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이란 무엇인가?

2007.04.17 01:14

윤 목사!! 조회 수:3376 추천:219

바울신학 수업시간 강의록입니다. 복음의 정의에 대해서 조금이나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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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이란?
말의 배경과 바울 복음의 기원을 살펴보자.
바울이 말한 복음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다. 십자가의 도가 하나님의 능력이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셨다.

한국교회가 말하는 복음: 예수를 믿으면 내가 구원을 얻는다. 나에 대해서 초점을 맞추고 내가 구원을 받는 것이 기쁜 소식이다. 논리적으로 머릿속에서 이해가 되고 인간론적인 관점에서 설명하는 것이 통용되어 있다. 그러나 바울은 그렇게 이해하고 있지 않다. 예수를 통해서 구원 받는다는 것은 맞는 이야기이나 그것이 복음은 아니다.
인간론적 관점:
기독론적 관점: 그리스도 사건 자체와 관련해서 복음이라 했다. 그 아들의 복음.
바울 서신을 이해할 때 인간론적인 관점에서 본문을 읽으려고 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을 해왔다. 구원의 서정이라는 관점으로 로마서를 읽으려고 하면 안된다. 내가 주관적으로 구원 받아 가는 시간 순서라는 각도에서 구원을 이해하는 것, 시간적 순서, 이 시각이 19세기 -20세기의 지배적인 성향이다. 그러한 성향이 중요한 주제들을 왜곡시켜 왔다.

복음이란 말의 배경이 어떻게 되느냐? 복음이란 말은 헬라어로 ‘토 유앙겔리온’이라는 말이다. 정관사. 일인칭단수 중성형태의 명사이다. 이 단어가 신약 성경에 76번 73 구절에 나타난다. 그 중에 바울 서신에서 57-60회 등장한다. 나머지는 16번 나타난다.
복음서에 가장 많이 등장해야 복음이라는 말이 나와야 할 것 같은데, 누가복음 하나만으로도 바울서신을 초과한다. 복음이라는 단어를 바울서신이 많이 나타나는데
삼하 4:10.
유앙겔리아. 여성형단수 형태로 등장한다.
토 유앙겔리온이라는 단어는 70인역에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왜 그러냐?
성과 수가 다르기 때문에,
바울이 유앙겔리온이라는 단어를 어디서 가져 왔을까? 헬라 세계 속에서는 또 쓰인다. 로마 제국에서 쓰던 유앙겔리온이라는 단어를 가져 와서 썼지 않았을까? 형태는 따 왔다 하더라도 그 안에 사상은 헬라용어에서 가져 온 것이라 할 수 없다. 생각은 히브리적인 생각 사상을 용어화 할 때 유앙겔리온이라는 단어에 넣어서 바울이 신앙용어를 만들었다고 보는 것이 좀 더 타당하지 않겠느냐?

