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해서

2009.04.11 18:53

윤봉원 조회 수:1022 추천:65

성경에 읽어 보면 성부, 성자, 성령 이 삼위에 대해서 아주 차이가 심히 엄격한 것을 우리가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이래서 이 삼위관이, 성부 성자 성령 이 삼위관이 참 바로 되기가 심히 어렵습니다. 어렵기 때문에, 삼위일체에 대한 이 해석이 제일 어렵다 이랍니다. 또 삼위 일체에 대한 해석은 사람들이 할 수 없는 어려운 해석이다 또 이렇게들 말합니다. 이러니까 다 삼위일체에 대한 해석이 어렵다는 그 점에 있어서는 모든 신학자들이 공통입니다. 다 어렵다. 이러니까 어려운 것을 말하는 그 말은 공통입니다.
모두가 다, 삼위일체의 하나님은 무한하신 분이요 자존하신 분이요 우리를 없는 가운데서 창조하신 분이기 때문에 지음을 받은 우리들이, 유한한 우리들이, 불완전한 우리들이 우리를 무한히 탁월한 그분을 우리가 말할 수는 없다, 어떤 분인 것을 우리가 다 바로 해석하지는 못한다 해서 그만, 삼위일체에 대한 극히 어려운 비밀, 또 해석에 아주 어려운 난점 그런 거는 이렇기 때문에 우리가 해석할 수 없다 하는 그 한 마디 가지고서 그만 다 대충을 해 버리고 만 것이 오늘까지 그대로 다 신학자들의 통계입니다.
1.1. 잘못된 교리의 예(例)
그래 오늘 아침에 하나만 잠깐 말하는 것은 여러분들이 성경을 읽어 보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그 격위가 아주 엄격합니다. 이래서, ‘성부가 제일 높고 크신 분이고 성부와 성자의 차이는 굉장히 있고 또 성자와 성령의 차이는 굉장히 있어서 다 차이 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다 그것은 이단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말하는 그 교리가 처음에는 시작하기를 한 교파 두 교파 시작했는데 점점 이것이 늘어 나가서 이제는 차이 있게 그렇게 사람들 주관 가지고 해석하는 것이기 때문에 차이 있다 이렇게 해석하는 사람들이 뭐 거의 다가 돼갑니다.
그래서, 오늘 이 가운데 여기서 믿는 사람들도 ‘성부라면 제일 어른으로서 존재의 시기도 같이 동시에 존재한 것이 아니고 존재의 순 다르다. 첫째가 성부, 그 다음에 성자, 그 다음에 성령으로 삼위의 존재 순서가 다르다. 또 그뿐만 아니라 권위 순 다르고 지혜 순 다르다. 권위와 지혜와 능력의 순 다르고, 또 일을 맡은 순 다르다.’
이래 가지고서 자꾸 다르다는 이것을 말할 때에 인간 지식을 가지고서 해석하는 사람으로서는 과연 다르다 하는 그 다르다는 교리를 인정하는 것이 지금도 뭐 한 팔십, 똑똑히는 모르지만 팔십프로 이상입니다. 앞으로는 백프로가 다 그렇게 되지 않느냐 이렇게 생각이 됩니다.
그런데 실은 존재도 같이 존재했고, 또 크기도 꼭 같고, 권세와 능력과 지혜와 영광과 존귀와 위엄이 꼭 같고, 또 모든 크심이나 그런 순 꼭 같다 이렇게 믿는 것이 장로교 교리입니다. 교리적으로는 장로교 교리가 제일 바르고 옳습니다.
이런데, 왜 사람들이 그렇게 자꾸 차이 있다고 그렇게 생각을 가지고 차이가 있다고 해야 마음에 인정이 돼지고, 차이가 없다고 동등이라 이렇게 말하면 인정이 잘 안 되는 그 이유가 무엇이냐? 어데서 그런, 사람들에게 의문을 가져오게 됐느냐 하면은,
성자가 그 직책을 이행할 때에 성부에게 절대 복종입니다. 절대 복종이고 하나도 거게서 그 앞에서 당신의 그 주장이나 권세나 또 능동이나 그런 것이 전혀 없고 피동적이고 복종적입니다. 또 성부의 것을 성자가 발표했지 당신의 것을 발표하지 안했습니다. 그러기에 “내가 한 말은 곧 아버지의 말이요 내 안에서 아버지가 일하시기 때문에 내가 지금 말하는 것이지 내가 단독이 일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말을 했습니다. 이러니까 차이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또 성령도 주님의 것을 가지고 하지 성령님의 독단으로서나 능동으로 성령님께서 무엇을 발언해 가지고 하는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꼭 성자의 것을 가지고서, 성자가 성부에게 한 것과 꼭 같이 성령은 성자에게 그렇게 했습니다. 그러니까 여게서, 보라 이 차이점이 있지 않느냐 이래 가지고 그것을 사람들이 말합니다.
