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기 21~22장 발제안

2006.10.08 23:43

윤봉원 조회 수:1217 추천:108

역대기 21~22장                                                          이영호 전도사


  들어가면서-문맥의 관찰(18~20장, 23장)
  선행하는 18~20장은 다윗이 인근 국가들을 정복하는 장면들을 보여주고 있다. 다윗의 인근 국가와의 전쟁을 묘사하고 있는 이 장들은 패배가 없는 다윗의 성전을 제시한다. 동일한 본문이 기록된 삼하 8~21과 비교해 볼 때 본문은 다윗이 전쟁에 승전한 기록만을 모아 편집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선행하는 문맥에서 적어도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확인할 수 있다. 우선 이 본문들은 우리에게 성전건축이 왜 솔로몬에게로 위임되었는지를 알려 준다.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그는 전쟁을 많이 행하였고 많은 피를 흘린 사람이었다. 둘째, 본문은 성전 건축에 필요한 재정이 어떻게 충당되었는지를 설명해 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가 본문에서 읽어야 하는 것은 다윗의 승리와 영토 확장은 사울과는 달리 다윗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결과였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사실을 17장에서 하나님이 다윗과 맺은 언약 속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하나님은 이 언약을 통하여서 다윗의 자손을 위해 왕국과 보좌를 세우실 것을 약속하셨다(12~14절). 18~20장의 전쟁에서 사무엘서와는 달리 역대기 기자가 다윗의 패배가 없는 성전을 보여주는 것은 다윗의 왕조를 견고히 하시겠다는 약속을 하나님께서 성실하게 이행하셨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자신의 백성들과 맺으신 언약에 하나님은 성실하게 반응하신다라’라는 관점에서 18~20장은 21~22장의 말씀들과 깊은 관련을 맺을 수 있다. 18장~20장은 하나님의 다윗언약에 대하여 신실하게 반응하심을 보여주는 것이며 21장은 영원한 왕조를 보장한 다윗이라 할지라도 언약에 불성실하게 반응했을 때의 결과를 반대로 22장은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불성실하심을 넘어서 자신의 역사를 이루어가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Ⅰ.다윗의 실패 : 인구조사(21:1~22:1)
   다윗의 인구조사와 그에 따른 하나님의 징계를 보여주고 있는 이 장은 그 내용에 따라서 다음과 같이 나누어 볼 수 있다.
  1.인구조사(21:1~6,삼하24:1~9)
  2.하나님의 징계(21:7~14)
  3.하나님께서 징계를 거두심(21:15~22:1)  
    1)다윗이 오르난의 타작마당에 도착함(21:15~21)  2)오르난과의 협상(21:22~25)
    3)단을 쌓아 제사를 드리고 재앙이 그친 후 여호와의 전으로 바침(21:26~22:1)

