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통한 삶을 사는 법

2012.09.02 20:05

윤봉원 조회 수:612 추천:56

시 1:1-612090202날자: 2012년 9월 2일 주일오후
제목: 형통한 삶을 사는 법
본문: 시편 1장 1절∼6절
1. 우리는 불신자들과 근본 DNA가 다른 사람들이다.
하나님의 택함받고 사활대속의 공로원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는 세상만 보고 세상에 속해서 사는 사람들과 다른 우리들이다. 세상에 속해서 세상만 보고 사는 사람들은 그 주인이 세상이다. 세상은 주님이 '세상 임금이 오겠다' 그렇게 말씀하신 세상을 주관하는 임금은 공중에 권세 잡았던 악령이다.
에덴동산에서 인류 시조를 꾀었던 뱀은 악령이 입고 나타난 것이다. 또 모든 중생되지 않은 사람, 옛사람. 안 믿는 사람 그대로의 사는 그 사람들은 다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요 세상의 것들이다. 세상에 속한 사람들은 우리가 가는 이방편을 써도 안 된다. 쓰면 결국은 저희들의 소원과 목적이 소멸된다. 이래서 “헌 부대에는 헌 술을 넣고 새 부대에는 새 술을 넣는다.”(마 9:17)고 말씀했다.
헌 부대라 말은 이 옛사람, 타락한 첫째 아담으로 사는 사람은 헌 부대요 거기에는 헌 술을 담아야 된다. 거기에는 소용없는 썩음에 속한 모든 교훈 진리 이런 거라야 저희들에게 감당된다. 다시 말하면 세상주의 육신주의 그런 모든 지식이라야 저희들에게는 필요하다. 그런데 거기에 새 술을 부으면, 하늘나라 영원한 것 완전한 것 불변한 것이 참된 것 이런 것이 만들어지는 그 교훈을 세상주의 세상 목적 속에다 집어넣어 놓으면 부대가 터져서 못쓴다.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마 9:17)
 그러면 세상이 깨지기 때문에 이것도 저것도 안된다.
그러기 때문에 세상의 멸망을 건설할 사람은 멸망 하는 그 방편과 길을 걸어야 되고. 또 영원을 마련할려고 하는 사람은 영원한 것을 마련되는 그 방편과 길을 걸어야 된다.
그런고로, 우리는 이렇게 신앙생활 해 나가다가 조그만한 일 하나 하나님의 인도를 버리는 것. 인도를 버리고 탈선하는 삐뚤어진 길 가는 것, 즉 죄를 짓는 것은 우주와 천하를 얻는 것보다 더 큰 손해이다. 왜? 그거 하나 삐뚤어지면 다른 것 다 됐다 할지라고 그거 하나로 인해서 하나님이 거게 대해서 인정할 수가 없고 하나님이 함께 하실 수가 없게 되기 때문에 하나님도 원통히 생각하고 우리는 알지도 못하고 지금 손해를 보고 있고 그렇게 되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가 신앙생활 하는 데에서 지극히 작은 것 하나 그것이 믿는 사람으로서의 승패 결정이 되는 아주 중요성을 가진 것이기 때문에 그 하나가 천하 얻는 것보다 가치가 크고 천하를 뺏기는 것보다 그거 하나 뺏기면 더 큰 손해간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이래서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눅 9:25)라고 말씀 하셨다.
그런고로 우리는 믿는 사람의 방편을 취해야 할 터인데, 여기 믿는 사람의 방편을 가르쳐서 이렇게 말씀했다.
2. 형통한 삶을 살려면
2.1. 창조주 하나님과 대립이 되지 말라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좋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이렇게 사는 사람들이 형통하다 말씀하셨다.
시냇가에 심었다는 것은 이것은 비유인데. 시냇가에 심으니까 가물든지, 장마가 지든지 아무런 문제가 없다. 가물면 물 대 주고 또 장마 지면 물 빼서 배수해 주고 이러니까 문제가 있겠습니까? 그만 모든 것이 다 형통하다.