이것은 여기에서 뭣을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느냐 하면은 성부, 성자, 성령은 한 하나님이십니다. 한 분이십니다. 한 분이요 한 하나님이신데 어떻게 그렇게 맡은 그 직책에 대해서는 그렇츰 엄격하고 털끝만큼도 거게서 월권하는 일이 없고 그렇게 정확 무오하게 그렇게 엄격하게 하는가 하는 이것을 우리가 보고서 깨달을 것은, 내나 한 하나님이십니다.
삼위일체에 대해서 해석하기를 어떤 사람은 나무로 비유해서 뿌리, 둥치, 가지, 이렇게 ‘한 나무에도 뿌리 있고 둥치 있고 가지 있다’ 이렇게 비유하는 그런 사람들도 있고, 그런데 그 비유는 좀 사람들이 약하다 하고서 그리 인정을 잘 안 하고,
또 어떤 사람은 ‘태양이 있다, 태양이 있는데 태양에서 빛도 나오고 열도 있다, 열도 있고 빛도 있으나 그것이 내나 한 태양에서 나왔다.’ 이렇게도 또 비유해서 말하는데 오늘까지에 비유 가지고 말하는 데는 그 비유가 모든 사람이 제일 유력하다 그렇게 긍정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거기에 대해서 비유를, 이렇게 했으나 이것이 그 맞는 거는 아닙니다. 왜? 이 책상 위에 만일 이 책상 위에 백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이 책상 위에 백 가지 종류의 물품이 있다 말입니다. 백 가지 종류의 물품이 있는데 이것을 탁월한 어떤, 사람을 하나 말하려고 하면은,
사람은, ‘자, 사람이라는 게 하나 있다.’ 이라면 어떤 사람이 있다가, ‘사람이라는 게 있다면은 네가 사람이 있다 자꾸 그렇게 말하지 말고 사람은 이와 같은 것이다 하나 그런 것을 하나 인용해서 이와 같다 그렇게 말을 해 주면 똑똑히 알겠다. 그러니까 뭐와 같은고 봐라. 자, 여기 지금 백 가지가 있으니까 이거와 같나 이거와 같나?’ 백 가지를 다 말하면서 ‘이와 같으냐?' 하면은 거기에 이와 같다 그렇게 말할 것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이 책상 위에? 예? 책상 위에 ‘이거와 같다’ 하는, 이거와 같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책상 위에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지요. 있을 수가 없지요.
왜? 여기에 없는 것 이것을 탁월한 여기에 없는 그런 것이기 때문에 여기에 있는 것 가지고는 이와 같다 할 수가 없다 그 말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삼위일체 하나님은 이 천상 천하에 모든 피조물과 다른, 피조물이 아닌 피조물과 다른 그 무한히 크시고 무한히 완전하시기 때문에 이 피조물 가지고는 이런 것과 같다 저런 것과 같다 그렇게 비유할 수가 없다 그 말입니다. 맞습니까? 비유할 수 없다 말이 맞습니까? 녜, 맞습니다. 비유하지 못합니다.
1.2. 목사님의 생각?
그러나 저는 비유하기를, 인용하기를 그렇게 말을 합니다. 맞다고 하는 거는 아닙니다. 한 사람이 있는데, 한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의 격위가 셋이다. 호주라는 격위를 가지고 있고 남편이라는 격위를 가지고 있고 또 아버지라는 격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한 사람이지만 자기의 직책이 각각 다르다. 남편 직책은 다르고 아버지 직책 다르고 호주 직책 다르고 다르지만 사람은 하나다.
그와 마찬가지로 성부, 성자, 성령 삼위는 그 본체가 하나다. 하나님은 한 분뿐이시다. 그러나 그 한 분이 맡은 직책이 각각 다르다. 격위가 다르고 직책이 다르다.
그래서, 내나 그 직책을 떠나면, 그 직책을 떠나면, 직책을 떠나서, 직책 속에 들어오면 성부, 성자, 성령 삼위가 뚜렷하지만 만일, 영원히 떠날 수 없지만 직책을 떠난다고 하면 성부가 성자요 성령이요, 성령이 성자요 성부요, 내나 성부나 성자나 성령이나 그런 한 분뿐인 하나님이시다 그렇게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한 분뿐인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성자에 대해 “하나님의 본체시나” 이래. 성자에 대해서 그는 하나님의 본체시나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본체이니까 성부의 본체라 말 아니요? 성령의 본체라 말 아닙니까? 이러나 직책에 대해서는 이렇게 엄격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깨달을 것이 뭐냐 하면 하나님은 한 하나님으로서 한 분인 영원 자존하신 한 분인 하나님, 둘이 아니라 한 분인 하나님이시지만 하나님이 각각 직책을 맡은 그 직책에 대해서 엄격했습니다.
