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식사 공동체를 추구하며!!

2009.12.30 16:24

주의 종!! 조회 수:1809 추천:157

식사 공동체를 추구하며!!

본문: 마태복음 22장 2절- 3절

2009년도를 마감하면서 우리 교회 식구들과 식사자리를 많이 마련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렇게 식사를 통한 공동체의 유익을 추구하는 것이 과연 성경적인가 하는 부분을 생각해 보고 그 교훈을 우리 교회에 적용하고자 한다.

1. 가족관계의 형성

성경에는 예수님께서 식사를 제자들, 따르는 무리, 이웃들과 함께했다는 기록이 많이 나온다. 외 예수님께서 식사를 그렇게 자주 하셨을까? 분명한 목적이 있었을 것이다. 그 근거는 다음과 같다.

성경이 기록된 고대 근동 사회에서 함께 식사한다는 의미는 가족이 식탁에 앉는다. 앉는 레벨은 한가족이기 때문에 차이가 안 났다. 함께 식탁에 앉는다는 말은 관계의 문제가 되는 것이다. 낯선 사람끼리 함께 식탁에 앉았다는 것은 가족과 같은 관계가 형성되는 것이다. 함께 식탁에 앉는 사람들의 분류는 높낮이가 없다. 똑같다.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오라 하였더니 오기를 싫어하거늘’(마 22:2-3)

잔치에 초청받은 사람의 처지에서는 자기와 현격한 차이가 있다고 하면 초청을 받아도 안 간다. 그래서 초빙하는 사람도 초빙의 응하는 사람도 수준이 비슷한 사람이 응한다. 그 사례가 마가복음 6장 21절에 보면 헤롯이 자기 생일에 대신들과 천부장들과 갈릴리의 귀인들을 청해서 잔치를 베풀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그러나 예수님은 세리, 죄인들, 바리새인, 가난한 자, 병신들, 저는 자들, 소경들과 함께 식사를 했다는 장면은 매우 파격적이었다(참조. 눅 5:29, 7:36, 14:13; 마 9:10). 이러한 예수님의 모범은 제자의 길을 가는 우리가 어떤 마음의 자세로 식사 공동체를 이루어가야 할지를 제시해 준다.

2. 가족 공동체의 샬롬을 위해서!

가족들이 함께 먹고 마시면 그 안에는 화해, 샬롬이 이뤄진다. 누가복음 15장에 보면 집을 나간 둘째 아들이 허랑방탕하게 세월을 보내다가 거지 중에 상 거지가 되었다. 그래서 그는 거의 돼지가 먹는 쥐엄열매도 먹지 못하는 가난한 거지의 상황에 부닥치게 되었다. 그는 속으로 생각하기를 “아버지 집에 가서 아버지께 종살이하는 경우가 있더라도 목숨은 건져보자.” 이런 불효막심한 아들이 돌아왔는데도 아버지는 아들을 쫓아 보내지 않고 아들을 위하여 송아지를 잡고 잔치를 베풀어 주었다. 그것은 아들이 공동체와 화해가 되어야 했다. 그래서 아버지는 잔치를 베풀어 놓고 모든 가족 그룹을 불렀다. 잔치가 무르익을 때 아버지가 아들을 세워 놓고 “이놈이 나갔다가 돌아왔습니다. 이 녀석이 어떤 잘못이 있어도 받아들여 주십시오.”라고 공표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 나라의 마음이 그와 같다는 것이다(참조. 창 26:30-31; 왕상 13:19-20)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성경에서 함께 식사하는 것은 높낮이 없는 가족임을 확인하는 중요한 의미가 있는 자리였다. 또 식사는 공동체의 샬롬을 이루어가는 중요한 방편이었다.

그래서 우리 진광교회 식구들은 이러한 성경적인 교훈을 항상 간직하고 우리의 이웃, 지체들과 함께 식사하는 자리를 많이 만들어가야 한다. 이렇게 실천하는 삶을 자꾸 힘쓰면 더욱더 풍성한 자람과 샬롬을 이루어 주시는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 하심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목사인 나는 이러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얼마나 많이 경험하였는지 모른다. 우리 지체들도 지체들과 식사자리를 많이 마련하는 주인공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도한다.

2009년 12월 30일, 진광교회 윤봉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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