  1.다윗의 인구조사(21:1~6, 삼하24:1~9)
  다윗이 행한 인구조사는 언약궤를 한 번에 옮기지 못한 것과 함께 역대기에서 기록된 또 하나의 실패이다. 그러나 다윗의 실패를 설명하는 21장의 1절은 독특하다. 왜냐하면 사단(!j'f')이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격동하여 그 결과로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하였다고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사단이라고 하는 단어가 사용된 경우는 스가랴 3:1~2, 그리고 욥기1:2절이다. 본문에서 사용된 것과 비교하면 다소 차이가 있는데, 우선 본문에서는 정관사가 사용되지 않고 있으며 또한 그 활동이 하늘이 아닌 땅에서 이루어진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영적 존재로서의 사탄이 아니라 사탄이 정관사 없이 사용될 때의 그 의미인 ‘대적자’로 번역하는 것이 본문의 이해를 위해 좋을 것 같다. 결국 그 대적자는 땅에서 활동하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다.
  대적자의 격동으로 말미암아 다윗은 요압으로 하여금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한다.(2절) 좀 더 구체적으로 다윗이 요압에게 지시한 것은 이스라엘 중에서 칼을 뺄만한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이다.(5절) 그러나 요압은 다윗의 지시를 부당하게 여기고 있다. 그는 분명히 다윗의 행위가 범죄라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그의 말 속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내 주께서 어찌하여 이 일을 명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이스라엘로 죄가 있게 하시나이까(v3b)”
우리는 여기서 다윗의 행위가 어찌하여 죄가 되는지를 물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구약의 본문에서 군사적인 목적으로 인구조사를 하는 경우들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출30:12;민1:27). 따라서 다윗이 인구조사를 하는 그 행위 자체가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본문의 문맥은 다윗이 그 인구조사를 행한 의도를 문제 삼고자 한다. 여호와 하나님은 다윗과 언약을 맺어 어디로 가든지 함께 있고 특히 대적을 그의 앞에서 멸하여주시겠다고 말씀하셨다.(대상17:8) 다윗의 인구 조사는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군사들을 의지하고자 하는 그의 마음을 보여준다. 하나님과 맺은 언약에 따라 그를 의지하지 않고 자신이 보유한 군사들을 의지하고자 한 그의 행위는 언약에 불성실한 태도가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요압을 재촉한다. 결국 요압은 이스라엘 땅을 두루 다니고 와서 다윗에게 이스라엘 중에서 칼을 빼는 자의 수효를 고하고 있다. 그러나 요압은 왕의 명령을 밉게 여겨서 고의적으로 레위와 베냐민 지파를 계수하지 않고 보고 한다. 왜 역대기 기자는 사무엘서와는 달리 요압이 레위와 베냐민 지파를 계수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의 독자들에게 알려주고 있을까?
  
  2. 하나님의 징계(21:7~14)
  역대기 기자는 다윗의 인구조사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괘씸히 여기셨다고 말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치신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치시는 것을 보시고 자신이 죄를 지었음을 고백한다.
  “내가 이 일을 행함으로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이제 간구하옵나니 종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내가 심히 미련하게 행하였나이다(8절하).”
  하나님은 선견자 갓을 통하여서 다윗에게 3가지 중 한 가지 벌을 선택하게 하신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보이신 3가지는 삼년 기근, 석 달을 대적에게 패하여 대적의 칼에 쫓기는 일, 그리고 여호와의 칼 곧 온역이 사흘 동안 이 땅에 유행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그에게 보이신 이 세 가지는 기본적으로 시내산 언약에서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 이스라엘이 언약에 불성실했을 때 주시겠다고 하신 저주이다. 그러므로 역대기 기자는 다시 한 번 다윗의 행동이 하나님의 언약에 대해서 불성실한 태도였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나님이 보이신 3가지 저주 가운데 다윗은 온역을 선택한다. 그 이유는 그가 사람의 손이 아니라 여호와의 손에 빠지지를 원했기 때문이다(13절). 그러나 하나님의 손에 빠지기를 원했다는 이유로 다윗이 온역을 선택한 것은 납득이 가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가 인구조사를 한 대가로 격어야 할 3가지 재앙은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다윗이 유독 온역을 선택하면서 하나님의 손에 빠지기를 원한다고 말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선 우리는 다윗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 그는 사람의 손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빠지기를 원한다고 말한다. 이는 다윗이 하나님의 내리시는 재앙 중에서 사람의 손을 거쳐야 하는 재앙은 피하겠다는 것이다. 우리가 본문 속에서 그 의미를 끄집어 낼 수 있다면 그것은 나단이 온역에 대한 부분에서이다. 기근과 대적에게 패하는 일과는 달리 나단은 온역을 ‘여호와의 칼’이라고 표현하고 있다(12절). 세 가지 재앙 중에서 ‘여호와’라는 단어가 들어간 것은 오직 온역 밖에 없다. 비록 그것이 재앙이라 할지라도 ‘여호와’라는 이름 속에서 다윗은 하나님의 크신 긍휼을 기억했을 것이다.
  그러나 온역의 결과는 무서웠다. 하루 동안 온역으로 이스라엘 땅에서 시신이 된 사람들은 모두 7만이나 되었다.