환유법은 어떤 사물의 중요한 특징을 표현하는 것을 통해서 그 대상을 직접 가리키게 하는 것, 요람에서 무덤까지 라는 것을 통해서 요람은 태어남을 이야기 하고,
학자들 중에 복음이라는 것을 바울이 가르치려는 메시지를 압축해서 환유법으로 쓰여졌다고 이야기 하는 학자들이 있다.
누가가 바울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을까요? 바울이 누가에게 더 많은 영향을 미쳤을까요?
누가 이 용어를 먼저 쓰기 시작했을까요?
우리가 복음서에 나타나는 예언서에 보면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나오는데 그 말씀을 예수님이 진짜 하신 말씀일까? 아닐까? 그대로 똑 같이 하셨을까? 아닐까?
천국 복음이라는 말이 나왔을 때 예수님은 아람어로 했기 때문이다. 헬라어로 예수님이 변론을 한 것은 아니다.
예수님의 한 말씀이 내용도 단어도 바뀐다. 겉옷, 속옷 이것을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하느냐? 예수님이 진짜 한 말이 있고, 예수님이 한 말이기는 하지만 예수님이 한 이야기에다가 자기의 신학과 생각을 의도한 것을 섞어서 쓴 것으로 이해 할 수 있다.
학자들은 진짜 예수님이 한 말이 어떤 것일까? 생각을 찾는 학파도 있다.
천국 복음이라는 말이 복음서에 나왔더라도 예수님이 착안한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기는 어렵다는 것이 현실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신학 용어를 진짜 활성화 시킨 사람은 바울이라고 할 수 있다.
아니면 나중에 사람들이 그 영향을 받아서 복음이라는 말을 쓰기 시작했고, 복음서에 쓰기 시작했다고도 볼 수 있다. 60번 나왔다고 하는 말은 어떤 쪽에 더 무개를 두게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생각은 해 볼 필요는 있다.
복음이란 말이 교회에서 빈번하게 쓰인 때가 언제부터일까? 복음서 장르가 어떻게 나왔는가를 공부하셨지요? 당시의 장르와 합치된 것이 그의 없다. 새로운 장르를 만든 것이다. 없던 것을 새로 만든 것이다.
아마도 바울이 예수님이 이 복음이라는 말을 어떻게 사용했는지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바울은 이것을 신학 용어화 시켜서 사용했다는 것이다. 그것이 복음서 기자들에게는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적어도 누가복음에는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복음서라고 영향을 준 장본인이 도대체 누굴까? 예수님이 이 말을 썼다 할지라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사람은 바울이 아닐까? 생각을 해 봅니다.

황제의 아들 차원에서 설명해 주셨다.
헬라에서 단어를 따 왔지만 사상은 구약에서 따왔을 것이다. TDNT 사전을 보면 유앙겔리온이라는 난이 있을 것이다.

이 주제를 다룰 때 제일 먼저 생각할 것은 복음서가 먼저인가 바울서신이 먼저인가를 명확하게 정리 해 놓고 나가야 한다. 순서에는 복음서가 먼저 들어 있다. 신약 성경 중에 기록된 순서로 따지면 바울서신이 먼저이다. 일반적으로는 바울서신에 있는 어떤 것이 복음서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 사도들의 전승을 받고, 그 내용과 바울 스스로가 깨달은 것, 다메섹 도상의 체험, 베드로, 야고보, 요한이런 이들이 가르쳤던 것이 영향이 있을 수 있다.
문제는 복음서 자체는 베드로가 아니다. 누가는 베드로의 영향을 받은 사람이다. 요한과 마태는 전승이 앞서 있다고  볼 수 있으나 요한의 신학과 사도 바울의 신학이 연결되어 있는 것들이 많이 있다. 사도 바울의 영향을 받아서 요한이 이렇게 기록했을 것이다고 학자드이 이해를 한다.
요한복음에 복음이라는 말, 복음을 전파한다는 말이 나올까요? 안 나옵니다. 재미 있는 것은 복음을 처음 듣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이 요한복음인데 거기에 복음이 안나온다.
복음이라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장황한 서술과 많은 연구를 요한다. 신약 성경 전체를 단 연구해야 한다.
최소한의 것만 알아 주자는 것이다.
바울이 이해하는 복음이 어떤 것인가를 이해를 해 볼 필요가 있다.

