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믿음이 있는가

2013.01.25 14:45

윤봉원 조회 수:622 추천:56

요 6:1-132013012002날자: 2013년 1월 20일 주일오후
제목: 내게는 믿음이 있는가?
본문: 요한복음 6장 1절 - 13절
1. 나는 주님을 몇 % 믿고 따르는가?
여기에 있는 우리는 모두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다. 이 사실은 우리 스스로가 봐도 다른 사람이 봐도 그렇게 인정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예수님의 인도와 명령을 몇 % 믿고 따르는 사람으로 보이는가? 다른 말로 하면 우리의 행동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인가? 내 경험과 지식과 가치관인가? 하는 질문을 하게 된다.
성경에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자신들의 생각과 가치관에 부딪히면 거역하고 불순종의 길로 걸어간 믿음 사람들의 이야기가 얼마나 많은가? 아브라함처럼 갈바를 알지 못하고라도 하나님의 뜻이요 명령이라면 믿고 순종한 사람은 많지 않다. 그들은 영원토록 부끄러운 증인으로 증인노릇하고 있음이 안타깝지 아니한가?
오늘 본문을 통하여 우리는 우리의 생명이요, 구주요, 삶의 이유와 근거가 되시는 주님을 몇 % 믿고 따르는 자인지를 점검해 보자. 또 온전히 믿고 따르지 못하는 자들은 왜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지? 100% 믿고 따르는 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지를 본문을 통해서 찾아보고 그 교훈을 우리의 삶에 적용하고자 한다.
2. 예수님은?
2.1. 자신을 따르는 자들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분(1-5)
‘그 후에 예수께서 갈릴리 바다 곧 디베랴 바다 건너편으로 가시매 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인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봄이러라 예수께서 산에 오르사 제자들과 함께 거기 앉으시니’(1-3)
예수님은 오병이어로 큰 무리를 먹이시는 표적을 통해 ‘생명의 떡’이시며,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로 자신을 계시하셨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기적에 관심을 갖고 그분을 모세가 예언한 바로 그 종말의 메시아라고 생각했다. 로마의 압제에서 건져줄 정치적 지도자로 잘못 알고 따랐다. 이렇게 예수님은 자신을 바로 알지 못하고 착각하여 갈릴리 바다 건너편까지 따라온 무리들을 향해 냉대(冷待)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보살펴 주시면 돌보아 주셨다.
‘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 하시니’(4-5)
예수님은 자신의 표적 행함을 보고 그의 말씀을 듣기 위해 찾아온 이들의 육신의 필요를 외면하지 않으셨다. 비록 정상적인 목적에 근거하여 따르는 자들이 아니더라도 그들을 문전(門前)박대(薄待)하지 않으셨다는 말이다. 이러한 모습은 내 생각과 다르고 내 의향과 다른 사람들을 일언지하(一言之下)에 거절하고 차갑게 대했던 우리의 모습과는 얼마나 많이 다른가?
또 이 장면에서 우리가 하나 더 알 수 있는 것이 있다. 예수님은 육신을 위한 떡을 제처 둔 채 영혼을 향한 근심만 하시는 분이 아니셨다. 물론 떡만을 위한 삶은 경계의 대상이지만 떡의 문제를 외면한 사랑을 강조하는 것에 대한 경종을 울려 주는 대목이다. 전도(선교)는 떡에서부터 말씀까지를 아울러야 한다. 만나가 진짜 양식이었듯이 오늘도 우리 사람들에게는 진짜 양식이 필요하다. 우리도 우리의 전도 대상자들과 이웃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삶을 힘써야 한다. 그것이 전도의 가장 기본방법임을 명심하라.
2.2. 현실의 모든 문제 해결책을 다 갖고 계셨다(5-6)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 하시니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 것을 아시고 빌립을 시험코자 하심이라’(5-6)
예수님은 ‘눈을 들어’(5) 그들의 주린 배만 보신 것이 아니라, 로마의 학정에 시달리면서 구원을 바라지만 제대로 인도해줄 목자가 없어, 그릇된 메시아 기대를 품은 채 표적에 의지하여 광야까지 따라온 불쌍한 영혼들을 보셨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들에게 지금 무엇이 필요한지 이미 알고 계셨다. 저녁이 될 때까지 끼니도 해결하지 못한 사람들을 그냥 흩어버리지 않으셨다(마 14:15).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는 말씀은 자조 섞인 한탄처럼 보이나 실(實)은 그것이 아니다. 곁에 모인 사람들의 작은 필요까지 외면하지 않으시는 긍휼과, 연약한 빌립이 확신 가운데 서기를 기대하는 심정을 나타내신 것이다. 그는 이미 지금의 상황을 해결하는 모든 문제의 해결책을 다 갖고 계시면서 제자의 믿음을 확인해 보신 것이다.
우리는 확정해야 한다. 우리가 만난 모든 상황, 현실을 만드신 주님은 그 상황의 문제 해결책도 다 갖고 계시다는 사실을!!! 우리의 모든 현실을 만들어 주시는 만주의 주요, 만왕의 왕이신 주님이 우리가 감당하기 어렵고 불가능해 보이는 다양한 환경을 만들어 주시는 것도 우리의 믿음이 있는가 없는가를 확인해 보시기 위하여 주신 현실이다.
따라서 진정으로 예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라면, 현실을 운운하기보다, 이미 해결책을 알고 계신 예수님을 의지하는 것이 먼저요, 믿음 있는 행동이다. 이것이 우리가 가야할 길이다.
“환경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믿음이 문제다.”
지금 우리에게도 신앙의 위기, 정치의 위기, 경제의 위기, 윤리의 붕괴 위기 등 많은 위기들 속에서 살아가지만 진짜 위기는 예수님께 대한 믿음 없음이 문제인 것이다. 주님은 우리의 필요를 아시고 또 채워 주실 수 있다는 믿음이 앞서야 한다.
2.3. 우리를 사용하셔서 역사를 일으키심(7-13)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찌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삽나이까’(7-9)
