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전지성과 편재성

2014.03.02 20:54

윤봉원 조회 수:1003 추천:85



시 139:7-814-03-02 주전
날자: 2014년 3월 2일 주일오전

제목: 하나님의 전지성과 편재성

본문: 시편 139편 7절 – 8절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찌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찌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1. CCTV를 왜 사람들은 의식하며 살아가나?

요즘은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은 CCTV를 벗어나서 살기 힘들다 싶을 정도이다. 거리, 상점, 각종 건물과 살내 외, 학교, 체육관 어디를 가도 CCTV가 설치되어 있다. 이는 범죄를 예방하기 위함도 있으며 사건이 발생했을 때 정확한 문제 해결을 위한 목적도 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CCTV는 상당히 부정확하다. 가면만 덮어 써도 사람을 잘 인식하지 못하며, 차 넘버를 무엇으로 가리기만 해도 식별을 잘 못한다. 그럼에도, 이것을 아는 사람은 항상 CCTV의 기능을 인식하고 자신의 삶에 적용하려고 노력하는 것을 우리는 쉽게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이 비정확한 CCTV보다도 더 완벽하고 정확하게 우리의 삶을 파악하고 있는 것은 없을까? 이것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삶은 어느 정도인가를 살펴보라. 만약 이러한 것(분)이 계시다는 것을 온전히 알고 믿으면 우리의 삶은 이것을 알기 전과 후는 전혀 180도 다른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오늘 이러한 진리에 대해서 본문을 중심으로 분명히 알아보고 그 교훈을 우리의 삶에 적용하고자 한다.

2. 하나님은?

2.1. 모든 것을 다 아시는 전지자이시다!!

아무 인간도 그를 가르칠 수 없고, 가르침 받을 필요도 없으시며, 모든 곳에 편재하시며 우리를 살피시고 사랑하여 주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놀라운 능력과 지혜의 소유자이시다. 하나님은 모든 만물을 창조하실 뿐 아니라 그것들을 유지하시고 다스리시는 위대하신 분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만든 신이 아니요, 우리의 상상의 그 어떤 존재도 아니다. 그가 우리와 온 세계를 지으셨다. 우리가 그의 생각에서 나왔다. 하나님의 생각은 온 우주를 채울 만큼 무한(無限)하시다.

‘누가 손바닥으로 바다 물을 헤아렸으며 뼘으로 하늘을 재었으며 땅의 티끌을 되에 담아 보았으며 명칭으로 산들을, 간칭으로 작은 산들을 달아 보았으랴 누가 여호와의 신을 지도하였으며 그의 모사가 되어 그를 가르쳤으랴 그가 누구로 더불어 의논하셨으며 누가 그를 교훈하였으며 그에게 공평의 도로 가르쳤으며 지식을 가르쳤으며 통달의 도를 보여 주었느뇨’(사 40:12-14)

이 말씀은 하나님의 전지하심을 반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가진 어떤 계기(計器)로도 잴 수 없는 크고 지혜로운 분이다. 이사야는 구원의 하나님을 선포한 후 그 하나님의 비교할 수 없는 능력을 선언한다. 그분은 창조주이시며, 만물을 주관하시는 분으로서 열방과 비교할 수 없고, 우상과도 비교할 수 없는 분이심을 명확히 한다. 지금도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위해 일하시는 능력의 주(主)시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다 아시는 데에는 우리 개개인의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다. 

그에 반하여 우리 인간은 하나님에 관한 모든 것을 완전히 알 재주가 없다. 또 하나님의 여러 모양을 다 묘사할 수도 없다. 창조주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을 노래하는 말씀들은 그의 능력과 그분의 구원(救援) 의지에 회의적인 이스라엘 사람들을 설득하려는 논쟁적 성격을 갖는다. 당시의 통속적 사고에 따르면 바벨론에 의한 이스라엘의 패배는 이스라엘의 국가 신 여호와께서 바벨론의 국가 신 말둑에게 패배한 사건이 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여호와를 예루살렘과 다윗 왕조의 보호자로 알고 있던 자들에게 예루살렘의 함락과 성전의 파괴와 다윗 왕조의 멸망은 그분의 능력의 한계를 보여주는 사건이었던 것이다.

이런 패배주의(敗北主義)적 신앙에 젖어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다시 소망과 용기를 주며 더욱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북돋워 주기 위해 이 말씀을 하시는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크고 위대하신 하나님을 우리의 좁은 생각과 경험으로 제한하여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여기지는 않는지? 또 하나님보다 더 지혜롭고 뛰어난 양 교만하게 굴지는 않는지? 돌아보라.

아울러 오늘날 우리는 어떤가?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이런 저런 어려운 일을 만나면 “하나님은 지금  어디에 계시는가? 무엇을 하시는가? 나를 버리셨는가?” 등 하나님께 대한 원망과 불평을 쏟아내지 않는가? 하나님을 무지무능한 자로 여기는 불신앙의 상태로 너무도 많은 성도들이 빠져들고 있는 것 같은 오늘의 현실이다.

또 한 성구를 보라.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로다 우리 마음이 혹 우리를 책망할 일이 있거든 하물며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일까 보냐’(요일 3:20)

하나님은 우리의 지각을 초월하시는 분이시다. 현대어 성경은 이 두 구절의 말씀을 다음과 같이 번역하고 있다. ‘우리가 진정으로 남을 사랑하고 행동으로 나타내 보인다면 우리는 하나님 편에서 있다는 것을 더욱 확신하게 될 것이다. 깨끗한 양심으로 주님 앞에 부끄러움 없이 설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도 죄를 저질렀을 때는 양심에 가책을 느껴 스스로의 잘못을 아는데, 하물며 더없이 어지시고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을 다 알고 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잘못을 모르시겠습니까?’