토 유앙겔리온이라는 단어는 유대 백그라운드가 있느냐 헬라 백그라운드가 있는데, 바울이 유대 배경과 사상을 가진 것으로 보기 쉬우나, 토 유앙겔리온이라는 단어는 70인역에서는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총 6번 유사하게 번역되는데 복수와 여성형으로 번역이 된다. 직접 유래한 것으로 보는 것에는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사상은 나올 수 있다.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전체를 이해 해야 알 수 있는 것이다.
명사에서 사상이 나온 것이 아니다. 70인역에서 나온 것으로 보는 것은 지나친 것이다.
오히려 그 단어가 나온 배경은 동사 형태를 주목해야 한다. 유앙겔리조는 70인역에 많이 나온다. 그러나 복음이라는 신학 용어를 사용할 때는 헬라의 배경에서 사용한 것이 아닌가 보인다.
헬라 배경 속에는 큰 두 가지 배경이 있다. 하나는 나라와 나라 사이에서 전쟁에서 승리를 전할 때 이 용어가 사용 되었다. 오른 손을 들면서 기뻐하십시오. 우리가 이겼습니다. 할 대 유앙겔리온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고 한다.
마라톤의 42.195를 승전고를 전하는 사람이 토 유앙겔리온이라는 소리를 전하고 죽은 거리를 재어 보니 42.195m였다.
승리를 전한 자는 보상을 받고, 먼저 받는 자는 보상이 있고, 늦게 전한 자는 보상이 없다. 승리를 전하지 않으면 처벌을 받는다. 신들이 준 섭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네로 황제가 핍박을 하였다. 게임을 하다가 이겼다. 사람들에게 이야기 하기를 희생 제사의 기쁜 소식이 전해 져라 말했다고 합니다. 그것을 본 도시민들은 어느 나라와 싸워 이겼구나 하는 것으로 알았다고 합니다.
그당시 유앙겔리온 이라는 소리를 들으면 우리 나락 나라와 나라와의 싸움에서 승리했구나 하는 용어로 사용했다고 한다. 그런 상황 속에서 신약 성경을 보면 용례를 따져 보면 특징이 있는데 그 특징 두 가지가 천국 복음이다. 마태 저자는 이거을 강하게 이야기 한다. 하나님 나라가 가까워 왔다. 마 4:23- 천국 복음을 전파하셨다. 유앙겔리온이라고 이야기 했다는 것이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워왔느니라 했다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가 딴 나라와 싸워 이겼다. 다분히 정치적으로 오해 될 수 있는 단어이다. 천국 복음이라고 한 것은 마태신학이든지 예수님의 신학이든지, 이 신학자체는 당대에 복음이라는 말이 당대에 사용되는 중요한 용어 중에 하나와 맞다는 것이다. 상황화이다.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 쉽게 이해 할 수 있고 도전적인 용어이다.
나머지 하나는 이거은 제국 종교에서 황제와 관련하여 사용한 것이다. 로마 제국은 영토를 확장하면서 제국적인 형태를 지었다. 피 지배계급의 사람들에게 황제가 로마 황제를 섬기게 하는 것, 우리나라가 일제 침략을 당했을 때 신사참배를 강요한 것처럼 피 지배지에 계속 전파 했다는 것이다. 황제와 관련하여 유앙겔리온이라는 것이라고 사용했다는 것이다.
황제들의 탄생을 기쁜 소식이라고 이해를 했다는 것이다. 그런 맥락 속에서 예수님이 탄생한 것을 천사들이 기뻐하라. 예수님이 탄생했다고 전했다는 것이다. 아기 예수를 기쁜 소식으로 이야기 하는 것은 로마제국의 제국 종교와 어깨를 나란히 한 매우 예민한 것이었다. 그 당시 사람들은 매우 실감나게 들었을 것이다. 우리가 복음이라는 것을 우리 식의 눈으로 문화로 이해를 하려고 했는가?
롬 1:2-4 그 아들의 복음 이것이 바로 헬라제국에서 유앙겔리온의 배경 두 가지가 있다. 천국 복음은 한쪽의 배경을 강조하는 것이었고, 신약 성경에 또 하나의 배경은 기독론과 관련하여 사용한다. 그리스도의 복음, 하나님의 아들의 복음. 이것이 강하게 등장한다. 복음서에는 천국 복음이 강조되고, 바울서신은 황제가 태어난 것과 관련되어 있다.
죽고 부활하셔서 아들로 인정되셨다. 차원이 한 단계 높은 것을 이해 할 수 있다. 이것을 이해하면 로마서 1:2-4 그 당시에 사람들이 읽으면 가슴이 쿵닥쿵닥 할 만한 내용이다. 로마 황제의 사람들에게 이 편지가 넘겨 지면 정치적인 이유로 잡힐 수 있는 메시지이다. 바울이 깨달은 진리의 내용을 그 당시에 어떻게 설명하면 가장 적합하게 전달 할 수 있을까 선택해서 사용한 것이 ‘복음’이라는 것이다. 시저가 신의 아들이 아니라 예수가 신의 아들이라는 것이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당시에 돈에 시저의 사진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복음이라는 말을 채택하면서 당시의 사람들에게 진짜 누가 이 온제국을 다스리는 사람이냐 시저가 아니라 예수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마태복음 28장에 하나님이 나에게 모든 권세를 주었다는 것이다. 그것을 전하라는 것이다. 그것을 가장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는 것이 복음이라고 전한 것이다. 시저의 복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복음이다. 로마제국이 승리한 복음이 아니라 천국이 승리한 복음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의미를 아주 축소 시켜서 복음이라고 이해를 해 왔다. 개인 구원에 관련된 어리석음에 빠져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복음이라는 단어를 바울이 전문화하고 사용한 것은 베커라는 교수가 그렇게 이해를 하고 있다.
마태복음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하나님의 복음이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바울이 사용했는데 사 복음서 중 마가복음이 가장 먼저 쓰여졌기 때문에 그렇다고(영향을 받았다고) 본다.
사도행전에서는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계시록에서는 영원한 복음,
바울의 복음이라는 표현의 특징은 바울이 명사를 많이 썼다. 특별한 설명 없이도 썼다. 이미 이 용어가 통용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빌립보서 1:5...
이렇게 특별한 설명 없이 쓰여지는 경우가 23회 정도가 쓰여졌다.
나의 복음이라는 소유 대명사가 붙은 표현이 있다. 바울이 왜 나의 복음이라고 했을까? 로마제국과 관련되었을 수도 있고, 신학화 했을 수도 있고,
살전에는 우리의 복음.
다섯 번째는 바울이 그리스도의 복음이라는 표현을 쓴 것이 10번 정도가 된다. 기독론적으로 많이 사용한다.
그리고 그의 아들의 복음, 이런 표현들이 바울 서신에 많이 등장하고 설명이 굉장이 중요한 것과 관련하여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바울이 사용할 때 인간론적으로 사용한 것이 아니라 기독론적으로 사용하였다.
구원론 엡 1:13, 롬 1:16 그 복음 안에 있는 기능 중 하나로 사용하지 복음의 기능 자체를 인간론적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더구나 예수 믿어서 구원 얻는다는 표현은 찾아 보기 힘든다.
이런 것을 통해서 신약성경에 사용된 복음은 예수님이나 사도들이 전한 내용 자체를 복음이라는 단어로 압축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복음, 그리스도의 복음, 기독론적으로 사용한 복음,
둘째는 천국 복음 이 두 가지가 헬라 문화속에서 유앙겔리온이라는 용어와 너무 잘 연결 된다는 것이다. 나라와 나라의 승리를 전하는 것과 관련되어서 마태복음 전자가 신학화 해서 천국 복음이라고 했을 것이고, 황제의 탄생과 관련하여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이라고 사용했을 것이다.
그 나머지는 복음의 성격을 묘사하는 다양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누가 신학화 했느냐 가장 가능성이 높은 사람은 바울일 것이다. 그냥 배경 자체는 단어는 배경자체는 헬라적인 배경이지만 메시지는 유대 메시지이다. 가이사가 신이 아니고 구약 성경에서 이야기 된 그리스도, 예수가 메시야이고 ,주다. 유다 메시지를 강하게 어필하는 것이 복음이다. 그래서 이 복음의 충격파는 엄청났을 것이다.
우리 시대에도 이런 충격파는 만들 필요가 있다.
이런 장르들이 되면서 예수의 생애와 사건 자체를 설명하는 그 자체를 복음서라고 한다.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복음서이다. 나중에는 복음서라는 장르가 나온 것이 아닌가?

