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설교] 버가모 교회의 교훈

2004.08.25 20:42

윤봉원 조회 수:3490 추천:143

계 2:12-172004082901

날자: 2004년 8월 29일 주일 오전

제목: 버가모 교회의 교훈

본문:요한계시록 2장 12절∼17절

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네가 어디 사는 것을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단의 위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단의 거하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앞에 올무를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임하여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1. 버가모 교회의 단점

1)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고 나타나신 이유

버가모 교회에는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진 주님으로 나타났습니다. 좌우에 날선 검은 다 배웠지요? 좌우에 날선 검, 좌우에 날선 검이라면 이리도 날이고 이리도 날이고 이래도 찔리고 이래도 찔리고 이래 이러니까 뭐 척척 끊으면 끊기고 잡아째고 또 구멍을 뚫고 얼마나 날카로운 칼인지? 이 칼을 가지신 이가 나타났으니까 이 버가모 교회는 무엇이 있는 겁니까? 끊을 것 있고, 쪼갤 것 있고, 삣을 것 있고, 깎을 것 있고, 구멍 뚫을 것 있고 이런 잡탱이들이 많다 그 말입니다. 그래서 이거 버가모 교회는 이런 주님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요 진리를 바로 깨달으면 큰소리를 해요. 큰소리를 해야 돼요. 안디바가 순교당했는데, 거게서 순교를 당했는데 순교당할 때에 그때에 순교당할 때 그 순교에, 순교에 동참한 사람, 그 순교에 동참한 사람들이 있었습니까 없었습니까? 그 사람들이 다 있었다 말입니다. 동참해서 승리했습니다. “안디바가 순교당해 죽임을 당할 때도 너희들이 나를 믿는 믿음을 배반치 아니하였다” 이러니까 다 그 사람들이 다 순교자요 순생자들이라. 다 순교에 동참한 일을 했다 말이지요. 이러니까 그때로 끝났으면은 안디바나 그 사람들이나 승리한 것이 같은 승리입니까 다른 승리입니까? 같은 승리라.

2) 발람의 교훈

그런데 네게 책망할 것이 두어 가지 있는데 하나는 발람의 교훈이고 하나는 니골라 교훈인데 발람의 교훈과 니골라 교훈이 내용이 다르지 안해. 내용이 다르지 안해. 내용이 같애요. 내용은 같은데 처음에는 발람 교훈으로 이와 같이 간판을 쓰고 나왔고, 그 다음에는 또 니골라 간판을 쓰고 나왔고, 박첨지 놀음 할 때 연극할 때 사람은 그 사람인데, 속은 그 사람인데 껍데기만 자꾸 이런 것 저런 것 바꿔 쓰요. 교훈은 같은데 발람 니골라로 요래 됐기 때문에 이제 같은, 같은 성질의 미혹을 이런 것이 미혹하고 저런 것이 미혹하고 여러 가지 껍데기만 변했지 속은 꼭 같다 그것입니다.

발람의 교훈은 민수기 22장 1절 이하에 쭉 읽어 보면 이방 사람인데 하나님의 선지로서 하나님께 쓰이는 사람 아주 유력한 사람입니다.

이래서 그분이 말을 하면 그대로 잘하고 하나님하고 서로 대화도 하고 서로 통화도 하고 그래 하는 위대한 사람이라. 이랬는데 모압 왕 발락이 이 이스라엘백성들이 자꾸 점령해 들어오고 자꾸 가나안으로 점령해 들어오니까? 이거 큰 일 났다 싶어서 하나 꾀를 낸 것이 발람 선지를 통해 가지고, 발람이 무엇이든지 말하면 되니까 발람이 하나님께 기도해 가지고 그 모든 저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 저주를 해서 멸망하도록 하고 저거는 강하도록 그렇게 하면, 이제 자기가 자기 나라에 있는 보화 자기 나라에 제일 높은 지위 이런 것을 전부 발람에게 주겠다고 이렇게 발람한테 한번 이거 좀 교섭을 해 봐야 되겠다 해 가지고 교섭을 했어요.

