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의 신앙

2005.11.18 22:29

윤봉원 조회 수:2375 추천:136

단 3:26-302005111630날자: 2005년 11월 16일 수새
제목: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의 신앙
본문: 다니엘 3장 26절- 30절
느부갓네살이 극렬히 타는 풀무 아구 가까이 가서 불러 가로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나와서 이리로 오라 하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불 가운데서 나온지라 방백과 수령과 도백과 왕의 모사들이 모여 이 사람들을 본즉 불이 능히 그 몸을 해하지 못하였고 머리털도 그슬리지 아니하였고 고의 빛도 변하지 아니하였고 불탄 냄새도 없었더라 느부갓네살이 말하여 가로되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그가 그 사자를 보내사 자기를 의뢰하고 그 몸을 버려서 왕의 명을 거역하고 그 하나님밖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그에게 절하지 아니한 종들을 구원하셨도다 그러므로 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니 각 백성과 각 나라와 각 방언하는 자가 무릇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께 설만히 말하거든 그 몸을 쪼개고 그 집으로 거름터를 삼을지니 이는 이같이 사람을 구원할 다른 신이 없음이니라 하고 왕이 드디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바벨론 도에서 더욱 높이니라
1. 세상과 타협하는 세상
오늘날 우리 신앙 생활하는 성도들의 모습은 너무나 쉽게 세상과 타협하고 구지 어려움을 자초 해 가면서 믿을 필요가 있느냐? 좀 쉽게 쉽게 믿지? 라는 의식이 팽배해 있는 것이 오늘의 우리들의 신앙의 현 주소가 아닌가 진단하게 됩니다. 그래서 교훈도 윤리 도덕의 수준의 설교를 하는 것을 쉽게 들을 수 있고, 까끌까끌하게 듣기에 거슬리고 책망하고 회개하고 고쳐야 하는 것, 절제 해야 하는 것에 대한 교훈은 자연스럽게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도 과연 이러한 우리들의 생각과 같은 뜻을 가지고 계실까요? 오늘 본문을 통하여 전혀 그렇지 않음을 다니엘의 세 친구를 통하여 분명하게 선포 하여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2.  세 친구의 신앙
1) 우상 숭배를 거절함
 ‘이제라도 너희가…내가 만든 신상 앞에 엎드리어 절하면 좋거니와 너희가 만일 절하지 아니하면 즉시 너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 던져 넣을 것이니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낼 신이 어떤 신이겠느냐’(15 절). 유다인들은 유일신 여호와를 섬겼으나, 바벨론은 다신을 섬겼습니다. 뿐만 아니라, 바벨론에는 많은 우상물이 세워져 사람들이 그 앞에 절하고 제의를 드렸습니다. 유일신 하나님이 없는 민족에게는 이것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겠지만 율법을 가진 유다인들에게 있어서는 결코 용납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너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지 말고…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섬기지 말라’(출 20:4, 5). 물론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에도 이같은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고 우상을 만들고 그에게 절하며 섬기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진노하사 그들을 흩으시고 우상 숭배의 나라로 포로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은 계명과 율법을 철저히 준수하는 신앙의 사람들이었습니다.
2) 영생이 있음을 믿음
 ‘만인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17 절). 우리의 목숨도 하나밖에는 없지만 세 친구의 목숨도 목숨은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따라 인간은 누구나 생명이 귀한 것인 줄 압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들은 그렇게 태연하게 목숨을 버릴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요? 이 세상이 마지막이 아니라 영원한 내세 천국의 영생이 있음을 분명히 믿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어버리면 아무 쓸모도 없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 청년은 오직 신앙을 위하며 자신의 권력과 명예와 지위도 버리고, 심지어 목숨까지도 버릴 것을 각오했습니다. ‘극렬히 타는 풀무가운데서’ 누가 살아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의 영생을 믿었기에 용감하게 왕의 명령을 거절하고 신앙을 굳게 지킬 수 있었습니다.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하나님께서는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그들을 건지신 것입니다.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고후 4:17-18)
3) 여호와 하나님을 온전히 믿음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18 절). 다니엘과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예루살렘에 살던 유다 귀족의 자녀들로서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청년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함께 포로된 다른 동족들과는 달리 바벨론 왕실에서 대접을 받으며 바벨론에서 출세한 유다인들 중에 한 부류의 사람들이었고, 바벨론의 문화와 정책에 동조하기만 하면 크게 명예를 얻고 부한 삶을 살 수 있는 입장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의 문화, 그들의 종교, 그들의 사상, 그들의 국가 목표를 따라만 가준다면 권력과 부와 명예를 한 손에 쥘 수 있었다는 말입니다.
