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아닌 하나님을 선택한 욥

2014.07.24 15:50

윤봉원 조회 수:470 추천:30



욥 13:1-19 14-07-24 목새

날자: 2014년 7월 24일 목새

제목: 친구가 아닌 하나님을 선택한 욥

본문: 욥기 13:1-9

1. 세 친구들의 주장의 모순에 대한 욥의 정곡을 찌르는 지적.

욥기 13장까지 오면서 욥이 당한 전 재산을 잃음, 자식을 잃음, 건강을 잃음, 아내로부터의 신뢰를 잃음, 친구 세 사람으로부터의 정신병자 또는 짐승처럼 비정상적이고 죄인 취급 받았던 욥은 이제 사람에게 인정을 받으려하지 않고 목숨 걸고 오직 하나님께만 도움과 해답을 구하는 국면에 이르렀다.

한 편으로 13장이라는 지루하고도 긴, 그리고 세 친구의 반복되는 인과응보의 주장에 욥은 진절머리가 났다. 나 또한, 욥의 심정과 친구들의 심정을 가지고 사람들을 상대했던 과도기적 상황에서 이제 내가 어떤 길을 걸어가야 할지 점점 명확히 하는 시간이 다가 왔다.

욥의 세 친구들의 인과응보 원리의 욥에 대한 적용의 주장은 12장 6절로 박살이 났다. 그들의 주장대로 의인은 복을 받고 잘 되며, 악인은 망하고 죽는다는 원칙과 정 반대 되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음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강도들과 하나님을 격동케 하는 악인들과 그 집이 형통하고, 평안하고, 풍성히 누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 범주에 하나님을 믿지 안는 모든 불신자(不信者)들은 다 들어간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진리와 영감대로 살지 않는 사람들이 다 들어간다.

그렇다면 이 범주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다 죽고 망해야 하는데, 마치 욥의 친구들의 주장처럼 욥처럼 처절하게 비참한 결과가 와야 하는데 오히려 평안하고, 풍요하고, 더 희망적인(세상적으로 볼 때) 삶을 살아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과응보의 원리는 모든 사람에게 적용할 수 있는 원리와 이론, 철학이 아니다.

그래서 욥이 지적한 대로 욥의 세 친구들은 돌팔이 의사요, 거짓을 지어내는 자들이며, 티끌 위에 격언을 쓰는 자들이며, 흙벽돌 위에 답변을 쓰는 자들이다.

그런데 내가 이런 삶을 지금까지 너무 많이 살아왔다는 것이 문제이다. 이번 기회에 이 시점에서 인과응보의 원리를 쉽게 다른 사람에게 적용하려 했던 것을 완전히 청산해야겠다. 또 이런 은혜를 주시기를 진심으로 간구한다. 누가 뭐라 하든지 잘못인줄 알았다면 이제부터라도 사람들의 안면 체면 생각하지 말고 깨끗이 정리하는 것이 맞다.

오늘 신문에서 민혁당을 만들었던 김영환씨가 북한에 밀입북하여 김일성을 만나 대면해 보고 아, 이것은 아니구나 하고 마음 정리를 하고 그를 따르던 많은 사람들이 만류를 해도 뿌리치고 지금까지 자신이 주장했던 것을 잘못으로 인정하고 오히려 공산주의를 개혁시키려는 작업에 몰두 하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참 멋쟁이다.

2.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고 하나님께 변론을 청함으로 문제의 답을 얻기를 소망한다.

친구들에게서 위안과 믿음, 신뢰를 받지 못한 욥은 이제 그들과의 논쟁이 무가치하고 무의미하다고 판단하고 하나님과 변론하기로 작정한다. 그러면서 그는 죽음을 각오하고 하나님께 직접 변론하는 길을 선택한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지금까지 하나님이 주셔서 누렸던 모든 것이 다 사라진 상황에서 하나님이 죽이실지라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소망하며 하나님께 자신의 무죄함을 변론하기로 한다. 이는 하나님만이 자신에 대한 정확한 판단과 구원을 해 줄 수 있다는 확신에 근거한 것이다.

나 또한 예수님의 사활대속의 은혜 덕분에 나의 모든 문제에 대해서 하나님께 아뢰고 답을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심에 무한 감사하다. 따라서 나의 모든 문제는 하나님께 고하고 간구함으로 답을 얻는 복 있는 자가 되기를 진실로 소망한다.

그리하여 나의 모든 상황을 정평정가하고 믿음의 손해를 조금도 보지 않고 구원의 유익만 보는 주인공, 복 있는 자가 되기를 소망한다.

“주여 이 은혜를 힘입어 자타의 구원의 수입만 보는 복의 근원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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