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경건한 자의 결말

2012.09.19 17:15

윤봉원 조회 수:795 추천:75

욥 27:8-122012091933날자:2012년 9월 19일 수밤
제목: 불경건한 자의 결말
본문: 욥기 27장 8절 - 12절
사곡한 자가 이익을 얻었으나 하나님이 그 영혼을 취하실 때에는 무슨 소망이 있으랴 환난이 그에게 임할 때에 하나님이 어찌 그 부르짖음을 들으시랴 그가 어찌 전능자를 기뻐하겠느냐 항상 하나님께 불러 아뢰겠느냐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내가 너희에게 가르칠 것이요 전능자의 뜻을 내가 숨기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다 이것을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주 허탄한 사람이 되었는고
1. 성경적인 경건은 무엇인가?
1.1. 삶의 목적이 하나님을 위한 것이어야 함
우리 사람은 잠깐 보이다 없어지는 안개와 같은 나그네 인생이다. 그리고 예수님 재림 후에 심판을 맞을 우리들이요 그 후에 천국 갈 자들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인생을 어떻게 살다가야 할까? 사도 베드로는 다음과 같이 권면한다.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벧후 3:10-12)
종종 사람들은 어떤 분위기를 차분하게 하는 것을 경건하게 한다고 생각한다. 대표적으로 장례식장이나, 절간 등에서 쉽게 그 분위를 찾을 수 있고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뭔가 분위기를 들뜨게 하지 않고 마음과 정성을 다 기울이는 것 정도를 경건이라 생각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말하는 경건은 무엇일까?
첫째 경건은 목적이 하나님을 위해서여야 한다. 우리는 근본 그에게 지음 받았기 때문에 그의 것이다. 타락한 것을 그의 구속으로 또 값 주고 구속했기 때문에 그의 것이다. 영원히 그의 것으로 살 그의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나에게 하나님이 주신 법칙은 아무것도 위하지 말고 나는 그를 위해서, 아내를 사랑하는 것도 그를 위해서, 자식을 사랑하는 것도 그를 위해서, 상관을 존경하는 것도 그를 위해서, 그를 내 놓으면 아무것도 할 것이 없습니다. 전부가 그를 위해서 살아가는 것이 경건이다.
1.2. 방편은 그의 명령에 피동으로
그를 위한 것이 경건이라면 방편은 어떻게 해야 할까? 경건은 삶의 방편이 전적 그분 시키는 대로 피동되는 것이다. 그분 시키는 대로 하지 않고 그분 위한다 해도 하는 행동은, 방편은 다른  피조물이 시키는 대로 하면 그것은 경건이 안 된다.
1.3. 결과가 진리와 영감에 일치된 것
또 경건의 방편이 그분 시키는 대로 그에게 피동으로 했을 때 그 결과(結果)가 주의 뜻에 딱 들어맞아야 된다. 그분의 뜻은 성령의 감화 감동인 영감과 신구약 성경 진리에 딱 들어맞은 의가 돼야 된다. 우리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
이렇게 경건으로 사는 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항상 함께 해 주신다(시 23:4). 주님의 긍휼하심(시 31:7; 103:13-14; 히 8:12), 그리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시 91:15: 138:7)) 등이 모두 값을 따질 수 없을 만큼 귀한 은혜를 누리게 해 주신다.
그렇다면 이렇게 이 경건으로 일평생을 살다 간 사람이 있을까? 예수님은 일평생을 이렇게 사셨다. 그의 마음, 말, 행동, 삶의 전부를 경건으로만 살다 가셨다. 그래서 그의 생애는 금생 내생 가장 멋지고 아름다운 생애를 마치셨다. 아멘.
그런데 대부분의 인생을 경건이 아닌 자기 위하여, 자기 마음대로, 때로는 사람과 물질을 위하여 살다간 불경건한 사람들이었다. 그 결과의 대표적인 사례를 오늘 살펴보자.
 그런데 오늘 본문은 이 경건으로 살지 않는 욥의 친구들의 결말이 어떠한가 하는 것을 잘 보여 주는 본문이다. 그것을 살펴보고 그 교훈을 우리에게 적용하여(반면교사로 삼아서) 경건한 삶을 사는 주인공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불경건한 자의 결말
2.1. 그에게 아무런 소망이 없다(8)
‘사곡한 자가 이익을 얻었으나 하나님이 그 영혼을 취하실 때에는 무슨 소망이 있으랴’(8)
8절의 ‘사곡한 자’(“하네프”)는 “신성목하는 자” “불경건한 자”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이다. 이 말은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역할을 연기하는 자라는 뜻을 나타낸다. 즉 경건한 체 하고 성자인 척 하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그러한 겉 모습과 전혀 같지 않은 사람을 의미한다. 그래서 이들은 겉으로는 하나님의 자녀처럼 행동하지만 사실상 하나님의 적이다. 따라서 이들 사곡한 자를 “불경건한 자”로 정의하고자 한다.
‘불경건한 자’란 사실 욥의 친구들이 욥을 두고 한 말이다. 그러나 욥은 ‘온전한 믿음’(5)과 끝까지 공의를 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엄숙한 항변을 1-6절까지 했다. 그리고 그는 그의 친구들이 자신을 ‘불경건한 자’ 혹은 ‘위선자’라고 성토했을 때 느낀 두려움에 대해 7절 이하에서 솔직히 진술하고 있다. 이는 그가 불경건한 자와 위선자야 말로 사람이 처할 수 있는 가장 비참한 자리에까지 추락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불경건한 자’의 결말에 대해서는 빌닷과 소발도 소망(희망)이 없다고 말했다(8:13-14, 11:20). 욥도 여기에 동의하면서 불경건한 자의 희망은 그게 무엇이든 결국은 다 수포로 돌아갈 것이라고 한다. 그것은 마치 누가복음 12장에 등장하는 어리석은 부자의 운명과도 같은 것이다.
‘내가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에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슬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18-19)