  3.하나님께서 징계를 거두심(21:15~22:1)
   1)다윗의 회개와 하나님의 긍휼(21:15~19)
  이 단락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저주를 말하신 것과 그리고 그것을 철회하시는 과정을 시간적으로 정리할 필요하기 있다. 만약 하나님의 명령으로 사자가 예루살렘으로 간 일과 그리고 사자가 예루살렘을 막 멸하려고 하는 순간에 하나님이 뉘우치셔서 사자의 손을 거두라고 하시는 일이 연속된 일이라고 본문을 파악한다면 이는 본문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본문은 하나님께서 사자를 보내신 일과 그리고 사자가 예루살렘을 멸하려 할 때를 구분하고 있다. 즉 하나님의 명령과 사자의 행동 사이에는 시간적으로 간격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15절의 하나님의 명령과 철회 사이에 다윗의 회개(17절)가 있었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즉 다윗은 온역으로 말미암아 백성들이 죽어나가는 것을 보면서 백성들이 아니라 자신과 자신의 아비 집에 재앙을 내려달라고 간구하였던 것이다. 다윗의 회개에 하나님은 사자의 손을 거두게 하신다. 3일을 계획하였던 온역이 하루 만에 끝난 것은 아마도 자신의 잘못을 깨달아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16절하) 회개하는 다윗의 모습에 하나님께서 긍휼하심으로 응답하신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특히 역대기의 본문은 사무엘서(삼하24:17)와는 달리 다윗과 장로들의 회개하는 모습이 강조되어 있다. 역대기 기자는 다윗이 장로들로 더불어 굵은 베를 입고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하나님께 간구하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16절하). 사무엘서에서 기록되어 있지 않은 부분을 역대기 기자가 보여주는 것은 다윗의 회개를 강조하기 위함이다.  
  하나님의 명령으로 손을 거둔 사자가 갓에게 명하여 다윗으로 하여금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마당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을 것을 명령한다.(18절) 그리고 다윗은 그 명령을 따라 오르난의 타작마당으로 올라간다.

   2)오르난과의 협상(21:20~25)
  천사를 보고 숨었던 오르난은 다윗이 도착한 것을 보고 나와서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한다.(v20~21)
  다윗은 타작마당을 자신에게 팔 것을 요구하며 처음부터 ‘충만한 값’을 지불할 것을 오르난에게 말한다. 즉 다윗은 오르난의 타작마당을 무상으로 받지 않을 뿐 아니라 그에 걸맞은 충만한 대가를 치르겠다고 처음부터 명백하게 말하는 것이다. 오르난이 무상으로 땅과 함께 소와 곡식을 제공하겠다고 하지만 다윗은 값없이 번제를 드릴 수 없다는 자신의 입장을 고수한다. 여호와께 드리기 위해서 다윗은  결국 다윗은 오르난이 타작하는 곳의 땅 값으로 육백 세겔을 지불한다.  
   3)단을 쌓아 제사를 드리고 재앙이 그친 후 여호와의 전으로 바침(21:26~22:1)
  다윗이 하나님께 단을 쌓아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고 하나님은 그에게 불로 응답하셨고 사자는 칼을 집에 꽂았다. 그가 칼을 꽂았다는 것은 온역을 그치게 한다는 것에 대한 비유적 표현으로 보인다. 또한 하늘에서 번제단 위에 불이 내린 것은 여호와께서 왕의 기도를 들으시고 기쁘게 제사를 받으셨음을 눈에 보이게 나타낸 표증이다. 오르난의 타작 마당에 단을 쌓은 것이 이스라엘이 앞으로 언제나 번제와 희생의 제사를 드려야 하는 장소로 여호와께서 선택한 것임을 다윗이 안 것은 28~30절과 22:1절의 기록처럼 하나님이 만족하게 여기신 이 표증으로 인해서였다.

Ⅲ.다윗의 성전 건축 준비(22:2~19)
  사무엘서의 기자와는 달리 역대기 기자는 다윗의 인구조사를 성전 건축 이야기와 연결시키고 있는데 특히 역대기 기자는 1절을 고리로 하여 두 장을 연결시킨다. 예루살렘 성전 건축을 위한 다윗의 준비를 묘사하고 있는 22장은 다음과 같이 나누어진다.  

