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리 사랑

2003.04.10 12:42

윤봉원 조회 수:829 추천:110

내리 사랑

부모님의 곁을 떠나 진주사범학교에 입학했던 때의 일이다. 처음 객지 생활을 하는 데다가 집을 늦게 구하는 바람에 부엌도 없는 방을 구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추녀 밑에 떨어지는 물 때문에 밥짓는 일이 힘들었고, 학교에서 먼 곳에 있는 동네여서 아침 일찍 일어나야 했다.

2주일 후에 집에 가니 자취생활이 어떻더냐고 말씀하시는 부모님께 혼자 먹을 밥을 짓더라도 큰 장작을 때니까 아깝다고 말씀 드렸다. 아버님께서 장작을 한 뼘 정도의 길이로 짤라서 다시 잘게 쪼개어 쌀 부대에 가득 담아 주셨고 어머님은 밑반찬을 단지에 담아 보자기에 싸 주셨다.

비포장 도로를 달리는 버스가 털털거려서 반찬 단지를 싼 보자기 밑에 동그랗게 표가 났고 낡아서 곧 떨어졌다. 아무리 먼 산촌이고 차 멀미를 해도 반찬 떨어진 것을 핑계 삼아, 거창까지 5시간이나 걸려도 집에 간다는 마음에 토요일은 아침부터 마음이 설레었었다.

설에 왔다가 15시간이나 걸려서 금한 큰 딸 가족이 2월 말 막내 딸 내외와 함께 왔다.

밤에 아이들의 옷을 빨면서, 얼마나 멀미를 심하게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첫 돌 지낸 외손자와 네 살짜리 외손녀는 가운데 눕히고, 시어머님과 막내 딸이 양쪽 가에 눕고, 큰 딸은 머리맡에 눕고, 아랫목에는 행가에 빨래를 늘었다. 4대가 한방에서 불편한 가운데서라도 단잠을 자니 참 행복했다.

떠나기 전 한 두 시간 동안이나마 막내 사위와 막내 딸은 시어머님 방에서 함께 TY도 보고, 말씀을 들으며, 시중을 들었다. 외손자 외손녀가 밖에 나가자고 할 때 얼른 따라 나서며 아이들을 귀여워 하는 걸 보니 마음이 흐뭇했다. 외손녀는 “서울 가기 싫어, 외갓집에서 더 놀고 싶어”하며 울었다.

가다가 배 고프면 먹으라고 도시락을 챙겨주니 짐도 많고 차도 무겁다고 투덜거리던 큰 딸과는 달리 밤 늦게 “장모님!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라고 인사하는 큰 사위가 대견스러웠다.

“엄마! 달래는 저희 집으로 지금 막 갔는데 전화 드리지 말라고 했으니 그냥 주무세요”하는 큰 딸이 전화를 받고 역시 내리사랑이구나 하는 생각에 부모님의 사랑이 더 그리워 졌다.

그러나 우한한 인생이기에 돌아가신 부모님의 사랑도 유한 할 수 밖에 없다.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은 영원하시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 찌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이사야 50:15) 는 하나님의 음성이 나를 위로해 주시고 꼭 안아주셔서 기쁜 마음으로 주님께 찬송을 올려드렸다.

죽음의 길을 벗어나서 / 예수께로 나옵니다

영원한 집을 바라보고 / 주께로 옵니다

멸망의 포구 헤어나와 / 평화의 나라 다다라서

영광의 주를 뵈오려고 / 주께로 옵니다

1999.  3. 7. 진해 충 무 동 교회 이 정민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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