그러나 이 부자의 희망은 하나님의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허무하게 끝나고 만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20절)
주님은 그 비유를 이렇게 마무리하셨다.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바로 이와 같으니라’(21절)
불경건한 자, 하나님에 대해 부요치 못한 자의 희망은 이렇듯 곧 절망이라는 것이다.
2.2. 환난 때에 기도 응답이 없다(9)
‘환난이 그에게 임할 때에 하나님이 어찌 그 부르짖음을 들으시랴’(9)
불경건한 자의 부르짖음은 아예 하나님 앞에 상달되지가 않는다. 왜냐하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는’(롬 8:26) 성령님이 함께 하시지 않기 때문이다.
또 그들과 하나님 사이에 죄와 허물의 장벽이 가로놓인 까닭이다.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심이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사 59:1-2)
물론 하나님 우리 아버지는 불경건한 자라 할지라도 회개하고 간구하면 그 간구를 받으시고 들어 주신다(사 1:18). 그러나 끝까지 회개하지 않고 삶을 고치지 않는다면 그는 더는 하나님께 은총을 얻을 생각을 말아야 한다. 하나님은 이미 마음에 죄를 품고(시 66:19), 혹은 귀를 닫은 채 율법을 듣지 않는 자들(잠 28:9 ‘사람이 귀를 돌이키고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가증하니라’(잠 28:9)
)의 기도는 접수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누누이 말씀하셨다.
심지어는 ‘가서 너희가 택한 신들에게 부르짖어 너희의 환난의 때에 그들이 너희를 구원하게 하라’(삿 10:14)고도 하셨다. 불경건한 자의 간청이나 호소는 다 물리치실 것이고 그들에 대한 당신의 추상같은 공의도 전혀 굽히시기나 번복할 뜻이 없으심을 분명히 하신 말씀이다.
하나님은 불경건한 자의 영혼을 불러 가시고 그의 부르짖음을 듣지 않으신다.
2.3.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없다(10)
‘그가 어찌 전능자를 기뻐하겠느냐 항상 하나님께 불러 아뢰겠느냐’(10)
불경건한 자는 겉으로는 신앙을 고백하지만, 실은 신앙을 즐거워하지도 않고 신앙을 끝까지 지키려는 의지도 없다. 신앙을 그저 힘들고 괴로운 고역쯤으로 여겨 늘 못마땅해 한다. 자기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될 때는 신앙을 이용하다가도 돌아서면 곧 외면하는 위선자이다. 그런데 불경건한 자들이 신앙을 지키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도 신앙을 기뻐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 전능자를 기뻐하지 않기 때문에 더는 하나님을 부를 수 없다. 하나님 보다는 세상 쾌락을 더 기뻐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기회만 있으면 신앙을 떠나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물질을 잃은 것보다, 건강을 잃은 것보다, 자식을 잃은 것보다, 그 어느 무엇을 잃은 것보다 자신의 인생 전부를 잃는 가장 큰 것을 잃은 불행이요 저주이다.
이러한 요지의 결론을 욥은 11-12절에서 악인의 결말이 끝내는 비참해질 것을 분명히 말한다.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내가 너희에게 가르칠 것이요 전능자의 뜻을 내가 숨기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다 이것을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주 허탄한 사람이 되었는고’(11-12)
불경건한 자의 결말은 누가복음 12장의 어리석은 부자의 삶을 반복하는 불행하고 불쌍한 자이다. 우리는 이런 자가 되어서는 절대로 안 된다. 그래서 욥의 친구들의 불경건의 결과를 보고 이러한 실패와 부끄러움, 어리석음을 반복하지 않도록 일깨워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라.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경건한 자의 가장 큰 특징은 하나님을 짐스러워하고 전능자에 대해 아무런 기쁨도 느끼지 못한다는 데 있다. 우리는 불경건한 자, 위선자의 심령이 얼마나 위기적이고 절망적인가를 새삼 깊이 인식해야 한다.
3. 불경건한 자는 일생을 허송세월 보내는 가장 불쌍하고 불행한 자이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다시 우리 자신들을 돌아보자. 우리의 신앙생활은 교회 안에서나 교회 밖에서 하나님 중심, 위주, 방편대로 살아가는 경건된 모습을 잘 드러내고 있는지? 불경건하게 살아가는 자들과 뭔가 다른 면들이 분명히 드러나고 있는지? 아니면 비슷한지. 문제는 불경건하게 살면 어떤 결과가 온다고 했습니까? 그에게는 소망도 없고, 기도 응답도 없고,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없으니 일생을 헛되게 허송세월 보내는 불쌍하고 불행한 자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불경건하게 사는 자는 잠시 그 소망으로부터 행복을 추구할 수 있으나 하나님께서 그를 취해 가실 때 그에게 남는 것은 비참한 것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경건하게 살아서 경건하게 사는 자들에게 약속한 항상 함께 하심과 긍휼하심, 구원의 은혜, 기도 응답의 은혜를 온전히 누리는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 이런 주인공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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