  1.다윗이 성전 건축을 위한 자재를 준비(v2~5)
  2.다윗의 솔로몬에 대한 당부(v6~16)
    1)성전 건축을 아들 솔로몬에게 위임함(v6~10)
    2)다윗의 당부와 격려(v11~16)
  3.다윗이 방백에게 당부함(17~19)

  1.다윗이 성전 건축을 이한 자재를 준비(v2~5)
  이 단락은 다윗이 하나님의 전을 건축에 필요한 일꾼들과 함께 자재들을 준비하는 내용을 말하고 있다. 다윗은 이스라엘 땅에 거주하는 이방인들을 불러서 하나님의 전 건축에 필요한 돌을 다듬게 하고(v2) 철과 놋 그리고 백향목을 준비케 한다. 성전건축을 위한 다윗의 열정은 역대기 기자가 다윗이 준비한 재료들을 brol(많이, 풍족하게)라는 단어를 반복적으로 사용(v3×2, v4)한데서 알 수 있다.
  다윗이 이토록 많은 재료들을 준비하는 이유를 역대기 기자는 5절에서 설명하고 있다. 그의 아들 솔로몬이 아직 연약한 소년이었고 게다가 전을 건축하는 일은 심히 크나큰 대역사여서, 다윗은 자기가 죽기 전에 상당한 준비를 해놓기로 결심한 것이다. 더군다나 여호와께 지어져야 하는 그 전은 극히 장려하여 만국에 명성과 영광이 있게 하여야 하기 때문에 어린 솔로몬이 담당하기에는 너무나도 벅찬 일이었다.
  따라서 다윗은 그의 아들 솔로몬이 이 큰 일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하였던 것이다.

  2.다윗의 솔로몬에 대한 당부(v6~16)
   1)성전 건축을 아들 솔로몬에게 위임함(v6~10)
  다윗이 그의 아들 솔로몬을 불러 성전 건축을 부탁한다(v6). 그리고 다윗은 자신이 아니라 솔로몬에게 성전건축을 부탁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다윗은 원래 성전을 건축할 마음이 있었다.(v7)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하나님의 전을 건축할 수 없었는데, 8절에 의하면 이는 다윗이 ‘많은 피를 흘리고 큰 전쟁을 수행하였기 때문’이었다(v8). 다윗이 하나님의 전을 건축할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하는 8절은 다윗이 부정한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전을 건축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가 행한 전쟁과 피흘림의 결과가 하나님의 전이 가지고 있는 본질, 즉 평화의 왕국과 조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전쟁의 사람으로 불리었던 다윗은 부정해서가 아니라 안식을 이루기 위한 전쟁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전을 지을 수 없었던 것이다.
  우리는 이 사실을 8절과 9절에서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하나님의 전 건축을 그의 아들 솔로몬에게 맡기겠다고 한 말씀이 동일하게 기록되어져 있는 삼하7:5~13절과 본문을 비교해 보면 8절과 9절이 역대상에서만 발견되어짐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8절과 9절은 역대기 기자의 신학을 반영하는 구절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역대기 기자의 신학적 사상을 8절과 9절에서 묘사된 다윗과 솔로몬의 대조점에서 찾을 수 있다. 8절에서 다윗은 ‘전쟁의 사람(역대상28:3)’으로 묘사되는 반면에 9절에서 솔로몬은 ‘평강의 사람’으로 묘사된다. 앞에서 보았듯이 다윗은 이스라엘에 평강을 가져다주기 위해서 전쟁을 행하였다. 다윗이 행한 전쟁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이 부국강병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다윗의 시대는 여전히 전쟁의 불씨가 있었고 또한 다윗이 행한 전쟁의 결과물로서 이스라엘이 평안을 누리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한편으로는 다윗을 통하여서 이스라엘 가운데 안식이 주어졌으나 또 다른 한편으로 안식은 도래해야 할 미래사항 이었다. 그러므로 성전 건축은 그의 아들 솔로몬에게 위임된다. 그는 이스라엘에 평강을 가져다 줄 인물이었다. 즉 하나님은 그의 시대 때, 이스라엘 가운데 평강을 주시고 그리고 그를 통하여 하나님은 성전을 건축하도록 예비하신 것이다.

