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을 말과 믿지 말아야 할 말

2013.08.04 16:51

윤봉원 조회 수:532 추천:65



대하 18:2713-08-04 주후

 

 

날자: 2013년 8월 4일 주일오후
제목: 믿을 말과 믿지 말아야 할 말
본문: 역대하 18장 27절
1. 말을 구별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생각나는 대로 하는가?
우리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수많은 말들을 하기도 하고 듣기도 하며 살아간다. 그런데 우리 하는 말도 해야 할 말이 있고 하지 말아야 할 말이 있다. 이렇게 크게 두 가지 세부적으로는 네 가지 말을 구별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아니면 아무 생각 없이 들리는 대로 반응하고, 말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마치 생명 없는 물고기가 물에 휩쓸려서 떠내려가는 존재와 같은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과 연결된 생명을 가진 존재요 사람이라면 말을 구별하며 살아가야 한다.
오늘 이 시간에는 본문을 중심으로 우리가 남의 말을 들을 때에 귀담아 듣고 내게 적용해야 할 말과 그렇지 않아야 할 말을 살펴보고자 한다. 또 이 말을 구별하는 데 있어서 무엇이 기준이 되어야 할까? 본문을 중심으로 따져 보고 그 교훈을 우리의 삶에 적용하고자 한다.
2. 말에는?
2.1. 참 말과 거짓말이 있다.
즉 말이 말대로 되기에 믿을 수 있는 말이 있고, 말이 실상으로 되지 않는 거짓말이 있다. 본문에서는 아합 왕이 자신과 나라의 진로, 즉 길르앗 라못에 가서 아람과 싸움을 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에 대해서 400명의 선지자에게 물었다(5a). 그 물음에 대한 선지자들의 대답은 “하나님이 이기도록 도와 줄 것이니까 올라가라.”(5)라고 답했다. 그러나 이 말은 하나님의 의중과 섭리를 전혀 알지 못하고 한 거짓말이다.
그러나 아합 왕에게 항상 올바른 소리만 하는 미가야 선지자는 전쟁에 실패할 것과 왕의 죽음을 단호히 이야기 했다(14-17, 27). 그 소리를 들은 시드기야는 싫어해서 미가야 선지자의 뺨을 치고(23), 아합 왕은 자신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올 때까지 감옥에 가두고 고생의 떡과 물을 먹도록 했다(26). 이러한 조치는 아합이 미가야의 말을 듣고 얼마나 증오했는지를 실감나게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너무나 교만한 아합 왕의 자세를 엿볼 수 있다.
그런데 결과는 누구의 말대로 되었는가? 거짓 선지자의 말대로 전쟁에서 승리하기는커녕 실패하고 왕은 죽음을 당하고 말았다.
여기서 본문은 우리에게 무슨 교훈은 주는가? 많은 경우에 인간들은 누구나 생사화복, 흥망성쇠, 존비귀천의 주관자 하나님의 말씀과 인도, 뜻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자기 비위만 맞추는 말이나 들으려고 한다. 또 그것이 아닌 내용은 듣기 싫어한다. 문제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은 복이 없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그 말은 우선 듣기는 좋아도 거짓말이기 때문이다. 생사화복, 흥망성쇠, 역사의 주관자 하나님께서 그 거짓말에 동의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결과는 하나님의 징계와 심판을 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롯의 처와 딸, 사위들을 생각해 보라. 그들은 하나님께서 소돔고모라를 떠나라는 천사의 말을 농담으로 여기고 거절했다(창 19:14).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가? 그들은 천사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대로 소동 땅에 내린 유황불비에 잿더미가 되고 말았다.
그러므로 우리는 남의 말을 들을 때에 구별해서 들어야 한다. 그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참 말을 하고 있는지? 아니면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에는 배치되지만 자기 생각대로 경험대로 주관적인 말, 이뤄지지 않을 말, 결국 거짓으로 드러날 말을 하고 있는지를 구별해서 들어야 한다. 그래서 야고보 기자는 ‘듣기는 속히 하라’(약 1:19)고 했다. 빨리 그 말을 구별하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까지 남의 말을 들을 때 어떻게 대처해 왔는가? 이제부터는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2.2.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이 있다.
