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어머님 감사합니다

2005.12.02 22:27

윤봉원 조회 수:1195 추천:130

큰 어머님 감사합니다.

죽음의 쇠살슬 풀리고 / 자유의 종소리 울린다. / 팔 월 십 오일 / 팔월 십 오일....하며 사촌과 나는 가사가 맞는지, 곡조가 틀리는지 아랑곳하지 않고 마당에서 검정 고무줄을 잡고 팔짝팔짝 뛰면서 노래를 불렀다. 그럴때면 영락없이 증조 할머님의 방문 여는 소리와 함께 야단치시는 말씀을 듣게 된다. “네 이년들 할아버지 한테 다 일러준다. 어디 한번만 더 해봐라.” 하시며 긴 담뱃대로 대청마루를 탕탕 치셨다. 우리는 숨을 죽였다가 증조 할머님이 방에 들어가시면 또 8월 15일 / 8월 15일 / 하며 고무줄 뛰기를 했다.
증조할머님은 사랑채에 대고 큰 소리로 “할아버지야! 어서 와서 이년들 혼내줘라.” 하시면서 할아버지께서 나오실때까지 어린 아이마냥 보채셨다. 드디어 사랑에 계시던 할아버지께서 큰 기침을 하시며 나오셔서 “네 이놈들 어서 할머님께 잘못했습니다 하고 빌어라.” 하시면 증조 할머님은 금방 노염을 푸시고 좋아하셨다. 할아버지는 3대 독자시다. 증조 할머님은 그야 말로 쥐면 꺼질까 불면 날까 애지 중지 키우시고 길쌈을 해서 재산을 많이 늘리셨다는 이야기를 어머니께서 자주 말씀 하셨다.
치매기가 있으신 증조 할머님은 우리가 부르는대로 “할아버지야! 나는 할아버지랑 같이 밥 먹을란다.” 하셔서 특별한 손님이 오실 때만 사랑에서 진지를 드셨고, 증조 할머님과 겸상을 하여 손수 생선 뼈를 가려서 증조 할머님께 얹어 드렸고, 한번은 할아버지가 증조 할머님을 업고 마루에서 이리 저리 다니셨다.
볍씨를 얻으러 오는 이들에게 항상 넉넉하게 주시며 부지런히 일하라고 말씀하셨다. 사랑에는 과객들이 늘 몇 명 있었다. 조그만 상에 각자 음식을 차려 큰 머슴, 작은 머슴이 날라서 손님들을 대접했다 큰 어머니는 “설 팔월 좀 없으면 좋겠다.”고 하셔서 “왜요? 얼마나 신나고 좋은데요.?” 하면 “모르겠다. 네나 좋지.” 라고 하셨다. 지금 생각해 보니 종가댁 종부로써 큰 일과, 기제사며, 설부터 이월 영동 바람 올릴 때까지 먹을 강정과 유과와 전과를 만드셨고 엿, 단술, 수정과 떡국을 장만하여 손님과 온 친척까지 대접 하셨다.
의관도 준비 해야 되고 놋그릇도 닦아야 했으니 얼마나 힘드셨을까?
마당에서 전을 부치는 고모와 언니, 인절미 떡판을 치는 머슴들, 사촌과 나는 널을 뛰다가 디딜방아를 찧었다. 번번이 헛방아를 찧어 큰 어머니께 주의를 들었다. 여든 다섯이신 큰 어머니가 우리 친정의 어른이시다. 동네 할머님들과 이웃에 있는 언니와 고모가 놀러 가시면 지금도 큰 어머니가 손수 챙기셔서 같이 맛있게 잡숫고 즐겁게 지내신다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서울에 있는 아들들과 며느리들 손자들이 모석으로 전화드리며 모실려고 하면 “내 걱정 말고, 너희들 몸 조심하고 일 잘해라.” 하심 밝은 음성으로 당부 하시는 큰 어머님! 늘 평안 하시기를 빌며 감사 드립니다.
                                                         진해 허서방네 올림
1999. 2. 7.


* 윤봉원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5-12-02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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