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의 복음의 신

2004.11.17 16:13

윤봉원 조회 수:1233 추천:136

평안의 복음의 신

우리 딸들이 어릴때 저희들 신이 여러 가지가 있는데도 내 신이나 저희의 고모 신을 신고 싶어 했다. 작은 발에 비해 모트 만큼이나 큰 하이힐 구두를 용케 신고 몰래 대문을 나서다가 걸려 넘어져도 아프다는 소리를 하지 않고 얼른 일어나 길에 나가 걸어다니고, 저희 아바나 삼촌, 할아버지의 슬리퍼를 신다가 야단을 듣기도 했다. 앙증스럽고 예쁜 코 고무신과 장화, 슬리퍼, 샌들, 운동화를 각기 사주어 신도록 했는데 때로는 이 신발들이 현관에 모두 나와 있어 무질서하게 어질러 놓아 나에게 꾸중을 듣고 놀라서 신발장에 챙겨 넣던 딸들이 이젠 다 출가하여 집을 떠났다. 오늘 우체국에서 일을 보고 집에 오는 길에 두 돌이 지났음직한 남자아이가 아랫도리는 벗은채 어른 슬리퍼를 신고 자기 집 앞 길에 쪼그리고 앉아 용변을 보려고 얼굴을 찡그렸고, 강아지는 아이 주위에서 쫄랑대며 돌아다녔다. 요즘은 잘 볼수 없는 일이지만 전에는 예사롭게 생활하던 모습이다. 우리 일반 서민들의 생활의식이나 문화수준이 많이 향상되었지만 아직도 교통신호를 어기고 달리는 차와, 빨간 불이 켜진 것을 무시하고 건너는 사람들이 있어 안타깝다. 딸들이 어릴EO는 어서 커서 내가 좀 수월 했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벌써 외손자 외손녀를 보았으니 세월이 유수같이 빠르다는 말이 실감난다.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는 에베소서 5장 16절 말씀을 묵상하면 할 수록 지난 날 주님을 알지 못해 세월을 허비한 삶이 억울하다.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주님이 친히 사람되어 오시기까지 낮아지시고, 나 대신 형벌 받으시고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나를 사랑하신 것과 구원하신 은혜를 할머니가 된지금에서 실상으로 알겠고, 내 죄가 십자가에서 죽을 만큼 많은 것도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감사한 것은 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주 안에서 담대하며 기뻐하며 즐거워하게 하신다. 예나 지금이나 아이들이 어른 신을 신고 싶어하는 것처럼 나도 우리 대장 예수님을 따라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하나님 말씀으로 전신갑주를 입고 주님의 증인된 자로 진리와 참된 길이 없으므로 평안한 것 같던 삶이 허무하고 이기적이고,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속했던 것임을 어느 한 순간에 알고 많은 사람들은 참 평안을 얻기 위해 갈급한 마음으로 일에 매달리고, 바쁜 생활을 하여 자신이 시간을 관리하는게 아니라 시간속의 한 톱니바퀴처럼 피동받음대로 끌려가게 된다. 그러나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따라가는 자는 주님이 때마다 일마다 친히 주시는 평강을 받아 언제 어디서나 복음을 전하며 맡은 바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기쁜 마음으로 힘쓰고 애쓴다. 보통 우리가 신는 신은 디자인이 자주 바뀐다. 요새 앞이 긴 구두를 신고 다니는 청년들이 많다. 디자인과 유행이 바뀌기 때문이다. 평안의 복음의 신은 태초부터 영원까지 변함이 없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고,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니 어지 진리가 아니겠는가? 이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믿음으로 끝까지 승리하는 남은 생애가 되기를 기도 드린다. 할렐루야!

2000. 8. 11 진해 진광교회 이 정민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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