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통분, 민망히 여기심의 의미

2011.03.14 22:20

윤봉원 조회 수:1114 추천:82

요 11:3386032633'예수께서 그의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의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통분히 여기시고 민망히 여기사 (요 11:33)
'이에 예수께서 다시 속으로 통분히 여기시며 무덤에 가시니 무덤이 굴이라 돌로 막았거늘 (요 11:38)
예수님이 요한복음 11장 33절과 38절에 보면 ‘통분히 여기신다.’ 또 우셨다 통분히 여기시고 우신 것이 거기 두 번이나 기록되어 있습니다. 통분히 여기시고 우신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우신 까닭은 뭐 때문에 우셨는가? 우신 까닭은 이렇게 인생이 죽기 싫어하고 망하기 싫어하면서 악령과 악성과 악습에게 속고 속아서 하는 모든 것이 멸망과 자살만 하는 것을 보시고 통분히 이겨서 우셨던 것입니다.
나사로가 죽은 것을 보고 그 모든 유대인들이 모여서서 울었습니다. 우니까 예수님이 그것을 보고 통분히 여기셔서 우셨다 이랬습니다. 통분히 여기셔서 우셨다 이랬습니다. 이것도 난해절입니다. 왜 통분이 여겼으며 왜 울었는가? 여기에 대한 해설이 똑똑히 없습니다. 이 옛사람과 새사람을 구별하지 못하면 이것을 알기가 좀 어렵습니다.
사람이 그 중생된 영을 따라서 살면 다 영생이 되는데 자기 영을 참 자기를, 자기 영 참 자기를 죽인 원수 그것이 뭐인고 하니 악령이 죽였고 악성이 죽였고 악습이 죽였습니다. 악습은 본죄가 악습이요, 또 악성은 원죄가 악성이요, 악령은 사단을 가리켜서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사람들이 죽기를 싫어하고 망하기를 싫어하면서, 죽기는 싫어하고 망하기는 싫어하면서 악령 악성 그놈이 꼬와서 “요렇게 하면 네가 복받는다.” 하니까 그놈에게 꼬여서서 그놈 시키는 대로 그것은 전부 자살 행위요 자멸 행위입니다.
이러니까 사람들이 어리석어서 악령에게 꼬여서, 악령이 “이라면 복된다. 이라면 잘된다.” 전부 이라니까 그 어리석음에 꼬여서서 자멸 자멸 자살 행위를 하는 것을 주님이 보시고 분히 여기셔서 아무래도 이 악령을 멸해야 하겠고 죄를 멸해야 하고 사망을 멸해야 되기 때문에 주님이, 오시기도 그래 오셨고 그때도 그것을 보고 분히 여기셔서 우셨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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