처음에는 아주 큰소리를 펑펑 쳤어. 속은, 큰 소리를 치면서도 그 사람들이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의 그런, 하나님 백성이요 하나님이 저주하는 것 싫어하는 줄 알고 하나님이 축복하는 백성이니까 그만 ‘그거 나는 하나님이 축복하는 백성이기 때문에 나는 그렇게 하지 못한다.’ 하고 딱 끊어 보낼 터인데, 끊어 보낼 터인데 돈 요놈이 욕심이 나 가지고 자꾸 ‘보내면 돈 이것을 차지 못하고,’ 하나님한테도 걸리지 안하고 돈 요놈을 차지할 수 있는 그런 연구를 했습니다. 돈도 차지하고 하나님께 걸리지도 안하고 그런 것을 연구를 하다 보니까 이제 ‘여기 밤에 누워 자거라. 여기 누워 자면 내가 오늘 저녁에 하나님 앞에 좀 의논해 가지고 하나님이 하라 하면 내가 가겠다. 가지 안하라 하면 못 가구로 하면 안가겠다.’ 요렇게 딱 밤에 약속을 하고 누워자라 했다 말입니다.

그래 인제 밤에 하나님이 발람에게 나타나셔 가지고 ‘네가 그 사람들과 함께 가지도 말고 또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도 하지 말아라’ 그렇게 말씀을 했다 말입니다. 말씀을 했으면 그만 딱 끊을 일인데 이제 떡 말하기를 ‘하나님이 이래 놓으니까 나는 내가 하나님이 허락지 않으니까 안 되겠다. 안 되겠다.’ 이라면서 또 슬그머니, 거기 다 기록은 안 돼도 또 사람은 말 안 해도 알아요. 말 안 해도 속에 뜻을 알아요. 저게 무슨 욕심을 내 하는 것 그것을 알고 있다 그 말입니다. 보니까 아무래도 돈에 기미가 끌리는 것이 이거 그렇게 말은 하기는 해도 돈에 벌써 미련이 있고 그 욕심이 끌리고 있는 그것을 이 사람들이 본다 그것입니다. 하나님 앞에는 거짓말로 안면 부셔서 하나님한테 그렇게 하고 속 마음은 다르다 그 말입니다.

하나님은 껍데기를 상대하고 속에 그 중심을 상대하기 때문에 중심이 다르니까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네가 벌써 가기를 원하고 네가 내게 대해 소망을 가진 것보다 돈에 대한 소망과 애착을 가지고 있어서 네 마음은 가고 싶은데 나 때문에 거리껴서 못 가고 내 안면 때문에 못 가고 이라니까 네가 그 사람들과 같이 가라.’ 이렇게 했다 말입니다.

발람이 하나님 섬기는 데에서 생명 세 번이나 내댔어. 세 번이나. 제단 세 번 쌓아서 그렇게 하는 것은 바로 죽임을 받아야 마땅하고 죽임을 받는 행동인데 생명 내놓고 그렇게 했습니다. 생명 내놓고 하나님 말씀 순종을 했습니다.

순종을 했지만 마지막에 결국은 어떻게 했느냐 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은 죄만 지으면 망하는 나라니까 그거 우상을, 우상의 제물 갖다 놓고 막 부글부글 지지면 그들이 먹고 싶어 올 터이니까 그래 우상의 제물을 가 공짜배기로 대접을 해라. 우상의 제물이라 하지 말고 대접을 해라. 또 그러고 예쁜 여인들을 주 모아다가 자꾸 이래 친절히 이래 이렇게 요새 말로 뭐, 서비스가 뭐인고? 영어로 서비스가 뭐이야? 봉사. 서비스가 봉사가? 그래 이렇게 하면 마음에 미혹이 돼 가지고 행음할 터이니까 그래 해라. 그래 행음하고, 우상의 제물 먹고 행음만 하면 하나님이 당장 절단내 버린다.’ 이것을 살며시 가르쳐 줬다 말입니다. 그래 가지고 하나님께서 그 분노해서 꼭 미디안 전쟁에서 발람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칼로 죽여 버렸여. 죽어 버렸습니다.

