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해사본과 그리스도교의 기원전] 사해사본이란  

1947년 어느 가을, 이스라엘 지역 사해 북서쪽 해안 절벽 지역, 베두인 목동들은 잃어버린 염소를 찾아 헤매고 있었다. 염소가 들어갈 수 있을 만한 구멍에 돌을 던져보던 그들은 한 동굴 앞에서 염소의 울음소리가 아닌 그릇이 깨지는 소리를 듣게 된다. 호기심에 이끌린 그들은 동굴 안에 들어가 항아리와 그 속에 든 두루마리를 발견한다.

이 두루마리의 정체는 기원전 250년에서 기원후 68년 사이에 기록된 것으로 당시 가장 오래된 구약 성서 사본이라고 믿었던 알레포사본(925년경 기록)과 레닌그라드사본(1008년 기록)보다 1000년 이상 이전에 쓰여진 히브리어 성서였다. 이것이 전 세계를 놀라게 한 세기의 위대한 발견, 사해사본(The Dead Sea Scrolls)이다. 드 보 신부를 비롯한 고고학자들은 이후 1949년부터 1956년 사이, 총 11개의 동굴에서 약 900편에 가까운 다양한 문헌과 유물들을 발굴해냈다.

사해사본들 중 비교적 잘 보존된 두루마리 사본들은 9개 정도 밖에 안 된다. 나머지 부분은 사본의 조각들인데 흩어져 있어서 마치 퍼즐을 맞추듯 서로 맞추어 보아야 한다. 사해사본에는 에스더서가 발견되지 않았는데 이 책들이 우연히 생략됐는지 아니면 의도적으로 쿰란 공동체가 사용하지 않았는지 분명히 알려지지 않고 있다. 쿰란 공동체가 부림절을 인정하지 않았고 이것이 에스더서에 기록됐기에 당시 에스더서를 정경으로 인정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동굴에서 발견된 ‘사해 성경’은 발견된 순서대로 번호를 붙여 제1동굴에서 제11동굴까지 명명했다. 영어로 표시할 때는 번호를 처음에 붙이고 쿰란(Qumran)을 뜻하는 알파벳 ‘Q’를 붙여 1Q, 2Q 등으로 표시했다. 그리고 각 동굴에서 발견된 사본들은 동굴들의 명칭에 덧붙여 이름을 붙이거나 숫자를 붙여 표시했다. 예를 들면, 제1동굴에서 발견된 이사야 사본은 1QIsaiah a 또는 1QIsa a로 부르며, 두번째 발견된 이사야 사본은 1QIsaiah b 또는 1QIsa b라고 부른다.

◇ 사해사본의 발견 의미

사해사본에 대한 연구는 구약성서 본문 이해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특히 사해사본이 발견되기 전까지 구약 성경으로 전해져 내려오던 고대문서들에 대한 재평가를 비롯, 성경 번역에 끼친 영향력은 놀랄만한 것이었다.

성경번역은 본문의 역사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 즉 번역의 원칙을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선호하는 본문이 다를 수 있고, 다른 내용의 번역이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20세기 영어권에서 가장 널리 받아들여졌던 RSV(Revised Standard Version, 1952)은 문제가 되는 내용이 있을 때 번역자들의 의견이 일치하는 경우를 따랐다. 즉 번역할 때 문제가 발생하면 번역자들이 투표해 최종 번역문을 결정하기도 했다.

NAB(New American Bible, 1970)은 칠십인역과 사해사본을 선호했다.

보수 학자들이 참여한 NIV(New International Version, 1978)는 마소라본문을 선호했지만 원문이 변조됐다고 번역자들이 판단하는 경우에는 이를 따르지 않았다.

사해사본의 연구가 진행되면서 성서 번역의 원칙과 결과도 변화됐다. RSV 번역에 참여했던 버로우스는 "번역 과정에서 히브리어 본문을 수정해 읽은 실례들에 잘못이 있었다"고 말했는데 이는 사해사본에 대한 연구가 미미할 때 이루어진 번역되었기 때문이다.

1990년 개정본 NRSV는 "번역자들에게 유용하지 않았던 사해사본의 내용을 반영한다"고 서문에 언급됐다. 이는 NRSV의 번역이 RSV보다 진보되었음을 의미한다.

박재찬 기자 jeep@kmib.co.kr



* 윤봉원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8-03-05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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