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작전타임

2012.09.02 20:25

윤봉원 조회 수:710 추천:75

사 17:1-112012090201날자: 2012년 9월 2일 주일오전
제목: 하나님의 작전타임
본문: 이사야 17장 1절 – 11절
1. 왜 하나님은 징계와 심판에 대한 말씀을 더 많이 하셨을까?
신명기 28장을 보면 하나님의 음성을 삼가 듣고 순종하면 복 주신다는 말씀은 1-14절까지이다. 그러나 순종하지 않을 때 받을 저주에 대해서는 15절에서 68절까지이다. 절수로는 거의 세 배이다. 이 외에서도 성경에서 우리에게 하라는 명령의 말씀보다는 하지 말라는 명령의 말씀이 거의 두배 가까이 되는 것으로 저는 파악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택하시고, 피 흘려 구원하여 주시고, 지금까지 인도하시며, 보호하시며, 양육하시면서 이런 징계와 심판의 말씀을 더 많이 말씀하셨을까? 이런 징계와 심판의 말씀을 듣기가 좋습니까? 아니면 은혜와 사랑, 축복의 말씀을 듣기가 더 좋고 은혜가 됩니까?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 이처럼 우리의 기대와 바람과는 정 반대되는 방향으로 교훈을 하셨을까? 그 이유와 목적을 살펴보고 이 시간 이후에 우리는 성경을 볼 때나 설교를 들을 때 내가 별로 듣고 싶지 않고 또 지금까지는 들으면 괜히 화가 났던 말씀들을 어떤 자세로 들어야 할지를 바로 깨달아 우리의 삶에 적용하도록 합시다.
2. 다메섹과 이스라엘의 심판(1-6)
2.1. 폐허가 되는 다메섹(1-3)
‘다메섹에 관한 경고라 보라 다메섹이 장차 성읍 모양을 이루지 못하고 무너진 무더기가 될 것이라 아로엘의 성읍들이 버림을 당하리니 양 무리를 치는 곳이 되어 양이 눕되 놀라게 할 자가 없을 것이며 에브라임의 요새와 다메섹 나라와 아람의 남은 백성이 멸절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영광 같이 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1-3)
우리가 좋아하는 스포츠 경기를 보면 경기 중에 감독이 심판에게 작전타임을 요구하여 선수들에게 감독의 의지를 전달하는 것을 많이 봐 왔다. 그 시간에는 칭찬의 말이 많을까요? 아니면 잘못에 대한 지적과 책망의 말이 많을까요? 선수들이 남은 경기를 하면서 어떻게 하는 것이 승리하기 위한 가장 지름길인지를 판단하여 선수들에게 전달한다. 실제로 그 작전타임 이후로 게임의 방향이 전혀 새롭게 흘러가는 경우를 우리는 많이 봐 왔다.
하나님은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마치 경기 중인 선수들에게 작전타임을 불러 중요한 내용을 전달하듯이 이사야 17장의 말씀으로 찾아오셔서 우리에게 중요한 핵심 메시지를 전달하시는 것입니다. 아멘!!
그렇다면 그 하나님의 작전타임의 중요한 메시지는 무엇인가 살펴봅시다.
우리는 항상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잊고 살 때 남는 결과는 황무함과 공허함, 무의미함이다. 최근 나의 삶이 행복하지 못하고, 은혜가 없으며, 내가 왜 사는지 모르겠다는 회의감이 든다면, 혹시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졌기 때문이 아닐까요?
본문에서 하나님은 다메섹(앗수르)과 에브라임(북구 이스라엘)이 파경에 이를 것을 말하고 있다. 그것은 그들 두 나라가 동맹을 맺었고 그 결과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의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10).
그래서 하나님은 각 도성에서 사람을 다루시면서 그들의 권세와 영광과 부를 제거하신다. ‘다메섹에 관한 경고라’(1): 예언에는 이스라엘도 포함됐지만 다메섹만 언급한다. 반앗수르 동맹을 결성할 때 다메섹이 주도적 역할을 감당했다. 그래서 다메섹만 언급한 것으로 보임.
 다시는 재건되지 못할 만큼 무너질 것이다. 사람들이 거주하던 곳에 양들이 거할 것인데, 양들이 놀랄 일 없을 만큼 인적이 드물어질 것이다. 그것은 그들이 그것들에 너무 집착하여 하나님을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다메섹과 사마리아가 반 앗수르 동맹을 추진하여 생존을 도모하지만 역사를 경영하시는 하나님께 나온 계획이 아니었기에 성공하지 못한다(참조. 7:7). 군사의 많음과 정치적 능력에 의존하는 민족은 멸망을 피할 수 없다.
우리도 우리 자신들을 돌아봐야 한다. 지금 이 순간에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의지하고 있는 것은 없습니까? 오로지 그것에게 내 마음과 인격을 다 빼앗기고 있는 것은 없는지? 우리는 친구나 친분 관계에 있는 사람을 의지하려는 마음이 없습니까? 만약 이렇게 계속한다면 그 결과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이 주셨던 것을 다 빼앗아 가심으로 결과는 너무나 황무함하고 공허하며, 무의미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만 의지해야 한다.
2.2. 사라지는 야곱의 영광(4-6)
‘그 날에 야곱의 영광이 쇠하고 그 살찐 몸이 파리하리니 마치 추수하는 자가 곡식을 거두어 가지고 그 손으로 이삭을 벤 것 같고 르바임 골짜기에서 이삭을 주운 것 같으리라 그러나 오히려 주울 것이 남으리니 감람나무를 흔들 때에 가장 높은 가지 꼭대기에 실과 이 삼개가 남음 같겠고 무성한 나무의 가장 먼 가지에 사 오개가 남음 같으리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4-6)