3) 니골라 당의 교훈

니골라 당의 교훈이 뭐인가? 발람과 니골라 당의 교훈은 겉은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을 제일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정확 무오한 것도 믿고 또 하나님 말씀은 천만금을 줘도 하나님 말씀을 어길 수는 없다 이렇게 아주 입으로는 지식을 단단히 가지고

 여러분들! 하나님의 종이 제일, 실수 많아도 좋소. 실수 있어도 좋소. 제일 뭐이냐 하면 하나님이 자기 중심에, 자기 보좌에 하나님이 앉아 계셔서 어데든지 극단에는 하나님이 나를 끌지 다른 데 끌려가지 안하는 그 사람이 하나님의 종입니다.

이 발람 선지 니골라당의 선지 이들의 교훈이 무엇입니까? 속은 딴걸로 가지고 있으며 겉어머리만 말하는 그 교훈을 듣는 것을 회개해야 돼요! 그 교훈을 하는 목사만 전도사만 회개할 것이 아니라 그런 교훈을, 속에는 알맹이는 귀신인데 둔갑을 해 가지고, 가장을 해 가지고 겉어머리는 천사처럼 하는 그것은 알아요. 그거 알면 그것을 뽑아내기까지 기도해야 됩니다. 발람 선지. 니골라 선지.

우리가 이것을 잘 살펴서 이 교회에 대해서 지금 공부를 하는 것이니까 자기네들이, 사람이 말이요 사람이 실수는 수가 있어도 사람을 최종적으로 사람이 어디에 끌려갈 사람이냐? 또 그 사람을, 최고의 권위적으로 그 사람을 그 사람의 최고의 권위를 가진 자가 무엇이냐? 최고의 권위를 가진 것이 하나님이요 최종에는 제가 하나님께 붙지 안 할 수 없는 하나님, 사람이라고 하면 됐습니다. 실수는 있다 할지라도 약한 것이기 때문에 그 사람은 최종으로 죽지는 안하고 옳은 길을 걸어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2. 버가모 교회의 교훈

1) 우상은 우상을 낳고 끌고 간다

발람은 우상 가졌소 안 가졌소? 발람은 우상을 가졌소 안 가졌소? 무슨 우상 가졌소? 우상의 제물을 먹게 돼요. 제가 달리는 할 수가 없습니다. 뭐 생명도 내놔 봤지요. 얼마나 이랬지만 결국은 우상의 제물을 먹게 했다는 것은 하나님 아닌, 하나님이 앉아 있을 하나님이 앉아 있을 자기의 보좌, 자기의 제일 중심되는 마음, 제일 높은 마음, 자기의 주가 되는 마음, 자기의 이 전신을 끌고 갈 수 있는 중심되는 마음 그 속에는 어떤 놈이 들어앉았느냐 하면 하나님이 들어앉아 계시지 안하고 돈이 들어앉아 있고 다른 것이 들어 있는 그것이 우상이라 그 말입니다. 그러니까 그런 자의 교훈받은 사람은 결국 그런 자가 되고야 맙니다.

주님이 미워하시는 것 잘못된 것은 이거 잘못됐다 할 것이 아니라 그거 미워야 됩니다. 모압 백성들이 그와 같이, 가서 제물 먹고 거기 가 가지고 간음할 때에 비느하스가 풀었어, 노를. 비느하스가 뭐 어떻게 해 가지고 노를 풀었는고? 남녀 그렇게 동침하고 있는 것 그만 창을 가지고 위에서 그만 내려 찔러 버렸습니다. 둘이 한목 찔러 버렸습니다. 이래 가지고 막 어깨에 둘러메 가지고 들어오니까 하나님이 미워하는 것을 그렇게 비느하스의 격노로, 비느하스의 아주 분히 여기는 그 격노로 하나님의 격노가 풀어졌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미워해야 됩니다.

저 버마에주일날 그거 저 대통령이 가자 하니까 그거 주일날은 주일이나 지킬 일이지 뭐 갑니까? 또 주일날 하필 신사에 절할라고 가는 건데 그거 갈 것인가? 안가지마는, 안된 줄 알기야 알지. 안된 줄 알기는 알지만 그 장관 직책이 이제 자기 신앙에 대한 구원보다 크기 때문에 구원에는 좀 모순이 돼도 거게는 맞춰야 되기 때문에 주일날 꺼덕꺼덕 끌려갔지. 끌려가다가 뭐 만났지? 끌려가다 뭐 만났어? 폭탄 만났어, 폭탄.

