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모님의 사랑

2005.12.02 22:27

윤봉원 조회 수:944 추천:122

고모님의 사랑

진해는 겨울에도 눈 구경하기가 어렵다. 나의 친정 거창에는 겨울이면 눈이 많이 와서 길에, 학교 운동장에, 마당에 군데군데 서 있는 눈사람을 볼수 있다.
외손자 강훈이가 먼 산에 있는 눈을 보고 눈사람 만들어 달라고 졸라서 혹시나 하고 장복산 휴게소에 가보았더니 음달과 길 옆 개울가에 눈이 조금 있어서 주먹만한 눈사람을 만들고 눈싸움을 하였다. 내려오는 길에 고드름이 보여 고드름 고드름 수정 고드름 하며 손자에게도 노래를 가르쳐 주었다. 문득 고모님 댁에 갔던 일이 생각났다. 큰아버님 작은아버님 사촌과 나 그리고 남동생이 산길을 걸어서 고모님 댁에 갔었다. 신작로로 가는것보다 빠르다고 산길로 갔었는데 힘들고 미끄러지기도 했으나 재미 있었다. 고모님은 너무 반가와 어쩔줄 몰라하시며 맛있는 점심을 차려 주셨다. 큰 아버님과 작은 아버님은 바로 가시겠다고 일어서셨고 우리는 고모님이 “하루만 쉬고 가라.”고 붙잡아서 고모부님의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으며 고종과 함께 잤다. 아침에 일어나니 눈이 마당에 수북하게 쌓였다. 나는 사촌과 동생을 깨워 어서 아침 먹고 큰집에 가자고 독촉했다. 고모님과 고모부님은 “내일 가거라 길도 안 보이는데 어떻게 가겠느냐”고 걱정하시며 말리셨으나 고집을 부리고 나섰다 고모부님은 나가보고 들어오라고 하셨고 고모님은 따라 나오셨다. “꼭 갈려면 너거 둘만 가고 상대는 두고 가면 내일 내가 데려다 주마.” 하시는 데도 그냥 가니까 “이제 열 살밖에 안됀 애가 무슨 고집이 그리 세노?” 하시며 눈물을 글썽이셨다. 나는 동생들을 재촉하며 부지런히 걸었다. 고모님은 보이지 않을때까지 서서 눈물을 훔치셨다. 동생을 업다가 걸리다가 바람이 심하게 불때는 잠시 돌아섰다가 길 가운데로만 따라 걸었다. 길옆 개울과 논이 온통 눈으로 덮여 구별이 되지 않았고 눈은 발목까지 올라왔으나 길만 따라가니 눈도 멎고, 큰 집까지 갈수 있었다. 어른들께서 깜짝 놀라시며 사오리가 넘는 눈길을 어떻게 왔느냐고 하시며 어서 방에 들어가서 옷 갈아 입으라고 하셨다. 내가 걸어가는 삶의 여정에도 산길이 있고, 눈보라가 앞을 가리어 길이 잘 보이지 않을 때가 있으나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가니 좋은 날이 더 많았다. 눈이 날리기에 얼른 빨래를 걷으면서 고모님의 사랑을 생각하니 눈물인지 눈 물인지 모를 눈물이 얼굴에 뚝 떨어졌다.

1999. 2. 3. 진해시 충무동 20. 이 정민.

* 윤봉원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5-12-02 22:29)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