※다윗 언약과 성전 건축
  이상에서 우리는 성전건축이 다윗이 아니라 솔로몬에게 위임되는지를 22장의 문맥 속에서 찾아보았다. 그러나 성전을 솔로몬이 짓게 되는 이유를 17장의 다윗 언약을 통하여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역대기의 문맥속에서 하나님께서 성전 건축을 다윗이 아니라 솔로몬에게 맡기겠다고 하신 것은 다윗과 언약을 체결하는 17장에서 제일 먼저 언급되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17장에서 보면 하나님은 다윗의 성전 건축을 거부하신다.(4절). 그 이유로 하나님은 지금까지 한 번도 성전건축을 요구하신 적이 없으셨다는 사실을 설명하시고(5~6절)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다윗과 언약을 맺으신다. 하나님은 지난 과거에 자신이 하신 약속에 충실하셨음을 언급하시고 나서(7~8절) 앞으로 다윗에게 그의 이름이 존귀하게 될 것과 자손들을 위하여 한 장소를 정하여 주실 것을 말씀하신다(9~10절).
  그리고 나서 하나님은 다윗을 위하여 그의 집을 세울 것을 약속하신다(10절하). 이어지는 문맥 속에서 하나님이 다윗을 위하여 세우시는 집에 대한 내용이 구체적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하나님은 다윗의 자손을 위해서 왕국과 보좌를 세우시며 그 후손들은 하나님의 양자로 입양되는 특권적 신분을 누리게 된다(11~13절). 나아가서 다윗의 후손들은 하나님의 보호를 받을 것이며 그 위는 영원할 것이다(14절).
이상의 다윗 언약을 22장과 연결하여 보면 우리는 성전이 세워지기 전에 먼저 하나님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10~11절).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한 물리적인 성전 건축보다 다윗 왕조를 통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시는 것에 우선권을 두신다는 의미이다. 본문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나라를 이루시기 위해 두 가지 조건이 이루어져야 됨을 말하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한 곳(9~10절)을 정하는 일과 다윗을 통하여 난 씨를 세우고 그리고 그 나라를 견고하게 하는 일이다(11절).
  역대기 기자는 실제로 이러한 하나님의 두 가지 약속이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기 전에 성취되어지는 것을 보여준다. 우선 역대기 기자는  다윗 언약(17장) 다음에 18~20장의 다윗의 성전을 소개하며 영토확장을 하는 내용을 보여주고 있다. 역대기 기자가 18~20장을 17장 다음에 배치시킨 것은 18~20장이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다시는 이곳 저곳으로 옮기지 않게 하시며 악한 이유로 전과 같이 저희를 해하지 못하도록 사방의 모든 대적을 복종하게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성취를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10절).
  또한 역대기 기자는 솔로몬이 성전을 세우기 전에 그의 왕권이 견고해져 가는 것을 보여준다. 다윗은 솔로몬에게 성전건축을 부탁하고 난 다음 그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는다(23:1절). 역대기 기자는 이스라엘의 왕으로 오른 솔로몬을 하나님께서 형통하게 하셔서 그 전 이스라엘의 모든 왕보다 뛰어나게 하셨다고 말함으로써(29:25절, 참고) 그 위를 견고하게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었음을 보여준다.
  결국 이러한 약속이 성취되어지고 난 다음 솔로몬은 하나님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할 수 있었다.

