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14:13-2114-03-02 주후날자: 2014년 3월 2일 주일오후
제목: 딱 한 사람입니다!!
본문: 마태복음 14장 13절 – 21절
1. 사람을 보며, 세상을 보고, 환경을 볼 때는 만족함이 없었다.
예수님 당시에나 오늘날이나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역사가 제대로, 강력하게 일어나지 않는 원인은 무엇일까? 이런 질문을 수없이 하게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이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인간임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때로는 사람을 보며 희망을 가지고 하고, 실망을 하기도 했다. 또 세상과 환경을 보고 희망을 가지기도 하고 실망을 하기도 했다. 그래서 이런 삶의 반복에는 만족함이 없었다. 오히려 좌절과 낙망과 불안과 초조, 원망, 불평뿐이었다. 이런 온탕과 냉탕, 천국과 지옥을 왔다 갔다를 지금껏 하며 살아온 우리들이 아닌가? 그래서 상황에 따라 얼굴이 천사같이 밝았다가 악마같이 어두웠다가, 웃다가 울다가, 춤을 추다가 좌절 낙망하다를 얼마나 많이 반복했는가? 이러한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오늘 본문을 통해서 그 원인과 해결책을 찾아보고 그 답을 우리의 삶에 적용하고자 한다.
2. 예수님은?
2.1. 영육으로 굶주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는 분(13-14)
예수님은 요한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으시고 조용히 있기 위해 빈들로 가셨다. 헤롯의 관할 지역 밖으로(빈들, 벳새다 근처, 눅 9:10) 나가셨다. 지금은 일해야 할 때가 아니라 뱀처럼 지혜롭게 헤롯의 광기를 피해야 할 때라고 여기신 것으로 보인다. 따로 빈들에서 하늘 아버지와 오래 교제하기를 원하셨다. 십자가 한 곳만 바라보고 사셨지만, 오직 아버지의 때를 따라서 멈추고 나아가셨던 것이다.
하지만, 거기까지 많은 무리가 예수님을 따라왔다. 그런 그들에게 예수님은 짜증내시기는커녕 불쌍히 여기시며 그들의 병을 고치시고 오병이어로 배불리 먹이셨다. 그러면 왜 예수님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을까?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을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가지로 가르치시더라’(막 6:34)
예수님은 그들의 상태가 목자 없는 양과 같아서 영육으로 굶주린 무리의 상태를 직시(直視)하신 것이다. 가르침과 병고침으로 하나님 나라의 현존을 맛보게 해 주셨다. 아마 우리도 이런 영안이 있다면 마땅히 불쌍히 여기신 주님처럼 불쌍히 여겼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오늘 이 자리에 있는 우리를 불쌍히 여기신다. 예수님은 오늘도 기댈 곳이 없는 이들을 품어주신다. 우리는 혹시 우리가 슬프고 힘들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들에게 쉽게 짜증을 내거나 귀찮아하지는 않았는가? 우리를 귀찮아하지 않고 우리의 상태를 다 아시고 품어 주시는 주님께로 나아가라! 기도의 골방으로 나아가라! 그러면 우리를 품어 주시고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이다. 아멘!!
우리 또한 언제나 사랑과 긍휼로 우리를 대해주시는 예수님처럼 사랑과 긍휼로 다른 사람, 지체들을 대해야 한다. 아울러 우리는 우리에게 예수님을 잘 소개하고, 가르쳐주고, 지체들의 아픔을 같이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을 붙여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그런 선한 이웃이 되어야 한다.
2.2. 믿음의 사람 딱 한 사람이면 충분하다(15-21)
2.2.1. 환경과 인간의 지식과 능력을 바라보면 좌절, 낙망, 원망, 불평뿐이다.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는 여자와 아이 외에 남자만 오천 명 되는 많은 무리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고 하셨다. 지금 처한 장소가 광야고 빈들이었기에 그 많은 무리를 돌려보내서 마을에 들어가 먹을 것을 사먹게 하자고 한다. 너희가 주라는 말에는 가진 것이 너무 적다고 말한다. 그 소리를 들은 제자들의 계산은 매우 합리적이었다. 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그 주장 속에는 창조주요 만물의 지휘자 예수님은 없었다는 것이 문제이다! 그러니 그 말은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예수님이 빠진 인생에 참 지혜와 능력의 역사는 일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있는 것이라고는 예수님에 대한 불만과 불평, 죄악된 행위만 있을 뿐이었다. 제자들의 말을 들어보라.
‘제자들이 가로되 여기 우리에게 있는 것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뿐이니이다’(17)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가? 눈에 보이는 경제력, 가정 형편, 교회의 건물 규모, 교인 규모, 학력, 세상 위치 이런 것들을 돌아보고는 우리 가정은, 우리 교회는 비전이 없어!! 라고 하며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음을 합리화 하고 위안을 삼고 있지는 않는지?
우리는 분명히 해야 한다. 제자들처럼 우리도 예수님 바라보지 않고 우리의 환경, 사람, 외형적인 조건들만 바라보면 좌절, 낙망, 원망, 불평뿐이라는 사실을....
2.2.2. 예수님 한 분 바라보고, 믿고 순종하는 딱 한 사람만 있으면 기적의 역사는 일어난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는 말씀에 제자들은 도무지 계산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예수님께는 오병이어로도 충분했다. 예수님은 고작 한 사람의 한 끼 식사에 불과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성인 남자만 헤아려 오천 명을 먹이셨던 것이다. 모세를 통해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무리는 예수님에게서 떡을 공급 받아 배불리 먹고도 열두 바구니를 남겼다.
예수님은 광야 외딴 곳에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심으로써, 자신이 빵 스무 개로 100명을 먹인 엘리사보다 더 위대하고, 광야에서 만나를 주신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임을 보여주셨다. 이 기적은 무리의 배고픔을 해결해주었을 뿐 아니라 예수님을 잘 모르는 제자들과 무리에게 예수님을 통해 메시아적 잔치가 시작되었음을 알게 해주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것을 요구하시는 것은 예수님의 능력과 자원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그분은 창조주요 만물의 주인이신데 뭐가 부족한 것이 없다. 또 우리에게 모든 것을 감당시키기 위해서도 아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믿고 순종하는 우리의 참여를 통해 우리가 천국 사역에 동참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는 명령은 그 자체로 이행하기 불가능했지만, 채우실 예수님을 의지하고 순종한다면 우리의 작은 나눔의 실천이 큰 기적의 일어날 것을 분명해 주시는 말씀이다.
만물의 지휘자 주님은 오늘 오병이어를 내어 놓은 한 사람처럼 주님을 믿고 그분이 역사해주시기를 바라고 믿음으로 드리는 한 사람을 찾고 계신다. 여기에 모인 우리는 이 딱 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렇게 믿고 드리지 않음으로 지금까지 주님께서 우리를 통해 일하실 수 없었던 것을 회개해야 한다.
3.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순종하는 사람, 딱 한 사람이면 충분하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을 제쳐 놓고 다른 사람, 세상과 환경을 바라보는 삶은 그만둬야 한다. 나 한 사람이 오병이어를 드린 순종의 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것 가지고 뭘 하겠나? 무슨 역사가 일어나겠나가 아니라 하나님이 일하시고자 할 때 믿고 순종하는 딱 한 사람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 이 사람만 있다면 교회는 폭발의 역사가 일어날 것이고, 가정이 변할 것이고, 사회와 국가가 변할 것이다. 그 사람이 소속된 주일학교, 중고등부, 셀, 부서에 놀라운 오병이어의 기적 역사가 일어날 것이다. 반드시 하나님이 원하시는 딱 한 사람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