과 순서들이 이루어지게 된 것인 것을 우리는 성경으로 알고 믿는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나타나서 세리와 죄인들을 훼방하고 ‘주님이 저와같이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고 영접한다’ 이런 분위기 조성된 것이 이것이 우리에게 구원 도리를 가르치시기 위해서 영원 전 하나님이 예정하신 그대로 이 사람들을 하나님이 만드셨고 또 그때에 회집을 했고 또 그때에 죄인들과 세리들이 주님 앞에 나아오게 하셨고 또 그것 보고서 바리새 교인들과 서기관들은 조롱을 하고 훼방을 했고 이게 전부 다 하나님의 절대 예정대로 되는 것이다. 이것이 구원 역사이다.
그러면 왜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과 율법 전문가들이 서기관들에게 욕을 얻어 먹어가면서도 세리, 죄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시고 교제를 했을까? 다음의 비유 말씀을 통해서 그 목적을 살펴보자.
2.2. 죄인 한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해 찾아 나서시는 분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 비유로 이르시되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를 잃으면 아흔 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도록 찾아다니지 아니하느냐 또 찾은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았노라 하리라“(3-6)
예수님은 이런 분위기를 조성하시고 그 분위기에서 잃은 양 비유를 말씀하셨다. 잃은 양 비유 말씀하신 것은 이것은 그때에 그 형편 사정을 보고 거게 따라서 적당한 적응으로 잃은 양 비유를 하셨는가? 주님의 관심은 잃어버린 양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주님은 백 마리 양이 있는데 한 마리를 잊어버리니까 그 한 마리를 찾으려고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서 한 마리 찾도록 찾기까지 노력했다, 열심히 노력했다 하는 이것이 예수님의 그 심정과 당신의 활동을 보이신 것이다. 당신의 심정은 아흔아홉 마리 있고 한 마리 하는 그까짓 거야 뭐 아흔아홉 마리 있으니까 한 마리 그거야 있으나 없으나 이렇게 여기지 않으시고 잃은 양 한 마리에 대한 관심이 우리 안에 들어 있는 아흔아홉 마리에 대한 관심보다도 관심이 더 뜨겁고 크다 하는 요것을 여기에서 우리에게 알려 준다.
그러면 예수님이 말씀하시고 관심이 집중된 잃은 양은 어떤 사람을 가리킬까?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예수님이 창세전에 택한 자들은 예수님의 대속의 피공로로 다 값 주고 사서 완전히 주님의 것이 돼서 주님의 양이다. 그러기 때문에 잃은 양은 택함을 받은 자로서 아직까지 중생되지 못한 그 모든 사람이 다 잃은 양이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잃은 양이다.
이러니까 예수님은 이미 정상적으로 예수를 잘 믿고 있는 의인 아흔아홉 사람보다 아직까지 구출하지 못한, 아직까지 이 복음을 그가 깨닫지 못하고 알지 못해서 주님을 믿지 못함으로 구원을 받지 못한 그 한 사람에게 대한 관심이 아흔아홉 사람에게 대한 관심보다 더 크다, 관심이 더 크고 더 뜨겁다 하는 요것을 요게서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의 택한 백성이 아직까지 주님을 찾지 못하고 악령의 사망의 감옥 속에 들어가서 살고 있는 그 모든 사람들이 잃은 양이다. 주님은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이제 이러니까, 물론 예수 믿는 사람들 중요하지마는 믿는 모든 사람 그보다도 택한 자로서 아직까지 주님을 찾지 못하고 믿지 못하고 있는 그 사람에게 대한 관심이 이미 믿는 사람의 모든 전부에 대한 관심보다 그 한 사람의 관심이 크다 하는 요것을 여게서 아는 것이 우리에게 중요한 첫째 진리이다.
그렇다면 주님의 심정과 관심과 노력이 잃어버린 양에게 있다면 그의 제자의 길을 가는 우리도 잃어버린 양에게 기울여져야 정상인 것이다. 아멘!!
성도들 중에는 복음을 전해서 안 믿는 사람을 믿도록 이래 전도하는 사람이 있다. 그저 밤낮 믿지 않는 사람들을 예수님 믿도록 만들어야 되겠다. 저 사람을 어쩌든지 전도해서 회개시켜 예수 믿도록 만들어야 되겠다 하는 그 심정을 가진 그 사람이 있다. 지금 양을 찾는 이는 목자인데 목자는 예수님이시다. 그렇게 믿지 않는 사람에게 관심이 있는 그 관심이 바로 예수님의 관심이오. 자기 속에 예수님이 내주하셔 가지고서 역사하시는 것이다. 이런 사람이 우리 교회에는 몇 사람이나 있을는지? 우리 자신은 이런 심정을 가졌나요?