예수님께서 떡 구할 데를 물으시자, 빌립은 필요한 떡의 양을 말하고 안드레는 가지고 있는 떡의 양을 말함으로써 예수님의 질문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비난하고 불신했다. 그들의 계산은 예수님을 포함하지 않는 계산은 잘못된 계산이었다. 빌립은 떡을 살 돈이 부족하다고 대답했다. 그의 계산은 수치상으로 정확했을지 몰라도, 결과적으로 틀린 계산이었다. 이들의 주장은 상식에 근거한 말이요 외형적으로는 옳은 분석이요 맞는 말이다. 그들이 이렇게 주장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자기 앞에 계신 예수님에 대한 지식이 없었기에, 그들의 인식은 절망과 한숨과 포기요, 배고픈 이웃을 외면하는 지식이 되었다. 또 그들의 주장은 예수님께서 몰라서 물은 것이 아니라 할 일을 정해놓고 시험하신 것을 몰랐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주님께서 대답할 수 없는 인생의 질문을 하실 때가 많이 있다. 도저히 계산이 나오지 않는 일을 명령하시거나 따르라고 할 때이다. 교회를 보고 성도를 보면 빌립의 계산과 안드레의 계산법을 내세울 수밖에 없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런 환경과 질문을 하시는 것은 주님 자신이 대답임을 알게 하시기 위해서이다. 아멘!!
따라서 앞으로 우리는 우리 주변의 불쌍한 이웃 사람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그 방법은 주님에게 있다. 주님은 전능하신 분이시기에 그에게 불가능이 없다고 믿는 것이 신앙 안에서 합리적인 생각이다. 세상적인 판단 기준에 비추어 볼 때 합리적인 생각이라고 여기는 것이 실상(實狀)은 불신앙적이다. 주님을 바라보기보다는 빌립처럼 내 생각, 인간 계산을 먼저 내세우지는 않았는지 돌아보고 이번 기회에 이것을 완전히 청산하도록 하라.
지금 우리 앞에 놓인 문제는 무엇인가? 혹시 우리의 소유, 우리의 능력만으로 현재 상황을 판단하고 계산하지 않는가? 불가능한 것 같은 상황에서도 모든 것을 가능케 하시는 주님을 바라보라.
따라서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진리를 정립해야 한다. 믿음은 상식을 무시하지 않는다. 하지만, 상식에 머물지도 않는다는 사실이다. 믿음은 인간의 경험과 지식에서 나온 숫자 계산을 뚫고 나간다는 사실이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 확실하다면 우리는 계산기를 버려야 한다. 믿음은 현실을 바로 인식하는 눈일 뿐 아니라 현실 너머에서 시간 너머에서 영원에서 하늘에서 이 땅을 바라보는 주님의 안목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그리하여 주님이 역사하시니 모든 문제, 불가능한 문제가 다 해결 되었다는 사실을 항상 명심하도록 하자.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신대 그 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효가 오천쯤 되더라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은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고기도 그렇게 저희의 원대로 주시다 저희가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 두 바구니에 찼더라’(10-13)
예수님은 한 아이가 가진 떡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로 거기에 모인 모든 사람들에게 원하는 만큼 나누어 주셨다. 제자들은 부족한 돈과 음식에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지만, 예수님은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이 넘는 사람들을 풍족하게 먹이셨다. 예수님은 부족한 상태를 극복하시고 풍성하게 상황을 역전시키셨다. 할렐루야!!
우리 주님은 무(無)에서 이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시기에 우리가 가진 것이 아무 보잘 것 없는 것이라도 그것을 주님이 사용하시면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는 것을 교훈해 주시는 것이다. 우리가 가진 것 재능, 물질, 지혜, 시간, 사람이 비록 우리 눈에 보기에 미미하다고 주님까지 불신합니까? 주님이 쓰시고자 할 때 믿고 맡겨 그분이 사용하시도록 하라. 그러면 그것을 통하여 즉 우리와 우리가 가진 것을 사용하셔서 우리 주변 사람들을 풍족하게 먹이시고, 채워주시고, 행복하고, 만족하게 해 주시는 역사를 우리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아멘!!
3. 주님의 일에 계산대지 말고 순종으로 쓰임 받는 자가 되라!!
우리 주님은 오늘도 자신을 믿고 따르는 자들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분이시다. 우리가 만나는 모든 현실을 친히 만들어 주셨을 뿐만 아니라 모든 문제 해결책도 가지신 분이시다. 이러한 우리가 만난 우리의 모든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시되 우리를 사용하시기를 원하신다.
그럼에도 우리는 빌립과 안드레처럼 우리의 좁은 계산법으로 계산대고 따지고, 불신하고, 불순종하여 주님의 구원 역사를 가로막았던 모든 죄를 온전히 회개하도록 하라.
따라서 이제부터는 우리의 시각으로 현실을 보지 말아야 한다. 전적 주님의 시각으로 현실을 보는 믿음의 소유자가 되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이처럼 주님이 주님의 일을 하시며 쓰시고자 할 때 우리의 좁은 계산을 댐으로 불신하지 말고 순종으로 쓰임 받는 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제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믿음 없는 언행심사를 버리고 주님의 뜻과 그의 능력을 100% 신뢰하고 온전히 신뢰(信賴)함으로 우리도 주인공으로 쓰임 받고 우리로 말미암아 우리의 이웃도 주님이 역사하시는 놀라운 역사를 풍성하게 누리도록 하는 복의 근원, 구원의 근원으로 쓰임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윤봉원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3-01-25 14:45)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