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와 자가용

2003.03.20 08:47

윤봉원 조회 수:842 추천:114

자전거와 자가용

집은 없어도 자가용은 있어야 한다는 것이 신세대의 사고방식인 것 같다.

우리 기성 세대는 내 집 마련의 꿈으로 몇 년씩 저축하고 근검절약하며 살아왔고 지금도 그런 정신으로 살아가고 있다.

내가 군항 진해로 시집 온지도 어언 32년이나 되었다.

처음 진해에 와서 깜짝 놀란 것은 아침 저녁 출퇴근기의 자전거 행렬이었다. 수 백대의 자전거 행렬은 무질서하게 뒤엉켜 가는 것 같으면서도 질서정연하게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가는 자전거 부대는 장말 장관이었다.

지금은 그 대부분의 자전거가 자가용으로 대체 되고 보니 소음과 매연은 말할 것도 없고 출퇴근 시간이면 심한 정체로 도로가 온통 차로 덮이다시피 덮었다.

만원 버스 타기가 너무 힘들다며 80년도에 승용차를 샀다.

그 후 두 번 차를 바꾸었지만 오래 아껴 타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97년 말 IMF를 당해 모두들 움츠러지자 98년 2월초에 자가용을 처분했다. 얼마동안 매우 불편해하던 남편도 요즘은 버스 타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어디 외출하여 늦게와도 차를 갖고 갔을 때 보다 걱정이 덜되고, 지금은 연료비, 자동차세, 보험료불입 등 차 관리비가 지출되지 않으니 절약이 된다. 급할 때는 택시를 이용하면 된다고 생각하니 마음의 여우가 생기고 이래저래 자연스럽게 구조조정이 된 셈이다.

젊은 애기 아빠들에게 권하고 싶은 게 있다.

휴일이면 아이들을 자전거에 태우고 가까운 교회로 나가 자연과 더불어 ‘추억을 만들어 보라’는 것이다.

내가 어릴 때 아버지의 자전거 뒤에 타고 큰 집이나 외갓집에 갔던 일은 아버지에 대한 추억에서 빼놓을 수 없다.

추운 겨울 큰 집에 갈 때 자전거 뒤에 타고 가면 바람이 맵고 차서 매우 추웠다. 그래도 아버지의 등 뒤에 얼굴을 대고 가면 따뜻했다.

아버지는 “춥지? 나는 자전거를 타고 가니까 땀이 나 너는 많이 춥겠구나. 조금만 더 가면 봉황대다. 참아라” 하시었다. 거창군 주상면 봉황대에 우리 선산이 있었고 묘직이가 살고 있어서 거기에서 쉬어가곤 했었다. 봉화대에서도 고제면 큰집까지 가려면 한시 간이 더 걸렸다. 나는 아버지의 어깨를 잡고 서서 가기도 했고, 아버지의 허리를 잡고 앉아서 갈 때도 있었다. 신작로 길을, 자전거를 타고 가면 돌이 튀어서 저 멀이 튕길 때도 있었고 털털거려서 깜짝 깜짝 놀랄 때도 있었다. 큰집이나 외갓집에 가는 것도 신나는 일이지만 아버지의 자전거 뒤에 타고 가는 마음은 ‘세상에서 내가 제일 신난다’는 기쁨이었다.

구원받은 성도들이여! 자전거 타는 기쁨은 비교도 할 수 없는 영생의 기쁨으로 앞서가신 우리 대장 예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 안에서 오늘도 시온의 대로를 향하여 달려가는 성도들의 행렬은 장관중에 장관이라는 감격으로 가슴이 설레 이기를 기도 드리는 바이다.

할렐루야!

1998. 12. 14.

진해 충무동교회 이정민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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