‘왕이 또 다니엘의 청구대로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세워 바벨론 도의 일을 다스리게 하였고’(2:49).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포기하거나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왕의 명령을 거역하고 금신상 앞에 절하지 않으면 자신들이 어떻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것 때문에 ‘우상을 만들지도, 절하지 말라는’ 진리와 영감 순종하는 것을 포기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3. 믿음의 결과
1) 완벽한 보호와 구원
“느부갓네살이 극렬히 타는 풀무 아구 가까이 가서 불러 가로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나와서 이리로 오라 하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불 가운데서 나온지라 방백과 수령과 도백과 왕의 모사들이 모여 이 사람들을 본즉 불이 능히 그 몸을 해하지 못하였고 머리털도 그슬리지 아니하였고 고의 빛도 변하지 아니하였고 불탄 냄새도 없었더라”(단 3:26-27)
인간의 지식과 과학적 상식으로는 도무지 일어날 수 없는 하나님의 보호와 구원의 역사가 일어났다. 불 가운데서 살아 나온 것이다. 머리털이 그슬리지도 냄새도 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옷 고름의 빛도 변하지 않고 냄새가 나지 않도록 전능의 하나님께서 완벽하게 보호 해 주셨고, 구원 해 주셨다. 눈으로 볼 수 없었기에 믿지 않았던 하나님을 확실하게 눈으로 보여 준 것이며 본인들뿐만 아니라 주변의 왕, 그리고 백성들까지 믿게 한 것이다.
2) 이방 가운데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었다!
 ‘느부갓네살이 말하여 가로되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그가 그 사자를 보내사 자리를 의뢰하고 그 몸을 버려서 왕의 명령을 거역하고 그 하나님밖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그에게 절하지 아니한 종들을 구원하셨도다’(28 절). 자기의 명령을 듣지 않는다고 13절에 보면 노하고 분하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끌어 오라’라고 화를 잔뜩 내고 그들을 끌고 왔을 때 ‘이 놈들아 네가 무슨 백을 믿고 나의 명령을 거절하느냐, 이제 맛좀 봐라’라고 코웃음 지었던 왕이었습니다. 그런 왕이 이제는 완전히 입장이 뒤 바뀐 것입니다. 믿음의 세계에는 이런 역사가 지금도 일어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마 16:25)고 하는 말씀의 진리가 곧 신앙인의 자세 그것입니다. 성도가 믿음을 포기해 가며 이방인과 타협하게 되면 결국 이방인은 그 신앙인을 조롱하게 됩니다. 그러나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목숨을 걸고서라도 믿음을 지킨다면 그 믿음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능력을 만천하에 높이 나타냅니다. 이것이 진정한 승리입니다. 주기도문에서 주님이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고 기도하라고 한 것이 이루어 진 역사적인 순간인 것입니다.
3) 최고의 전도의 결과를 가져 왔다
처음에 금신상에게 절하지 않는다고 할 때는 노를 발하고, 풀무불을 7배나 뜨겁게 하여 믿는 그들을 죽이려고 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우섭게 여기고 조롱까지 했던 느부갓네살 왕이었다.