그 직책에 대해서 그 직책을 혼합하거나 혼돈하거나 이렇게 뭐, 내나 하나가 하는 것이니까. 우리 사람은 나 한 사람이 이 일도 맡고 이 일도 맡고 이 일도 맡고 서이를 맡았다고 하면은 다 내가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일과 이 일에 대해서 그렇게 엄격하게 구별하지 안하고 다 이렇게도 저렇게도 한테 혼합을 시켜서 할 때도 있고 뭐 내가 내나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렇게, 그렇게 가릴 게 뭐 있느냐 이래 가지고서, 아무리 구별해서 한다고 해도 그 구별에 대해서,
이 직책을 내가 세 가지 직책을 맡았는데 일, 이, 삼으로 만일 삼의 직책을 맡았다면은 삼의 직책을 맡은 내가 내나 일호의 직책도 맡았고 이호의 직책도 맡았고 삼호의 직책도 맡았으니까 삼호 직책 맡은 내가 일호 직책을 또 내가 맡아 가지고 있고, 일호 직책을 또 내나 내 한 사람이 맡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삼호 직책과 이호 직책과 일호 직책을 서로 혼합할 수도 있고 혼돈할 수도 있고 또 이렇게 서로 그렇게 구별하지 안하고 이렇게도 할 수가 있지 않겠느냐? 내나 자기 혼자하기 때문에. 자기 혼자하기 때문에 그렇게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뭐 우리는 참 그것이 그저 윤곽적으로는 이렇게 자기가 이 회사의 사장이고 이 회사 사장이고 이 회사 사장이고 이러면은 윤곽적으로는 이 회사는 이 회사대로 따로 독립을 하고 이 회사는 이 회사대로 독립을 하고 이 회사는 이 회사대로 독립을 해서 자기가 세 회사에 다 사장이 됐다 할지라도 그 회사와 회사의 서로 경제라든지 권세라든지 의무라든지 책임이라 하는 그런 것은 윤곽적으로는 엄격하게 따져서 각각 구별하지만,
그래도 내 한 사람이 내나 이 회사 사장이고 저 회사 사장이고 저 회사 사장이고 하기 때문에 직책을 감당할 때도 혼돈하기 쉽고, 또 모든 사건이나 모든 자원이나 이런 것도 서로 혼돈해 가지고서 이렇게 그것을 서로 타 가지고 이것을 똑똑히 그렇게 구별하지 안하고 타 가지고서 그렇게 하기 쉽고,
그렇게 하는 것이 사람으로서는 뭐 천 명이 만 명이 있다 할지라도 다 그럴 것입니다. 다 내가 한 사장이기 때문에, 내나 내 회사요 한 사장이기 때문에 이거와 이것의 구별을 그렇게 엄격하게 가지지 안하고 서로 어떨 때는 합할 때도 있고, 탈 때도 있고, 섞을 때도 있고, 또 이렇게 양보할 때도 있고 저렇게 양보할 때도 있고, 이 힘을 이리 또 돌려서 할 때도 있고 저 힘을 저리 돌려 가지고서 이렇게 해서 이것을 메꿔 나갈 수 있는 것이 우리 사람들이라 그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성부의 직책이나 성자 성령의 직책에 대해서는 아무리 성경에 봐도 거기에 대해서 털끝만큼라도 그게 혼잡한 일이 없습니다. 또 이렇게 혼돈한 일이 없습니다. 또 이렇게 서로 타협하고 이래 한 일이 없습니다. 어떻게 철두철미하게 참 절대로, 우리가 볼 때는 절대를 붙일 수 있는 그런 그 구별성을 가지고 하는 것을 볼 수가 있다 그것입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은 당신 자체가 자체끼리, 당신 혼자, 당신 혼자 자기 혼자, 자기 혼자가 이거 저거 맡아 있는 내나 한 분이신, 한 분이신 하나님이 이것 저것을 맡아 가지고 있지만 직위와 직위를 혼돈하지 안했다. 직위와 직위를 혼돈하지 안했다. 이러니까 그 감당에 대해 혼돈하지 안했다. 언제든지 권세에 대해 혼돈하지 안했고 절대성으로 구별을 가지고서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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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봉원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9-04-11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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