우리가 형통해지는 데에는 어떻게 하면 형통해지는가? 첫째는 창조주요 대주재시요 조물주이신 이 하나님과의 대립이 안 돼야 된다. 대립이 되면 멸망받다. 창조주. 자존주, 대주재, 만왕의 왕. 만주의 주, 지극히 작은 것까지 하나하나를 다 주권으로 섭리하시는 이분이 전부 다 섭리하고 있다. 이분의 손이 떨어지면 풀 한 포기도 그 시간부터 시들어 죽게 된다. 벌래 한 마리도 죽게 되는 것이지 살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주권하고 계시는 이분과 첫째는 대립이 되지 않고 이 분의 그 은택을 입어야 된다.
첫째는 이 분과 관계가 잘 되어서 은택을 입어야 되는데. 대게 보면 예수 믿는 사람들 가운데서는 잘난 사람들이 잘났기 때문에, 그 잘난 것 가지고 세상일을 하는 데에는 잘난 그게 효력이 있고 뭔가 되게 돼 지니까 그것 가지고 예수 믿는 데도 되리라고 생각해서 자기 잘난 것 가지고 교만하게 살다가 예수 믿는 사람들 대개는 실패한다.
자기 나름대로는 아주 성공하는 체 해서 “아, 내가 이래 가지고 무슨 왕이 됐다 내가 무슨 큰 재벌가가 됐다.” 자기 나름대로는 성공 같지만 그놈이 하늘나라에 가서는 하나도 소용도 없고 갈 때는 가지고 가지도 못하고 또 그것이 들어서 하나님 말씀대로 살라고 할 때에 붙들고 방해를 부려서, 그것이 자기를 뽈끈 세상에게 붙들어 매는 밧줄이 돼 놔서 손해만 가지 유익되는 게 하나도 없다. 그래서 성경은 “지혜 있고 통달한 자들은 다 어리석어서 실패케 되고 어린 아이와 같은 그 아주 솔직하고 진실한 그런 자들에게만 이 예수 믿는 도리를 안다.”고 그렇게 말씀했다.
그러니까 우리가 영이나 육이나 금생이나 내세나 모든 것이 형통해질 라고 하면, 모든 일에 성공할라고 하면 제일 중요한 것이 뭐이냐? 창조주 주재자이신 이분하고 거리끼지 안해야 된다.
2.2. 하나님이 주실 때 받아서 감당할 수 있는 자체 성화가 필요함
둘째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실 수 있는, 받아서 감당할 수 있는, 하나님이 주실 때에 그 모든 걸 받아서 악용하지 않고 남용하지 않고 받은 것 가지고 저에게도 첫째는 복이 돼야 되겠고, 제게 복이 돼야 되겠고, 다음에는 모든 사람에게도 복이 돼야 되겠고 또 하나님도 기쁨이 돼야 된다. 그런데 달라고 해서 주기는 줬는데 줘 놓으면 마치 아이들에게 불가에 화약 주면 화약 가지고 저 타죽는 것 마찬가지로 이렇게 되면 안 될 것이라 그 말이다.
그러니까 둘째로 중요한 것은 자신이 하나님의 모든 은혜를 받아서 잘 감당할 수 있는, 자체가 성화돼야 된다 말이다. 자체가 변화돼서 성화가 돼야 된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자체가 변화가 돼야 되겠고. 하나님과 자기와의 그 사이가 벌어지지 않고 하나님이 만족하고 좋아해서 하나님이 저에게 모든 것을 도와주고자 하시고 도와주실 수 있는 그 사람 되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3. 형통한 자가 되기 위해서는
3.1. 자기중심 피조물 중심 위주의 악을 버려라.
하나님께 지음을 받은 자 중에 변질된 것은 어떤 게 변질 됐습니까? 첫째는 천사중 하나가 변질됐다. 그다음에 사람 변질되었다. 이 둘만 변질됐지 초목도 변질되지 않았고 짐승도 변질되지 않았고, 물속의 고기도 변질되지 않았다. 하나님이 정해 주신 법칙대로만 살고 있다.
그런데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악인의 길은 망한다.' 악을 많이 말했는데 이 악은 하나님 중심이 아닌 자기중심, 피조물 중심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의 인생을 뒤돌아보면 실수한 것도 욕심대로 해서 그런 것, 죄 지은 것도 자기중심 사람들에게 자기 덕을 잃어버린 것도 자기중심, 또 자기의 모든 명예를 잃어버린 것도 자기중심, 자기 성공 잃어버린 것도 자기중심, 영육과 소유의 멸망은 전부 자기중심이라는 악에서 나왔다. 전부 악에서 나왔다. 악 이놈이 우리에게 그렇게 원수이다. 아멘!!