내용적인 면에서 유대적인 면에서 간단히 출애굽이 있었고, 그 이후 사람들이 죄를 지어서 나라가 없어지고, 새 출애굽을 주는데 그것을 일으키는 분이 메시야이다. 그분이 예수다.
출애굽기에 보면 자신이 통치하는 나라를 세우기 위해서 출애굽한다. 그래서 출애굽한 백성들이 불순종하여 나라가 망하고, 포로가 된다. 그 이후 하나님께서 새출애굽을 하게 된다. 죄로 인해서 나라가 멸망하여 바벨론...
나라가 망한 것은 죄 때문이었는데 그것을 돌이키는 것을 죄사함. 나라를 새롭게 세워 나가는 것.
그것 안에 인간의 죄가 사해 지는 것을 생각 할 수 있겠지요.
새출애굽으로 이해를 하는데 바벨론에서 나왔는데 메시야가 등장하여 메시야가 나와서 새롭게 건축한다. 그 메시지의 내용을 압축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단어가 바로 유앙겔리온이라는 단어였다는 것이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로서 새이스라엘을 몰고 오는 자이다. 승리케 하시는 분이다. 나라가 승리한다. 그것을 천국 복음이라고 설명하면 너무나 잘 맞아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장본인이 로마 황제가 아니라 예수다.
메시지 내용은 유대것을 그대로 가져 오면서 로마 제국에 사는 사람들에게 훨씬 더 잘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유앙겔리온이라는 단어라 할 수 있다.