본문 18장에서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라도 해야 할 말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미가야 선지자는 거짓 선지자들이 자신처럼 왕이 듣기 좋은 말을 하라고 부탁을 받았지만 그는 그 말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가 한 말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만 그대로 말했다.”(13) 이 얼마나 아름답고 멋진 기백 있는 말인가?
미가야는 이전에도 왕에게 진실한 말만했던 것 같다. 그래서 아합 왕은 그 말을 듣기 싫어하고 그런 말을 하는 미가야를 미워했다(7절). 미가야는 참말을 하는 것이 몸에 밴 사람으로 보인다.
껍데기로 볼 때 미가야는 왕에게 전쟁에 올라가라. 그러면 왕이 이기리라라고 말했지만 그 말의 진실은 그렇지 않음을 왕도 쉽게 눈치를 챘던 것이다. 그래서 왕은 재차 미가야 선지자에게 “내가 몇 번이나 너로 맹세케 하여야 하겠느냐?”(15)라고 말을 했다. 그러면서 그는 거짓 선지자들이 왜 거짓말을 하게 되었는지 그 배경을 대하 18:18-22까지 길게 진술한다. 그리고 27절에서 왕이 반드시 죽게 될 것을 자신이 멸시 천대 모욕을 당하면서 당당하게 말한다.
결과는 어떠했는가? 하나님은 숫자가 많은 거짓 선지자 400명의 말대로 된 것이 아니라 참 선지자 미가야 한 사람을 통하여 말씀하신 대로 아합 왕은 아람 군사 한 사람이 우연히 쏜 화살에 맞아 죽음을 맞이하게 하셨다. 생사화복, 흥망성쇠, 존비귀천의 주관자 하나님이 아합을 죽이신 것이다. 아멘!!
그런데 오늘날 우리 현실은 참말보다는 거짓말하는 자들이 사람들에게 더 인정을 받고 존경을 받는 사례들을 많이 찾아 볼 수 있다. 그 중에서도 대표적으로 이전 우리나라 대통령 선거에서 이회창씨가 대통령 후보로 나왔다가 그 아들의 병역 문제에 대한 잘못된 진술로 말미암아 여론이 완전히 역전되어 대통령 당선이 못되고, 거짓말은 한 사람은 징역을 살고 나온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가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의 기준을 어디에 둘 것인가? 그것은 거짓 선지자들과 미가야를 통해서 분명히 할 수 있다. 즉 성령이 아닌 거짓 영 사단이 주는 생각과 말은 거짓말이므로 어떤 경우든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것은 자신을 거짓말쟁이로 만들뿐만 아니라 그 말을 들은 상대까지고 해를 당하게 되기 때문이다. 자타의 자살 자멸의 말이기 때문이다.
우리해야 할 말은 어떤 말인가? 그것은 미가야처럼 하나님이 성령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것만 듣고 하는 말을 해야 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아무리 화가 나고 위급한 상황이라 할지라도 내 성질대로 내 경험대로 내 판단대로 “내 마음이지”로 하면 안 된다. 내 생각과 경험, 판단과 다르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미가야에게 알려 주셨던 것처럼 내게 알려 주시는 그 지도를 따라서 우리는 말을 해야 한다. 때로는 아합이나 시드기야처럼 핍박하는 자들이 둘러서 있다 할지라도 참말은 반드시 해야 한다. 그래야 그 사람을 살리는 것이 되고 하나님께 올다 인정함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역사는 하나님의 예언과 말씀대로 되기 때문이다. 올바른 말을 할 때 나도 살고 다른 사람도 살리며 하나님의 징계와 심판을 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3. 죽을 때까지 참말과 거짓말을 구별하여 듣고 말하는 자가 되라!!
우리는 죽을 때까지 말을 하고 듣고 살아간다. 그 중에서 우리가 취사선택을 하는 기준을 이제 무엇으로 삼아야 하겠는가? 듣는 말이나 하는 말의 근거가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인가? 아니면 인간인가를 구별해야 한다. 자신이 듣고자 하는 말만 들으려하고, 자신이 하고픈 말만 하려 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이 하시는 말에 가장 큰 관심과 집중을 해야 한다. 남의 말을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능력을 성경 묵상을 통하여 길러야 한다. 그래야만 거짓말에 속지 않을 수 있고, 거짓말을 안 할 수 있으며, 살리는 말만 듣고 살리는 말만 할 수 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말만 하고 들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이라면 어떤 어렵고 난감한 상황에서도 단호히 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나도 하나님께 계속 주인공으로 쓰임 받을 수 있고, 다른 사람을 불행에서 건져 낼 수 있고, 다른 사람을 살릴 수 있으며, 하나님 복 받는 사람으로 만들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복의 근원으로 살아가는 유일한 길이다. 이런 주인공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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