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 창 생

2003.03.20 08:43

윤봉원 조회 수:994 추천:152

동 창 생

오늘도 상점에서 창원극동방송을 기쁘게 청취하고 있는 데 잘 아는 분이 종이 사러와서 진해 제황 초등학교 근무시절의 동학년 교사이며 진주사범 동창인 권성생님 이야기를 했습니다. 자기 아들의 담임인 권선생님이 자기반 학생들에게 “너거는 커서 교회 다니는 사람하고는 결혼 하지 마라”고 했답니다. 부인이 이단에 빠져 재산을 다 바치고 빚 잔치를 할 정도로 생활이 혼란스럽다보니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 말을 했는 데 듣는 사람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그것이 걸림돌이 되어 교회에 다니는 며느리에게 교회 나가지 말라고 했으며 교회 유치원에 다니는 손자가 졸업하고 나면 교회에 가지 말라고 말했답니다. 그래서 나도 결혼하고 처음에는 시어머님 다니시는 절에 얼마 동안 다녔지만 지금은 어머님과 함께 교회에 나아가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으며 우리 어머님은 하나님 외에 더 높은 신이 없다고 말씀 하시고 성경도 열심히 읽으신다고 말하고 며느리가 교회에 나가는 것을 막지 말고 함께 신앙생활을 하자고 전도 했더니 웃으며 갔습니다.  

권선생님은 형편상 학교를 그만 두고 힘든 가운데서도 집안을 정리하고 지키고 가꾸고 다스리며 부인과 함께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가장의 임무를 감당하며 지금은 사업을 합니다.

손님과 이야기를 하느라고 방송을 제대로 듣지 못했는 데 ‘조 무제 대법관’이라는 이름을 듣고 아! 하고 신경을 곤두 세우고 청취했습니다.

조 무제 대법관이 ‘열린 재판’을 하여 원고와 피고의 입장을 다 들어주고 공정하게 재판 한다는 내용의 방송을 창원극동방송 사랑의 뜰안에서 들으니 우선 반갑고 자랑스럽고 또 내일처럼 기뻤습니다.

내가 진주사범학교 다닐 때 3학년 초로 기억됩니다.

조례시에 전교생이 다 모였을 때 교감선생님께서 “조무제 학생이 사법고시에 합격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모두가 동기 동창생의 기쁨을 함께 나누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그 후 연수를 거쳐 대법관이 되기까지 오직 공의로서 법조인의 사명을 잘 감당하여 무척 자랑스럽습니다. 그 때는 송, 죽, 매. 란의 4학급으로 반편성을 하였는 데 송, 죽, 매는 남자 반이고 란은 우리 여자 반이었습니다.

학교 졸업한지 10년만에 진주사범총동창회에 우리 가수들도 참여 하였고 그 후로는 2년마다 한 번씩 지역별로 돌아가며 모임을 가졌었습니다.

그 때마다 조법관을 잠깐씩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나는 교회예배에 참예한 뒤로 주일성수를 하기 위하여 동창회 모임에 가지 않았습니다.

“예배를 바로 드려야 생활이 바로 되고 생활이 바로 되어야 네 구원과 네 가정이 바로 되느니라”는 학습세례 문답지의 말씀과 성령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기도 하신 은혜로 주일성수를 잘 하게 하셨습니다.

16년동안 교직생활을 하던 나는 도인사규정상 장기근속자는 타 시군으로 이동을 해야만 되는 이유로 거제군으로 예비하신 ‘우리 상회’를 인계 받아 22년 동안 잘 운영하고 있습니다.

좋은 소식을 전해주는 창원극동방송을 들으면서 교회에 대한 바른 가치관과 하나님의 메시지를 두 동창생들에게 전해야 되겠다는 사명삼을 갖게 되었습니다.

1999. 1. 20. 진해 충무동교회 이정민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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