바울이 어떻게 설명하는 가? 그리스도의 복음이라고 설명한다.
첫째, 무슨 뜻을 의미하느냐 그리스도는 새 이스라엘을 새롭게 창조하는 자로 등장하는, 이 이가 바로 예수라는 뜻으로 복음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들고 새창조의 개념으로 만드는 것이라는 것이다. 죄사함 받아 의롭게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이다.
고전 15:22 롬 5:12- 새생명을 주고, 새 삶을 주게 하는 대표자로서의 표현이 나온다.
갈 6:15- 할례나..지으심을 받은 자 뿐이라는 것이다.
두 번째는 그런 새창조가 어떻게 이루어지느냐? 새영을 주심으로 새 백성을 만드신다. 롬 1;3 하나님의 아들의 복음, 2,34에 이야기 한 내용이 롬 8장과 잘 연결 된다. 영을 통해서 새 창조한 것과 잘 연결 된다. 새로운 창조도 영으로 창조하신다. 그 아들의 형상, 부활의 모습까지 이룬다.
그리스도의 복음이라는 것은 그리스도는 새창조를 이루시는 분이다. 소극적인 의미는 그 기능이 구원을 가져다 준다는 것이다. 롬 1: 이구원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난다. 어떤 방법을 통해서 나타나느냐 이신칭의를 통해서 나타난다.
그리스도를 통해서 새창조를 한다.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는 말이 틀렸다는 말이 틀렸다는 말이 아니다. 구원에 대한 개념도 나온다. 그러나 바울이 사용한 특징이 무엇인가를 잘 이해를 해야 한다. 나사렛 예수가 태어나신 것,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이 복음이라는 것이다. 그 복음 안에 구원의 능력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복음이란
첫째, 하나님께서 종말에 메시야-그리스도-를 통해서 새출애굽을 이루고, 새 영을 줌을 인해서 새 이스라엘, 새 창조를 이룬다.
둘째, 그것의 기능을 다른 말로 하면 그리스도의 구속을 통해서 그 백성의 죄를 사하고 영광스럽게 하기 위한 것이 구원이다. 이것이 이신칭의, 믿음의 법을 통해서 온전하게 만든다는 것이 바울이 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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