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후 3:6-1815-04-19 월새
첫째, 하나님은 하나님 같이 온전한 사람으로 성도를 세우기를 소원하신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하나님 같이 온전하고, 거룩하고, 구비한 자 만드시기를 원하신다. 그래서 삶의 목표도 여기에 두고 살아가라고 명령하셨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 5:48)
이 목적대로의 사람을 만드시고, 그 방편으로 성경을 기록해 주셨다.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딤후 3:15-17)
둘째, 규모 없이 행하는 자(무질서하게 살아가는 사람)는 사귀지 말고 멀리하라.
이러한 하나님의 목적 달성을 위해서 사도바울을 통하여 데살로니가교회를 통한 교훈을 주셨다. 본 단락에서는 데살로니가교회 내에 주님의 재림에 대한 오해와 잘못된 해석, 그리고 적용으로 말미암아 재림이 바로 임할 것처럼 착각하여 일도 하지 않고 밥그릇만 축내는 자들이 있었던 것 같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단순히 밥그릇만 축내는 것이 배운 말씀대로 순종도 하지 않는 자들이라는 점이다. 그러니까 이들은 다른 사람에게 엄청난 정신적, 물질적 어려움과 폐를 끼치는 자들이다. 이런 삶의 행태는 하나님의 자녀가 복의 근원이 되어야 할 것임에도 복의 근원이 되기는커녕, 불행의 근원이 되고 있으니 전혀 하나님의 뜻에도 안 맞고, 사람으로서의 본분을 지키지 않는 악하디 악한 사람이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찌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시리라’(전 12:13-14)
그래서 하나님은 단호하게 이들을 원수처럼 여기고 미워해서는 안 되지만 일정한 간격을 두라고 두 번(6, 14절)이나 확고히 말씀하셨다.
나는 과연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다른 사람에게 복의 근원이 되었던가? 불행의 근원이 되었던가를 돌아 볼 때 후자의 삶을 더 많이 살아온 것 같아서 진실로 회개가 된다. 이것은 왕따를 당하며 살았어야 함에도 목사로서 주의 일을 하고 있으니 이것은 전적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 덕분이다. 할렐루야!! 또 주변에 좋은 사람들을 많이 두고 있다는 증거이다. 그래서 참으로 감사하다.
그렇다고 해서 계속 불행의 근원으로 살아갈 수는 없다. 하나님의 기대와 뜻, 명령을 따라서 ‘내게 사는 것은 그리스도가’ 되어야 하겠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함으로 이제부터 남은 생애만큼은 다른 사람들에게 은혜와 복을 주는 복의 근원을 살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 이를 위해 모든 현실에 “이렇게 사는 것은 불행의 근원의 길인가? 행복의 근원의 길인가?”를 계속 따져 보며 살아야 한다.
둘째, 선을 행하다가 낙심치 말라.
목사인 목회자뿐만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부름 받은 성도는 항상 사람들을 상대하며 죽을 때까지 살게 된다. 그런데 그러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할 일은 그들을 주님의 참제자로 온전한 자로 세워 가는 것이다.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찌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엡 4:11-16)
이를 위해 전도도 하고, 봉사도 하고, 밥을 사기도 하고, 사진을 찍어 주기도 하고, 일을 대신해 주기도 하고, 중보기도도 하고, 권면도 한다. 그런데 이 일을 하다보면 너무나 많은 경우에 상대는 믿음의 길을 걷기보다는 세상을 따라 세속화의 길을 걷고, 악하게 교만하게 살아가는 경우를 만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쉽게 좌절 낙망하고 넘어지게 된다.
이에 대해서 하나님은 ‘선을 행하다가 낙심치 말라’고 하셨다. 여기에는 몇 가지 깊은 의미가 있는 것 같다. 가장 먼저는 상대가 변화되지 않고 자라지 않는 모습을 보며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 내 자신을 고쳐 나를 더욱 거룩하고, 구비하고, 온전한 사람으로 세워가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분명하다. 그래서 남을 탓하기 전에 나를 돌아보고 고치는 회개가 우선되어야 한다.
다음으로는 내 자신이 상대와 같은 깨닫지 못하고 자라지 못하고 악하게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얼마나 비극인가? 그래서 내게 먼저 깨닫게 하시고, 바른 길을 걸어가게 해 주신 것이 전적 하나님의 은혜이니 상대를 보고 좌절, 낙망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더욱 깊이 감사할 일이다!!
마지막으로는 나 자신, 다른 사람, 때로는 자식, 부모, 친구 누구 하나도 사람이 사람을 변화 시킬 수 없다. 아무리 억박을 지르고, 협박하고, 폭행하고, 때로는 타이르고, 부탁하고, 기다려 주고, 사랑해 줘도 사람 변화는 사람이 할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오직 하나님만이 사람을 변화 시킬 수 있고, 하나님이 해 주시면 복음을 가장 살벌하게 박해했던 사울이 바울로 변화되어 목숨 걸고 복음을 전하는 선한 사람으로 변화 된 것처럼 변화 될 수 있는 믿음을 확고히 하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께 인내심을 갖고 계속 은혜를 구하는 노력만 해야 한다. 그리고 그 사람의 변화에 대한 결과는 온전히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의 때가 되면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되는 놀라운 역사를 목격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이 변화 되고 나면 이 땅에서 뿐만 아니라 하늘나라 가서도 영원토록 감사와 영광과 찬송을 우리에게 돌리게 될 것이다.
교훈의 적용
따라서 오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은 분명히 명령하시고 요구하신다.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은 그 현실을 통하여 온전한 사람으로 성화 성장되기를 기대하신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그분의 뜻을 구하고 순종해야 한다. 또 어떤 경우도 복의 근원으로 살아가야 되지 불행의 근원으로 살아가면 안 된다는 사실이다. 징계의 대상, 왕따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항상 복의 근원의 길인가 불행의 근원의 길인가를 구별하며 살아가야 한다. 마지막으로 어떤 경우도 사람을 상대로 하면서 낙망, 좌절하지 말아야 한다. 오직 하나님만이 은혜를 주시고 변화 시켜 주실 수 있음을 믿고 소망 가운데 감사함으로 일생을 인내해야 한다. 그렇게 하여 한 사람을 변화시키고 온전한 자로 세워가면 온 천하를 얻는 것보다 더 큰 수입을 얻는 것이다. 이 보다 더 큰 수입을 무엇을 해서 얻을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