그런데 교회 안에 어떤 사람은 전도하는 사람이 전도해 오면 상처 주고 교회 밖으로 쫓아 보내는 사람도 있다. 주님과 같은 심정을 가진 사람들이 제가 전도해 놓고 박살내고 전도해 놓고 박살내고 하는 사람도 있다. 우리는 절대로 이런 종류의 사람이 되면 안 된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주님의 심정을 가지고 전도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동행은 항상 같이 한다. 하나님의 능력이 같이 하고 하나님의 능력이 그에게 특별히 은혜 주는 것을 우리가 볼 수 있다. 그런 사람들이 대개 건강합니다. 그런 사람의 심령에 평강이 늘 계속한다.
그리고 주님은 잃은 양을 찾으면 ‘어깨에 메고 돌아온다.’ ‘어깨에 메고 돌아온다.’는 것은 귀중히 여기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이것은 그 찾은 양을 귀중히 여겨서 찾은 양을 위해서 자기의 노력이나 희생이나 그런 게 생각되지 안하고서 찾은 양, 한 사람이 예수 믿게 될 때에 그 믿는 그 사람을 위해서 자기의 수고나 모든 것이나 아끼지 안하고는 안 되는 것이다.
자존심도 아끼지 안하고 교만도 아끼지 안하고 무슨 자기의 이해 문제 그런 것도 생각지 안하고 자기가 평소에 생각지 못할 만큼 그 사람이 얻은 양 하나를 위해서 자기의 마음이나 몸이나 정신이나 자기의 물질이나 아낌없이 기울여지고 투자되는 그것을 볼 것이다.
우리도 이제부터 예수님께서 택하심으로 그의 백성 삼으시고 피흘려 구속해 놓은 자들, 그러나 아직까지 구원함을 얻지 못해서 죄와 사망과 마귀아래 사는 자들, 아직도 점을 보는 것이나 굿을 하는 것이나 온갖 미신을 섬기는 풍속에 사로잡혀서 고통과 불안 가운데 살아가는 자들을 구원하기 위해 찾아 나서야 한다. 학교에서도, 직장에서도, 학원에서도, 거래처 사람들을 상대해서도 잃어버린 양을 찾아 나서도록 합시다. 이런자들의 발길이 아름답다고 사도 바울은 고백했다.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롬 10:14-15)
우리 모두 아름답고 사랑스럽고 은혜로운 발길이 되도록 하십시다. 이런 발길과 사람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3. 한 사람이 구원 얻고 돌아오면 엄청나게(무지무지) 기뻐하셨다.
‘ 또 찾은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았노라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5-7)
예수님은 잃어버린 택한 자녀가 주님의 품으로 돌아왔을 때 얼마나 기뻐하셨는가 하는 것을 5-7절에 말씀하셨다.
잃어버린 양을 찾았을 때 어깨에 메고 와서 모든 이웃 사람과 벗들을 불러서,‘야, 오너라. 내가 잃은 양을 찾았다. 같이 기뻐하고 즐거워하자.’ 하면서 부른다 하는 요 비유가 뭐인가? 요것은 자기가 잃은 양을 찾아서 구원했을 때에 그때에 자기에게 솟아오르는 그 기쁨은 다른 사람이 좋아할지도 안 할지도 모르면서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기뻐하는 그 기쁨이, 이 기쁨은 다른 사람도 기뻐할 것이라,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고 모든 사람이 내게 대해서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이라 하는 것이 믿어진다는 말이오. 그런 경험 있습니까? 그런 경험이 있어요? 이거 자기가 실지로 느끼지 못하고 이래 하면 이것은 다 헛되다.
자신의 모든 것을 다 투자하고 희생하여 한 양을 찾았을 때 어깨에 메고 온다. 우리도 영적으로 깨어 있으면 자기 것을 다 투자하고 희생하면서도 그저 아까운 줄도 여겨지지 않을 때가 있다. 자신의 것이야 어찌 됐든 간에 그 사람 구원하기 위해서 앞뒤도 모르고, 아무것도 모르고 그 사람 구원하기 위해서 내 전력이 기울여지는 그것이 우리 자신이 아니라 우리 속에 주님이 계셔서 하는 것이다. 그게 주님이 하시는 것이다. 그게 주님과 동행이다. 할렐루야!!
그러면서 누가 다른 사람 기뻐할지 모르는데 기쁘고 좋아서 벙긋벙긋하며 그 기뻐하는 것 보면 다른 사람이 보고 저거 미쳤나? 왜 저 사람이 나한테 기뻐하지? 뭐 내가 기뻐할 게 뭐 있다고 나를 보고 뭐 기쁘고 즐거워 벙긋거려 쌓고 저래 쌓는가? 다른 사람이 미쳤다고 할 만큼 기쁘나 제 속에는 기쁨이 충만해서 모든 사람들이 다 기뻐하리라 하는 것이 믿어지고 제 기쁨이 모든 사람의 기쁨이 되리라 하는 그 기쁨을 점령하게 된다. 기쁨을 가지게 된다.