   2)다윗의 당부와 격려(11~16절)
  이제 솔로몬에 대한 다윗의 개인적 당부가 이어진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 솔로몬과 함께 하셔서 그의 길을 형통하게 하시기를 간구하며 또한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대로 하나님의 전을 건축할 수 있기를 소원한다.(11절) 나아가서 다윗은 하님께서 지혜와 총명을 주셔서 이스라엘을 잘 다스리며, 율법을 지키게 하시기를 간구한다.(12절) 이는 13절에서 다시 한 번 확인된다. 다윗은 솔로몬에게 모세로 하여금 이스라엘에게 명하신 모든 율례와 규례를 삼가 행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다윗은 특히 율법의 준수 여부가 그의 형통함의 여부를 결정한다고 말하고 있다.
  다윗이 그의 아들 솔로몬에게 율법의 준수를 강조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다윗은 그 누구보다도 왕의 자리가 하나님을 대리하는 자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나님을 대리한다는 것은 이스라엘이 왕이 다스리는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다스리는 나라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왕은 백성의 대표로써 자신을 율법을 철저히 준수해야 하는 자리이다. 그럼으로써 이스라엘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것이다.
  실제로 다윗은 그의 인생 가운데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지 못함으로 경험한 뼈아픈 기억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특히 하나님을 대리하는 왕이 율법을 어겼을 때 파생되는 엄청난 결과를 다윗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다윗은 그의 아들 솔로몬에게 율법을 지킬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율법의 준수와 함께 다윗은 아들 솔로몬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다.
  “강하고 담대하여 두려워 말고 놀라지 말지어다” 만약 솔로몬이 여호와의 모든 율법을 지켜 그가 주신 지혜와 총명으로 이스라엘을 다스린다면, 그는 강하고 담대할 수 있다. 그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놀라지 않을 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이상의 다윗이 솔로몬에게 당부하는 이 말은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당부했던 말을 생각나게 한다.
  다윗이 그의 아들 솔로몬에 했던 말들의 핵심 요소인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 ‘강하고 담대함’ 그리고 율법 준수의 요소들이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당부했던 말들에서 그대로 찾아볼 수 있다. 모세는 자신의 뒤를 이어 후계자가 되는 여호수아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 그들에게 ‘안식’을 이루도록 하나님의 함께 하심과 율법 준수와 강하고 담대함을 요구한다. 마찬가지로 다윗은 자신을 이을 솔로몬에게 이스라엘 백성의 안식을 가져다주고 그 안식의 완성으로 성전을 건축하도록 똑 같은 요구를 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다윗은 솔로몬에게 자신이 성전 건축을 위해서 준비한 재료들을 소개하고 자신감을 실어주고 있다.(v14) 특히 다윗은 자신이 이 재료들을 애써 준비했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실제로 다윗이 준비한 성전건축 재료들을 계산하는 것은 상당히 힘들다. 다윗이 말하고 있는 이러한 재료들은 정확한 계산이나 중량에 근거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고 귀금속 양에 대한 일반적 평가에서 대략의 숫자로 쓰인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 같다. 왜냐하면 그 수치의 계산이 상상할 수 없는 금액이 되며 특히 16(맛소라 텍스트는 15절)절에서 다윗이 준비한 재료들의 양이 ‘무수히 많다’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다윗의 말은 성전 건축을 위한 준비가 완벽하게 끝이 났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특히 이 본문 역시 다윗이 그의 아들 솔로몬이 성전 건축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 그가 준비한 재료들을 설명한 22:2~5에서 사용된 brol(많이, 풍족하게)라는 단어가 이 단락에서도 그대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v14,15)
  그러나 이 모든 것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여호와께서 솔로몬과 함께 하신다는 것이다. 그가 함께 하시지 않는 성전건축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러므로 다윗은 그의 아들 솔로몬에게 마지막으로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고 계심을 그의 마음속에 각인시키고 있는 것이다.(v16b)
  3.다윗이 방백에게 당부함(17~19)
  다윗은 이제 방백들에게 그의 아들 솔로몬을 도울 것을 명령한다.(17a) 다윗은 먼저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보여주신 은혜를 회상시킨다. 여호와께서는 신실하게 이스라엘과 함께 하시어 그들 사방의 대적들을 모두 물리치시고 그 결과 이스라엘이 평강을 누릴 수 있도록 하셨다.(17a~18) 다윗이 그의 방백들에게 여호와께서 행하신 은혜로운 일들을 회상케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백성으로서의 그들의 행동들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로서, 여호와를 구하기 위해서 마음과 정신을 모아야 한다. 그리고 여호와의 말씀대로 그들은 성소를 건축하고 그리고 여호와의 거룩한 기구들 가져다가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건축한 전에 드려야 한다.
  다윗이 방백들에게 명한 이 말들은 그의 아들 솔로몬에게 행한 말들과 결코 다르지 않다. 다윗은 솔로몬이 그러해야 하듯이 방백들 역시 여호와의 언약에 충실하게 행하여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다윗은 그들이 행하여야 할 의무가 먼 미래의 일이 아니라 지금 당장 행해야 하는 일임을 강조하고 있다.(19)


