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끈한 김치국밥

2003.03.20 08:49

윤봉원 조회 수:901 추천:104

따끈한 김치국밥

6.25사변이 일어나던 해 나는 초등학교 2학년이었습니다. 아버지는 거창군청에 근무하셨습니다.

인민군들이 내려오자 공무원 가족인 우리는 외갓집으로 피난을 갔습니다. 그 곳에서도 오래 있지 못하고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산에 있는 방공호 속에 숨어 있었습니다.

우리 가족들은 또 다시 큰 집으로 피난을 갔습니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되자 9.28 수복으로 아버지는 다시 군청에 근무 하셨지요.

“학교에 가고 싶으면 읍에 내려가자” 하고 하셨는 데 언니는 가지 않겠다고 하여 언니와 동생과 어머님은 큰집에 있었고 나만 아버지와 함께 내려 왔습니다. 우리집과 동내는 폭격으로 완전히 폐허가 되어서 어디가 어디인지 부간 발 수 없었습니다.

거창읍에서 십 리 길이 되는 외갓집에 다시 갔습니다. 아침에는 아버지 자전거 뒤에 타고 등교 하였으나 방과후에는 늦게 퇴근하시는 아버지를 기다릴 수 없어서 혼자 외갓집까지 걸어갔습니다.

신작로 길을 걸어가면 무서워 큰 소리로 구구셈을 익히기도 하고 학교에서 배운 동요를 부르며 갔습니다.

산에서 메아리가 울려 올 때는 마치 누군가 내 뒤에 있는 줄 알고 두리번 거렸습니다.

지게에 갈비를 한 짐 지고 내려오는 사람을 보면 반갑기도 하고 겁이 나기도 해서 얼른 뛰어 갔습니다. 이 맘때만 되면 단발머리에 치마 저고리를 입고 책보따리는 돌돌 말아서 허리에 차고 추워서 손을 호호 불며 외로움으로 눈물을 글썽거리며 걷던 때가 생각 납니다. 외갓집에 도착하면 까만 밥솥에 김치국밥이 한그릇 내 몫으로 있었습니다.

농사지은 것은 빨치산들이 빼앗아 갔고 농사도 잘 되지 않았으니, 굶지 않고 국밥이라도 먹었던 게 큰 다행이었습니다. 점심때는 몇 년동안 국밥만 먹었습니다. 디모데 후서 4장 13절에 사도바울은 감옥에서 성경님의 도우심과 감동에 따가 성경을 기록하였고 이방인의 전도자로써 사명을 다 감당한 것을 읽고 듣고 배워서 압니다. 사도바울의 신앙생활을 본받아야 하는 가운에서 감히 말씀 드리는 것은 우리의 현째 형편이 어렵다고 해도 우리는 겉옷이나 속옷이 철따라 한 두벌 이상은 있고 가죽 종이에 쓴 책이라고 표현한 성경책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어디서나 마음껏 읽을 수 있습니다.

‘라니냐 현상’으로 금년 겨울은 특별히 더 추울 것이라는 기상청 예보에 주눅들지 말고 따끈한 김치국밥으로 몸도 마음도 녹혀서 더욱 성령충만한 가운데 밝고 건강하게 지내고 겨울을 잘 이기도록 간절히 기도드리며 권해봅니다. 샬롬.

1998. 11. 28.

진해 충무동교회 이정민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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