기쁨 가지는 그것도 제 기쁨이 아니다. 주님이 자기 속에 와서 주님이 기뻐하시는 그 기쁨이 자기 속에 와서 역사했기 때문에 독사와 시랑이 같은, 다른 사람 망하는 거나 좋아하고 복받으면 배가 아픈 그런 흉측한 살인자가 어찌 그리 다른 사람이 구원얻는데 기쁘고 즐거운가? 저만 기쁠 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기쁨을 품는다. ‘이 사람 자네 왜 그래 웃어 쌓고 기뻐 쌓노? 이 미쳤나, 이거? 요새 정신병이 걸렸나 미쳤는가보다.’ 미쳤는갑다 할 만큼 그 기쁘고 즐거움이 다른 사람에게 토하게 된다. 품어 내게 돼. 그것도 주님이 그 속에 내주하셔서 주님의 기쁨에 자기가 그게 나타내고 있고 같이 동행하는 것이다.
사도행전 1장 8절에 보면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권능을 얻고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말씀을 하시고 그 자리에서 주님이 승천하셨다. 요 말씀이 사람으로 말하면 유언이오. 주님이 지상에 계실 때에 최종으로 제자들에게 부탁한 말씀이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서 내 증인되어다오, 이 복음을 전해다오 하는 그것이 주님의 최종 유언의 소원의 말씀이다.
또 마태복음 10장 42절에는 보면 ‘누구든지 내 제자의 이름으로 소자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 대접하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제자 이름이 뭐입니까? 예수 믿는 사람, 예수를 전하는 사람이라고, 전도하는 사람이라. 제자 중 소자 하나, 예수를 전하는 중에 제일 못 전하고 제일 둔하게 전하고 아무것도 아니게 전하고 해도 저 사람이 주님의 복음을 전한다 하는 그 뜻에서 그 사람대접한 것은 냉수 한 그릇 대접한 것도 결단코 내가 상을 잃지 않겠다 말씀을 하신 것이오.
예수를 전하는 그것 때문에 자기가 대접한 것이라면 냉수 한 그릇 대접한 것도 결단코 상을 잃지 않겠다. 그러면 전도하는 것을 당신이 얼마나 기뻐하시며 얼마나 후대하고 계십니까?
제자의 이름으로 소자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대접한 것은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는 주님의 그 심정을 우리 속에 확정지웁시다.
3. 주님과 같은 심정으로 한 사람을 구원하려고 전부를 다 투자하고 전력 투구하라.
신구약 성경의 핵심은 형제 구원위해 전부 투자하라이다. 마태복음 28:18-20절에 ‘하늘의 권세와 땅의 권세를 다 내게 주셨으니 너희들은 모든 족속을 제자를 삼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들이게 분부한 말씀을 가르쳐 지키게 해라. 세상 끝날까지 나는 너와 함께 있으리라.’ 이러니까 이 복음 전도하는 데에는 하나님이 동행하신다. 하늘에 있는 권세와 땅에 있는 권세를 다 가지고 복음 전하는 자에게 세상 끝날까지 같이 하겠다 하셨다.
모든 계명은 주님이 우리를 사랑함같이 이웃 사랑하라. 주님이 우리 구원하시기 위해서 당신의 전부를 아낌없이 투자한 그와같이 우리들이 형제 구원을 위해서 전부 투자하는 요것이 전 신구약 성경이요 계명이다.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아버지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들이 내 계명을 지켜 내 사랑 안에 거하라. 내 계명은 내가 너희를 사랑해서 어떻게 한 것같이 너희들이 형제를 구원하기 위해서 어떻게 하는 이것이니라 말씀하셨다.
다른 사람의 구원을 손해 보이는 자는 그런 자는 저주를 받아야 한다. 다른 사람의 구원에 손해를 보여서 거게서 이렇게 저렇게 이간이나 붙이고 한 그런 거는 나중에 가서 하나님의 심판이 자는 줄 알아요? 비참해져요. 그러니까 그런 징계가 오기 전에 어서 우리가 다른 사람의 구원에 손해를 끼친 것은  회개를 해야 한다.
오늘 오후 예배 후에는 공원에서 장날 전도할 것이다. 차를 타서 섬기고, 요쿠르트를 나눠서 섬기고, 저는 사진을 찍어서 섬기도록 할 것이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오늘 주일부터 잃은 양을 찾아 나서도록 합시다.
그리고 우리 여기 결의를 해야 한다. 한 사람이 한 사람씩 인도하기로 작정을 합시다. 이것은 누가 시키나 안 시키나 죽을 때까지 주님의 심정을 가지고 잃어버린 양을 찾기 위해 나섭시다. 투자를 합시다. 그리고 찾았을 때는 같이 기뻐합시다. 남들이 보면 미쳤다 할 정도로 기뻐합시다. 아멘!!
그리하여 우리교회가 날마다 주님의 품으로 돌아오는 자들이 더해짐으로 기쁨과 잔치가 계속되는 교회가 되도록 합시다.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구속하신 주님과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 성도들과 진광교회를 보는 것 자체가 기쁘고 흐뭇하도록 합시다. 여기에 한 사람도 구경꾼 되지 말고 주인공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참조: 88101933.

 

* 윤봉원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3-04-28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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