‘르바임 골짜기’(5)는 예루살렘 남서쪽 근교에 자리한 비교적 넓은 들판을 가리킨다.
이스라엘의 쇠퇴는 마치 살진 사람이 병들어 가죽만 남도록 쇠약해지는 것 같을 것이다. 추수하고 남은 이삭과 같고, 감람나무 가장 높은 가지 위에 달려있는 얼마 안 되는 과실 같을 것이다.
그래도 다 멸절되지는 않는다는 말씀이니 심판 중 희미한 소망이 된다. 하나님은 언제나 남은 자를 지키신다. 하나님의 심판의 목적은 전적인 멸망이 아니다. 그보다는 하나님을 위하고 의지하는 자들을 지키시고 보존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2.3. 우상숭배의 포기(7-8)
‘그 날에 사람이 자기를 지으신 자를 쳐다보겠으며 그 눈이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를 바라보겠고 자기 손으로 만든 단을 쳐다보지 아니하며 자기 손가락으로 지은 아세라나 태양상을 바라보지 아니할 것이며’(7-8)
앗수르와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그들이 사랑하는 것을 모두 없애버리심으로 무엇을 깨닫게 되었습니까? 자기 눈에 선한 대로 자신들이 만든 우상이나 우상의 제단만 바라보던 이들이 자신을 지으신 이를 바라보게 될 것이다. 시선(視線)을 바꾸는 것, 의지할 대상(對象)을 바꾸는 것, 주인을 바꾸는 것, 이것이 회개이다. 큰 시련 후에 이런 거룩한 백성이 나올 수 있다면, 나에게도 혹은 교회에게도 이런 시련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요? 시련은 혐오하고 버릴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생을 역전시키는 하나님의 최고의 선물인 것이다. 아멘!!
3. 심판의 원인: 구원과 능력이 되시는 하나님을 버렸기 때문에(9-11)
‘네가 기뻐하는 나무를 심으며 이방의 나무 가지도 이종(移種)하는도다’(10) 지중해 연안에 널리 퍼진 ‘아도니스 신의 정원’과 관련된 이교적 풍습을 반영하는 것 같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가나안 사람들에게서 생산과 풍요제의를 받아들였고, 그 결과 여호와 신앙이 혼합주의에 물들어 그 독자성을 상실했음을 보여 준다.
구원의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능력의 반석 되신 분을 마음에 두지 않았고, 우상을 의지했으니, 이제 우상의 산당들이 무너지듯 이스라엘의 견고한 성읍들도 무너질 것이다. 하나님의 정성스런 양육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이 아무런 열매도 맺지 않았으니, 그들의 손의 수고도 허사가 되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을 떠나서 추구한 것은 모두 무위로 돌아갈 것이다.
우리 생활에서 모든 것이 잘 될 때 하나님을 잊어버릴 위험이 있음을 항상 지각해야 한다. 하나님을 잊어버리면 그들의 삶에 남는 열매는 아무것도 없다. 이스라엘과 다메섹은 멸망을 통해 제 손으로 만든 우상이 헛것임을 인식하고 하나님을 바라보게 된다. 늦게나마 구원과 축복이 하나님에 의해서만 가능함을 깨닫는다. 심판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새로이 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 주기에 우리는 감사함으로 받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4. 어떤 징계와 심판도 감사함으로 달게 받고 회개하는 자가 되라.
이사야 17장의 하나님의 작전타임을 통해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분명한 교훈을 받을 수 있었다. 한 때 견고했던 성읍이 이제는 무너져 수풀이 우거진 폐허로 변한 것은 그곳의 백성들이 구원의 하나님을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피할 바위가 되시는 하나님께 마음을 두지 않고 스스로 자기 힘을 의지하여 필요를 채우려는 헛된 노력을 힘썼기 때문이다.
이로 말미암아 그들에게는 너무도 황폐하고 공허하고 허무한 현실을 초래하게 되었다. 이러한 현실만 바라보면 낙심하기 쉽다. 현실은 우리를 불안에 빠뜨리고 혼란스럽게 한다. 하지만, 우리는 현실을 초래한 근본적인 이유를 묻고 그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목적에 집중해야 한다. 고난의 이유와 목적을 성찰할 때 비로소 길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무시하고 인간 스스로의 노력이나 힘, 또 하나님 외에 무엇인가를 의지하여 자신의 안보와 행복을 취해보려고 힘썼던 악을 온전히 버려야 한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오직 하나님 한 분에게만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야 할 분으로 깨닫고 그분만 바라보고 의지하며 순종하여 가는 기회가 된다면 이보다 더 큰 복은 없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징계와 심판을 하시는 목적은 멸망 자체가 아니라 정화와 회복이기 때문이다. 겨와 티끌 같은 세상의 힘을 의지하지 않고 우리를 지으시고 주관하시는 주님을 바라보며 살아갑시다. 반드시 이런 복을 누리시는 주인공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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