2) 행음하는 것은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

행음은 무엇이냐? 첫째 행음이 세상하고 짝되는 것이 행음이라. 가룟 유다가 행음하다가 멸망을 받았어요. 그것이 신앙적 행음인데 성경에 말씀하시기를 세상을 간부라고 하고 하나님을 본남편이라고 말 하는데 본남편은 하나님이고. 이러니까 이제 본남편 떠나서 간부가 좋고 맛이 있다고 이래 가지고 이래 떠들다가 마지막에는 비참해져 가지고 돌아왔어.

신약에는 또 세상하고 하나되는 것이 간음하는 것이라 하는 것이 야고보서 4장 4절에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것이 하나님과 원수되게 하는 것이라” 그게 뭐인데? “음행하는 여인들이여” 교회에 대해서. 무슨 음행을 했는데? 세상과 벗되고자 하는 것이 하나님과 원수되는 것이며 그것이 음행하는 것이다. 이래서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이것을 미워하신다” 이렇게 말씀해.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미워하신다. 이래서 그거 하면, 그거 하면 인인의 칠계범은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기에 행음이라 하는 것은 세상하고 짝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위에 발람과 니골라가 세상하고 짝된 행음을 하고 있어요 없어요? 그가 신앙적으로 소망적으로 세상하고 하나돼 가지고 있고 하나님은 그냥 대외 명분으로 이용만 해 먹고 이러다 보니까 그 설교 들은 사람들은 다 행음하는 사람이 되고 만다 그 말입니다.

3) 회개하라

셋째로 중요한 것은“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거기 네게“ “거기 네게” 거기는 장소인데 거기는 어데입니까? 순교당한 곳이라. 안디바가 순교당할 때에 순교당할 때도 그때도 생명을 내놓고 신앙을 지킨 그 자리에. 너희들이 무슨 사탄의 위 그걸로써는 생명을 내놔도, 믿음을 지켰다 말은 사탄을 따라가지 안하고 사탄의 위 있는 데 거부하고 지켜 나왔다 말입니다.

요렇게 지켜 나왔는데, 생명을 내놓고 신앙을 지켰는데 요거 발람 선지 니골라 선지가 하니까 소로로록 끌려 가지고 싹 다 망하고 말았습니다. 이것을 말해서 “거기 네게” “거기 네게” 요렇게 말했습니다. 거기 네게. 바로 네가 생명 내놓고 신앙 지키는 그 자리에 네가 지금 발람의 교훈과 니골라당의 교훈, 우상 가진 자의 네가 교훈을 네가 듣고 있다. 우상 가진 자의 교훈을 듣고 있다.

그러면 그 결과가 어찌 됐느냐? 우상의 제물 먹게 했고 행음하게 했다. 그래 가지고 이만사천 명이 죽었는데 그거 비느하스가,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이 얼마나 분하게 여기는데 비느하스의, 하나님의 분개의 동지자 비느하스가 하나님이 분한 것같이 막 분해 하니까, 비느하스가 그렇게 분해 하니까 하나님께서 그 분을 보고서 분을 풀었습니다.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그러므로 회개하라” 교역자는 교역자대로 회개할 것. 그러기 때문에 우상 없는 자 돼 가지고 하나님의 설교를 그대로 증거하면 우상 없는 자들이 자라갑니다. 우상을 가지고 하면 결국은 우상 섬기는 자 행음하는 자 그자 외에는 딴 자를 내지를 못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일곱 별과 일곱 금촛대의 비밀이 이거 아주 극비로서 둘이 아니라 하나라 그 말입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임하여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그러면 이제는 하나님 말씀대로 판정해 버린다 그 말입니다. 하나님이 진노해 가지고 하나님이 격멸시켜서,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신데, 하나님이 소멸하시는데 하나님의 소멸을, 하나님의 소멸을 방어하는 방법 방법은 회개라.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귀 있는 자는” 양심의 귀, 진실한 귀, 진실함으로 듣는 사람은 들어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4) 이기는 자에 대한 약속

영감을 준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감추었던 만나는 우리에게 문서 계시를 줘서 문서 계시는 아무라도 읽을 수 있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이 예수 믿는 사람을 처리하고 형을 주기 위해서 이래 가지고 성경을 그들은 읽습니다. 아무가 읽어도, 무신론자가 성경 읽어도 성경은 읽어져요. 읽어지지만 그 속에 감춘 것 있습니다. 감춘 것은 영감. 은밀 의지. 하나님의 은밀 의지. 영감 의지. 영감.