이러기 때문에 '악인의 꾀를 쫓지 않고' 그 말은 자기중심의 주장을 좇지 않고, 모든 자기중심 자기 위주 피조물 중심 피조물 위주 그것은 전부 악이다. 이러기 때문에 제일 처음에 악을 말씀하셨다. 또 끝에도 악을 말씀했고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확정을 지어야 한다. 악인의 길은 형통 대신 필연적으로 망한다.
하나님 중심으로 살았던 아브라함은 자기 집안과 식구 모두가 형통했지만, 자기중심 피조물 중심 위주로 악한 길을 걸었던 롯의 집은 망했다.
그러니까, 이런 것을 다 피하고. '악인의 꾀를 쫓지 아니하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고' 죄인의 길이라 하는 것은 성경 말씀을 어기는 것은 다 삐뚤어진 것이다. 죄인의 길에 서지 않는다 말은 삐뚤어진 길에 서지 않는다 말이다.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다’는 말은 '이제 됐다.' 만족하고 낙관하고 신앙생활에 갈급이 없이 중단한 그것이 전부 오만인 것이다. 오만(傲慢), 다시 말하면 우리로 말하면 죄를 찾지 못하는 것이 오만이다. 죄인 아닐 때가 오만한 자리에 앉은 것이다. 죄인 아닐 때가 어디 있겠습니까?
3.2. 말씀 묵상과 실천을 통하여 말씀에 대립된 것은 배제하고 말씀 중심으로 바로 세워가라!!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여호와의 율법이라 말은 신구약 성경이 전부 하나님과 우리 인간 사이의 하나님의 계약이기 때문에 그 계약을 즐거워하니까 자연히 자꾸 볼 것 아닙니까? 읽을 것 아닙니까? 거게는 성경에 계약이 들어 있기 때문에 성경 말씀을 열심히 상고하고 보는 사람 말이오.
상고하면서 그 모든 계약에 대한 것은 자기가 어떤 배치된 게 많으나 배치될 때에는 자기 배치된 자기를 부인하고 꺾어 버리고 회개한다. 마구 벌이 꿀을 좋아 하듯 자꾸 좋아서 달라들고 그러고 난 다음에는 자기와 대립이 되고 뭐 모든 것과 대립이 되면 모든 것을 다 배제하고 그 말씀을 위주로 중심으로 세우는 그것이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는 것이다.
‘주야로 묵상하는 것’은 이 말씀의 계약이 이러니까 이 계약 가지고 “보자 하나님과 나와 어찌 되노?” 그게 묵상이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냐 나는 어떤 존재냐? 모든 피조물은 어떤 존재냐? 그러면 내가 하나님께 대해서 어떻게 해야 되느냐, 피조물에게 어떻게 해야 되느냐, 내게 대해선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이렇게 하나님, 나, 피조물과의 삼각 조화가 바로 됐나 안 됐나 그것을 밤낮 생각해서 잘못된 것을 고쳐 나가니까 모든 형통이 하나님께 바로 되지, 자신에게 대해서 바로 되지, 만물에게 대해서 바로 되지 이러니까 형통할 수밖에 더 있습니까? 아멘!!
이 기독교라고 하는 것은 이것은 과학보다도 더 필연성이다. 과학보다도 과학을 초월하는 인격성 그 신성을 이루어 나가는 더욱 합리적이요 더욱 이치적이다. 그러기 때문에 비합리적이라 말은 인간의 썩은 이 밑의 그 찌꺼기 그 이치에 맞지 않는다 그 말이지 최고의 이치에는 딱 들어맞는 것이 기독교인 것이다.
따라서 이런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하는 것이겠습니까? 어떤 상황에서도 이런 사람이 되려면 악인의 꾀를 좇지 않고, 죄인의 길을 걷지 않고 오만한 자리에 앉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고 주야로 묵상하고 순종하는 것이다. 아멘! 오직 거룩과 경건으로만 사는 것이다.
이 사람은 어디에서 누구를 만나서 살더라도 하나님과 배치가 안 되고, 다른 사람, 더 나아가서는 피조물과도 배치가 안 된다. 아울러 하나님께서 복 주실 때 얼마든지 받아 누릴 수 있는 사람, 인격의 그릇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반드시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 진광교회 지체들이라면 반드시 이런 사람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참조. 85062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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