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손녀의 축생을 축하하며

2003.09.19 14:37

윤봉원 조회 수:718 추천:95

외손녀의 축생을 축하하며

막내 사위가 첫 딸을 낳았다는 전화를 받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 기도를 드렸다. “기왕이면 아들 낳기를 바랐으나 ‘첫딸은 살림 밑천’이라고 하네. 축하하네. 아빠 된 기분이 어떤가?”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아이가 크고 산모의 골반이 약해서 진통을 겪다가 수술하여 낳았는데 아이와 산모가 다 건강하고 회복실로 옮겼습니다.”

“아무튼 반갑고 축하하네. 자네가 병원에 있을 텐가?”

“오늘 저녁에는 제가 있고, 내일부터는 어머님이 오셔서 보살펴 주실 겁니다.”

“어머님께 축하 드린다고 안부 여쭙고 수고하게.”

전화를 끊고 아이와 산모가 모두 건강한 것에 대해 다시 감사 기도를 드렸다. 회복실에서 나온 딸이 “엄마,…”하며 전화했다.

아직 젖이 나오지 않아 우유를 먹인다고 하여 되도록이면 모유를 먹이라고 당부하며 딸에게 찬물에 손 넣지 말고 조리 잘하라고 당부하였다.

축하한다는 말을 듣고 딸은 밝은 음성으로 이젠 아프지 않다고 했다. 막내 딸과 통화한 뒤에 내가 딸을 낳던 일이 생각났다.

그때는 전화기가 수동식이어서 우체국 교환수가 전화를 받아 우리가 부탁하는 집에 전화를 연결시켜 주었다.

자정이 지나면서 배가 아팠다. 산파에게 전화하려고 아무리 신호를 보내고 받지 않아 남편이 우체국까지 뛰어가서 문을 두드렸으나 대답이 없어서 파출소로가 당직 경관과 함께 우체국에 가서 경비전화를 했다고 한다.

통화량은 많고, 피곤한 숙직 교환이 그만 잠이 깊이 드는 바람에 소동이 일어났다.

초겨울 새벽 찬 공기와, 마음이 다급한 남편은 떨면서 집에 왔고 반 시간이 지나서야 산파가 왔다.

그렇게 여러 사람을 놀라게 하고 태어나 우리 막내 딸이 벌써 엄마가 되었다. 결혼한지 3년 만에 첫 딸을 낳았으니 사돈댁에서는 많이 기다리셨다.

내가 아이를 낳던 때는 대부분 집에서 산파가 와서 받았다. 요즘은 산모가 병원에 다니며 정기검진을 받고 병원에서 해산을 하니 나처럼 다급한 일은 적을 것이다.

윌 큰 딸은 남매를 두었는데 셋째 아이를 가져 배가 부르다. 주위에서 조선시대 여인도 아니고 직장에 나가면서 어떻게 아이 셋을 키우겠느냐고, 대단하다고 하지만 하나님께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 하라고 하셨고 먹이시고 입히시고 지켜주시니 주시는 대로 감사히 받으라고 하셨다.

“다른 친구들은 시댁이나 친정에서 아이를 봐 주시는데 나처럼 남의 손에 키우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면서도 하나님의 은혜로 저희들끼리 오순도순 잘 지내니 얼마나 감사하며 사랑스러운지 모른다. 작은 딸은 아들 하나를 낳고 위암수술을 받아 더 낳지 못하나 딸만 셋 있는 우리 부부에게 귀여운 외손자들과 외손녀들을 주시고 화목한 가정을 이루어 주시며 항상 함께 하시는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려 드린다.

2001.6.19. 진해 진 광 교회 이 정민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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