감추었던 만나는 문서 계시 속에 들어 있는 영감 계시를 가리켜서 말합니다. 왜 만나라 했는가? 이것은 영감의 양식을 말해. 하나님의 말씀이 양식인 동시에 영감이 양식입니다. 그러면 성령의 감동으로써 자기 양식 삼아. 이것은 인격의 양식이라. 성령의 감동으로서 자기 모든 언행심사를 하게 되기 때문에 그것이 먹는 것이요 인격의 양식입니다.

그리스도의 형상을 준다

“흰돌을 줄 터인데” 흰돌을 준다 이것은 이제 흰돌이라 말은 하나님의 형상, 그리스도의 형상, 우리를 부르신 것은 그리스도는 볼 수 없는 하나님의 형상인데 우리를 부르신 것은 그리스도의 형상을 덧입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한 것입니다. 성령의 권능이 오시면 너희들이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 된다. 증인 된다 말은 예수님은 원형이요 예수님과 같은 모형적 사람이 된다 그 말입니다.

흰돌이라 말은 예수님,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게 되는 것이 그게 흰돌입니다. 그게 무엇이냐? 그게 성결이오. “흰돌을 줄 터인데”하나님의 형상인 자기 변화를 준다 말입니다. 하나님의 형상. 예수님의 제자를 준다 그 말입니다.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를 자유케 하리라” 이렇게 성령의 은사를 자기가 받고 성령의 은사를 받고 보니까 그 사람이 예수님의 제자가 됩니다. 예수님의 형상이 됩니다. 예수님같이 성결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그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는데 받는 자밖에는 알 자가 없다” 새 이름이라 말은 새 운동이라 말입니다. 새 운동. 새 행사라 말입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를 자유케 하리라” 자유하는 행동입니다.

그러면 새 이름 있는 것은 뭐냐? 예수님이 우리를 사활의 대속으로 우리를 대속한 것이 이것은 이미 모든 것이 다 알고 있는 다 환하게 나타나 있는, 나타나니까 겉어머리 나타나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름은 행사를 말합니다.

그 다음에 빌라델비아 교회에 보면은 내 새 이름이라고 거게는 똑똑히 밝혀 놔. 내 새 이름이라. 내 새 이름이라는 건 주님의 새 운동 새 역사라 그 말입니다. 새 역사. 그러면 예수님의 사죄 칭의, 대형 대행 대화친 부활로써 우리에게 사대 이 대속을 주신 이것은 이미 환하게 우리가 다 알고 있는 거라. 대속을 주셨는데 이 대속 속에 새 대속 준다 그 말입니다. 알겠소? 대속 속에 새 대속 준다.

새 대속을 준다 말은 무슨 말입니까? 이제 주님이 우리를 위해서 대행으로 칭의 해 주신 그것을 자기가 실지로 느끼고 깨닫고 자기를 통해서 또 그런 행위가 되어집니다. 자기가 대속의 제물이 됩니다. 대형이 자기 생활이요 대행이 자기 생활이요 대화친이 자기 생활이요 하나님을 향해서 소망하는 그것이 자기 생활이라. 제이 예수 노릇 한다 그 말이요, 여러분들이 알기 쉽게 말하면. 제이 예수 노릇 한다. 이러니까 내 새 이름을 그 위에 기록한다. 그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의 성결된 사람이 되면, 하나님의 형상대로의 온전한 사람이 되면 그 사람은 예수님이 행하신 십자가의 걸음을 자기가 짊어지고 대신 나갈 수 있다 하는 것을 가리켜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받는 자밖에는 그 이름을 알 자가 없느니라” 그 받는 자밖에는 그 역사를 알 자가 없습니다. 체험한 사람이 알지 그전에는 알 사람이 없습니다.

* 운영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4-11-03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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