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님 생신과 아리랑

2003.05.16 12:30

윤봉원 조회 수:945 추천:117


86세이신 시어머님의 생신은 음력 3월 8일 이고 양력으로 4월 23일인에 형제들이 함께 모이기 위해 양력 4월 18일로 앞당겨 점심을 같이 먹도록 하자고 연락을 했더니 어머님을 뵙고 싶은 마음에 4월 17일 저녁에 다 모였다.

나는 상점 문을 다른 때 보다 일찍 닫고 8시에 집에 들어왔다. 저녁식사를 다 끝낸 형제들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어서 가자고 재촉했다. “설거지는 영희 (생질녀) 가 한다고 하니 어서 가자”라고 다시 독촉을 하니 동서들은 엉거주춤한 가운데 사을 치우고 있었고, 벌써 신을 신고 나가는 이들도 있었다.

“어디 가는데?”

“노래방 간다”

“어머님 모시고 가면 가고 그렇지 않으면 난 안 간다. 노래방은 평소에 가도 되잖아. 어머님 뵈러 왔으면 집에서 놀지, 노래방 안 가면 안 되나?”

“모두 그리도 어머님 마음을 모르겠냐? 내 옆에 자고 가라 나하고 같이 있자 하시며 아무나 오면 붙잡고 더놀다 가라고 하시는 데….”

짜증스럽게 나오는 내 말을 받아

“괜찮다. 어머님은 집에 계신단다”하며 어서 가지고 또 독촉이다.

“꼭 가지고 싶으면 어머님 업고 가자”

단호하게 말하니까 어머님께 신을 신겨 드리고 부축하여 모시고 나갔다. 작년에는 어머님 생신날과 막내 딸 결혼날이 겹쳐서 서울 둘째 시누님 댁에서 생신을 맞이 하셨고 3일 후에 진해 파크랜드에서 하는 피로연에도 참석하셨던 어머님은 무리를 하셨든지 그 뒤로 오랫동안 고생을 하셨으므로 형제들은 어머님의 건강을 생각해서 집에 계시고 우리만 잠깐 갔다 오자는 생각임을 알지 못하고, 또 어머님이 얼마나 서운해 하시는 줄을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들 말하는 형제들을 탓할 수만 없어서 나도 함께 노래방에 갔다.

우리 뒷집에 있는 가까운 곳이어서 어머님은 힘들지 않게 걸어 가셨다. 돌아가면서 노래를 불렀다.

큰 시누님과 큰 동서는 지금까지 벌금을 내는 한이 있어도 노래를 부르지 않았는 데 어머님 연세가 높으시고, 또 오기전에 오늘은 꼭 노래를 불러야 된다고 다짐을 했었는 지 모르지만 큰 시누님과 큰 동서가 노래를 잘 불렀다. 모두 앵콜! 하며 손뼉을 쳤고 점수가 95점 나왔고 ‘앵콜’ 이라고 쓰였다.

차츰 흥이 깊어가고, 어머님은 손뼉을 치시며 즐거워 하셨다. 내 차례가 되어 노래를 무른 다음 ‘아리랑’을 신청하여 어머님과 함께 불렀다.

어머님은 귀에 익은 우리민요 아리랑을 박자가 정확하게 잘 부르셨다. 시누남편께서 어머님 손을 잡고 춤을 추셨고 큰 시누님과 나의 남편이 같이 손을 잡고 춤을 추며 흥겨워 하였다.

어머님은 이번에도 잘 부르셨다.

밤 10시쯤 집에 왔다. 만약 우리끼리만 갔다면 어머님은 두 시간 동안 문소리만 나면 내다 보시고 기다리셨을 것이다.

차 기다리는 시간과 사람 기다리는 시간은 1초가 지루하다

어머님의 생신을 맞아 다 함께 기쁜 시간을 보내어 정말 기뻤다. 오늘이 음력 3월 8일이고 양력4월 23일이다. 막내 사위가 1년전에 저희들 결혼날과 처가 할머님 생신날이 같은 것을 기억하고 오늘 아침 서월에서 “할머님 생신 축하합니다.”하며 전화를 하였다.

막냇사위는 친할머님과 외할머님이 집에 계시므로 이곳에 와서도 할머님 시중을 잘 듣고 할머님이 일어나실 때마다 얼른 손을 잡고 일어난다.

우리 어머님은 “내가 일어날 때마다 우리 막내 손서가 내 손을 잡아준다”고 자랑하신다.

아들 셋. 딸 셋 6남매를 키우시느라고 고생하신 어머님! 6남매와 며느리들과 사위들과 손자들 손녀들 손부들 손서들 증손자들 증손녀들의 축하를 받으시고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어머님 생신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하나님이여 내가 늙어 백수가 될 때에도 나를 버리지 마시며 내가 주의 힘을 후대에 전하고 주의 능을 장래 모든 사람에게 전하기 까지 나를 버리지 마소서” 시편 71편18절 아멘

1994년 4월 23일 음력 삼월 팔일

큰 며느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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