우리가 살아가면서 사랑을 실천하면 그 유익은 자신에게 돌아온다. 우리 자신이 진리 안에 있음을 확인 받으며, 하나님 앞에서 확신이 생기게 된다. 심지어 마음의 가책을 받을 때조차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우리를 잘 아시는 하나님의 용서를 신뢰(信賴)할 수 있다. 사랑을 실천할 때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도 더 잘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20절 말씀과 같이 우리의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알고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오며 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시 139:1-4)

이 말씀은 우리의 모든 행위를 아시고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성품보다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이 우리의 마음보다 더욱 크시다는 것을 말씀하시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진실함으로 사랑을 실천하면, 설사 우리가 죄를 짓는 실패를 할지라도 하나님이 우리 마음속에 있는 그 사랑을 알아보시고 또 알아주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연약함을 정죄하지 말고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의지하여 더욱 사랑의 삶을 살 것을 권고하시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마음의 소원을 다 아시고 용서해주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신 사랑을 붙들어야 한다.

지금까지 살펴 본 것처럼 이러한 하나님의 전지성을 성경대로 분명히 알 때 우리의 태도는 제자의 길을 걸으며 받게 될 박해를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주님은 열 두 제자를 파송하시면서 앞으로 받게 될 박해를 각오하고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다. 복음을 전하면 사람을 반대해서가 아니라 복음과 하나님을 반대해서 반드시 박해를 받게 되는데 그때 나를 알고 계신 주님을 기억하면 담대함을 유지할 수 있다. 아멘!!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마 10:29-31)

아무도 알아주는 이 없고 핍박하는 자들만 줄줄이 있다 할지라도 우리는 주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품을 수 있다. 또 우리는 주님을 경외할 때 성도 상호간에 복종할 수 있다. 즉 피차간에 섬기는 모습을 나타내며 신바람 나게 살아갈 수 있다. 생명길 좁은 길 찾는 이가 없는 길이라도 하나님 한 분 믿고 당당하게 주님 오실 때까지 걸어갈 수 있는 것이다. 할렐루야!!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엡 5:21)

2.2. 하나님은 모든 곳에 계시는 무소부재자이시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사람이 내게 보이지 아니하려고 누가 자기를 은밀한 곳에 숨길 수 있겠느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천지에 충만하지 아니하냐’(렘 23:24)

이 말씀의 의미는 무엇인가? 인간은 아무리 자신의 성격이나 계획, 행동 등을 숨기려고 해도 하나님의 눈(감찰)으로부터 아무 것도 숨길 수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모든 곳에 계시기 때문이다. 이 신앙은 우리의 경건 생활에 어떤 유익을 줄까?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찌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찌라도 거기 계시니이다’(시 139:7-8)

하나님의 편재성과 전지성을 온전히 믿고 알고 자신의 삶에 적용한다면 우리는 은밀한 어두움의 일에 빠지는 유혹에 안 넘어 갈 수 있다. 사람이 보면 조심하면서도 하나님이 보고 계심을 잊고 살아가기에 온갖 은밀한 유혹에 얼마나 지금까지 많이 넘어 갔던가? 눈감고 아웅하는 식의 가식적인 신앙생활을 얼마나 많이 했던가? 

“남들이 안 보니까, 나는 기도, 전도, 성경읽기 안 해도 되. ”

그러나 하나님의 편재성과 전지성을 믿으면 주의 얼굴을 항상 의식하며 생활할 수 있다. 내가 선한 일을 할 때도 다른 사람이나 환경을 조금도 의식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 아무도 봐 주는 사람이 없어도 속상할 일이 없다. 아울러 아무도 안 보는 것 같아도 죄를 지을 일이 없다. 하나님께서 다 아시기 때문이다. 행한 대로 심판을 받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대로 보응하시되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좇지 아니하고 불의를 좇는 자에게는 노와 분으로 하시리라’(롬 2:6-8)

하나님의 편재성을 온전히 믿으면 우리는 일생(一生) 외로워하거나 두려워하거나 우울증에 안 걸리고 살아갈 수 있다. 그분과 교제하며, 그분을 사랑함으로 그의 명령을 순종할 때 그분이 베푸시는 일하심과 역사하심을 계속적으로 경험하고 누리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이런 신바람나는 신앙생활하시는 주인공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하나님을 무시하고 살았던 것을 회개하고 항상 하나님을 인식하고 인정과 사랑과 높임을 받도록 하라!!

이제부터 우리는 우리의 악한 행위, 불순종의 죄된 행위가 사람들에게 드러나지 않았다고 안심하며 어둠의 길을 걸었던 것 회개해야 한다. 아울러 우리는 우리의 모든 언행(言行)심사(心事)를 다 아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한 분 앞에서 옳다 인정함을 받을 수 있도록 항상 깨어 구별하며 거룩한 걸음만 걸어야 한다. 똑 마음, 힘, 뜻, 목숨 다하여 충성하며 달려감으로 그분에게 인정과 사랑과 높임을 받는 주인공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아신다! 

하나님은 모든 곳에 계신다! 

아무도 그분을 인정 안 해도 나는 믿고 죽을 때까지 묵묵히 따라 가리라!! 

주님 오실 때까지!!  

이런 믿음의 사람을 붙들고 올 한 해 우리 하나님은 강력히 일하실 것입니다. 아멘!!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