Ⅳ.포로 후기 공동체에게 주는 메시지
  이상의 본문들을 통하여서 역대기 기자가 그의 공동체에게 주려고 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1. 가장 먼저 우리는 이스라엘의 실패가 곧 하나님이 그의 백성과 맺은 언약이 사라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님을 지적해야 한다. 역대기 기자는 그의 공동체에게 여전히 하나님의 언약이 유효함을 말하고 있다.
  2. 그러나 역대기 기자는 그의 공동체 백성들에게 언약에 대한 충성을 요구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영원한 왕조를 보장하였던 다윗이라 할지라도, 언약을 신실하게 이행하지 못했을 때 하나님은 그를 치셨다. 다윗의 인구조사는 그 사건자체보다는 다윗이 언약에 충실하지 못했음과 그러므로 역대기 기자가 그의 공동체가 하나님의 언약을 신실하게 이행해야 함을 말하기 위한 본문이다.
  3. 역대기 기자의 희망의 메시지는 21장으로부터 22장을 넘어가면서 발생한다. 다윗이 언약에 대해서 신실하지 못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를 치신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의 포로생활은 하나님의 언약을 신실하게 이행하지 못한 것에 대한 결과이다. 그러나 역대기 기자는 사무엘서와는 달리 다윗의 인구조사와 성전건축의 본문을 연결시킴으로서 인간의 실패를 선으로 바꾸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그들에게 보여준다. 이러한 조합은 역대기 기자가 그의  포로 공동체에게 비록 하나님께서 그들을 찢으셨으나 그들을 싸매어 주시며 다시 그들을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기 위함이다.
  4. 하나님께서 그들을 회복시키는 것 가운데 중요한 것은 포로 후기 공동체의 하나님을 향한 태도이다. 자신의 범죄를 깨닫고 하나님 앞에 겸손히 엎드려 회개하는 다윗의 모습은 포로 후기 공동체에게 그들의 불신을 뉘우치며 하나님께 회개하기를 요구하는 역대기 기자의 의도를 반영하는 것이다.
그들의 회개는 현실의 벽을 넘어서 ‘이 땅의 모든 역사를 하나님이 주관하신다’라는 사실을 깨닫고 그 결과로 하나님의 통치하심에 순종하는 것 까지 이어져야 한다.  


나가면서

  21장과 22장의 내용은 병력을 의지하는 다윗과 하나님께서 중심이 되는 성전 건축의 이야기가 대조된다. 역대기 기자는 인간의 실패를 극복하고 오히려 그것을 통하여서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을 그의 공동체에게 보여준다. 오랫동안 이국 땅에서 절망 가운데 포로로 잡혀 있었던 공동체가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은 그들의 실패를 오히려 새로운 역사의 기회로 삼으시는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시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 우리 역시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이 포로 공동체와 함께 하셨던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이 아닐까.



※참고문헌
1.C.F Keil and Delitzsch, 역대상 주석, 최성도 역, 서울: 기독문화사 1990
2.Walter Bruggermann, 현대 성서 주석 ‘사무엘상·하’ 강성열 역, 서울: 한국 장로교 출판사, 2000
3.영문성경 NASB, NRSV

* 윤봉원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6-10-08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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