“느부갓네살이 그들에게 물어 가로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너희가 내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내가 세운 그 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하니 짐짓 그리하였느냐 이제라도 너희가 예비하였다가 언제든지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듣거든 내가 만든 신상 앞에 엎드리어 절하면 좋거니와 너희가 만일 절하지 아니하면 즉시 너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 던져넣을 것이니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낼 신이 어떤 신이겠느냐”(단 3:14-15)
 그러나 이제는 완전히 전세가 역전되어서 그가 무시하고 우섭게 여겼던 하나님의 전도사가 된 것이다. 제일 확실한 복음 전도자가 된 것이다. 재생산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느부갓네살이 극렬히 타는 풀무 아구 가까이 가서 불러 가로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나와서 이리로 오라 하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불 가운데서 나온지라” (단 3:26) 이제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니 각 백성과 각 나라와 각 방언하는 자가 무릇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께 설만히 말하거든 그 몸을 쪼개고 그 집으로 거름터를 삼을지니 이는 이같이 사람을 구원할 다른 신이 없음이니라 하고”(단 3:29)
우리에게 무엇을 계시해 주시는가? 인본주의적으로 사람 비유 맞추어 가면서 그 사람을 전도하려고 하지 않고 진리와 영감을 따라 양심을 더럽히지 않고 굳게 사람들을 상대할 때에 아무리 악한 사람이라도 변화를 시켜서 복음 전도자로 만드실 수 있는 하나님이 지금도 살아 계심을 분명히 증거 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외모적으로 볼 때 지금의 모습이 복음을 극력히 반대하고 핍박하는 사람이라도 하나님이 변화 시키면 얼마든지 변화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본주의적으로 그 사람의 비유를 맞추지 말고 진실하게 믿음으로 때를 기다리며 우리가 할 일을 충실히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4) 더욱 높아졌다
“왕이 드디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바벨론 도에서 더욱 높이니라”(단 3:30)
왕이 자기가 만든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않으면 풀무불에 집어 넣는다고 할 때까지만 해도 이제 그들은 끝장이 났구나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사랑하셔서 풀무불 속에 들어갔다가 나오기 전보다 더욱 그들을 높여서 그들을 정오의 빛 같이 드러내신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참으로 멋쟁이 이십니다. 신실하신 분입니다.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신 28:1)고 약속하신 약속을 완벽하게 이루어 주신 것입니다.
4. 나에게 적용
1) 단행하라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세 친구의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 계십니다. 우리는 세 친구와 같은 어려운 환경을 만났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이제는 더 이상 고민할 필요 없이 단행을 합시다.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을지니라 하니 백성이 한 말도 대답지 아니하는지라”(왕상 18:21)
2) 거절하라
어떤 현실에서도 세상과 타협을 하거나 우상을 만들거나 섬기는 일은 단호히 거절 합시다!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주심을 바라봄이라”(히 11:24~26)
3) 하나님의 뜻에 맞추라
사람 비유 맞추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비유 맞추기 위해서는 때로는 사람에게 거슬리고 입장이 난처해지더라도 그것이 결과적으로는 그 사람을 구원하는 일이며 더 많은 전도의 결과를 맺게 된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믿읍시다! 우리의 재생산의 비전, 세계 복음화의 지름길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 전할 부탁을 받았으니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 (살전 2:4)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고전 10:31)
4) 자기 진리, 영감에 순종하라
내게 대한 자기 진리와 영감 순종하는 것이 최고의 평강의 보호를 받는 길이며, 성공하는 길이며, 더욱 높아지는 길이라는 것을 믿고 자기 진리, 영감 순종하는 것을 주님 불러 가는 그날까지, 주님 재림 하실 때까지 굳게 지켜 나갑시다.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자녀들아 이제 그 안에 거하라 이는 주께서 나타내신 바 되면 그의 강림하실 때에 우리로 담대함을 얻어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요일 2:27-28)
5) 한 알의 밀알이 되라
“느부갓네살이 말하여 가로되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그가 그 사자를 보내사 자기를 의뢰하고 그 몸을 버려서 왕의 명을 거역하고 그 하나님밖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그에게 절하지 아니한 종들을 구원하셨도다” (단 3:28)
이 세 친구는 자기들의 몸을 풀무불에 버렸습니다. 버린 밀 알, 제물이 있었기 때문에 느부갓네살이 전도자로 변화되는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 12:24)
이 말씀은 자연의 진리요, 또한 우리의 사역의 현장에서도 그대로 적용되는 진리 입니다. 세 친구와 같은 죽음의 값을 치른 한 알의 밀 알들이 있었기 때문에 왕이 제 일등의 복음 전도자로 탄생하는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사울에게는 다윗이 있었고, 사울(바울)에게는 스데반이라는 밀 알이 있었다.
우리를 통해서 많은 전도자가 세워지기를 소원하지만 정작 세 친구와 같은 땅에 떨어져 죽는 것은 싫어하는 것이 우리의 모습은 아닌지요? 오늘 우리는 단행을 합시다. 나도 이제 한 알의 밀알이 되자! 나도 이제 한 알의 밀알이 되자! 고 말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피에 팔려서 우리의 주인은 이미 주님이 우리의 주인이 되셨습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주인 되신 그분이 우리에게 소원하는 것이 ‘너는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재생산의 비전을 이루어 나가라’는 것입니다. 이 아름다운 비전을 성령 충만한 은혜를 덧입어 우리를 통하여 반드시 이루어 나가기를 주님은 명령하고 계십니다.
승리하십시요.
* 윤봉원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5-11-19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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